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트랜스젠더’로 산다는 것
지난 5월‘믹스 트랜스클럽(MIX-TRANS CLUB)’오픈한 하리수
2009-07-28 이나라 기자
지난 5월, 하리수가 서울 압구정동에‘믹스 트랜스클럽(MIX-TRANS CLUB)’이란 이름으로 트랜스젠더를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20여명의 트랜스젠더들을 모아 퍼포먼스 그룹‘믹스 트랜스’를 결성한 그녀는 이곳을 외국의 유명 트랜스젠더 공연장과 같은‘한국 최초의 쇼비즈팝’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조금은 소외돼 있는 우리들을 위한 아름다운 공간
“1997년 일본의 트랜스젠더 쇼를 처음 접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보험과 연금, 퇴직금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늘 재즈와 춤 등을 배우며 공연을 하는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나 역시 다른 국내 트랜스젠더들처럼 노력했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트랜스젠더클럽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 이태원 인근에서는 오래 전부터 트랜스젠더들이 활동하는 클럽들이 암암리에 영업을 해왔다. 하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오랜 시간 동안 금기사항으로 통했다. 하리수는 국내 트랜스젠더의 대부분이 옷을 벗거나 인격적인 수모를 겪어야 하는 음성적 클럽을 떠나 멋진 무대를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에 믹스 트랜스클럽을 열게 됐다. 패션과 트렌드의 거리로 알려진 신사동 한복판에 문을 열고 당당히 오픈한 믹스 트랜스클럽‘믹스’라는 단어는 그만큼 의미하는 바가 많다. 그 자체로 트랜스젠더들의 본거지라는 뜻도 있고, 또 대중과 트랜스젠더가 함께 섞일 수 있도록 한다는 이들의 다부진 각오가 담겨져 있기도 하다. 특히, 하리수가 동료들과 함께 이 공간을 설립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에는 지난해 잇따랐던 트랜스젠더들의 자살소식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장채원, 김지후뿐 아니라 그녀와 15년을 함께 알고 지낸 절친한 친구도 자살을 선택했다.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많은 선후배들과 함께 조금은 소외된 우리들을 위한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잘될 수 있을까하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한번 해보자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지금은 나보다도 후배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다들 행복한 표정으로 지내고 있다는 점이 가장 보람 있다.”
클럽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은 하리수를 비롯한 트랜스젠더들이 직접 꾸린다. 100평 남짓한 공간은 8개 정도의 큼지막한 좌석이 병풍처럼 쳐져 있고, 그 가운데 화려한 조명 아래 무대가 만들어졌다. 클럽에 소속된 23명의 트랜스젠더 쇼걸들은 매일 이효리, 아이비, 손담비 등 섹시 여가수들의 공연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이고 있다. 쇼를 위한 수백여벌의 의상은 큰언니인 태미가 맡았다. 하리수는 이곳에서 각 무대의 연출을 책임지고 있다. 그녀의 안무가가 특별히 안무 트레이닝도 도와주고 있다. 각 무대를 만들고 클럽을 꾸리는 과정은 순조롭고도 즐거웠다. 뮤지컬과 영화의 소재가 될 만한 자충우돌 사연도 많았다. 과정 자체가 한 편의 연극이고 드라마였다고 모두들 입을 모은다. 특히, 트랜스젠더 쇼걸들 중 가장 원조와 비슷한 간판스타는 손담비의 닮은 꼴‘라라’다.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손담비와 똑같이 바꾸고 무대에 서니 모든 사람들이 손담비와 똑같다, 오히려 손담비보다 낫다고 좋아하시더라. 이제는 누구를 닮았다는 말 보다는 나만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 뮤지컬배우가 되는 게 꿈이라는 그녀는“어릴 때부터 춤추는 것을 좋아했다”며, “서울 중심에 외국에서 봐왔던 멋진 트랜스젠더클럽이 만들어져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말했다. 찰랑이는 긴 헤어스타일과 높은 콧대가 이효리를 연상시키는‘세빈’은“하리수를 보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며, “우리를 어둡게만 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밝고 꾸밈없는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남자 박진영을 콘셉트로 잡고 있는‘러브’는 보이시한 쇼트커트에 남성정장이 유난히 잘 어울린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바지를 입는다고 해서 내 여성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튀어 보이고 개성 있게 보여 나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평소 연극배우를 꿈꿔왔다는 그녀는“설 수 있는 무대가 생겨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하리수가 2002년 성별 정정 소송에서 이긴 이후 자신 역시 법적인 여자로 거듭났다는‘수영’은“우리 대부분이 법적으로도 여자로 다시 태어난 이들”이라며, “서로를 잘 아는 우리로서는 똘똘 뭉쳐 가족처럼 잘 지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직 문을 연지 두 달이 조금 넘었지만 지금 믹스 트랜스클럽의 인기는 예약이 필수일 정도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명소가 된 것 같다는 하리수는“남녀 직장인들이 생일파티와 회식을 갖기 위해 찾아오시는 걸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며, “어떻게 아셨는지 지방에서 방문하기도 하고, 또 일본과 독일 관광객도 한 차례 들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트랜스젠더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직접 찾아오는 친구들도 많다. 