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과 이상기후 등으로‘지구 종말론’급부상
불안감만 조성하는 잘못된‘지구종말론’이 더 문제…
얼마 전 역사상 7번째 규모의 대지진이 칠레에서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미 지질조사국(USGS) 자료에 따르면 지난 27일 칠레 중부지역을 강타한 지진의 규모는 무려 8.8에 달한다. 이는 USGS가 규모를 측정한 역대 지진 중 1906년 1월 에콰도르에서 발생한 지진과 함께 7위에 해당한다. 이번 지진은 특히 지난 1월12일 아이티에서 발생한 지진(규모 7.0)보다 무려 800∼1000배에 달하는 위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 지금껏 가장 강력했던 지진 역시 1960년 칠레에서 발생한‘발디비아 지진’으로 규모가 무려 9.5에 달해 당시 1655명의 사망자와 300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는 하와이와 일본, 필리핀을 덮쳐 각각 61명과 138명, 32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번 지진은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1m가 넘는 파고가 관측되면서 15만명이 대피하는 쓰나미 경보를 발령하는 등 태평양 연안지역 국가들은 비상사태에 들어간 상황이다. 지구상 정반대에 있는 칠레에서 발생한 지진 하나로 이렇게 지구촌이 들썩거렸다.
이제는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동시 다발적 지진이 발생해 언제가 뭔 일이 터질 것 같다며 불안해하고 있는 일부 네티즌들은 성경의 요한계시록에‘일곱가지 재앙 가운데 마지막 대접인 일곱번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니 아주 큰 지진이 일어나는데… 이 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계시록 16장 17~21절)’를 언급하며 지금의 지진이 지구 멸망의 마지막 단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네티즌들은 고대 마야 달력에 2012년 12월 21일까지 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며 지진이 2012년 지구 멸망의 전조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일부 성미급한 네티즌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십자로 배열되는 현상인 그랜드크로스가 2012년에 예정돼 있다며 이때가 지구 멸망의 시기라고 주장한다. 거기에 지진을 소재로 한 재난영화를 언급하며 영화 속에 등장했던 이야기와 이번 지진의 유사점을 찾고 있다. 먼저 2009년 4월‘노임’, 1996년 7월‘트위스터’, 2006년 8월‘일본 침몰’, 2004년 6월‘투모로우’가 그것들이다. 특히 2009년 11월 개봉된 영화‘2012’는 고대인들이 예언을 토대로 영화를 제작했다. 지구는 2012년이 되자 지진, 화산 폭발, 거대한 해일 등 각종 자연재해로 인류에 최후의 순간이 도래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가 주장하는 종말론은 고대 수메르인이 발견한 니비루(Nibiru) 행성이 지구와 충돌해 대재앙을 일으킨다는 것이 주요 내용. 이는 고대 마야인들이 만든‘마야 달력’에 근거한다. 지구가 5125년을 대주기로 운행된다고 믿는 마야인은 그 주기에 따라 달력을 제작했고, 이 주기가 끝나면 지구가 멸망한다는 것. 그날이 바로 2012년 12월21일이라는 얘기다.‘12월21’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뿐 아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그림 예언에서 제기된 지구 종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 있는 지구 최대 화산의 폭발에 의한 지구 종말, 초강력 태양폭풍에 의한 지구 종말, 그리고 주역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타임 웨이브 제로가 예언한 지구 종말 등이 바로 그것. 노스트라다무스의 그림 예언을 요약하면 대략 이런 것이다. 지난 1982년 로마의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노스트라다무스의 새로운 예언서가 발견됐는데, 종말론 지지자들은 이 예언서에 있는 암호 같은 그림 몇 장에 주목했다. 그림 속의 어린 양은 성경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희생양을 의미하며, 이것이 곧 지구의 종말을 뜻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3개의 달과 1개의 태양 그림은 각각 세 번의 월식과 한 번의 일식을 의미하는 만큼 이 모든 것이 발생한 이후, 즉 2012년에 지구가 종말을 맞는다는 것이다. 중국의 주역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타임 웨이브 제로 역시 2012년 종말을 예언하고 있다. 지난 2000년 미국의 과학자 테렌스 메케나는 주역을 수리적으로 분석해 시간의 흐름과 64괘의 변화율을 그래프로 표시하고, 이 그래프를 타임 웨이브 제로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이 그래프가 4,000년에 걸친 인류사의 변화와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그래프가 상승한 시기에는 영웅이 등장하거나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으며, 그래프가 하강한 시기에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이 그래프는 어느 시점에서 0이 되는데, 그 날이 바로 12월 21일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드래곤 헤드’.‘생존게임’같은 지진 후 펼쳐지는 재난을 그린 만화도 화제가 되고 있다. 또한 대지진이 50년 주기로 반복된다는‘50년 주기설’도 네티즌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다.
