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인생의 이모작을 시작한 DS제강(주) 임중순 회장
73세의 철강기업인 색소폰을 들고 무대에 오르다
연령에 대한 편견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사회의식의 결정적인 모순이다. 매력이나 열정, 혹은 성장이나 도전이라는 콘텐츠에 대해 젊은이만의 속성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나이 든 사람에게서는 이런 기대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점차 고령화되어가고 있으며 젊은 사람 못지않게 젊고 활기찬 일을 하는 어른들을 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장동미 보도국장
임중순 회장(DS제강(주))은 설 쇠면 일흔 셋이 된다. 나이 70이 되면서 임중순 회장은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기업을 일구기 위해 매진하던 젊은 시절을 정리하고 이제 남은 인생은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예순 아홉과 일흔은 다르더라고 그는 말한다. 앞만 보고 기업만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기를 40여년. DS제강(주)을 코스닥에 등록하여 공개법인을 만들어 놓고 보니 딸자식을 시집보내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젊은 시절 조그만 점포를 하면서도 마음속에 강철처럼 새겨놓았던 그 꿈을 이루어내고, 이제 그는 또 다른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인생 2막 1장의 무대, 색소폰으로 막을 올리다
임중순 회장의 옥인동 집에는 방음시설이 되어있는 방이 하나 있다. 그럴듯한 가구나 화려한 벽지로 치장하지도 않은 소박한 그 방에는, 임회장의 막역한 친구가 된 색소폰 하나와 반주기 하나만 덩그러니 있다. 이곳에서 그는 밤이든 낮이든 가리지 않고 색소폰을 연습할 수 있는 것이다. 연습실의 벽에는 추사 김정희가 자신의 집 대청마루에 걸었다는 신안구가(新安舊家)라는 편액이 걸려있었다. 편액이란 것이 애당초 건물이나 집의 내력을 알려주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면, 성리학자 주희의 고향인 신안을 기리며 그 전통을 이어받은 집이라는 뜻으로 써놓은 추사의 정신을 기업가인 임중순 회장은 어떤 의미로 마음에 둔 것일까. 옛집[舊家]이라는 글 속에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삶의 두께와 깊이를 고스란히 담아두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새로운 삶으로 인생 제2의 도약을 시작하면서도 지금까지 자신이 겪어왔던 세월의 고초를 품어 안고 가려는 그의 의지가 느껴지는 글귀였다.
“한 평생을 90년이라고 한다면 그 3분의 1에 해당하는 노년의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교양을 쌓으며 정신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노년에는 ‘삶이 완벽하게 성숙된 노숙(老熟), 솜씨나 재주가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 노련(老鍊), 노숙과 노련을 겸한 노장(老壯)’의 삼로(三老)를 스스로 겸할 수 있다.”
한국학의 석학 김열규 교수는 그의 자화상이자 희망 자서전인 ?노년의 즐거움?에서 삶의 노숙함과 노련함으로 무장한 노년이야말로 청춘을 뛰어넘는 가능성의 시기이며 가슴 뛰는 생의 시작이라고 이야기 했다. 아직은 미흡하다며 겸손하게 색소폰의 리드를 조율하는 임중순 회장의 모습에서도 지금까지 기업을 일구어온 노련함과 치밀함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연습실 벽의 모서리에는 <달인이 되는 다섯 가지 열쇠>라는 메모가 붙여져 있었다. 그 속에는 ‘연습하고 또 연습하라, 고통스러운 훈련에 기꺼이 복종하라, 한계처럼 보이는 상황을 뛰어넘어라’라는 격려와 채찍의 말이 새겨져 있었다.
이웃에게 희망을 주는 어른의 모습
2009년 5월, 임중순 회장은 건강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사단법인 한국효도회 부안지역회에서 주관하는 감사패를 받았다. 그는 내소사 산내 암자에서 열린 ‘솔바람 음악회’에도 참여하고, 지역 면민의 날 행사에 중국기예단과 비보이 댄서들을 초청하는 등 지역의 문화행사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색소폰을 들고 직접 출연을 해서 흥을 돋우어 그 이웃들과 함께 한다. 노인대학에 가서 강의 전 색소폰을 연주해 200여명의 노인대학생들에게 갈채를 받기도 했다. “노인들이 일을 그만두고 무기력하게 소일하는 데 시간을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나이에 내가 색소폰을 들고 뛰어다니며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들도 희망을 얻고 용기를 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라고 말하는 임중순 회장에게서 나이는 한갓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무대에 서면 남인수의 ‘청춘고백’을 연주한다. 발라드풍 대중가요인 이 노래의 가사는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삶의 회한이 느껴지기도 하는 이 노래는 힘겨운 시절을 견뎌낸 어른들이 가슴에 담고 있는 삶의 훈장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당대 최고의 노래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정서적인 유대감이 이 서정적인 가요를 통해 발산되는 순간이다. 임중순 회장이 즐겨 연주하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도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도 그런 깊이가 묻어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은평구, 마포구, 광진구, 반포구 등 지역의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데 그치지 않고 56사단, 57사단, 60사단 등 군부대 위문공연도 간다. 젊은 장병들도 할아버지뻘 되는 그의 연주에 열광한다. 젊은 사람은 나이 든 사람을 보면서, 나이 든 사람은 젊은 사람을 보면서 서로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고 서로를 귀감으로 삼으며 함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희망의 연대는 이렇게 작지만 강하게 시작된다.
