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에서 주류로, 새로운 문화아이콘으로 부상하다!
2000년대 초 세계대회 우승 휩쓸며 한국의 비보이문화 전파
2009-07-28 이나라 기자
이제 국내에서도 모든 관심이 비보이에게 쏠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보이 뮤지컬, 비보이 CF, 비보이 모델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비보이는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개막 공연에 초청되는 등 점차 한류를 이끄는 문화계의 새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비보이들의 활약은 비단 요즘의 일만은 아니다. 몇 해 전부터‘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점프’와 같은 무언극 공연들을 필두로 비보이 소재의 작품들이 쏟아졌고, 기업의 이미지 광고에도 수없이 사용됐다. 이제 비보이 공연은 축제나 행사의 초청 수준에서 나아가 더욱 다양한 장르로 거듭나고 있다.
사회적 이단아에서 대중의 아티스트로 떠오른 비보이들
‘비보잉(B-boying)’이라고도 불리는 브레이크댄스는 1970년대 초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 지역에서 이민 온 아프리카 사람들에 의해 유래된 춤으로, ‘비보이(B-boy)’는 브레이크 보이(Break-boy) 혹은, 브롱크스 보이(Bronx-boy)의 줄임말이다. 흑인 슬럼가거리에서 자본과 인종으로부터 버림받은 비보이들은 춤을 추는 것이 그냥 좋아서 폭력 대신 댄스베틀을 선택하며 새로운 거리문화, 하위문화를 형성했다. 비보이는 1960년대 트위스트와 맘보, 1970년대 디스코, 1980년대 브레이크댄스를 대체하는 가장 대표적인 동시대 춤의 문화를 주도하는 것뿐 아니라, 춤이 주류 대중음악의 보조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음악보다 우위에 있음을 보여준 문화라 할 수 있다. 기존의 댄스문화가 특정한 음악적 스타일에 대응해 일정한 틀을 갖추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비보이는 음악적 틀에 얽매이지 않고 음악의 그루부한 리듬을 타며 음악적인 스타일을 재창조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비보이는 1980년대 초 방송과 영화 등 여러 매스컴을 통해 소개된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오면서 흑인들만의 문화에서 백인 청년들도 가세하며 새로운 청소년 하위문화로 발전했고, 다양한 기술적 진화와 댄스베틀대회 개최 등으로 독자적인 문화영역으로 성장했다. 흑인 슬럼가나 게토에서 제한적으로 표현된 비보이는 현재 글로벌한 청년문화의 자유로움을 대변하는 초국적 문화로 성장했다. 한편,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비보이문화가 한국에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두 가지 계기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1990년대 초반 한국에 상륙한 힙합문화의 형성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른바 힙합댄스그룹들이 주류 대중음악에 대거 등장한 것은 비보이문화의 원시적 토대를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현진영 등의 역동적인 춤동작은 단번에 청소년들의 문화적 감성을 자극했고, 이는 노래보다 백댄서를 더 선호하는 기현상을 낳았다. 한국의 힙합음악은 아이돌 음악의 변종이라는 비판을 받았음에도 이들이 선보인 춤의 혁명은 전통적 문화의 위계서열과 공식적 문화의 품격을 해체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언더그라운드 비보이들에게 있어 한국적 힙합댄스는 상업적 음악을 뒤에서 보조하는 무대의 엑스트라 행위에 불과했다. 힙합음악이 주류음악으로 성장했지만, 춤은 독립적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뮤지션과 백댄서라는 이분법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백댄서들은 격무와 박봉에 시달리는 스테이지의 광대로 취급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97년 한국 최초의 비보이그룹인‘익스프레션’이 탄생하게 된 계기도 춤을 상업적 댄스음악의 시장에서 건져내 독자적인 문화표현의 양식으로 발전시키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비보이는 춤꾼들을 폄하하는 이른바 백댄서라는 딱지를 떼기 위해 춤의 완성도를 높이는 기술을 연마했고, 이들의 고난도 춤은 아이돌 스타들의 시각성을 높이는 장식물에서 벗어나 완결된 콘텐츠를 내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비보이들은 아이돌 스타들의 꼭두각시가 아닌 대중의 아티스트로 탄생한 것이다.
