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표출할 문화공간의 부재로 하위문화의 오명 쓰다”
사회적 환경과 분위기로 인해 양질의 문화로 성장 못해
2010-01-28 이민아 기자
한국사회의 청소년들은 오전과 오후를 모두 학교와 학원에서 보낸다. 대학입시만을 위한 교육정책의 피해자인 청소년은 한창 자신의 적성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할 시기에 국, 영, 수 교과서를 하루 종일 들여다봐야 한다.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시험기간이 끝나고 취미생활과 문화생활을 즐기려고 하면 할 것도 없고, 갈 곳도 없다.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놀이공원, 영화관, 노래방, pc방이 전부이다. 심지어 이 모든 놀이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다는 밀폐된 공간인 이른바‘멀티방’에서는 청소년들의 은밀한 일탈행위가 자행되기도 한다. 입시공부를 위해 마련된 학원, 독서실 등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만 가는데 청소년의 자기계발과 양질의 문화생활을 즐길 곳은 마땅치가 않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과잉 학습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는 청소년들은 좌표를 잃고 방황하게 될 것이다.
입시공부로 인해 문화생활은 뒷전
“청소년들이 화면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일반 성인의 풀타임 근무시간과 맞먹을 정도이다”-박민영,<인문학, 세상을 읽다> 중‘청소년 문제, 사회적 병리현상의 축소판’
대중문화를 그대로 흡수하는 청소년
청소년문화는 주로 대중매체에 의해 창출되고 보급된다. 대중매체는 현대인들의 원만한 사회생활과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 특히 기존의 서로 다른 미디어들이 멀티미디어화 되면서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성장과 독립’의 중요한 시기에 있는 청소년들은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신체적, 심리적, 환경적 변화를 체험한다. 청소년기에 자존감을 획득하며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려는 욕구가 극대화 된다. 이러한 시기에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다양한 시청각 정보들은 아무런 거름장치 없이 청소년에게 즉각적으로 주입되기 십상이다. 또한 대중매체의 특성상,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기업에 의해 생산되고 소비되는 문화상품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대중문화이다. 따라서 대중문화는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주체에 의해 하나의 상품으로 생산되고 분배, 소비되는 문화라 할 수 있다. 대중문화는 수용자들에게 쾌락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문화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써 문화 수용자의이성을 무장해제 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특히 영상매체는 청소년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때문에 최근 대중가요 프로그램에서 나타나는 미성년자 가수들의 노출의상이나 성적으로 어필하는 가사 내용과 안무 등은 청소년에게 즉각적인 수용을 하도록 하며 이를 모방하게끔 한다. 미래의 소비자들이 될 청소년들을 겨냥한 최첨단 미디어매체의 등장으로, 청소년들은 이미 놀라운 속도로 동화되었다. 또한 이러한 매체를 통한 청소년들이 독자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문화를 기존의 대중문화의 하위문화라고 평가절하 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청소년 문화는 감각 지향적이다. 기존의 사고와 틀을 깨고 순간적인 유행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새로운 변화에 쉽게 적응한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가치관과 자아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한 시기이기 때문에 이들이 기존의 대중문화와 미디어, 인터넷상의 정보를 1차적으로 받아들일 때 문제가 발생한다. 자극적인 정보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이를 모방하기도 한다. 대중문화의 허구성과 상업성 짙은 대중문화로부터 편향된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또한 가치관의 혼란을 야기하여 건전한 성에 대한 인식을 선정성으로, 인간의 생각에 대한 근본적인 의지를 권력과 불의에 대한 탐욕으로, 자신에 대한 존경심을 자만으로, 인간이 가지는 근본적인 불완전성에 대한 의식을 불안과 초조로 받아들이게 한다. 즉, 대중매체의 물질, 외형주의가 비인간적인 사고를 확산시키면서 사회 전반에 한탕주의, 찰나주의, 흉악해진 청소년 범죄 등의 부작용을 낳게 된 것이다. 한편, 거대한 정보의 홍수도 청소년들에겐 소화할 수 없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앨빈 토플러의‘미래의 충격’에 의하면 현대인들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충격과 두려움을 지니며 살고 있는데, 이것은 대중매체를 비롯한 각종 공학의 급격한 발달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대중매체를 통한 정보의 홍수 시대에서 많은 양의 정보를 취사선택하여 소화할 수 있는‘소화형’의 수용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문제이며 청소년들에겐 더욱 그러할 것이다. 때문에 청소년 문화가 하위문화에서 벗어나 양질의 문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대중매체의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또한 드라마, 가요, 쇼프로그램, 코미디 프로그램 등도 청소년들이 시청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가치들을 균등하게 내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중매체는 청소년들의 독특한 정서와 사고, 생활양식과 태도 등을 인정하고 그들만의 문화를 바람직하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문화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는 청소년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킬 원동력이 되며,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문화공간과 문화 활동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사이버 공간은 양날의 칼
