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 Art-김영화 미술연구소
골프와 회화의 오묘한 조화를 예술로 이끌어 내다
2009-12-08 김종필 기자
김영화화백의 어린 시절은 어두웠다. 그녀의 아버지 도봉 김윤태 명장은 이조 다완을 완벽히 복원하기로 유명했다. 어느 날 아버지의 작품을 모두 사서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열고자 한다는 사람이 찾아왔고, 김윤태 명장은‘사람은 서로 믿어야 사람이지’라며 한 치의 불신없이 모두 넘겨줬다. 하지만 전시회를 열겠다는 그 사람은 함흥차사 소식이 없었고 알고 보니 그의 작품을 골동품으로 속여 일본에 가져가 거금을 받고 팔아 치운 것이다. 모든 작품을 일순간에 잃게 되었고 온 가족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김영화 화백도 어머니가 캐오신 온갖 나물을 시장에 내다팔았다. 그러나 김 화백의 숨은 끼를 발견해 인생의 대전환을 맞게 한 이들이 있었다. 김영화화백의 타고난 재능을 알아본 사람들은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예술을 하는 지기들이었다.“필력이 있는 이의 그림을 보면, 그림 속 풍경이 살아움직이는 듯한데 자네 딸 영화의 그림이 꼭 그렇단 말이야.”라며 아버지인 도봉 김윤태 명장에게 운을 띄웠다. 그 후 그녀는 아버지의 친구였던 청초 선생님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미술계에 몸 담게 된 것이다. 문하생 생활을 하면서 미술입시를 시작하였고 노력도 노력이지만 넘치는 열정과 탁월한 재능은 홍익대 미술대학 합격이라는 승전고를 울리게 했다.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시작한 골프를 통해 파격적인 회화소재를 얻게 되었고, 김화백은 그린위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전쟁, 현대인들의 특징을 부드러운 곡선과 여백, 오방색의 강렬한 색채로 섬세하게, 때로는 거침없이 풍자와 해학으로 녹여냈다. 그녀는“괜한 욕심을 부리면 골프볼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갑니다. 잘 되는 날도 있고 실수가 유난히 많은 날도 있지요. 그렇게 방황하면서 결국 마지막 홀의 홀컵에 볼을 넣는 순간 모든 상황이 종료되지요. 인생도 꽤나 닮았어요.”라고 골프를 인생의 축소판으로 설명했다. 벙커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골퍼, 필드를 감싸는 청명한 햇살과 바람, 도전적으로 라운딩하는 골퍼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다.“골프장의 그린과 벙커, 페어웨이는 여체의 부드러운 곡선을 닮았다고 생각해요. 마치 무위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보는 듯도 하고요. 골프는 건강과 즐거움을 줄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스포츠라는 점에서 더욱 매력을 느꼈다”고. 보수적인 미술인은 골프라는 독특한 소재의 회화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인간과 자연을 향한 애정 어린 시도는 분명, 숨통이 조여 가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