비주류 문화의 장에서 활동하던 비보이들이 대중으로부터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사실 최근에 들어오면서부터다. 세계적인 비보이 경연대회 중 하나인 독일의‘베틀 오브 더 이어 2005’에서 한국대표로 나간‘라스트 포 원’이 우승하면서 한국의 포털미디어와 주류 언론 방송사는 이 소식을‘유럽에서 부는 제 2의 한류’로 포장해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비보이문화가 대중화된 두 번째 계기는 바로 비보이의 세계화다. 물론 한국의 비보이들은 이미 2002, 2004, 2005 영국‘비보이 챔피언십 우승’, 2002, 2004‘베틀 오브 더 이어’에서 우승한 전력을 갖고 있어 유럽에서는 명성과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던 터였다. 특히, 2006년 12월 초 한국의 대표적 비보이그룹인‘갬블러’가 미국 비보이의 발상지인 휴스턴의 대표적 비보이 베틀대회인‘비보이 호다운’대회에서 비미국그룹 중에서는 최초로 우승을 하며 세계 최강의 위력을 입증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비보이들은 거리의 문제아에서 민족의 역동적 에너지를 발상한 영웅으로 전환됐다. 이후 전 세계 비보이 마니아들이 열광하는 한국 비보이문화는 순식간에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자, 신드롬이 되었다.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개최하는 각종 페스티벌의 주요 이벤트 행사에 비보이들은 단골손님으로 출연하고, 비보이를 모델로 하는 광고들도 줄을 이었다. 특히, 뮤지컬 등 공연 부분에 있어서 비보이의 다양한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발레와 비보잉을 스토리로 엮어 만든‘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라는 무언극이 그 대표적인 예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는 발레밖에 모르던 소녀가 스트리트댄서를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의 진로를 전향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춤에 스토리적인 요소를 집어넣어 국내 관객뿐 아니라 외국 관광객에게까지 큰 사랑을 받았다. 쇼비보이(주) 최윤엽 대표가 2005년 9월 기획, 극본, 연출까지 맡아 완성한 이 작품은 이미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에든버러에 소개되며 세계인들의 큰 환호를 받았고, 이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 일본인 관광객이 있을 만큼 유망 관광 상품으로까지 자리 잡았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지난 3년간 지속된 비보를 사랑한 발레리나의 첫 번째 공연은 60만 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까지 성공리에 홍대 공연을 마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에 이어 SJ비보이즈의‘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2nd story’가 지난달 말 공연을 끝마쳤으며, 오는 9월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간 대구 동구문화체육회관에 다시 한 번 오리지널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비보이는 아무나 하나, 죽고 못 살 정도로 미쳐야한다는 게 답
한국에서의 비보이 신드롬은 두 가지의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비보이가 다원화되는 청년 하위문화의 감수성을 대변하는 문화적 탈출구라는 점이다. 제도화된 공교육 시스템, 학벌과 배경이 지배하는 관료화된 사회, 그리고 일방적인 성공 신화를 강요하는 기성사회를 거스르며 비보이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실험한 춤동작을 소중한 자산으로 삼길 원한다. 토마스(기계체조의 토마스 동작을 응용한 춤), 옐보우 프리즈(춤을 추다 팔꿈치로 정지하는 기술), 윈드밀(일명‘풍차돌리기’라고 하는, 팔과 등을 이용해 바닥에서 도는 스핀동작) 등 고난도의 새로운 춤 형식은 그들에게는 소중한 육체적 자산이 된다. 춤을 추는 곳이 번듯한 공연장이 아니어도 춤추는 장면을 봐주는 사람이 없어도, 비보이들은 자신들의 자생적인 즐거움을 소중하게 간직한다. 이들이 선보이는 프리스타일의 춤, 자유분방하고 펑키한 리듬, 자연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은 격자 속에 갇힌 세상의 일상으로부터 탈주를 꿈꾼다. 또한, 한국의 비보이 문화는 탈 식민지적 전복의 효과를 만들어 냈다. 1980년대 초 마이클 잭슨의 브레이크댄스는 한국 댄서들에게는 원초적 모방의 대상이었다. 한국 댄서들이나 대중들은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마이클 잭슨을 흉내 내며 미국 팝문화의 경지에 매료됐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국의 비보이들은 서양의 교본을 넘어 한국적 프리스타일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한국 비보이들은 스스로 서양 춤의 모방자라는 운명의 딱지를 떼어내고 세계 비보이 신의 중심에 진입하기에 이른 것이다. 1세대 한국 비보이들은 외국의 유명한 비보이들의 춤을 따라하며 똑같은 동작을 반복적으로 흉내 냈지만, 지금은 외국 비보이들이 한국 비보이들의 춤을 교본삼아 훈련에 매진하는 상황으로 반전됐다. 외국의 비보이 베틀대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 비보이들의 춤은 새로운 교과서가 되고, 이들의 헌신적 열정은 감동적인 에피소드로 회자된다. 결코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던 원본 비보이의 신화는 한국이라는 낯선 국지적 장소에서 새로운 춤의 문화로 재창조되기에 이른 것이다. 비보이들은 한국적 사물놀이의 리듬에 맞춰 토착적인 춤동작을 선보이기도 하고, 역동적인 힘을 발산하는 다양한 기술들을 개발했다. 한국에서의 비보이문화 신드롬은 바로 이러한 한국 비보이들의 글로벌한 성공에 기인한다.
