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악한 자국민 보호, 재외국민 벼랑 끝으로 내몰다
“대사관 직원은 한국인 아닌 외국인이냐” 비난쇄도
2010-01-28 이민아 기자
지난 2009년 11월 11일, KBS 2TV 시사교양프로그램‘추적 60분’에서‘온두라스 감옥에서 온 편지- 난 살인범이 아니에요’가 방영된 바 있다. 이날‘추적 60분’은 중앙아메리카 온두라스에서 발생한 외국인 변사사건에 휘말린 한지수씨에 대해 다루었다. 한 씨는 스킨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따기 위해 2008년 5월부터 온두라스에 머물렀다. 그러던 중 네덜란드인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려 억울하게 온두라스 감옥에 수감되었고, 재외국민을 보호해야 할 적극적 의무가 있는 주 온두라스 대사관은 원칙만 내세울 뿐 답답한 태도만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온 국민의 분노를 샀다.
타국에서 살인용의자가 된 한 씨
이집트 당국에 관대한 한국대사관
대한민국 헌법은“국가는 법률이 정한 바에 의하여 자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갖는다”고 2조2항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타국의 국제법 위반행위에 대해 자국민을 대신해 국가가 개입하는 외교적 보호는 국가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하지만 외교통상부 재외국민보호과 담당자는“이집트에 항의했으나 체포, 수감 등에 대한 통보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는 해명만 들었을 뿐, 사과는 받지 못했다”며“다음부턴 통보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영사통지권 및 조력권 통보를 무시했고 그로 인해 영사의 개입이 늦어졌으며 한 씨가 위법적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사관 측은 그냥 그렇게 넘긴 것이다. 인터폴 적색수배령에 따라 타국인을 직접 체포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나라 간 조약을 맺은 유럽일부 국가 등만이 그러하다. 경찰청 외사과 담당자에 의하면“우리나라도 적색수배자가 출입할 경우, 해당 사법당국과 연락해 조처를 논의하지만 대체로 체포하기보다는 강제출국 시킨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당시 한 씨가 체포, 구금되는 과정에 대해 경찰청 측은“이집트가 그리 하도록 명시한 자국법이나 온두라스와의 조약이 있는지 따져 강력히 항의할 것을 외교당국에 주문했다”고 한다. 외교통상부는“양국이 조약을 맺은 건 아니지만, 이집트 쪽이 경찰 공조차원에서 응한 것”이라며“체포 여부는 해당국가가 판단할 사항이고, 제 3국 인도도 정당한 주권행사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물론 손을 놓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대사관은 이집트 검찰청, 외교부 영사담당 부차관보 등을 면담하여 한 씨의 이송연기를 요청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한 씨가 온두라스에 송환 된 뒤에는 더욱 사태가 악화되었다. 로아탄 법원에서 1, 2차 심리를 마치고 유죄추정상태로 1심 재판에 회부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지 못하면 4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것이다. 한국대사관은“주재국의 재판 수요, 느린 업무 관행 등을 감안하면 실제 재판이 더 지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씨는 불구속 재판을 요청하는‘구속변경심리’를 따로 신청 할 수 있다. 대사관은“한 씨가 불구속 재판을 요청할 경우, 선처를 요청하는 서한을 담당 재판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검찰이 정식 기소하기 전, 한 씨 가족이 가택연금상태에서 수사를 받을 수 있도록 신원보증을 정부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바 있다. 외교통상부 재외국민보호과 담당자는“법적 강제력이 없는 공관이 한 씨의 신병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 씨가 도주하지 않는다는 보증을 제공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한다. 안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어 안 된다는 뜻이다.