이런 공간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이다. 이곳을 바탕으로 동료 친구들이 연금과 보험을 받으며 안정된 생활을 꾸리고, 또 뛰어난 끼를 인정받아 연예계로도 진출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길 간절히 바랄뿐이다.” 이들의 꿈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일 뿐이다. 하리수는 이보다 더 넓은 공간으로 2호점도 준비 중에 있다. 그녀는“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뮤지컬로 만들어보고 싶다”며, “여행업계와 관계기관이 협조해준다면 해외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새로운 콘텐츠로도 발전하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꾸로’가 아닌, 다시 시작하는‘새로운’삶
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3년 전 대한의사협회가 대략 4,500명이라고 밝혔을 당시, 국내 처음으로 트랜스젠더 실태조사를 실시했던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와 성전환인권연대 등 관련단체가 행한 샘플조사에서는 최대 2만 5,000명까지 추정한 바 있다. 대략 1년에 100~200명가량이 성전환 수술을 받는 셈이다. 물론 일본이나 태국 등 해외 시술자까지 합친다면 200~300명쯤은 된다는 게 업계 추산이다. 최근 대법원의 성전환자 호적허용 판례에서 보듯 성전환은 전보다 훨씬 일반화됐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강력 권고한‘성전환자 성별 변경 특별법’이 16대, 17대 국회에서 연거푸 무산되는 등, 법과 제도는 여전히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특별법이 통과된다면 수술비 보험혜택이 늘어남은 물론, 호적정정에 필요한 수백만 원의 변호사비용 또한 아낄 수 있다. 태국은 최근 트랜스젠더 미인대회에서 수십 명의 성전환 여성들이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태국은 관련병원이 국내보다 3~5배는 많아 수술대기 기간이 짧고, 국내가보다 절반 이하로 가능해 지금도 상당수가 태국행 비행기를 타고 있다. 성전환자의 일본행은 대부분 동성애 등 성매매를 통해 돈을 벌기 위함이다. 지금도 인터넷 동성연애사이트 등에선‘일본에서 수술비를 벌 트랜스젠더를 구함’이라는 안내문구가 버젓이 뜬다. 지난 3월엔 같은 방법으로 30여명의 희망자를 모집해 일본에서 성매매를 시킨 업자 등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위험과 고통 속에서도 성전환을 꿈꾸는 트랜스젠더들이 많다. 그렇게 해서라도 하루 빨리 자신의 성 정체성과 새로운 삶을 찾고 싶은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다.
하리수는 트랜스젠더로는 처음으로 국내 연예계에 진출함은 물론, 성별 정정 등 관련 법률까지 바꾸는 데 기여했다. 그녀의 본명은 이경은이지만 호적상 성별 정정 이전의 이름은 남자 이경엽이었다. 하리수는 대한민국 최초로 성별 정정 수정요구가 받아들여진 성전환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지난 2001년‘Temptation’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한 이후 영화‘노랑머리 2’에서 주인공 J역을 맡으며 공개적으로 트랜스젠더 연예인이란 이미지를 굳혔다. 2002년과 2004년‘Liar’, ‘Foxy Lady’를 잇달아 발표하며 연예계에 하리수 열풍을 몰고 왔던 그녀로 인해 그동안 금기시 여겨졌던 성전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는 계기도 마련됐다. 당시 하리수는 TV 예능프로그램 등에 출연해“연예계 데뷔 훨씬 전인 10대 시절부터 성전환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밝혔다. 고교 졸업 당시 이미 호르몬 대체요법을 받고 있을 만큼 트랜스젠더로의 그녀 인생은 운명적이었던 것이다. 연예계 진출 후 그녀는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시켰고, 지난 2007년 가수 미키 정과의 결혼으로 완전한 여성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개척해가고 있다. 하리수에 이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또 한명의 트랜스젠더 연예인은 배우 이시연(본명 이대학)이다. 그녀는 남자였을 당시부터 여성복 전문 남성모델로 활동했을 만큼 일찌감치 여성적 이미지를 많이 선보여 왔다. 영화‘두사부일체’와‘색즉시공’에서 중성적 캐릭터를 맡기도 했던 그녀는 성전환 후 이시연으로 이름을 바꾼 뒤 출연한‘색즉시공 2’에서 완전한 여자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데뷔 전 미리 성전환 수술을 하고 연예활동을 했던 하리수나 그룹 레이디, 류나인 등과 달리 남자연예인으로 활동하던 중 성전환을 통해 정반대의 길로 방향을 바꾼 케이스는 이시연이 유일하다.