사이버공간이야 말로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문화생활을 즐길 최적의 공간이다.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문화를 향유하는데 제한이 최소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주민등록번호 하나면 성인처럼 당당히 모든 사이트에 접속하여 어떠한 정보도 공유할 수 있고 영화, 음악, 쇼핑, 게임 등 모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청소년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만남을 유지하며 자신들의 삶을 무한히 새롭게 재정립할 수 있으며 현실세계에서 불평등하게 작용했던 서열, 인종, 민족, 성별 등 정체성을 배제하고 가상공동체 형성을 통해 청소년들의 관심사를 실제 사회에서 실현할 수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사회이슈, 교육문제, 영화, 음악, 디자인, 사진 기술까지 청소년들의 관심사에 대한 모든 분야가 커뮤니티로 형성되어 있으며 점차 확대되고 있다. 또한 청소년의 개인적인 고민에서부터 청소년을 규제하고 억압하려는 사회와 학교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함께 공유하여 청소년들만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기능도 하고 있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의 세계를 실제와 혼동시키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현실세계에 대한 불만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실제로 청소년들은 상업미디어의 영향을 받거나 음란, 폭력물 등의 유해정보에 쉽게 접근하고 있다. 정보화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살아가는데 컴퓨터는 건전한 사회문화를 양성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컴퓨터가 바람직한 미래인류사회의 문화를 이루는데 쓰일 수 있는 도구임을 교육하지 못한 채 오직 사용방법만을 가르쳐 주는 교육에 그치고 있다. 그 결과 청소년들은 컴퓨터가 미래의 정보화 사회를 위한 중요한 삶의 도구인 동시에 문화적 수단이라는 것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PC통신에 대한 여러 조사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사실은 청소년들이 정보서비스보다 통신서비스를 보다 더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청소년들이 컴퓨터 통신을 자신의 사회적 상호작용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매체로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익명성으로 인해 억압적이고 강제적이었던 현실 사회에서 할 수 없던 많은 일들을 사이버 공간에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미 컴퓨터 통신을 통한 사이버 공간은 청소년들의 문화공간으로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청소년들이 사이버 공간속에서 바람직한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사이버 공간의 환경을 건전하게 조성해야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이명숙 원장과의 일문일답]
1. 이번 2010년 경인년을 맞아 신년인사 한 말씀 부탁드린다.
올해는 한국전쟁발발 60주년, 한일합방 100주년 등 역사적으로 뜻 깊은 한해입니다. 더불어 보건복지가족부 관할이던 청소년정책이 3월부터 여성부로 이관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저희 연구원은 이 같은 시대적 상황과 변화에 맞춰 여러 학술행사와 연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변방에 머물러 왔던 청소년정책이 중요한 사회적 어젠다로 설정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2.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원장으로 최근 청소년의 인터넷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산업사회에서는 가족이나 학교가 중요한 사회화 기능을 담당했다면 정보화 사회에서는 인터넷이 청소년들의 사회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악성댓글이나 저작권 침해 등 여러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지만 청소년들은 온라인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기도 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합니다. 특히 청소년들은 사회의 많은 정보를 학교나 부모가 아닌 인터넷에서 얻고 있습니다. 또한 청소년들은 인터넷 속에서 사회참여와 자기표현 욕구를 실현하기도 합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악성댓글은 이런 참여와 표현의 욕구가 올바른 출구를 찾지 못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사회에 대해 가지는 관심과 자기를 표출하고자 하는 욕구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고 다양한 참여기회를 주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3. 대중가요를 비롯한 대중문화의 상업주의가 청소년의 문화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국가적 영웅이나 위인이 옛 시대의 아이돌(idol)이었다면 현대 아이돌은 대중문화를 이끄는 연예인이나 가수라 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특정 연예인이나 가수를 좋아하고 따르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업주의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기에 대중문화예술인들이 단순히 인기나 돈만을 생각지 말고“idol(영웅)”로서 그 위상과 영향력을 스스로 인식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청소년 문화의 획일화나 단순화는 피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상업주의만이 청소년문화를 주도한다면 청소년들의 문화는 매우 획일화되고 단편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4. 외국청소년들의 문화생활과 비교하여 한국 청소년들의 문화생활은 어떠한가.
