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은 지금 ‘종교분쟁시대’
종교 간의 갈등으로 인한 분쟁과 테러가 속출
21세기가‘탈종교의 시대’가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세계 각국에서 종교 분쟁이 빈발하고 있다.‘이데올로기’,‘냉전체제’등은 20세기의 유물이 됐지만,‘종교분쟁’은 21세기에 들어서도 맹위를 떨치며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즉, 형식적 냉전체제는 종식 되었을지라도 세계는 아직 종교적 대립과 냉전 상태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는 인류가 존재하면서부터, 사회가 형성되면서부터 있어 왔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사회가 유지되고 변화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세계 인구의 84%가 종교인이라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종교적 가치와 규범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 의식구조, 태도와 행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왔다. 이렇듯 종교는 이러한 간절한 믿음으로 인간이 만든 최대 규모의 문화로서 우리 삶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평화를 염원하는 종교가 분쟁 원인이 되는 사건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종교분쟁’은 21세기에 들어서도 맹위를 떨치며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데 이런 종교분쟁이 일회성 충돌이 아니라 장기적인 사회 불안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역사적으로 볼때 종교전쟁으로서 유명한 것은 십자군전쟁일 것이다. 그 밖에도 종교개혁 후에 유럽을 무대로 펼쳐진 신교도와 구교도의 종교전쟁, 현대에 들어와서는 아랍 제국과 이스라엘의 중동전쟁, 이란과 이라크전쟁, 보스니아 분쟁 등이 있다. 현재도 북아일랜드의 가톨릭과 신교도의 충돌은 영국정부의 두통거리로 남아 있다. 또한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전쟁 역시 종식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종교전쟁은 과연‘신앙적 차이’때문에 발발하는 것일까? 하지만 실제로 종교 그 자체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는 전쟁은 없다. 이 모든 종교전쟁의 대의명분은 종교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경제적인 이해와 격차에서 야기되는 분쟁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전역에 퍼진 반이슬람주의
2004년 스페인 마드리드역 테러, 2005년 영국 런던의 지하철 테러와 프랑스의 무슬림 폭동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들 사태는 모두 유럽에서 나고 자란 평범한 무슬림 2세들이 벌인 테러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었다. 스페인 테러로 191명이 숨졌고, 런던 테러로는 52명이 희생됐다. 이슬람 혐오증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2004년 프랑스는 공립학교에서 무슬림 여학생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했고, 2009년 말 스위스에선 이슬람 사원 첨탑 금지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했다. 이렇듯 2000년대 들어서 10년 동안 이슬람과 비이슬람권의 전 지구적 대결은 마치 11세기 말 유럽 기독교 국가들이 이슬람 정복 전쟁을 벌일 당시를 연상케 할 정도로 격렬했다. 또한 이슬람권 대 비이슬람권의 갈등은 문명충돌의 양상을 넘어 미국의 세계 패권 제패를 가늠하는 사활적 양상으로 전개됐다. 그 출발점은 2001년 9·11테러였다. 이후 이슬람 문제는 지역분쟁 내지 종교 갈등 성격을 넘어 문자 그대로 ‘글로벌 현안’이 됐다. 한편 유럽에선 급증하는 이슬람 인구와 세계 경제위기에 따른 극우·보수적 분위기가 무슬림을 궁지로 내몰았다. 그 배경엔 국경 없는 노동과 자본의 이동에 따른 무슬림들의 인구비 변동과 사회통합 실패가 깔려 있다. 2008년 말 현재 유럽의 무슬림은 5146만여 명으로 유럽 전체 인구의 7%에 이르렀다. 유럽에서 태동하고 완성된 근대적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는 지금 무슬림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21세기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나 국가 간의 정치적 대립이 아니라‘문명의 충돌’에 의해 특징지어질 것 -미국의 정치과학자새뮤얼 헌팅턴