성 정체성의 문제이지, 성적 지향 아니야
성전환자의 정의는‘태어날 때 부여받은 생물학적 성 혹은, 법적·사회적으로 부여받은 성과 다른 성별로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아직도 성전환자는 한국 사회에서 어색한 존재로 남아있다. 특히, 남성의 몸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성전환여성(MTF: Male Toward Female)과 달리 여성의 몸으로 태어나 남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즉 성전환남성(FTM: Female Toward Male)은 그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다. 최근 너무 드문 답을 택했기 때문에 더 큰 고민과 혼란의 시기를 겪고, 그 뒤에도 스스로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그들을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바로 지난 6월 초 개봉한 영화‘3×FTM’이다. 이 영화는‘감성 트랜스젠더 다큐’라고 이름붙인 영화 장르에서 알 수 있듯 실제 성전환남성 3명의 이야기를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드러나지 않았던 그들의 고민과 삶을 조명한 영화는 개봉 이전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아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대만여성영화제 등 국내외 각종 영화제에 초청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김일란 감독은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인‘연분홍치마’의 활동가이기도 하다. 지난 2006년 대법원은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과 개명을 최초로 인정했다. 여기에는 앞서 전개된 법제정 운동과 성전환자 실태조사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는데, 김 감독은 이 조사 활동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는 영화를 찍는 계기가 됐다. 그녀는“다른 성소수자에 비해 성전환자, 그 중에서도 FTM은 만나기가 어려웠다”며, “조사를 하면서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고, 자연스레 후속 작업의 필요성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출연자 섭외가 쉽진 않았지만 마음이 통했는지 고종우, 한무지, 김명진 씨가 주인공으로 참여했다. 사회의 편견 속에 고단함도 있지만‘진정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기에 행복하다는 세 청년은 영화를 통해 친구와 가족,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설레임 가득한 손을 내밀기로 했다.
[태어날 때부터 남자였다는‘종우’는 더운 여름이 오기 전에 얼음조끼를 사러 시장에 간다. 뙤약볕 아래 오토바이 일을 해야 하는 그에게 가슴 압박붕대로 인한 더위를 식혀줄 얼음조끼는 여름의 필수품이다. 남자들끼리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터프가이‘무지’는 오랫동안 소망해왔던 가슴 절제수술을 마치고 벅찬 기쁨을 감추기 힘들다. 그는 평생 처음으로 웃통을 벗어 던지고 남성으로서의 가슴을 당당히 공개하며 자유를 만끽한다. 보다 나다운 모습으로 살기 위해 성별변경을 감행한‘명진’.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2’에서‘1’로 바뀌어‘男子’로 인정받게 되었건만, 대한민국 남성으로서의 삶은 그가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여중 여고라는 딱지 때문에 다니던 회사에서 짤리고 군대 신검에서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하는 등 만만치 않은 일들도 많지만, 그렇다고 힘들어 투덜댈 그가 아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하는 MTF와 달리 FTM이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남성이 되면 여성보다 사회에서 더 유리하기 때문에, 또는 남성의 권력을 분배받으려 성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세 사람은 일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흔히 성전환자라고 하면 어느 날 갑자기 성이 변한다고 생각한다. 수술을 하거나 호르몬 투여를 하면 마치 마술처럼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대개의 결정은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정체성에 관한 고민 끝에 나온 것이다.” 김 감독은“영화를 통해 남성성이 얼마나 다양하며, FTM의 남성성이 비성전환자의 남성성과 얼마나 다른지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자’라는 몸보다‘남자’라는 영혼의 모습을 따라나선 세 성전환남성 종우, 무지, 명진. 영화는‘엄마 뱃속부터 남자였고, 남자로 보여야 했고, 남자가 되어야 했던’세 사람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유쾌한 웃음과 따뜻한 감동을 퍼 올린다. 다양한 성 정체성을 인정하는 외국 문화에서는 정체성마다 고유의 용어가 있다. 다양한 용어를 일일이 부르기 보다는 생물학적, 법적으로 주어진 성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통틀어‘트랜스’라고도 부른다. 