금의환향(錦衣還鄕)한 기업가의 멈추지 않는 고향사랑
고향. 임중순 회장에게 있어 고향은 생각만으로도 가슴 아릿한 곳이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실향민을 생각하면, 고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고향을 떠나왔던 사람이다. 그 시대가 다 그랬다고는 하지만 어린 시절에 한국전쟁을 겪고 먹고살기 위해 상경을 한 입지전(立志傳)적 인물이 바로 그이다. 1974년 동신금속(주)으로 설립한 강관 제조업체를 우량 중소기업으로 키우고 1990년 코스닥에 등록하면서 현재의 DS제강(주)을 한국경제의 성장과 산업화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하나의 굳센 다리가 되도록 만든 장본인이 임중순 회장인 것이다. DS제강(주)은 국내 스테인리스 강관제조와 공급을 주력으로 하는 관련업계에서 국내 4대 메이저 기업의 반열에 드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www.ds-steel.co.kr).
산업구조가 고도화 되면 제조업의 부가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기술력과 품질에 대한 신뢰로 극복하게 하는 데는 ‘오직 제품만이 기업의 얼굴이요, 기업의 모든 것’이라는 임중순 회장의 경영관이 바탕이 되었다. 그의 특별한 리더십은 기업의 이익에만 국한하지 않고 사회의 유익을 염두에 두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경기도 김포에 생산 공장을 두고 있던 2000년, 그의 고향인 전북 부안에 10,000여 평에 달하는 방대한 공장 부지를 조성하고 국내 굴지의 공장을 이전하는 결정을 내렸다. 전국을 커버하는 기업의 속성상 공장입지에서 물류비는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다. 교통여건을 포함하여 제반 여건을 감안할 때 부안은 공장입지의 최적지는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추가 물류비용을 감수하면서 고향으로 기업을 이전한 임중순 회장의 결단력은, 산업기반이 미약한 지역경제를 선도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결실을 맺게 되었다. 직원의 80% 이상을 부안농공고 출신을 중심으로 부안 지역 인력으로 채용하였고 결과적으로 회사 임금 총액의 70%에 해당하는 급여를 부안현지에 지급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한국사회가 본받아야할 기업의 윤리경영(moral management)이라고 보아 부족함이 없을 사안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鄕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누구나 대동소이하다. 원초적인 정서이기 때문이다. 전북 부안군 주산면 갈촌리 신성마을에서 태어난 임중순 회장에게도 고향은 각별한 곳이다. 고향마을 진입로에 벚꽃나무를 심기로 하고 정읍 산림조합에서 관리하던 벚꽃나무 5백 그루를 사들여 1년 동안 정성들여 키웠다. 2008년 12월, 부안군에서 임중순 회장의 기증의사를 받아들여 십 리길 도로 양편에 벚나무 식재를 하게 되었다. 당시 김호수 군수는 “고향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널리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임회장은 성공한 기업인으로서만 머물지 않고 남다른 애향심으로 고향마을을 아름답게 하고 고향을 새로운 명소로 만드는 전기를 만들었다.
또 우범지대 순찰과 청소년 선도, 교통정리, 자연보호 등 지역 범죄예방활동을 하고 있던 주산면 자율방범대가 방범차량이 노후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차량구입비를 선뜻 지원한 데에서도 임중순 회장의 따뜻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자랑스러운 고향이 있었기에 언제 어디서든 든든하게 기업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보답을 하려는 자세로 살고 있어요. 작은 일이지만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라며 웃는 임중순 회장의 미소에서 봄이 되면 피어 흐드러질 고향어귀의 꽃길이 느껴졌다.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키워가는 그는 아직도 청춘
임중순 회장은 한 달에 한 번은 꼭 시내에 있는 서점에 들른다. 요즘 관심 깊게 읽는 책은 노인복지나 노인생활에 관한 것들이다. 선진국에서는 노후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나이 들어 몸을 지탱해 주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사랑과 봉사요, 두 번째는 일입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특히 봉사하는 삶에 대해 “효과나 이득을 보려고 하면 그건 봉사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단호했다. 젊은 사람들이 과분한 소비를 하거나 자기생활을 즐기는 풍토에 대해 사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가나 사회 전체를 생각해 보지 않고 개인의 이득만 추구하는 것은 현명한 처신이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인생은 미완성이겠지요.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지금도 반성할 게 많습니다. 산골짜기에서부터 굴러 와 부딪치고 깨지면서 시냇가에 떠내려 온 조약돌처럼 변하고 겪으면서 모가 없어지겠지요.”라고 그는 말한다. 이렇게 그는 지금도 청년처럼 사고하고 성장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버려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물욕을 버려야 하고, 두 번째는 자식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고, 마지막으로 젊었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버려야 한다.”