비보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헐렁한 티셔츠에 힙합바지를 입고 길거리에서 춤추던 문제아들로 취급됐다. 하지만 비보이들을 댄스 팀이나 체조단체 정도로 바라보던 사람들은 이제 이들을 대중문화 아티스트로 인정한다. 비보이 자신들 또한 실질적인 생활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비보이 1세대인 T.I.P의 리더이자, 서울예술종합학교 실용무용예술학부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황대균 씨는“영화나 매스컴에서 보이는 단편적인 모습들, 혹은 다소 껄렁껄렁한 모습들 때문에 우리가 뭐하는지 관심을 갖기 보다는 선입견을 더 많이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우리가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는 사람들도 아니고 아직도 우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처음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큰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세계대회 우승은 생각했던 것보다 그 파급효과가 훨씬 컸다. 이전보다 공연 수익료가 더 많아졌고, 스타들과 함께 뮤직비디오를 찍는 것은 물론 개별적으로 광고를 찍는 친구들도 생겼다. 뮤지컬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활약할 수 있게 됐다. 그는“이런 현상들이 우리 팀 자체로도 영광이지만, 이로 인해 거리에서 공연하는 비보이들의 무대가 더 확장되고 거리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즐거움도 더 커진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비보들의 형편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춤과 관련된 직종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지만, 이제 막 입문한 비보이들은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매스컴에 비춰지는 화려한 모습들로 인해 춤을 추면서 살아가는 게 어떤 것인지 알기보다는 겉멋이 먼저 드는 경우도 있다. 황씨는“비보이 문화가 이단아들의 향연장으로 치부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운 좋으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예인처럼 조명하는 것도 이제 그만 멈추었으면 한다”며, “길거리를 아름답고 역동적으로 수놓는 우리의 비보이문화가 좀 더 진지하게 다뤄지고 정착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진정한 비보이가 되려면 춤 벌레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루 다섯 시간 이상의 연습은 기본이고, 그 밖의 시간에는 호구지책을 해결하는 한편 이론적인 공부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 남들이 크게 알아주지도 않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실상 해야 할 일은 다른 직업보다 배가 더 많다. 그러다보니 화려한 모습만을 생각하고 어설프게 도전했다가 그만두는 후배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는“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지만 진정한 비보이가 되려면 기본기부터 닦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며, “춤이 좋아서 죽고 못 살겠다는 답이 나온다면 그 사람은 비보이가 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보이들의 과도한 춤이 건강에 무리를 줄 수 있어 이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춤동작을 무리하게 연습하다 부상을 입어 병원을 내원하는 비보이들이 적지 않다. 여기에 비보이의 화려한 움직임을 동경하며 춤을 배워보려는 청소년들이 충분한 연습이나 준비 없이 춤을 추다 관절을 다쳐 통증을 호소하는 일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비보이들이 선보이는 춤은 손목과 무릎은 물론, 목과 척추관절에 충격이 가해지는 고난도의 과격한 동작이 많아 한창 성장할 청소년들의 척추와 관절 건강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 특히, 청소년들은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거나 장시간 컴퓨터를 사용하는 등 근력을 약화시키는 생활을 주로 하기 때문에 척추나 관절질환에 노출되기 쉽다. 가장 흔한 질환은 염좌. 손목 하나에 체중을 싣는 동작을 자주 하면 관절에 갑작스런 충격이 가해지면서 손목이 삐거나 시큰거리는 염좌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무리한 동작을 반복하면 어린 나이에도 퇴행성관절염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뼈와 뼈 사이의 관절이 닳아 발생하는 퇴행성관절염은 본래 노인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질환이지만, 운동선수나 운동량이 많은 젊은이에게도 흔히 나타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비보이나 청소년들이 관절질환과 부상의 걱정 없이 좋아하는 춤과 운동을 계속하려면 충분한 준비운동은 필수다. 간단한 방법으로 허리를 의자 등받이에 붙이고 편하게 앉아서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면 춤과 운동 전 무릎 관절을 풀어주는 데 효과가 크다. 무엇보다 보호대 착용은 물론 항상 시작 전후에 스트레칭으로 몸을 충분히 이완시키는 준비운동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보이들의 진정한 외침이 제거된 열풍은 더 이상 소용없어