기독교와 이슬람 종교적 갈등으로 충돌한 나이지리아
21세기가‘탈종교의 시대’가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세계 각국에서 종교 분쟁이 빈발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이 사실상 알카에다 탈레반 등 이슬람권과 서방과의 대결 양상을 띠는 가운데 프랑스 나이지리아 스위스 말레이시아 등에서 종교를 둘러싼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 대립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크고 작은 유 · 무혈 충돌로 이어지고 있는데 나이지리아 중부 기독교 다수 지역인 플래토주 조스시에선 이슬람 사원 건립 문제로 무슬림과 기독교 세력 간에 벌어진 나흘간의 유혈 충돌로 최소 326명이 숨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지역 종교 지도자들과 의료진,구호단체 관계자 등은 사망자가 최소 55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경찰과 인권단체 등은 상대 교도들을 학살하거나 시체를 유기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는 문자메시지가 유포되면서 인명 피해가 커졌다고 전했다. 아프리카 최대의 인구를 보유한 나이지리아는 인구 1억 5000만 명 중 52%가 기독교, 41%가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다. 주로 북부엔 이슬람교, 남부엔 기독교인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중 이번 폭동이 발생한 중부 플래투주(州)의 조스에는 중부지역에 무슬림이 살고, 북쪽과 남쪽에는 기독교세력과 토착세력이 살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도 특히 종교 갈등이 심한 지역으로 꼽히는 조스는 지난 10년간,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2001년에는 1000여명이 사망했고, 2008년 11월에는 지방선거를 둘러싼 충돌로 3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나이지리아는 현재 무슬림 대통령 우마르 야라두아가 투병을 이유로 장기 부재중이다. 이에 반대 세력들이 기독교인 조나단 부통령에게 권력이양을 촉구하고 있다.
“부르카 벗어”공공장소 착용금지법 가결
프랑스 의회는 지난 1월 25일 학교 등 공공장소와 버스 지하철 등에서 무슬림 여성들의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단 가정이나 길거리 등에서는 부르카를 쓸 수 있도록 허용했다. 부르카는 무슬림 여성들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덮는 검은색 베일이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부르카 금지 법안은 공공장소에서만 부르카 착용을 금지해 당초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주장했던 전면 금지 조치에 비해선 한발 물러선 것”이라며“이슬람 테러단체의 보복과 유럽인권재판소의 제재 조치를 의식해 프랑스 의회가 이 같은 절충안을 내놨다”고 전했다. 프랑스의 무슬림 인구는 500만 명가량으로 유럽 최대 규모인 데다 지난해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르카 착용 금지법안 발표 이후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들이 보복을 경고하면서 부르카 금지 수위를 조절한 것이다. 유럽 국가들에서 부르카에 대한 사회적 반감은 매우 높은 상황으로 부르카 금지 법안을 발의한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사르비에 베르트랑 당수는“부르카는 여성의 인권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7%가 부르카 착용 금지안에 찬성했다. 또한 영국 등도 자국 내 이슬람 원리주의 확산을 우려, 부르카 착용 금지 법제화를 검토 중이다. 여기엔 부르카를 착용할 경우 얼굴이 가려져 테러 용의자를 가려낼 수 없다는 점도 감안됐다.
