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인터뷰 - 주필리핀대사관 최중경 대사
‘한·필수교 60주년’
2009-06-29 류정화 기자
“양국관계 한단계 격상시키는 원년”
한국인에게 필리핀은 한국전쟁 당시 많은 병력을 파병한 고마운 나라, 1950~60년대 아시아에서 경제대국 중 한 나라이다. 또한 지리적으로 일본,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가까운 나라이다. 한국과 필리핀은 1949년 3월 3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이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6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맺은 것이다. 한국과 필리핀은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 정치, 경제, 안보,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올해 우리 정부는 무상원조 사업을 전담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필리핀에 5개 프로젝트, 977만달러 규모의 무상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양국의 교역량은 89억달러, 대(對)필리핀 투자는 3억1000만달러, 72만 인적교류를 달성했다. 올해는 한·필 양국이 수교 6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한해이다. 지난 3월 3일을 시작으로 음악회, 전시회, 마라톤 등 양국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하였다. 주필리핀대사관 최중경 대사는“올해를 한국과 필리핀 양국관계를 한단계 격상시키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했다. 한국과 필리핀 양국의 이해수준을 높이고, 교류증진 방안에 대해 최중경 대사를 만나 들어보았다.
Q. 올해는 한·필 양국이 수교 60주년을 맞는 해이다. 양국관계 발전에 대한 평가와 전망이 궁금하다.
-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우리나라와 최초로 수교관계를 맺은 나라이자 아세안 국가중 처음으로 한국전 파병을 한 국가로서 우리 정부 수립 이래 매우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온 전통 우방국가이다. 한·필 양국은 냉전시대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국가로서 국제무대에서 긴밀한 협조를 가져오고 있다. 양국이 아·태지역의 선도적 민주국가로서‘민주주의공동체(Community of Democracies)’탄생과 발전과정에서 주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좋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양국간 경제관계가 갈수록 긴밀해지고 있다. 특히 2007년에는 한국기업의 필리핀 투자가 크게 늘어나 필리핀내 외국인투자 중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필리핀 수빅 항에 조선소를 건설하여 필리핀을 세계 4위의 조선국가로 부상시킨 한진중공업의 투자와 필리핀의 발전량의 15%를 차지하는 한전(KEPCO)의 진출은 대표적 성공 사례이다. 우리나라는 필리핀을 대외원조(ODA) 중점 대상국으로 정하고 우리의 개발경험을 공유하는 많은 경제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양국은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에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녹색성장의 비전을 공유하고 신재생에너지 개발 등으로 협력분야를 넓혀갈 것으로 기대한다.
Q. 양국간 실질협력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 사안은 있는가.
- 이명박 대통령과 아로요 대통령은 지난 5.30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통해 수교 60주년을 계기로 양국관계를 한 단계 격상시키기 위한 추진방향과 협력사업에 대해 논의를 가졌다. 무엇보다 양국 정상은 경제통상 분야의 협력을 더욱 확대·발전시켜 나가는 동시에 양국이 21세기 지속가능한 성장기반 마련을 위해 새로운 협력분야를 발굴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는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양국은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만 아니라 상호 보완적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개발경험을 필리핀의 풍부한 자연자원과 노동력을 접목할 경우 시너지 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지난 5월 정상회담 계기에 양국은 농공 복합산업단지(Multi-industry Cluster) 조성을 위한 타당성 조사 실시 양해각서, 미곡종합처리장 건설을 위한 정부간 시행약정, 고용허가제 갱신 양해각서, 고용?노동협력 양해각서, 농업기술협력 양해각서, 풍력발전소 건설 양해각서 등 6개의 실질협력 추진문서를 체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에 체결한 협력문서는 농공 연계프로젝트 추진, 노동분야, 신재생에너지 개발협력 등에 관한 것으로 앞으로 양국이 추진하고자 하는 중점 협력분야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Q. 필리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현지 일자리 창출 등 필리핀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필리핀 정부의 지원과 국민들의 인식 정도는 어떠한가.
- 필리핀 정부는 근로자의 해외진출 확대와 함께 국내에서의 일자리 창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외국인투자 유치를 통한 고용기회 확대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의 필리핀 투자진출에 대해 필리핀 정부는 크게 환영하는 입장이다. 특히 수빅(Subic) 만에 진출한 한진중공업의 경우, 조선소 가동·운영에 수만 명의 고용을 창출함으로써 필리핀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어 애로사항이 있을 경우 아로요 대통령이 직접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찾도록 독려할 정도다.
