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금지법, 해외원정 낙태 등 부작용 낳아”
출산과 양육으로 삶 전체가 뒤바뀌는 여성들의 입장 고려한 사회적 합의 제시돼야
고령화 사회로의 진행속도가 가져온 심각한 압박에 정부는 최근 낙태금지령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신고센터를 설립해, 전국 각지에서 낙태행위에 대한 신고를 접수받고 신고자에게는 포상금을 줄 예정이라고 밝혔다. 낙태시술을 한 산부인과 의사들도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될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산부인과 협회는 정부의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 회원을 강제로 탈퇴시킬 방침이라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화 되는 노령화 추세 속에서 낙태금지가 출산율을 높이고 국가생산력을 재고시킬 해결 방안이 될지 의문이다.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임신적령기의 여성이 2009년 1인당 평균 1.15명의 자녀를 출산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2005년 이래로 최저치에 달하는 수치이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들을 시도했으나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결국 낙태를 금지시키는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강압적인 방식으로 난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낙태에 관한 사회적 담론은 이미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이어져왔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아직 답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로인해 사회에 암묵적으로 허용되어 왔던 낙태문제가 한 산부인과 의사협회가 불법낙태를 시술한 병원을 고소한 것을 계기로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이번에 낙태를 강하게 반대한 단체는 바로 프로라이프 의사회이다. 태아의 생명권,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 저출산 대책, 생명존중사상 등을 내세워 낙태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고 근절하고자 한다. 그에 반하여 여성계 등 낙태 찬성론자들은 강력한 낙태 단속은 오히려 원정출산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며 근본적인 저출산 해법이 되지 못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인프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낙태단속은 근본대책 될 수 없다”
여성계, 여성의 몸은 출산도구가 아니다
강력한 낙태단속이 해결방안 될까
세계 최하위권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이번 정부의 낙태금지법이 과연 올바른 돌파구인지도 의문이다. 낙태 찬반 양쪽 모두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2005년 실시한 보건복지부의 조사에 의하면 연 낙태 34만여 건, 그 해 출생아 수 43만여 명으로 낙태를 금지하면 출생아 수를 70만여 명으로 끌어올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산술적 계산에 지나지 않는 단순한 논리이다. 1960~70년대 산아제한을 목적으로 국가가 인공임신중절수술을 권장하여 출산율 조절에 한시적으로 성공한 바 있다. 이번에는 목적이 바뀌었을 뿐 국가가 나서서 또다시 개인의 임신과 출산, 낙태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이와 같이 출산과 양육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 경제적 인프라를 갖추지 않는 상태에서 행해지는 무조건적인 낙태 단속은 저출산율을 해결하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으며, 또한 무책임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낙태하는 여성들이 생명을 경시하고 무책임하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낙태는 10~20대의 미혼 여성보다는 기혼 여성에게서 더 많이 행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혼 여성의 낙태 비율이 더 높다는 것은 낙태가 문란한 성관계에 의한 임신보다 사회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더 많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혼 여성의 낙태는 그 과정과 결과가 여성 개인의 것만이 아니라 가족 공동의 책임이며 국가의 출산, 양육정책과 경제상황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함께 상충되어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임을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겠다. 더욱이 낙태를 강력히 단속한다고 하여 낙태가 근절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사법당국의 강력한 조치가 낙태를 근절하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말하지만, 여성계의 반응은 이와 상이하다.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조건의 사회, 경제적 조건과 미혼여성의 임신이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사회적 분위기속에서 여성들은 임신을 포기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법적 단속이 이뤄지면 오히려 여성들은 낙태가 허용되는 곳을 찾아 떠나는 원정 낙태, 또는 더욱 음성적이고 위험한 조건에서 낙태를 하게 될 것이다. 이는 낙태를 강력히 금지했던 수많은 나라들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루마니아의 초대 대통령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부인이 저출산 극복을 위해 낙태한 의사를 사형에 처하는 등 강력한 낙태 금지령을 내렸으나 루마니아 여성들은 외국에서 낙태수술을 하는 등의 갖가지 편법을 동원하였다. 