스위스, 이슬람 첨탑 금지 파문 확산
주변에서 가톨릭과 기독교 신자들이 다투는 것을 항상 목격한다. 하나님(god)은 o가 빠진 선(good)을 의미하고, 악마(Devil)는 D를 더한 악(Evil)을 나타낸다. 나는 둘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비틀즈의 폴 메카트니
말레이시아 무슬림 ‘알라’ 단어 사용한다고 교회 공격
말레이시아에선 법원이 기독교의 신에 대해서도‘알라(Allah)’로 부르는 것을 허용하자 종교 간 갈등이 폭발, 이슬람교도들이 가톨릭 성당과 기독교 교회들을 공격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말레이시아 전역에서 10여개의 교회가 방화 등 공격을 당했다. 성난 무슬림들의 교회 공격의 발단은 지난해 12월 31일 말레이시아 고등법원이 가톨릭 주간신문인‘헤럴드’에 신(神)을 뜻하는‘알라’의 사용을 허용하는 판결이 내려지면서부터다. 이집트나 중동권 교회에서도 하나님 대신 아랍어‘알라’또는‘알라 알아압(하나님 아버지)’을 사용하고 있는데 말레이시아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을 지칭할 때 알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정부는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번역할 때 알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알라는 오직 무슬림만의 용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1988년 비이슬람 종교들은 알라를 비롯해‘라술(메신저)’,‘파트와(법률적 견해)’,‘이맘(기도 인도자)’,‘샤리아(이슬람법)’등 23개 단어를 금하라고 셀랑고르 주 정부가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고 뒤이어 말라카 등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알라는 이미 기독교인들에게 상용화된 단어로 교회는 다른 말로 대체할 수 없었다. 가톨릭을 포함해 말레이시아의 기독교 인구는 대략 10%를 차지한다. 대부분 중국 화교이거나 인도 출신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은 말레이시아 경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에서도 이들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정부의 일부 허용 방침은 이런 현실에서 나왔다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무슬림에겐 어불성설이었다. 법으로 금지한 사안을 한 가톨릭 신문에 대해 허용한다고 발표하자 무슬림은 격노했고 일부가 교회를 공격하게 된 것이다. 2800만 명 말레이시아 인구는 절대 다수인 말레이족으로 구성돼 있고 이들 대부분은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여타 이슬람 국가와는 달리 이슬람 충성도가 높은 나라로 알려진다.
이집트 기독교인들 경찰과 충돌
이집트 남부도시 나그함마디에서 기독교 분파인 콥트교의 성탄 전야 밤 괴한들이 총기를 난사해 15명이 사상한 사건이 발생한 후 수천 명의 기독교인들이 경찰과 대치하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집트 내무부에 따르면, 이번 테러는 지난 11월 기독교 남성이 이슬람 여성을 성폭행한데 대한 보복차원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집트에서 기독교인과 이슬람교인들 간의 충돌이 최근 잦아지고 있는데 특히 기독교인이 밀집해 있고 보복살인이 횡행하고 있는 상(上)이집트에서 종교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전날 사망한 기독교인들에 대한 장례식이 열린 이날, 분노한 수천 명의 기독교인들은“우리는 영혼과 피를 나누며, 십자가를 위해 희생할 것”이라고 외치며 경찰을 향해 돌을 던졌다.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이들의 해산을 시도했다. 이집트 내무부와 목격자들은 전날 테러의 배후로 모하메드 아흐메드 후세인을 지목했다. 후세인은 무슬림으로 이전에도 비슷한 테러를 시도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 대부분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다수인 무슬림과 콥트교 기독교인들이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고 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교도간의 폭력사건이 다발하면서 흥분한 무슬림들이 과격한 행동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콥트교도인 가말 아사드 전 국회의원은“이교도간의 종교적 선동이 이번 참사를 만들었다”며“같은 이집트인으로서가 아니라 무슬림과 기독교인으로 갈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분쟁
카슈미르는 웅장한 카라코롬의 K2봉(8611m)이 세계 산악인들을 유혹하고, 한여름이면 빙하와 만년설이 청정수로 흘러내리고, 계곡마다 곡식과 과일이 자연의 맛을 담고 있는 순결한 땅이다. 하지만 한반도만한 이 땅(22만㎢)은 지난 60여 년간 종교분쟁이라는 인재(人災)로 얼룩져왔다. 카슈미르 분쟁은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국 지배에서 분리·독립하면서 시작됐다. 원래 한 나라였다가 두 나라로 쪼개진 것은 종교문제 때문이었다. 힌두교를 신봉하는 주민들과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주민들은 인도 대륙을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갈라놓았고, 이후 지금까지 60년 동안 앙숙관계를 지속해오고 있다.‘잠무 카슈미르’라고도 불리는 카슈미르 지역은 아자드 카슈미르로 불리는 서쪽 지역이 파키스탄령에 속해 있고, 나머지 지역은 인도령에 속해 있다. 