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원 소사이어티 - 고객감동, 지속적 발전의 판촉물 선두기업

동반자적Mind 공유, 1등 컨설턴트로서의 책무를 다하겠다

2009-09-28     이진영 기자

구매자가 희망하는 기획대로 물건을 만들어 고객에게 납기까지 전개를 하거나, 회사 자체 내에서 상품 소싱이나 개발을 직접 해서 구매자에게 제안을 하는 기업이 비원소사이어티이다. 특히, 직접 상품을 개발하여 구매자에게 제안하는 일에 더 큰 중점을 두고 있다. 물류납품 및 개발에 있어서 정해져있는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며, 구매자가 기획한대로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서 직접 나가 시장조사를 해주고 외국으로부터 구체적인 시장 정보까지 받아서 넘겨주기도 한다. 외국에서 받아오는 자료라도 길면 하루, 빠르면 한 시간 이내에 모두 넘겨주기 때문에 다른 회사보다 매우 신속한 점에서 많은 신뢰를 받고 있다.

비원 소사이어티의 이상운 대표는 인맥도 자금도 없는 조그마한 회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가격경쟁력 우위와, 신속한 샘플링 제공,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한 부분은 철저히 지키는 점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이 대표는“어릴 때부터 부모님에게 받은 교육이‘손해 보는 인생을 살아라’이었다”며“비록 손해를 보았지만 남한테 피해는 안줬으니 다리는 쭉 뻗고 자지 않겠냐는 가르침이셨다. 그래서 나도 직원들에게‘기업은 수익창출이 궁극적인 목적이라 많이 남길수록 좋지만 많이 남기다보면 첫 거래로 끝나고 만다’고 가르친다”라고 말했다. 상대방이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한번은 받아 줄지는 몰라도 그 다음은 절대 거래를 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거래하는 것이 힘들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지금처럼 욕심 없이 정직하고 신뢰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은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신발 밑창이 닳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뛰고 또 뛰었다

이상운 대표가 80년대 후반, 군대 제대 후 들어간 첫 직장이 의류회사였다. 그곳에서 창고지기로 시작하면서 창고지기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가 창고장이라는 사실에 안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표는 영업맨의 최고 자리가 오너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면서 영업 쪽에 관심이 갔지만 아르바이트 위치밖에 되지 않는 창고지기가 영업부에 들어가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래서 회사의 영업부장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매주 일요일 회사에 나가 필요한 물건을 점포에 갖다 주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회사에 나갔고 퀵서비스가 없었던 시절이기에 이 대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고 한다. 여기저기 점포를 왕래하며 부족한 물건을 갖다 준지 6개월이 지나자 영업부장의 눈에 띄어 영업부 특별 발령으로 남들보다 빠르게 한국의 모든 백화점을 관리하는 관리소장 타이틀로 진급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상운 대표가 결정적으로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2006년도 독일 월드컵을 치룰 무렵이었다. 2002년도에 한일 월드컵을 회상하면 바로 붉은 물결이 떠오르듯이 붉은 티셔츠는 그 당시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그것을 인식하고 있던 이 대표는 2006년 회사를 퇴사하고 임시사무실을 얻고 붉은 티셔츠를 인터넷을 통해 팔았다. 10원도 없이 시작한 사업이 2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고 이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창업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이 당시 신발 밑창이 닳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뛰고 또 뛰었다고 말했다.

비원 소사이어티의 효자품목인 ‘장바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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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년도에 국내 메이져급 대형마트에서 장바구니 천개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다른 경쟁 회사도 많았지만 비원 소사이어티에 주문이 들어온 이유는 모든 회사들이 설 연휴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일 내에 납품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무리한 요구였고 모두 거절을 한 상태여서 비원 소사이어티에 주문이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이상운 대표는 약속한 기일보다 12시간 먼저 담당자에게 물건을 납품해 줌으로써 국내 메이져급 마트와 주 거래하는 회사가 됐다고 한다. 그 대형마트와 거래하기 시작한 2007년 2월부터 납품한 수량이 50만개 이상 되는‘핸드캐리어’를 개발해 비원 소사이어티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핸드캐리어’는 그 대형마트와 거래를 시작한 그해 3월에 개발하여 고객의 확인절차를 거처 7월에 최초 납품이 되었다. ‘핸드캐리어’는 장바구니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으며, 국내 메이져급 대형마트의 매출신장에 일조한 사은품의 일등제품으로 남아있다. 국내 대형마트의 매출신장과 비원소사이어티 기업의 성장에 기여한 기업과 기업의 Win Win 형태를 보여주었고, 비원소사이어티의 상품기획력과 가격경쟁력,
약속을 지키는 신뢰를 보여준 사례이다. 이렇듯 항상 고객에게 자세를 낮추고 마진율을 최소한의 적정가격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 대표는 직원들에게 그 대신 기업이 유지되고 경영의 지속성을 갖기 위하여 최소마진이라도 계약의 건수를 확보하여야 됨으로 쟁취는 무조건 하라고 강조한다. 이것이 비원 소사이어티의 마인드이자 이상운 대표가 살아온 인생과 같기 때문이다. 또한 식품 부분에 있어서 상한 식품은 절대 납품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문제가 있을 시에는 폐기처분 해버리거나 손실로 처리한다. 경영하는데 큰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차라리 나의 것을 버리고 상대방을 더 챙겨주는 것이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거래를 꾸준히 할 수 있는 비결이다”고 밝혔다. 현재 비원 소사이어티는 다양한 상품구성과 샘플을 기획하여 홍콩, 일본, 중국 등에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는 계약이 성사되기도 했다. 또한 비원 소사이어티에서는 동남아 등 후진국의 빈민가에 여러 상품 중 여유분이 발생하는 상품을 무상기증하기도 했다.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올바른 기업관을 실천하고자한 것이다. 또한 이 대표의 꿈은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시골에 내려가 가족들과 전원생활을 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는 가장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 그대로 물려주겠다고 선언했다. 그러기 위해서 더 열심히 뛰고 성장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굳은 다짐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 대표는“회사는 어려울 때 같이 동고동락하며 날 믿고 따라와 준 직원들이 영광을 다 갖는 것이 맞는 것이다”라며“욕심 없이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판촉물업계 최초로 코스닥 상장을 꿈꾸며 오늘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