버젓한 기업의 대표이사를 맞고 있으면서도 임중순 회장은 10년이 넘도록 차를 바꾸지 않고 사용 했다. 급기야 고속도로에서 차가 멈추는 일이 생기고 나서야 자녀들의 강권으로 차를 바꿨다는 그는 근검절약이 몸에 밴 사람이다. 지금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니고 지방으로 갈 일이 아니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영하 7도로까지 떨어져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도 그의 집 욕실에는 더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생활은 청교도적이다.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도 않거니와 겉모양을 치장하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래 전에 사업상의 이유로 골프를 하게 되었는데, 골프가 대중화된 오늘날과 달리 호화로운 스포츠라는 통념이 지배하던 시절이라 그는 좋아하던 골프를 그만 두었다고 했다. 87년 이후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다는 임중순 회장은 그 후로 등산을 즐기게 되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매일 북한산을 한두 시간 오르는 그는 지금 열혈 등산 애호가이다. 소식(小食)하고, 술자리도 1차만 하는 원칙이 있는 그는 ‘한다하면 하는’ 성공하는 사람의 전형이다.
이렇듯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자신을 위해 소비하는 데 인색한 임중순 회장이 요즘 들어 달라졌다. 두세 곡의 색소폰을 연주하기 위해 하루를 들여서 먼 길을 달려가고, 무대에 서기 위해 멋진 정장도 준비한다. 2009년 한 해에 이틀에 한 번 꼴로 연주를 했다는데, 젊은 사람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정을 소화해 내는 에너지는 자기 삶에 대한 확고한 의지에서 나오는 듯하다. 젊은 시절과 달리 나이가 들면 즐거운 것을 보아도 떨리거나 흥분하는 일이 없기 마련인데 무대에 섰을 때만은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객석에 있는 노인들이 같이 호흡을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즐거워할 때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고도 했다. 사회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는 노인들이나 소외된 계층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 임중순 회장의 유일한 소망이다. 색소폰을 들고 무대에서 혼신을 다해 연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희망을 얻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언제라도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할 때 그의 얼굴은 소년처럼 상기되었다.(blog.naver.com/7323725)
“나이 든다는 것은 희망의 기초이고 점진적인 성숙을 가져온다는 것이며 끊임없이 되어가는(Becoming) 존재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조용히 자신과 대화할 시간을 주며 일상생활과의 단속성에서 오는 여가 후유증을 전혀 주지 않는 까닭에 등산을 즐긴다는 임중순 회장. 구기동에서부터 북한산을 오르다가 대남문(大南門)을 복원하는 자리에서 물색없는 인부들이 성곽주변의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내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성문을 한가운데 두고 적당한 위치에 모양새 좋게 자리 잡은 느티나무 두 그루를 베어내기 직전에 현장소장에게 호소하여 그 나무를 보존하게 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벌써 15년 전의 이야기다. 색소폰을 들고 인생의 이모작을 시작하는 임중순 회장은, 풍요로움 속에서도 하루를 살아내기에 급급하고 자신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무미건조한 현대인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활력소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음날 구민회관에서 있을 지역주민을 위한 음악회를 준비하기 위해 구두를 손질하는 그의 모습에서 해마다 봄이 되면 새잎을 틔우는 오래된 느티나무를 본다. (NP)
임중순 회장 약력
-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 전국 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 수료
- 동신상회 (스테인리스강 및 비철금속 제품 유통) 회장
- 삼우산업주식회사 (식품제조) 회장
- 동신공업(주) (부엌가구 제조) 회장
- 한국씽크공업 협동조합 이사장
- 김포상공회의소 의원
- 現 DS제강(주) 회장
▶ 수상경력
중소기업은행, 우량중소기업에 선정
부안군, 부안군민의장 수여
한국산업은행, 한마음샛별고객에 선정
한국상업교육학회, 한국상업교육대상 공로부문 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