양측 경계인 ‘통제선’은 1948년 시작된 제1차 카슈미르 전쟁이 끝나면서 획정된 것이지만, 양측은 카슈미르 전 지역의 자국 영유권을 주장하며 지금도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 카슈미르는 전체 면적의 3분의 2 이상이 인도(1만1639㎢)령이지만, 인구 500여만 명 다수(60%)는 파키스탄과 연계가 있는 이슬람교도여서 분쟁의 실타래가 더욱 복잡하다. 양국이 그동안 치른 3차례 전쟁 중 카슈미르를 둘러싼 전쟁이 2차례였다. 종교·영토 분쟁으로 시작된 군사경쟁은 끝난데 없어 상호 핵무장으로까지 이어졌다. 양국 정규군 사이의 교전은 정부 간 외교력으로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지만, 양측이 느슨하게 지원하는 반군이나 무장 세력들끼리의 교전은 통제가 어려워 충돌이 그치지 않고 있다. 최근 양국 정상이 만나는 등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종교분쟁의 깊은 상처가 밴 양국관계는 언제든 적대적 관계로 되돌아갈 수 있는 살얼음판이다.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은 인도에 대해 파키스탄이 지원 의사를 밝혔으나 인도 정부가 이를 거절할 정도로 양국 간 자존심 싸움도 대단하다. 카슈미르에서는 1989년 이래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이슬람 반군 활동으로 4만4000명이 죽어갔다. 끊임없는 반군 활동으로 주민들의 생활은 피폐해지고 가난은 일상화됐다.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종교도 더는 자기 절대성, 혹은 우월성을 주장할 수 없다.
종교 간의 이해와 개방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현재 세계의 종교 인구를 살펴보면 가톨릭 9억 명, 개신교 4억 명, 그리스정교 1억 6천만 명이며 이슬람교는 수니파 시아파를 합쳐 9억 명, 힌두교 7억 명, 불교 3억 명을 헤아리고 있다. 이러한 세계 종교 분포를 지도로 보면 현재의 국경선과는 전혀 다른 종교국경선이 나타난다. 이런‘국경선과 종교분포의 불일치’가 알력과 전쟁을 낳는 요인이 된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정치과학자새뮤얼 헌팅턴은“21세기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나 국가 간의 정치적 대립이 아니라‘문명의 충돌’에 의해 특징지어질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특히 세계화의 충격에 맞서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문화적 종족적 종교적 전통들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였다. 즉, 과거 시대를 지배했던‘이데올로기의 적’이 사라지자 이념대립에 쏠렸던 에너지가 종교 등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 각지의 분쟁에 있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일단의 선민의식을 갖고 있는 두 종교는 화해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종교 간에 일단 갈등이 빚어지면 시간이 갈수록 그 응어리를 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단의 정치지도자들이 민족을 결집시키고 나라를 단결시키는 동력을 종교에서 쉽게 얻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종교학자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는 일찍이 종교 간의 보다 깊은 상호 이해와 존중을 위해서는 각 종교 전통들이 자신을“명사”보다는“형용사”로 이해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즉“불교”,“그리스도교”,“유교”등 물화된 개념보다는“불교적”,“그리스도적”,“유교적”이라는 속성을 중심으로 하여 각 종교가 스스로에 대하여 생각한다면 종교들은 종래에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종교 간의 구별이 무너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라는 심오한 통찰적인 충고를 했다. 종교란 근본적으로 어떤 명확하게 구획된 경계선을 지닌 물체적 존재라기보다는 인간의 마음속 깊이 심어지는 인격적 속성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노력에 의하여 공통점을 발견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대화에 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종교적 상징체계는 변천하는 사회, 문화, 역사적 조건 속에서 전개되는 상대적 현상이지만 동시에 절대적 세계를 열어주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런 뜻에서 모든 종교는 상대적 절대성을 지닌다는 말이다. 종교 간의 이해와 협력을 위해서는 각 종교 전통은 그 자체의 논리에 따라 자기 초월적 성격을 지닌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믿는 종교의 진리성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타종교에 대해서도 개방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종교도 더는 자기 절대성, 혹은 우월성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 다원주의의 기본 입장은 모든 종교들이 제시하는 진리에는 그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을 뿐 아니라 적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결코 특정 종교의 기준이 타종교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