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원전, 글로벌 시장의‘다크호스’
2010-01-28 이민선 기자
“UAE 원전 수주”는 황금 어장을 선점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올라설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여
UAE와의 이번 원전 사업은 2017년 완공 예정인 UAE 첫 원전(1천400메가와트급)을 포함, 2020년까지 수도 아부다비에서 서쪽으로 330km 떨어진 실라(sila) 지역에 모두 4기의 원전을 건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초기 건설 계약금만 해도 200억 달러 규모다. 이러한 가시적인 성과뿐만 아니라 원전 준공 이후에도 향후 60년 동안 원전 운영 및 유지보수 책임까지 맡았다. 이로써 약 200억 달러의 추가 재원확보가 가능케 됐다. 결국 이 사업을 통해 한전이 얻게 될 경제적 가치는 총 400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 이는 2010년 정부 예산안 292조원의 6분의 1에 해당한다. 이 같은 성과는 정부와 한전, 관계 기업 등 수많은 인력들이 1년여에 걸친 치열한 준비를 거친 끝에 이뤄낸 산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무엇보다 자체적으로 한국표준형 원전을 개발하여 국제적으로 그 성능과 안전성이 아주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는 지금 원전 신설에 눈 돌리고 있어
UAE는 하루 294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해(세계 8위), 270만 배럴을 수출하는(세계 4위) 손꼽히는 산유국이다. 매장량도 978억 배럴(세계 6위)에 달한다. 에너지 고갈의 걱정과는 거리가 먼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UAE는 원자력 발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UAE의 한 해 전력 수요는 대략 1만6000MWe 수준이다. 하지만 석유 수출을 통한 빠른 성장을 이루면서, 매년 전력 수요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대로라면 무한정 석유 수출국이라고 할지라도 안심할 수는 없다. 또한 UAE는 앞으로 필요한 방대한 양의 전력을 화력발전을 통해 생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천연가스, 석유, 석탄 등을 통해서 전력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키는 하나 이는 환경오염과 같은 상당한 문제들을 야기한다. 특히 최근 기후 변화가 국제적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화석 연료를 태우는 발전 방식은 갈수록 환영받지 못하는 추세다. 이에 비해 원자력은 상대적으로 장점이 많다. 발전 효율이 높고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아 기후변화 문제 대처에도 이상적이다. 경제ㆍ사회적 부대 효과도 크다. 또한 원자력의 원료인 우라늄은 화석연료와 달리 수송과 저장이 쉽고 소량의 연료로도 막대한 에너지를 낼 수 있다. 아울러 원자력은 고도의 과학기술을 필요로 해 원자력으로 기술자립을 이룩하게 되면 타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원자력의 연료인 우라늄은 세계 전역에 고르게 매장돼 있어 상대적으로 세계 에너지 정세에 영향을 덜 받게 된다. 이러한 원자력의 장점으로 세계는 지금 원전 신설에 주목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를 몰아서 2030년까지 원전 430기가 신설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그 가치는 급상승하고 있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사실상 지난 1979년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와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후 원전에 관한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해 원전 신설을 중단한 바 있다. 하지만 화력 발전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인식되면서 선진국과 더불어 아시아, 중동국가들에 이르기까지 환경오염이 적은 대체 에너지로서 원전 신설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와 에너지 효율에 관심이 많은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원전에 대해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국가들이 늘고 있는데, 폴란드와 네덜란드, 독일 등의 유럽국들은 그동안 원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최근 원전 설치 또는 가동 기간 연장 준비에 들어가면서 원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증명했다. 구체적으로 탈(脫)원전정책을 고수하던 영국은 2003년 이래 원전 10기 건설 계획을 발표했고, 이탈리아는 1987년 기존 원전을 폐기했지만 최근 신규 건설 계획을 발표하는 등 원전 설치를 표방했다. 이러한 세계적 기조에 독일도 동참하고 있는데, 지난 2002년 원전 폐기법을 발효한 바 있지만 지난해 9월 원전 재설치를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중국은 2030년까지 원전설비 규모를 40GW로 확대하는 계획을 발표했고 인도는 전력수요 충족을 위해 2032년까지 50여 기의 원전을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급한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원전이 현실적으로 유일한 대책임을 인정한다”-그린피스 전 영국대표인 스티븐 틴데일-
세계에 한국 원전 경쟁력 입증
“아랍에미리트 원전사업을 수주한 것은 우리 과학기술인들의 땀과 헌신적 노력의 결실이며, 기술개발과 인력 양성에 박차를 가할 것”-이명박 대통령-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 역사
진실로 한국은 美와 UAE에 놀아났나?