반면, 성전환자가 성 정체성의 문제이지, 성적 지향의 문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둘을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김 감독은 영화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의미를 조심스레 덧붙였다. “시사회에서 어떤 분이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누구라도 자기의 삶 앞에서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 앞에서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위로를 받은 것 같아서 기쁘다고 했다. 성전환자가 성전환의 삶을 선택하는 것도 용기일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얘기를 꺼낼 용기를 냈다는 것이 아닐까.”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더욱 관대한 시선이 필요할 뿐
지난 7월 초, 슈퍼모델대회에서 1,200명 중 50명을 선발하는 1차 예심에 통과한 트랜스젠더 최한빛 씨가 2차 예선을 앞두고 과연 여성을 뽑는 대회에 참가해도 되는지에 대한 자격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그녀의 미니홈피에는 하루 수만 명의 방문객들이 몰려들어 그녀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메시지를 쏟아냈다. 실제 수상여부와 관계없이 그녀의 용기 있는 선택에 박수를 보낸 것이다. 지난 2000년 지난 2000년 커밍아웃 선언 이후 핍박과 무시에 시달렸던 배우 홍석천을 떠올리면 이는 큰 변화다. 특히, 트랜스젠더인 최씨가 선발대회라는 사회의 공식적인 관문 통과를 시도했다는 것 자체도 그간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90년대 초 탈 중심과 탈 권위, 그리고 개인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발견 속에서 논의가 시작된 성적소수자 문제가 인권운동, 대중의 인식 변화, 대중문화 그리고 하리수와 홍석천 같은 대중적 아이콘 등으로 인해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홍석천은 커밍아웃 선언 이후 받은 고통에 대해“사람이 이렇게도 무너질 수 있구나 생각했다”고 최근 털어놓았다. 하지만 최씨는 동료들에게 트랜스젠더임을 밝히면서 슈퍼모델 선발대회 예심을 통과했고, 악플보다는‘당당한 모습이 아름답다’, ‘꿈을 위해 달려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등의 격려와 응원을 더 많이 받고 있다. 이는 데뷔 당시 하리수에게 쏟아졌던 반응과 다르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봄 법원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성폭력을 처음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손을 들어줘 우리 사회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대중문화 쪽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붐이라고 할 정도로 동성애 등을 담아왔다. 2001년 한국적 퀴어 영화인‘로드무비’에 이어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이송희일 감독의‘후회하지 않아’가 나왔고, ‘왕의 남자’,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쌍화점’ 등은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TV도‘커피 프린스 1호점’, ‘바람의 화원’등을 통해 성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게이 커플에 대한 부러움을 드러내는 CF도 나왔다. 물론 동성애를 다룬 상당수의 대중문화들이 꽃미남을 내세운 달콤한 환상이지만, 결과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를 누그러뜨렸다는 것은 분명하다.
살면서 우리는 묻게 된다. 나는 타인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까, 혹은 나를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까. 명품으로 내 몸을 두르고, 금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비싼 식사로 위장을 달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일까. 삶의 진정성은 삭제된 채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아름다워지고, 좀 더 날씬해지는 것이 자신의 삶에 충실한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욕망을 배반하고 사회의 욕망을 따르며 그것을 내면화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어진 대로, 사회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받아들여 사는 까닭에 우리는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어쩔 줄 몰라 하며 그 낯설음을 견디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에 상상력을 부여하지 못하는 만큼, 타인의 삶에도 역시 더 많은 상상력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트랜스젠더들의 삶이 힘겨운 이유다. 나의 고통을 알고 있는 이들은 타인의 고통에도 귀 기울일 수 있다. “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니까, 난 (다른 생각을) 받아들인다.” 험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지기로 용기를 냈다는 것이 바로 그들의 절박한 외침이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