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고 싶으면서도 독특한 옷 만드는 것이 나의 꿈”
절망에서 찾은 희망, 삶의‘희노애락(喜怒哀樂)’담은 그녀의 패션
2009-08-31 이나라 기자
지난달 말, 한국과 일본, 중국, 홍콩 등 아시아 갤러리 60여 곳이 참여한 가운데‘제 2회 아시아 탑 갤러리 호텔 아트페어(AHAF) 2009’가 사흘간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펼쳐졌다. 아트페어 개막 당일 부대행사로 열린‘ART&FUN’쇼에서 에드바르트 뭉크의 삶을 주제로 패션아트 쇼를 선보인 신인 패션디자이너, 이민지(TATA)씨를 만났다.
Q. 쇼가 굉장히 독특한데, 이번 쇼의 영감은 어디에서 얻었나
- 이번 쇼에서 내게 주어진 과제는 화가 뭉크였다. 난 특히, 뭉크의 삶에 집중했다. 뭉크의 아버지는 의사였지만 심한 이상성격자였고, 일찍이 어머니와 누이를 결핵으로 잃고 그 자신도 병약했다. 이처럼 불우한 환경은 고스란히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나 또한 다른 어떤 곳에서 영감을 받기보다는 대부분 내 삶 자체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절망에서 발견한 희망이라 하면 설명이 될까.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르겠지만, 난 내가 바라보는 시각에 의거해 모든 삶의 희노애락을 내 작품에 담는다. 한 사람이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의 삶, 그렇게 생각하고 접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Q. 그렇다면 이민지씨의 삶이 반영된 옷의 스타일은 대부분 어떠한가
- 난 지금껏 나 스스로 혼자 개척해야하는 삶을 살아왔다. 부모님을 비롯해 나를 둘러싼 주변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얻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두 세배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그러다보니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도, 노력도 그만큼 요구되는 게 많았다. 그렇게 얻은 것들이라 그런지 하나하나 사소한 것에도 애착이 심한 편이다. 하나를 얻기 위해 열을 희생해야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삶이 고단했던 만큼 내가 만든 옷엔 그간 짊어져왔던 삶의 무게가 모두 담겨져 있다. 자연스레 분위기가 어두울 수밖에 없고, 이는 블랙이라는 전반적 컬러에 녹아들어 있다. 블랙의 기본 바탕 위엔 늘 다른 색감 혹은 소품들로 빛나는 개체들이 꼭 하나씩 들어가 있다. 이는 바로 절망에서 찾은 희망을 의미한다.
Q. 본명보다는‘타타(TATA)’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의미가 있나
- 타타(TATA)는 인도말로‘안녕’이라는 뜻이다. 난 삶의 처음과 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처음도 안녕, 헤어질 때도 안녕. 단순한 인사에 불과하지만 처음과 끝이 동일하다는 것이 좋았다. 누군가 나를 봤을 때도 그렇게 느낀다면 좋겠다. 처음과 끝이 늘 똑같은 사람으로 말이다. 이렇듯 예명을 쓰면 내가 의미를 부여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좋다.
Q. 패션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 원래부터 옷을 좋아한다. 특히, 옷 자체보다는 헤어와 메이크업 등 전체적인 스타일링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누구나 그렇듯 단순하게 좋아하다보니 하고 싶어졌다. 패션디자이너가 된 이후 특히 현장에서의 생동감이 너무 좋다. 살아있는 느낌이랄까. 사실 패션디자이너를 하기 전 잠깐 연극을 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연극을 했었던 것 같다. 현재의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패션이다.
Q. 패션디자이너로 데뷔한 것은 언제인가
- 데뷔라고 하기는 애매한 것이, 디자이너라는 개념이 남들이 생각할 때는 쇼를 해야 정식으로 데뷔했다고 생각하는데, 난 내가 직접 디자인해 작은 쇼라도 섰다면 그게 바로 데뷔라고 생각한다. 그런 개념으로 본다면 2005년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 나 자신을 홍보하고자 했던 쇼라기보다는 당시의 힘든 현실을 탈피하고자 했던 쇼였던 것 같다.