한국의 비보이는 분명 문화적 신드롬을 낳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비보이문화 신드롬은 문화자본논리에 의해 포획당할 여지를 충분히 남겨두고 있다. 비보이문화가 급속하게 확산되는 과정에는 비보이 문화를 상품형식으로 변형하려는 상업적 이해관계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보이를 소재로 하는 뮤지컬, 드라마, 영화, 광고들은 비보이의 문화적 맥락과 유산에 대한 충분한 의미부여 없이 상업적인 관객 개발의 수단으로만 활용하려는 전략들을 노골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물론 비보이문화가 주류문화의 형식으로 발전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비보이문화가 주류로 진입한 만큼 우리의 문화 환경이 투명하고 다양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난 1970년대 영국의 급진적인 펑크문화가 기성주류 부모세대문화에 반기를 들고 자신들만의 하위 문화적 스타일을 통해 저항하다 결국 이들을 정화시키고자하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굴복당하거나, 이들의 저항적인 스타일이 고급 패션브랜드의 상품형식으로 전환되었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동시대 한국의 비보이문화도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상품형식적인 흡수 전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에는 이미 300여명의 프로 비보이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고, 전문 비보이의 미래를 꿈꾸며 오늘도 열심히 춤에 빠져 사는 청소년들이 있다. 이들의 문화적 욕망과 감성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비보이문화를 대중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류문화의 엔터테인먼트 도구로 활용당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비보이를 주류문화산업 시장에서 상품화하려는 기획들은 너무 많이 과잉돼 있다. 하지만 이런 기획들이 충분한 준비와 이해 없이 비보이문화를 왜곡할 경우, 한국의 비보이문화는 순식간에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비보이문화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없는 미디어의 과잉된 관심은 비보이문화의 진실된 힘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공연계에선 비보이 거품론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공연의 양에 비해 질이 따라 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보이 붐은 거셌으나 성과물은 없는 게 현실이다. 기존 공연예술구조에 비보이를 합쳐놓다 보니 비보이만의 특색이 나타나지 않고, 춤 이외에 극작, 드라마, 음악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또한, 비보이들의 기량에 비해 공연과 비보이 양쪽을 아우르는 전문 인력의 부재가 공연의 질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무대작업을 하는 사람은 춤을 모르고, 비보이들은 무대를 모르기 때문에 양쪽을 아우르는 전문 인력이 꼭 필요한 실정이다. 게다가 비보이들의 수명이 짧고 나이가 다들 어리기 때문에 공연이 전 연령층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는 맹점도 있다.
문화수출 품목이 빈약한 우리나라에서 젊은이들의 문화코드라는 비보이를 주목하고 육성하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비보이가 새로운 문화수출품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으로 이를 추진해서는 안 된다. 비보이 붐이 의미 있는 흐름으로 지속되려면‘난타’와‘점프’처럼 문화수출품이 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비보이들도 이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다. 황씨는“반짝 유행을 따라 비보이들이 상업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며, “비보이문화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체계적인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류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CA에 비보이과목이 생겨야 하고, 체육과목 스트레칭과정에 춤이 들어가야 옳다는 것. 그는“비보이를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관계자도 문제지만, 거기에 목숨 거는 비보이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비보이들은 분명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외침이 제거된 낯선 열풍은 더 이상 아무런 소용이 없다. 춤을 추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그들에게 즐겁게 춤을 출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비보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닐까.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