이는 결국 루마니아 여성의 건강을 최악의 상태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최근 국내 병원들의 낙태시술에 철퇴가 내려지면서 중국으로‘낙태원정’을 떠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의 병원들이 전문 상담원을 두고 예약을 받는 등 한국인들을 상대로 낙태시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병원의 일례로 조선족 상담원이 한국인의 낙태 상담을 전담하고 있으며 상담원에게“임신 6주인데 낙태가 가능하나”라고 묻자“별도의 절차 없이 예약만 하면 진찰 후 수술이 가능하다”며“7주 이하의 경우의 비용은 보통 4000위안(67만원)선”이라고 한다. 또한“낙태수술 일정이 많아 일주일 후에 예약이 가능하다”며“중국에 와서 진찰 후 수술까지 며칠 대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또 다른 병원은 한국인 상담원과 의사를 별도로 고용해 낙태시술을 한다.“한국에서 낙태를 하러가고 싶다”고 하자 상담원은 곧바로“원장님과 통화해보라”며 연락처를 알려준다. 중국으로 낙태원정을 떠나는 이유는 낙태에 대한 중국의 사회적 인식이 한국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관대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폭발적인 인구증가로 인해 지금도 산아제한중인 중국은 한 해 1300만 건 가량 낙태시술이 이뤄지고 있다. 비용도 비교적 저렴하며 거리가 멀지 않다는 점도 중국 낙태원정을 부추기고 있다. 더구나 오전에 수술을 받고 저녁에 돌아오는 당일치기도 가능하다.
프로라이프의사회,“낙태는 여성에게 백해무익”
프로라이프의사회는 정부의‘불법 임신중절 예방 종합계획’에 대해서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뚝딱 만들어진 여론무마성 정책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내심 반기는 기색이다. 일단 그들은 낙태금지법을 강력히 함으로써 연간 35만 건, 하루 1000여 건의 낙태가 근절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여성의 행복추구권, 선택권을 주장하며 낙태금지법에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낙태는 산모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산모를 행복하게 해주지도 않으며 오히려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며“죄 없는 아기에게 자기 인생을 살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한다. 프로라이프의사회는“낙태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자리 잡게 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 먼저 산부인과 의사들이 불법 낙태수술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몇 분의 동료의사를 고발했으며, 동시에 사회적, 경제적 인프라를 조성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며“영유아 보육시설, 분만 지원금, 육아 지원금, 미혼모 지원, 기형아 지원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정착돼 있는 복지환경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부족하다”고 꼬집는다. 하지만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산모가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할 복지환경이 조성되면 낙태가 근절된다는 뜻이 된다. 아직 이러한 환경이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낙태를 근절하기만 한다면 낙태금지법은 루마니아의 여성들처럼 한국여성을 불행하고 비극적인 삶속으로 밀어 넣는 꼴이다. 물론 낙태가 비윤리적이라는 지적은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어기니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자위하면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낙태를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낙태를 굳이 엄격한 법으로 금지하는 일은 여성들로 하여금“왜 낙태를 못하게 하는가!”하는 반발만 일으킬 뿐이다.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해 피임을 강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 되겠다. 특히,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피임교육은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80년대 방식의‘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지긋지긋한 비디오’는 그만 틀고 그보다는 피임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원치 않는 임신에 의한 정신적 고통과 낙태로 인한 더 큰 괴로움에 대해 필히 알려줘야 할 것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들은 초, 중, 고등학교 때부터 성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려주어 사전에 불미스러운 일을 예방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제 더는“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식의 정책은 통하지 않는다. 저출산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이미 오랜 담론을 통해 밝혀졌다. 출산율이 높은 선진국 스위스, 핀란드, 프랑스가 한국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되새겨 봐야 한다. 그들도 과거에는 한국과 같이 저출산으로 인해 국가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들이 낙태금지법으로 출산율을 높인 것은 절대 아니다. 산모가 원하는 사회를 실현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진정 낙태를 근절하고 인구증가를 도모하고자 한다면 강압적인 낙태금지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출산과 양육의 당사자들의 심중을 헤아려 그들 스스로가 출산과 양육을 원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