Q. 4년간의 활동을 돌이켜보면 어떤가
- 작년까지만 해도 앞이 보이지 않으니 제자리에 멈춰선 것만 같았다. 그만큼 한걸음을 걷는 데까지가 남들보다 좀 더 힘겹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지금은 그 힘겨웠던 한걸음 덕으로 앞으로 몇 걸음은 훌쩍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가벼운 마음이 든다. 긍정의 힘이 생겼다고 할까. 특히, 나도 모르는 사이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고, 한명에 불과할 지라도 내 사람을 얻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 자체가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 지금까지가 내 인생의 발판을 마련한 밑거름이었다면, 지금부터가 내 인생의 진정한 시작이 아닐까 기대한다.
Q. 패션디자이너로의 삶, 그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옷을 완성했을 때의 쾌감이 아닐까. 그리고 그 옷으로 쇼에 섰을 때 터져 나오는 관객들의 탄성과 갈채. 그 갈채를 받는 순간만은 그간의 힘들었던 모든 감정들이 눈 녹듯 사라진다. 그리고 그 순간의 힘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어간다.
Q. 이민지의 패션스타일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어떠한 편인가
- 창의적이다, 독특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말보다 예쁘다, 입고 싶다는 말을 듣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입고 싶으면서 독특한 옷을 만드는 게 지금의 내 꿈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단순하게 디자이너로서의 나가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서의 나 자체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아마도 이는 내 삶을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꼭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니더라도‘누군가 나를 이렇게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하는 마음이 생기는 말들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간혹 내가 열배로 노력해야지 알 수 있었던 것을 그 사람의 말을 통해 한 번에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생각지도 못한 조언을 들었을 때는 정말 큰 힘이 된다.
Q. 지금을 견뎌온, 그리고 앞으로를 살아갈 이민지의 힘은 무엇인가
- 수많은 실패를 겪어도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 그래서 작은 변화라도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도 하지 않나. 끝까지 가봐야만 알 수 있는 게 인생이고, 하물며 지금의 난 아직 인생의 반조차 다다르지 못했다. 죽음이 왔을 때 조금의 후회도 없도록 해보고 싶은 것도 다 해보며 미지의 세계를 더 많이 알아나가고 싶다. 패션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살다 가고 싶다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행복하게 살다 가고 싶다고 해야 할까.
Q.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전한다면
- 우선적으로 실력을 키웠으면 좋겠다. 잘하는 것을 내세우지 말고 못하는 것을 키워서 완벽한 디자이너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본적으로 패션디자이너는 오감을 발휘해야하는 직업인 만큼, 항시 모든 감각을 열어 놓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두 배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직업도 바로 패션디자이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타고난 창의성이 바탕이 돼야 하는 것도 패션디자이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열심히 하기보다는 카피를 해서라도 탄탄한 기본기를 쌓아야 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는가. 결국 남들에게 보이는 것은 과정이 아닌 결과다. 이 일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강한 신념으로 밀고나가야만 자신의 색을 찾고 발휘할 수 있다.
Q. 이제야말로 진정한 시작을 앞둔 지금,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 여기까지 오고 보니 한걸음만 내딛으면 성공이 잡힐 것 같은 느낌이다. 예전에는 막연한 꿈이었다면, 지금은 조금만 노력하면 잡힐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천천히 가더라도, 그리고 잠시 쉬어가더라도 뒷걸음만 치지 않으면 그 자체가 계속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혹여 다른 길로 잠시 새더라도 다시 돌아오면 되니까. 목표만 있다면 나를 잡아주는 힘은 언제 어디에서든 계속 자라난다고 생각한다. 올해까지가 워밍업이었다면 내년부터는 그간 다져온 경험을 통해 실질적인 작업들을 이뤄나갈 계획이다. 그 하나로 메이크업부터 헤어, 사진까지 하나의 완성된 화보촬영이 가능한 멤버들을 모집해 크루를 만들었다. 현재 홈페이지(aristata.co.kr)도 개설 중에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계획은 책을 내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화보촬영에 대한 지침서라고 해야 할까. 기법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정작 알고 싶어 하는 것은 그런 부분이니까. 가능하다면 10년 뒤엔 지하에 극단을 하나 차리고 이곳에서 다시 무대에 오르고 싶다. 그리고 힘들었던 시절 내가 원했던 그 간절한 도움을 알기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장소로 제공하고 싶다. 그리고 나의 가장 큰 꿈, 패션디자이너로서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싶다. 희소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딱 한 벌의 옷이면 충분하다. 너무 이상적이라고들 하는데, 난 가능하면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다. 너무 현실적인 세상은 무겁고 재미없지 않나.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