잘 알다시피 외국과 비교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문화생활은 매우 빈약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방과 후 학원에 몰리는 현상을 보더라도 청소년들이 다양한 문화생활을 영위할 여건이나 환경이 매우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연구원에서는 각국 청소년들의 활동문화를 조사하고 비교하면서 청소년들의 성장환경에 필요한 각종 체험적 활동문화를 개발하고 사회 각처에 대안으로 제안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5. 청소년들이 다양한 양질의 문화생활을 향유하기 위해 어떠한 정책지원이 필요한가.
저희 연구원이 2009년 청소년들의 문화 활동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영화나 만화, 애니메이션 등을 비교적 많이 접하는 반면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에는 많이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청소년이 가장 좋아하는 문화장르 또한 영화와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볼 때 청소년들이 연극이나 뮤지컬 등 공연예술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도록 여러 정책적 지원이 따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더불어 청소년들이 주도적으로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인 청소년 문화존, 문화의 집, 수련관 등의 공간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적 다양성은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를 필요로 합니다. 학업성적이나 명문대 진학 같은 획일화된 가치만을 추구한다면 청소년 문화의 다양성은 확보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다양한 문화활동체험기회를 누릴 수 있는 사회문화적 환경의 조성이 필요합니다. 또한 청소년들의 문화는 결국 어떤 면에서는 가족문화의 다양성을 기반으로 형성됩니다. 가족 내에서 부모들이 보다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 때 자녀들이 더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됩니다.
6. 청소년의 일탈과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이를 예방하고 근절하기 위해 어떠한 문화적 시도가 이루어 져야 하겠는가.
청소년은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자신감을 얻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후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자양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으로 이런 인정을 받을 수 없다면, 자기 파괴적이거나 일탈적인 방법으로 이를 추구하게 됩니다. 따라서 청소년의 일탈은 청소년이 자신을 발견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경로를 풍부하게 제공함으로써 예방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이 스스로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탐색을 하고 멋진 자기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는 기회나 문화적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적 다양성의 존중, 보다 적극적인 청소년참여 기회의 제공, 청소년활동 인증제 같은 공식적이고 권위 있는 인증 시스템 같은 것들을 계속 확대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7. 한국 청소년들이 입시교육으로 인해 적성과 자기계발을 위한 문화 활동을 하기 힘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시스템에 어떠한 변화가 필요한가.
이미 그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고 봅니다. 2009 개정교육과정에 따르면, 2011년부터 창의적 체험활동이 초, 중, 고 정규 교과과정에 편성됩니다.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 자기진로를 개척하기 위한 진로체험활동, 특기와 적성이 유사한 또래들끼리의 동아리활동 등이 창의적 체험활동에 속합니다. 따라서 학교와 청소년단체, 지역사회가 잘 연계해 창의적 체험활동을 운영한다면 학교 교육의 틀 내에서 청소년들의 문화 활동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8.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10년 주력 활동계획은 무엇인가.
창의적 체험활동이 정규 교과과정으로 편성됨에 따라 저희 연구원은 올해 중점과제로“초, 중, 고 창의적 체험활동과 청소년활동정책의 연계방안”을 설정했습니다. 또한“사회적 참여활성화를 통한 저소득가정 아동·청소년정책방안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소외된 청소년들의 역량개발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이와 더불어 다문화사회에 대비해서는“미래한국사회 다문화 아동·청소년 역량강화 중장기정책방안연구”를 실시할 계획이며 글로벌화에 맞춰“청소년들의 글로벌 리더십강화방안 연구”를 수행할 예정입니다. 또한 아동과 청소년들의 생활과 의식을 종단 적으로 추적해 조사하는 제2차 아동, 청소년 패널 조사(2010년-2014년)를 새롭게 시작할 계획입니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