불안한 미래 스스로 준비‘프레퍼족’급증
본인과 가족을 뜻하지 않은 위협으로부터 스스로 지키려는 생존주의자(Survivalist)들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 테러와 자연재해, 세계 경제위기 등 개별 국가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곳곳에서 불거지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는 현대인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 새 생겨난 생존주의자는 불안한 미래를 준비한다는 뜻에서 자신들을‘프레퍼(preppers)’라고 부른다고 미 시사주간 뉴스위크가 최근 보도했다. 그들은 운전하는 승용차 트렁크에 구급약과 비상식량, 담요, 지혈대 등이 들어 있다. 어떤 위급상황에서도 72시간 동안 생존할 준비가 돼 있는 상태로 집안 침실에는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미리 싸놓은 여행가방과 현금이 침대 옆에 놓여 있다. 또한 집안에 안전시설을 만들어 놓고 위급한 상황에 그곳으로 피신하기도 한다. 생존주의의 역사를 살펴보면 1세대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기였던 1950∼60년대가 정점이었다. 미국과 소련 간 핵전쟁 위협이 고조되면서 많은 미국인이 집 앞마당에 방공호나 대피시설을 짓고 식량을 비축했다. 2세대는 세기말을 앞둔 1990년대가 최고조였다. 2000년 밀레니엄버그(Y2K)로 컴퓨터 전산 장애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 전 세계가 혼돈의 상태로 빠질 것을 두려워한 많은 사람들이 집안에 비상식량 등을 준비했다. 3세대 생존주의자인 프레퍼는 최근 등장했다. 지난 몇년 동안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인도네시아를 덮친 지진해일(쓰나미), 중국 쓰촨(四川) 대지진 등이 잇따랐다.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자연재해 앞에 강대국과 후진국의 구분은 없었다. 국제사회가 8년 이상 벌여온‘테러와의 전쟁’도 세계인을 테러 공포로 몰아넣었다.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내몰렸고, 신종인플루엔자가 세계적으로 대유행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이 대규모 재난이나 재해에 무기력한 국가 권력의 실상을 보며 스스로‘준비’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프레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긍정적이다. 프레퍼를 자처하는 이들 상당수는 지구온난화나 환경오염 같은 인류의 당면과제에 현명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도심 정원에서 작물을 키우는 법을 개발하고 전파하는 프레퍼도 있고, 태양열과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 활용법을 장려하는 사람도 있다. GMO를 두려워하는 프레퍼들은 유기농 작물을 재배해 공급한다. 국가 기관과 구호단체도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개개인에 준비를 당부하는 상황이다. 미 적십자 대변인 조너선 아이켄은“사람들이 필요할 때마다 구호기관들이 현장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다”며“(재난 시) 구호단체가 도달하기까지 최소한 며칠 동안은 스스로 돌볼 준비를 해둬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요즘 서울 도심에서 종말론을 묘사한 전단지를 나눠주는 신자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과거 종말론을 주장하다 슬그머니 사라진 종교단체에 요즘 신도가 몰린다는 후문이다. 인터넷에는 종말에 대비하는 사이트가 상당수다. 이들 사이트는 대규모 재난에 대비해 비상식량을 준비하고 생존하는 기술까지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2012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구온난화 등으로 지진이나 해일, 폭풍 등 자연재해 규모도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에 단순한 호기심이나 장난이 아닌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종말론은 자기충족적 예언에 불과하다
세기말도 아닌데 올해는 특히 종말론이 많이 회자하고 있다. 최근 들어 자주 일어나는 기상이변과 지진, 테러, 경제위기 등 지구촌 차원의 재해들도 종말론 기승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마야 달력, 행성 X, 행성 일직선 배열, 웹봇 등 2012년 지구 종말을 거론하고 있는 각종 종말론은 모두 과학적 근거가 빈약한 잘못된 것이라 주장한다. 이번 2012년 지구 종말론 전에 밀레니엄 버그(Y2K) 위기설이 국내에 상륙한 적이 있다. 2000년 새해가 밝으면 컴퓨터의 숫자 인식 오류로 통신망이 마비되고, 자칫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제어하는 장치에 영향을 미쳐 핵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섬뜩한 예언이었다. 또한 지난 1992년 종말론을 신봉하는 다미선교회가 주동한 휴거 소동도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그해 10월 28일 예수가 재림하고 사람들이 모두 허공으로 올라간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허무맹랑한 예언은 모두 빗나갔다. NASA는 지난 11월 9일 홈페이지를 통해“최근 인터넷 사이트나 영화 등을 통해 2012년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낭설이 퍼지고 있다”며“인간의 불안감을 이용하려는 상술과 인터넷의 복제 기능이 만나 지구 종말론을 키우고 있을 뿐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심리학과 비교종교학을 공부한 여성 예언가인 실비아 브라운의‘종말론―2010 마야력부터 노스트라다무스 에드가 케이시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만 결코 그 누구도 확실하게 대답해준 적 없는 종말론에 대해 성서를 비롯한 예언서 등 다양한 정보를 총동원해 명쾌하게 답변해 준다.“종말론은 단지 우리 스스로가 현실화시키는 자기충족적인 예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막연히 두려워하기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냉철하게 생각해 본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일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했던 1999년 지구 종말론처럼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고 무사히 지나가면 아마도 또 다른 지구 종말론이 나타나 인류를 위협할 것이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