Q. 전세계적인 기후변화 대응 및 식량안보에 발맞추어 필리핀과 협력해 갈 수 있는 분야가 있는가.
- 필리핀은 범정부 차원의 기후변화 대응조직을 만들어 아로요 대통령이 직접 진두지휘할 정도로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우리의 저탄소 녹색성장 전략과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천명한‘동아시아 기후파트너쉽’협력 추진에 관심이 많다. 필리핀은 2007년‘재생에너지법(Renewable Energy Act)’을 도입하여 바이오에너지, 태양광, 수력,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큰 관심을 가진 만큼 우리나라와 청정에너지 개발기술과 투자협력사업 추진을 바라고 있다. 지난 5.30 한·필 정상회담 계기에 양국 기업간 서명한 풍력발전소 설치사업 양해각서는 좋은 일례이다. 특히 양국간 향후 1년간 사업타당성 조사를 거쳐 본격 추진될 예정인‘농공 복합산업단지(MIC)’조성사업은 필리핀의 풍부한 자연여건과 인력에 한국의 기술과 자본을 결합하여 상생협력의 길을 열어가는 대표적 사업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Q. 한국인의 필리핀 방문 및 체류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안전문제 등 교민보호를 위해 한국과 필리핀 정부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 지난 2007년에는 한국인 방문객 수가 필리핀 방문 외국인 중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매년 60만명이 넘는 한국인 방문객들이 필리핀을 방문함에 따라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24시간 대응체제를 갖추고 교민사회와 체류자들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우선은 각자 안전의식을 갖고 조심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다. 최근의 한국인 대상 납치.살인 등 강력사건 등에서 보듯이 우리와 달리 주민등록제도가 없는 관계로 신속한 범인의 추적과 검거에 장애가 있어 일선의 필리핀 경찰과 협조하에 일해야 하는 공관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심정일 때가 많다. 공관에서는 각 지역 한인회와 비상연락망을 갖추고 필리핀 경찰청 및 지방경찰 당국과도 상시 협조체제를 가동하면서 사건사고 발생에 대처하고 있다. 우리 체류자 및 여행자는 필리핀 여행시 여행경보 단계에 따라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카지노 및 유흥술집 등 범죄 다발지역 출입과 심야에 혼자 다니는 일을 삼가고, 산간 오지는 가급적 가지 않는 등 해외여행자로서 안전수칙에 유의해 주도록 당부 드린다.
Q. 지난 5.22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매년 많은 학생들이 어학연수 목적으로 필리핀을 찾는 추세라며, 향후 교육분야에서의 양국간 협력을 강화해갈 필요성을 지적하였다. 이에 대한 일환으로 필리핀인의 우리나라 원어민 보조교사 프로그램 참여에 대한 추진방안은 어떻게 생각하나.
- 우리 정부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에게만 원어민 보조교사 사증을 발급해오던 것을 확대해, 작년 12월말부터는 필리핀 등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국가에게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양허한 경우 사증발급이 가능하도록 변경하였다. 금년 5월 발표한 한·아세안 FTA 서비스협정에는 이러한 양허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양질의 영어교사 해외충원을 확대하기 위해 제도 개선을 지속 검토하고 있는 만큼 향후 추가 자유화 협상을 통해 필리핀측이 요청하는 경우 영어보조교사 사증발급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Q. 아로요 대통령은 필리핀을 선진국 은퇴자의 안식처로 만들기 위해 국가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은퇴산업 활성화를 위해 필리핀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정책은 무엇이며, 이를 통한 기대효과는 무엇인가.
- 필리핀 정부는 은퇴이민을 유치함으로써 외화를 벌고 일자리도 창출한다는 목표로 은퇴청(PRA)을 설립하고 국가적으로 의욕적으로 유치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미국, 유럽, 아시아의 49세 이상의 은퇴자 중에서 0.1%를 유치하여 400억불 이상의 외화를 끌어들이고 수십 만의 고용을 새로 창출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필리핀 정부는 은퇴사증 신청에 필요한 예치금 인하, 은퇴이민 수속절차 간소화, 은퇴자 거주주택 개발업체들에 대한 법인세 면제 등 다각적으로 유치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은퇴이민을 유치하기 위한 주요 대상국으로 한국을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는 은퇴생활을 보내기 위한 국가로 필리핀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실제 필리핀을 은퇴지로 삼는 한국인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Q. 우리나라는 많은 공적개발원조를 필리핀에 지원해 농업 경쟁력 강화와 인프라 건설에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 진행 중인 개발원조 사업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 잘 아시듯이 필리핀은 한국전 참전을 통해 우리나라와 혈맹적 관계를 맺은 우방국으로서 우리나라의 개발원조 중점 대상국이다. 