선진국은 자국민보호에 적극적
한 씨는 변호사를 선임하는데 만 1만 5천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대사관이 선임해 준 변호사는 1차 심리 때 참석도 못했다. 쿠데타로 공항이 폐쇄되어 로아탄 섬으로 오는 항공편이 끊겼기 때문이다. 한 씨는 변호사는 물론 영사 얼굴을 보지도 못한 채 피의자의 인적사항, 피의 사실 등을 확인하는 1차 심리를 혼자 감당해야 했다. 대사관은 심리연기 요청을 했다. 사후처리에만 급급한 것이다. 하지만 사망자 마리스카의 조국인 네덜란드는 자국민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한 씨가 등록했던 다이빙 숍의 한 강사가 한 씨의 억울함을 알리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네덜란드 대사관측에서 찾아와 그 글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마리스카 사망 1주년 프로그램이 자국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한 씨 송환과정에서는 경찰이 직접 동행했다. 한 씨의 언니 한지희씨는“물적 증거는 없으나 정황상 네덜란드의 압박이 있다고 본다”며“우리 정부는 타국의 사법절차를 존중해야 한다며 공정성을 얘기하지만, 한 쪽이 힘을 가할 때 다른 한 쪽이 그만큼 가하지 않으면, 결국 불공정이 초래되지 않겠느냐”고 억울함을 토로한다. 해외 선진국의 자국민 보호 수준과 심히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스웨덴의 경우, 영사지원상황으로 해외에서의 곤경을 여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경우, 외국법원 등의 결정에 따라 자유가 구속됐을 경우 조사, 재판, 통역 등에 소요되는 비용까지 지원한다. 주한 미국대사관 영사들은 3개월에 1회씩 한국 교도소에 수감된 미국인 수형자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면담, 통역을 위해 한국인 직원까지 대동한다. 네덜란드의 대응도 한국과는 상당히 다르다. 한 씨가 이집트에서 온두라스로 송환되는 과정 대부분을 네덜란드 경찰이 동행했으며 한 씨를 태운 비행기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경유하여 주온두라스 네덜란드 대사관 직원을 그곳에서 만났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영사지침은 다음과 같다. 유럽이외의 국가에 수감된 경우 월 30유로 수당을 지급하며 수감자에게 음식, 의복, 약품 구입비 또는 귀국항공권 구입비용 대출, 해당국의 적법절차에 따라 소송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합리적 근거가 있을 경우 제 2의 법적 검토를 위한 비용을 지원한다. 때문에 우리 정부의 구멍 난 자국민 보호를 국민이 메우고 있다. 2차 심리에서 유죄추정상태가 판결되면서 한지희씨가 인터넷에 구명 글을 올렸고, 그 글이 네티즌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구명 글이 확산되면서 교민들이 직접 한 씨를 면회하고, 김치와 라면 등 1년을 감옥에서 지내며 먹어도 충분할 만큼의 음식을 제공했다. 현지에서 병원을 짓고 있는 건설사는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던 침대에 꼭 필요한 합판을 구해줬다. 네티즌들은 국민권익위원회에 청원했고 한 씨의 사연을 네덜란드어, 영어, 프랑스어로 번역해서 전파하겠다는 이도 있다. 한 씨의 동문인 서강대, 명덕외고 동기와 선후배들도 적극 가세하고 있다. 그나마 한 씨와 그 가족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불구속 재판위한 약속
민주당 정동영 의원이 한 씨의 구명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한 씨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을 수 있도록 조처할 것을 공식 요구했다. 정 의원의 이런 활동으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직접 적극적인 조처를 지시하게 되었다. 정 의원은“우리 영사가 한 씨의 신원보증을 서주면 불구속상태에서 재판받을 수 있는데, 한 씨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신원보증을 받지 못했다”며 외교부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난했다. 유명환 장관은“모든 방법을 강구하고, 적극적으로 재외국민 보호차원에서 할 수 있는 조처를 취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정 의원실의 장형철 보좌관은“외교부가 당일 오전까지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검토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 하다, 국가가 개인 신원을 보증하지 않는다는데 있어 원칙이나 규정이 있느냐고 추궁 받으면서 태도를 바꾸었다”며“기본적으로 국가가 할 의무를 안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씨의 가족은“보도 이후에도 정부쪽에서 가족에게 적극적으로 연락을 하거나 특별히 도움을 제공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 편 한 씨가 수감되어 있는 라세이바 교도소는 내부폭동이 일어나고 한 여성 수감자가 남성 수감자 방에 놀러갔다가 얼굴에 총을 맞아 숨진 사건이 일어나는 등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위험한 곳이다. 30년 형을 선고받은 한 씨의 경우, 그 위험한 곳을 한 시라도 빨리 나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한 조처다. 대사관의 소극적인 대응에 대해 네티즌은“대사관은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라고 물으며“답답하고 속상하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부끄럽다. 대사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그들의 세계여행과 그 자녀들에게 온갖 혜택을 주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열악한 상황에 구속까지 당한 국민이 구조를 요청했는데도 전례를 문제 삼아 신변보증을 거부한 외교부가 한심하다”고 말했다.
