‘날마다 좋은날 되소서’
자비의 마음 선화(禪畵)로 꽃피워
2009-04-26 최성욱 기자
정현 스님은 ‘날마다 좋은날’ 캠페인을 통해 지난 20년간 9만여 장의 선화를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었다. 토굴수행을 통해 ‘날마다 좋은날 되소서’라는 화제(畵題)로 승화된 작품들은 부처님 말씀을 대신해 우리의 눈으로 전해지면서 경제 불황으로 지쳐있는 우리의 마음에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다.
“그림보고 웃으면 그게 좋은날...”
충남 공주에 위치한 마곡사 매표소를 지나 태화산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보면 마을 제일 끝자락에 위치한 화림원이 나온다. 입구에 세워진 ‘날마다 좋은날 되소서’ 표지목을 따라 들어가자 오래된 기와집 옆으로 흙집 한 채가 나란히 지어져있다. 스님의 거처로는 낯설어 한참을 들여다보다 제대로 찾아왔나싶어“계십니까?”라고 묻자 노스님이 맨발로 나와“무슨 일로 예까지 왔어?”라며 퉁명스럽게 맞이한다.
집안으로 들어가 정현스님과 함께한 자리에서 명함을 내밀자 스님은 명함 대신 선화 한 점을 건냈다. 그림에는 ‘날마다 좋은날 되소서’라는 글귀와 함께 문수동자와 소, 머리 둘 달린 공명조, 피리, 연꽃, 물고기 등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다. 작품에 대해서 자세히 묻자 스님은“그림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언어도단(言語同斷)이야”라고 짧고 명료하게 답했다. 즉 선화가 표현하고자하는 것은 단순한 사실이지만 그 가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의 단계에 있다는 얘기다.
스님이 선화를 그리기 시작한 지는 올해로 꼬박 20년이 되었다. 해외포교활동시절 서양인들과 선화를 통해 맺은 인연을 계기로 94년 지금의 자리에 토굴을 짓고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들어갔다. 토굴생활은 수행에 일환으로 자연 속에서 영감을 얻어 수많은 선화와 달마도가 그려지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그려진 그림들은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하나 둘 무료로 전해져왔다.
스님의 토굴 속 고행은 오방색 그림과 함께 ‘날마다 좋은날 되소서’라는 화제(畵題)로 승화돼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선사됐다. 처음 11년간은 직접 그림을 그려서 10,800여장을 전달했고, 2000년 이후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과 그 뜻을 나누기 위해 판화작업 후 채색하는 방식으로 년 간 1만점을 전달했다. 그 수가 지금까지 9만 여장 가까이 된다.
정현스님의 날마다 좋은날은 행복․기쁨․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선화는 만인에게 그 뜻을 전할 수 있는 매개체인 것이다. 그림은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의미를 전할 수 있다. 종교가 달라도 상관없다. 그냥 보고 즐거우면 된다. 선화는 이처럼 모두가 날마다 좋은날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려진다. 이러한 이유로 정현스님의 선화는 불교예술을 넘어 다양한 인종․국가․종교를 뛰어넘어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진정한 대중예술로 평가받고 있다.
“누구한테 배운 적도 없이 혼자 그린 것”이라는 스님의 선화는 보는 이의 마음을 맑고 따뜻하게 한다.
10만 신도법회 여는 토굴 화림원
화림원은 신도가 없는 곳이다. 때문에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이도 없다. 가끔 정현스님의 선화가 좋아서 찾아오는 손님이 전부다. 스님이 산속에 토굴을 짓고 수행에 들어간 지 올해로 15년이 됐다. 처음에는 토굴에서 촛불 하나에 의지해 지내다가 건강을 걱정한 지인이 누울 곳이라도 마련하자는 뜻에서 지어놓은 것이 지금의 흙집이다. 스님은“이집도 나한테는 부담스러워, 그림 그릴 공간만 있으면 되는데 이렇게 앉을 곳이 생기니까 자꾸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잖아”라고 말했다.
이처럼 선화도 수수하고 소박한 정현스님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화림원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올해 ‘부처님 오신 날’에도 신도법회나 행사계획이 없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된 선화가 여느 법회 못지않게 매일 같이 날마다 좋은날을 주문할 것이다. 스님은 내년에 선화 10만장 보시를 채울 계획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좋은날을 꿈꾸게 된다.
스님은“힘이 닿을 때까지 선화를 그려야지 그래야 더 많이 나눠주지 않겠어?”라고 말했다. 이 말대로 스님의 선화가 우리 국민 모두에게 날마다 좋은날 바이러스로 전해지길 바래본다. NP
좋은날
웃자 웃자 살자
화가 나고 억울하고 고통스러움이 와도
날마다 좋은날로
부처의 날로
가난 슬픔도 그 속에서도,
날마다 좋은날인데
맑고 티 없이 맑은 마음
흰 구름 한 점 없는
참 좋은 날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