우리나라는 대(對)필리핀 개발원조에 금년까지 유상원조 4억 4,100만불 및 무상원조 6,290만불 등 총 5억불 이상을 필리핀에 지원하였다. 우리나라의 대(對)필리핀 개발원조는 경제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한 인프라 확충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농업 및 관광산업 등 필리핀의 지속적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한 지역간 연결성(connectivity)제고 및 산업기반시설 확충사업이 주력분야다. 또한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환경분야, 직업훈련, 병원 및 전자정부구축 등 사업 지원도 많이 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유상원조(EDCF)사업으로는 마닐라 남북철도연결사업(1억 6,300만불), 민다나오 라귄딩간 국제공항건설사업(9,470만불), 팔라완 푸에르토 프린세사 공항확장사업, 3개 지방도로 건설.개보수사업 등이 대표적 사례다. 무상원조 사업으로는 주요 쌀 생산지역에 미곡종합처리장 건설사업(1,300만불), 루손 다구판 수산물가공공장사업 등이 있다. 특히 미곡종합처리장 건설은 만성적 쌀 부족문제를 겪는 필리핀의 미곡 수확률을 크게 개선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필리핀은 우리의 중점 경제협력 대상국임에도 불구하고 이웃 일본 등 다른 OECD 회원국들과도 비교시 경협 제공 규모가 현격히 작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필리핀의 지리적 근접성, 우리나라와의 상호보완적 경제구조, 한국전에 참전한 우방국으로서의 혈맹적 관계 등을 감안하여 앞으로 경협규모를 크게 확대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Q. 한·필 수교 60주년을 맞아 지난 3월 거북이 마라톤대회, 수교 60주년 기념우표 발행 및 로고 제작 발표가 있었다. 이러한 기념행사를 통해 얻은 성과는 무엇인가. 또한 올 하반기에 기획하고 있는 행사에는 어떠한 것이 있나.
- 금년 수교 60주년을 맞이하여 공관에서는 다양한 협력사업과 기념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월 3일 수교기념일에는 필리핀 정·관계, 언론방송, 학계, 예술계 등 각계의 인사들을 다수 초청하여 우리의 전통 궁중음식을 소개하는 축제와 함께 마닐라 만에서 성대한 불꽃놀이를 개최하여 필리핀 언론방송을 통해 크게 소개된 바 있다. 사람에 비유하면 금년 회갑의 관계에 접어든 한·필 양국은 지금까지의 관계발전을 토대로 21세기로 도약할 수 있도록 새로운 상생협력의 비전을 가져야 할 단계에 도달했다고 보고 있다. 당관에서는 지난 2월 마닐라에서 양국 민관의 리더들이 한 자리에 모여 양국 경제관계의 한 단계 도약을 논의하는 비즈니스포럼을 가졌으며, 지난 6월에는 마닐라에서 양국의 경제관계를 더욱 촉진시키기 위한 한·필 비즈니스포럼을 개최하였다. 또 오는 9월에는 서울에서 양국 경제전문가들이 모여 2차 경제포럼을 가질 예정이다. 금년 양국 우정당국간 기념우표 발행(3.3), 거북이 마라톤대회(3.14), 한국‘뷰티풀 마인드’재단의 연주회(마닐라, 4.3)등을 시작으로 수교 60주년 행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오는 11월중 한국 전통공연, 한복패션쇼, 한국영화 상연 등 우리 문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한국주간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Q. 마지막으로 한국과 필리핀 수교 60주년을 맞아 국민들과 현지 교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 근년 필리핀을 찾는 한국 방문객이 60만명을 넘어서 양국간 인적 교류와 접촉이 대단히 활발해지고 있다. 국내에도 필리핀 사람들이 4만 6천여명이 있고, 필리핀에는 동남아 국가중 최대 규모인 10만여명이 체류하고 있어 양국 국민간 교류와 접촉은 일상화되고 있다. 지난 5월말‘동아시아 기후포럼’참석차 서울에 다녀온 리토 아티엔자(Lito Atienza) 환경자원부장관은 거리에서 노점을 하는 한국인이 자신에게 타갈로그어로 인사를 먼저 건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할 정도로 인적 접촉이 많아지고 있다. 작년 9월 부임하여 필리핀 각계 인사와 일반인들을 많이 만나보고 하면서 느낀 점은 양국 국민들 사이에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다. 체면과 위신을 소중히 여기고 가족을 중시하는 점, 필리핀 사람 특유의 부드러운 성품과 친절성, 어울려 가무를 즐기는 풍습과 개방적 태도 등이 비슷하다. 다만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급한 성격으로 현지에서 간혹 오해와 충돌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손님으로서의 마음가짐으로 여유를 가지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필리핀은 한국전 파병과 함께 70년대까지 우리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장학생 초청 등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던 우방국이라는 생각을 갖고 우월감 보다는 필리핀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면 더욱 가까운 이웃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양국은 지난 60년의 우호관계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관계발전을 도모해야 하는 단계에 도달하였다. 양국 간의 지리적 인접성과 경제구조의 보완성, 양국 국민간 정서적 유대와 공통점 등을 바탕으로 새로운 60년을 준비하는 마음을 갖고 양국 관계발전을 한 단계 격상시키고자 더욱 노력해야한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