허술한 재외국민보호 되풀이돼
영문도 모른 채 마약운반책이 돼 대서양 외딴 섬에 갇혔다가 2년 만에 풀려난 장미정씨, 1998년부터 불법 체류혐의로 호주 이민자 수용소에 갇혀 있던 서재오씨, 그리고 6년 전 이라크에서 목숨을 잃은 김선일씨. 이들은 우리 정부의 허술한 재외국민보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 국민들은 비행기를 타고 공항을 떠나는 순간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대서양 외딴 섬에 갇혀있던 장미정씨는 2년만인 2006년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장 씨는 태극기를 붙잡고“대한민국이 너무 그리웠다”며“국가가 국민을 보호해 주지 않는 일이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 씨의 바람이 수년 후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김선일씨의 사건 이후, 국회에는 3개의 재외국민보호법률안이 상정됐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표류하다 결국 논의자체가 중단된 상태다. 외교통상부는 법률안이 없어도 세계 어디서든 24시간 연결되는‘영사 콜센터’시스템을 마련했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17시간 감금되었던 김 모 씨의 말에 따르면 구금당시 러시아 측은 한국영사관이 퇴근한 시간이라 연결조차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탈 북한 납북어부 최욱일씨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선양 총영사관으로부터 최 씨가 홀대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국정부의 재외국민 보호정책에 대한 비난이 커졌다. 외교부는 부랴부랴 재외국민 보호의무의 기준과 범위를 정하는 지침 마련에 나섰지만 비난을 일시적으로 피하기 위한 면피용 방침이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재외국민 보호와 관련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 처음도 아니며 또한 지침의 내용들이 보다 본질적인 변화의 내용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 있는 한국 교민들 사이에서는“외국에 나가서 곤경에 처할 때 처신방법으로, 미국인들은 자국 대사관에 가서 이르고 영국인들은 미국인인척 하면서 미국대사관에 가서 이른다. 중국인들은 자기네 교포들끼리 떼로 몰려와 항의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제 혼자서 알아서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엔 말에 뼈가 있다. 미국정부의 자국민 보호정책이 미국인들로 하여금 자국에 대한 귀속감을 강화시키고 다민족 국가로서의 통합력을 증대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외국에 나가면 자국민 보호 등 영사업무와 관련한 문제를 자주 접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재외 한국인들의 불만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나마 국내에 알려져 여론의 조명을 받는 경우는 다행이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영사관 직원 몇몇의 개인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정부의 재외국민 보호와 관련된 정책에서 문제가 비롯되는 것이다. 재외국민 보호에 대한 한국 외교기관의 문제점은 보다 근본적으로 군사 독재 정권의 대외정책의 잔재로 인한 것이다. 독재정권은 외국의 여론에 민감하다. 국내에서는 강제적으로 억압과 통제가 가능하나, 외국에서는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어쩔 수 없이 외국 정부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그들과의 마찰을 가능하면 피하려고 할 것이다. 자국민 보호는 주재국 정부와 피할 수 없는 일정한 마찰과 대립을 동반한다. 하지만 영사업무의 초점이 이를 피하는 데만 맞춰진다면 자국민 보호는 요원하다. 이러한 관행이 되풀이 되면서 영사업무는 대사관 업무의 하위 업무로밖에 보지 않게 되고 도움을 요청해 오는 자국민은 성가신 존재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모국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스포츠만 해도 그렇다. 다른 나라 국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인들은 자국을 응원한다. 당연히 한국 정부도 자국민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 귀속감, 애국심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사 독재정권 시대의 잘못된 재외국민 보호정책을 변화시켜야 한다. 주재국과의 일정한 마찰을 감수하고 자국민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등 영사 업무 정책 전반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외교부서에서도 영사업무의 지위와 비중을 제고시키고 이 분야에 대한 고급 인력 확충 및 인력보강도 함께 실시해야 한다. 또한 문제 발생 시 사과나 해당직원에 대한 경미한 문책에 그칠 것이 아니라 기관장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태어난 조국을 모국(母國)이라 한다. 이처럼 국가가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면 자식 같은 국민들이 조국을 떠나 있을 때 부당한 처우를 받는다면 발 벗고 나서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렇게 되면 국제관계속에서 한국인의 지위와 더불어 한국의 위상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