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의 희망인물 -(사)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최기영 회장>

2009-07-24     김경수 기자

< 올해의 희망인물 -(사)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최기영 회장>

“정부는 전통문화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새로 거듭나야”
건축용어의 우리말사전편찬사업을 반드시 달성
왜곡된 우리의 전통건축문화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지난해 2월 10일, 우리의 국보 1호 숭례문이 화염에 휩싸여 사라졌다. 화재가 발생해 숭례문이 완전히 무너져 내릴 때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5시간에 불과했다. 조선은 개국과 함께 도성에 8개의 대문을 세웠다. 그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건축물이 바로 숭례문이었다. 다른 건축물들은 임진왜란 이후 다시 중건된 것이다. 그래서 숭례문은‘서울의 역사’로도 불렸다.

사실 목조건축물은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한국전쟁이란 대혼란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은 숭례문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는 매우 높다. 당시 숭례문 화재 현장에서 누구보다도 애끓는 눈길로 불타는 숭례문을 지켜본 이가 있었으니, 바로 (사)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대목장 최기영 회장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건축문화 후대에 남겨줘야

최 회장은 처참하게 타버린 숭례문을 생각하면 여전히 기가 찬다. 밤을 꼬박 새우며 무너져 내리는 숭례문 곁을 지켰던 그는“지금 짓는 현대건축물은 650년 뒤에는 사용하지 못하겠지만, 숭례문은 650년 전에 설계하고 지어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세계적 문화유산”이라며, “선조들의 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최 회장은 중시조가 조선시대에 한성부 판사를 지내며 숭례문 축조를 지휘했던 최유경이어서 더욱 슬픔이 컸다. 그는“숭례문은 유구(遺構)가 보존돼 있는 만큼 원형대로 99% 가깝게 복원이 가능하다”며, “국보 1호의 가치를 잃지 않도록 조상들이 지어놓은 것과 최대한 비슷하게 복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염원하는 대사업인 만큼 수작업, 전통기법 고수라는 원칙을 철저히 지킴은 물론, 복원의 전 과정을 영상기록으로 확실히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전통문화학교 초빙교수, (사)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장이 현재 최 회장의 공식 직함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그는 대목장이다. 대목장은 나무를 재목으로 하여 집 짓는 일에서부터 재목을 마름질하고 다듬는 기술설계는 물론 공사의 감리까지 겸하는 목수로서, 궁궐·사찰·군영시설 등을 건축하는 도편수로 지칭하기도 한다. 현대의 건축가라 할 수 있는 대목장은 현재 전통적인 공예기술로서 중요무형문화재 제 74호로 지정돼 있다. 최 회장은 원로장인들과 함께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철저하게 왜곡되고 파괴된 우리의 전통건축문화를 바로 잡기 위해 협회를 설립했다.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건축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장인들이 힘을 합쳐 잘못된 점을 고쳐야 한다. 하지만 장인들의 힘만으로는 전통건축을 발전시킬 수 없다. 따라서 정부와 관련기관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 때다.” 특히, 최 회장은 한국의 장인들 대부분이 현재 고단한 생활고를 겪고 있을 정도로 선진국에 비해 모든 면이 열악하다고 토로했다. 그는“정부가 앞장서 장인들이 전통건축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질적, 양적인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며, “장인들이 오로지 한길만 갈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만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건축문화를 후대에 전승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직 정도(正道)만이 원칙, 노력한 만큼 내 것이 된다
최 회장이 목수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것은 17살 때다. 당시 건설회사 회장이 되고 싶다는 어린 마음에 그길로 곧장 목수 일을 배우기 위해 충남 예산 수덕사로 떠난 그는 훗날 스승이 된 김덕희, 김중희 선생을 만났다. 당시만 해도 최 회장은 초등학교 졸업 후 한문서당을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였다. 특히, 목수에 대한 기초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는 항상 부지런히, 열심히 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오랜 세월을 지나왔다. “어떤 분야든지 마찬가지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일에는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한 만큼 얻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남 잘 때 담장을 넘고 남 쉴 때 대패질, 못질 한 번 더 했으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다. 뭐든지 노력한 만큼 자신의 것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힘든 시간을 지나왔지만 그는 목수를 선택한 것에 대해 지금까지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힘든 순간에도 목수 일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대장부가 한 번 선택한 길은 혹시 그 길을 가다 죽는다 하더라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이니까. 좀 미련하긴 했어도 끝까지 노력의 끈을 놓지 않고 버틴 결과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 아닐까.” 현재 국내에서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대목장 가운데 생존해 있는 사람은 단 3명에 불과하다. 누구라도 그를 최고라고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배워야 한다고 겸손해한다. 꺼지지 않는 학구열로 몇 년 전에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고 2002년에는 교육부가 인정한 학사학위도 받았다. “인간문화재로 지정되고 보니 문화재 값을 하는, 즉 만인이 존경할 수 있는 움직이는 문화재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오직 정도(正道)만이 원칙이다.”

먼저 우리의 것을 배우고 남의 것을 배우라
현재 최 회장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작품이 부여에서 한창 건설 중이다. 지난 1998년 시작해 201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백제문화재현단지’가 바로 그것. 백제문화에 대해서는 발굴된 자료가 많지 않아 공사에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백제궁을 비롯한 건축물들이 100% 백제시대의 것과 똑같다고 할 수 없기에 그의 고민은 더욱 컸다. “아무도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이 100% 백제의 건물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제대로 재현하지 못한다면 역사를 왜곡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백제문화에 영향을 준 중국과 백제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건축양식을 연구하고 문헌 등을 통해 백제 당시 문화를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지금 잘못 만들면 후대에까지 욕먹을 일이니 적어도 자격 없다는 말은 안 듣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라고 최 회장은 밝혔다. 또한 최 회장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목탑인 황룡사지 9층 목탑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하며“황룡사지 9층 목탑은 높이는 90m 폭은 150평 정도인데 주춧돌 자리가 남아있고 관련 고증자료가 남아있어서 원로장인들과 전문가들이 생존해 있을 때 복원을 반드시 해서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황룡사지 9층 목탑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백제문화재현단지 외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일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전통건축용어사전을 만드는 일이다. 그는 우리 전통건축문화의 맥을 후대에 잇기 위해서는 건축용어의 우리말사전편찬사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전통건축용어 우리말사전은 100억의 예산이 들어가는 거대한 작업이다. 그만큼 문화재청과 고고학자, 전문가, 국어학자, 원로 등의 자문을 받아 올해 안으로 우리말사전편찬사업을 반드시 해내겠다. 이와 더불어 가능하다면 사단법인을 재단법인으로 승격시킴으로써 공익적 사업도 할 수 있는 협회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최 회장은 강조했다. 3년째 전통문화학교, 중앙대 등 건축학과 관련 학생들에게 우리의 전통건축문화에 대한 강의를 펼치고 있는 최 회장이 항상 강조하는 내용은‘우리 것을 배우고 남의 것을 배우라’,‘내면과 외면의 멋과 맛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며 건축물은 모든 촉감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깨달아서 혼연일체가 되면 장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한옥이야말로 생활의 건축, 자연 그대로의 웰빙 건축이라는 그. 한옥의 흙과 나무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그의 지론이야말로‘우리의 것이 소중한 것’이라는 교훈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