UAE와의 원전 수주는 3년차 정권을 맞은 이명박 정부의 꼽히는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내로라하는 일간지, 주간지 등 신문들은 앞 다퉈 이명박 대통령의 공을 치하했다. 하지만 비판 또한 만만찮다. 일각에서는 아랍에미리트가 한국을 선택한 데에는 정치적인 계산이 포함됐다고 한다. 이번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에서 경합을 벌인 미국, 일본, 러시아, 프랑스에 비해 한국은 인지도가 상당히 약하다. 반면, 위에서 언급한 국가들은 경제력이 우세해 UAE의 에너지 자원 포섭 우려가 있다. 우리는 그럴 가능성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즉, 우리를 만만하게 여겼다는 결론이 나온다. 때문에 이번 원전 수주가 온전히 이 대통령의 공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는 논지다. 비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달 일부 진보 신문, 단체들이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서 논란이 일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주요 쟁점은 이미 UAE가 원전에 미국 기업의 원천기술을 도입하기로 굳힌 상태에서 한국이 UAE와 미국의 들러리를 섰다는 것이다. UAE는 2007년 말부터 자국에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해 왔다. 지난해 1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셰이크 압달라 빈 자이드 알 나히안 UAE외무장관과 만나 123협정에 사인하고, 4개월 후 5월에는 미국-UAE 123협정을 최종 승인했다. 123협정은 1954년 제정된 미국 원자력에너지법에서‘타국과의 원자력 협력’관련 조항인 section 123에 따른 협정으로, 미국의 원자력 원천기술을 제공해 주는 대신, 핵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 우라늄 농축 금지 ▲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금지 ▲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원전 시설 특별사찰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협정이 지난해 10월 결국 의회에서 비준됐다. 이로 인해 미국은 원전 원천기술 이전을 허용하면서 중동 핵확산을 막는다는 이익을, UAE는 중동 최초로 미국의 원전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UAE는 왜 미국으로부터 원전기술 수입허가를 받아놓고도 미국이 아닌 한국을 택했을까. 이 해답은 지난해 4월경 미-UAE상공회의소가 미 의회에 보낸 의견서를 보면 확연해진다. 의견서에는“123협정 체결로 UAE 원전프로그램에 미국기업이 공급자나 컨소시엄의 키플레이어로 참여할 경우 미국에 1만1000~1만2000개의 고급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러한 상황을 봤을 때, 미국이 주도하건 한국이 컨소시엄이건 미국의 국익에 있어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난다. 더군다나 이번 원전 수주의 핵심기술인 원자로냉각제펌프(RCP), 원전제어계측장치(MMIS), 원전설계코드 등은 모두 미국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원천기술을 사용하는 GE와 웨스팅하우스 중 누가 공사를 따내느냐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다만, 미 행정부는 미국이 직접 원전을 수주할 경우 원전 시설경비를 위해 중동에 추가로 미군을 파견하는 등의 부담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논리대로라면 우리가 미국과 UAE의 들러리였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그 대가로 우리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웨스팅하우스에 주기기설비 공사비의 48%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해야만 한다.
핵심 기술 자립이 관건
이번 UAE의 원전 수주는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수출 주력 산업의 하나로 원전 건설이 자리를 잡았다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원전이 UAE에 수출됨으로써 부차적으로 원자력 관련 기기 및 부품 관련 시장이 커지는 등 새로운 성장 동력 산업으로 각광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 지식경제부 관계자는“비교적 소형 원전을 수주하더라도 향후 잠재된 수출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라는 말을 통해서도 원전 수주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무한 잠재 산업으로 인정받는 원전 건설의 미래는 밝다. 하지만 이제 시작인 우리의 원전은 보완해야 할 과제 또한 만만치 않다. 우선,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3대 핵심기술을 국산화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원전 기술 국산화율은 95%에 달하지만 3대 핵심기술은 미국 웨스팅하우스사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원전에서 발생 가능한 모든 사고를 예측하고 한 주기 동안 핵연료의 상황을 예측해 핵연료 장전량을 결정하는 설계핵심코드 기술은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프랑스 아레바 두 곳만이 보유하고 있다. 다행히도 터빈설비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계측하고 운전토록 제어하는 제어계측장치는 세계 5번째로 개발 완료돼 발주될 예정에 있다. 장문회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본부장은“선진국이 절대 기술이전을 하지 않는 핵심 원천기술의 국산화를 위해 지식경제부 산하 연구기관과 민간 기업이 2012년까지 추진 중인‘뉴텍 2012’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원전 기술독립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100% 국산화를 이룬 한국형 원전을 기대해 보는 것도 좋겠다. 이 밖에도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있다. 우리는 원자력 업무를 관장하는 정부 부처 간의 갈등도 해결해야 한다. 현재 지식경제부 산하 기관에서 원자력 응용기술 개발을, 교육과학기술부는 기초 원천기술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교과부의 원자력 개발 업무를 지경부에 통합해야 한다”는 발언과 관련해 부처 간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는 형국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자칫 영역 다툼으로 보이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단속이 필요하겠다. 마지막으로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껏 한미 원자력협정에 의해 재처리 과정이 원천 봉쇄됨으로써 우리 원자력 산업이 난황을 겪어왔다. 더군다나 사용 후 핵연료 처분장의 수용능력이 몇 년 안에 한계에 다다른다고 하니 반드시 타결점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4년에는 한ㆍ미 원자력협정의 개정 논의가 이루어지는 해이다. 이에 따라 각별한 준비를 통해 원자력으로 앞서 나가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내 원전업체들의 도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우리가 이룬 이번 성과는 분명 칭찬할 만하지만 이제 막 세계를 향해 도약한 것일 뿐이다. 지나친 자축은 자제하고 이번 원전 수출을 한국형 원전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도약의 발판삼아 세계 최고 원전기술 수출국으로 나아가길 기대해본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