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의 새 대통령 신풍(新風)의 붓을 들다

제22대 한국미술협회 차대영 이사장

2010-04-26     이태향 기자

개혁은 리폼(reform)이다. 기존의 체제가 허용하는 범위 한에서 제도적 모순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차대영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이 당선 소감에서 강조한 것도 ‘한국미협의 변화’이다. 문제는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어 참여방식과 패러다임의 변화를 유효하게 실행하는 것이 관건이다. “약속은 지켜질 때 약속이다.”라고 한 차대영 이사장의 말을 미협회원들은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동미 보도국장 chdm1111@ / 이태향 기자 ythsun2@ / 이명호 사진부장


1961년 12월 민족미술의 향상발전을 도모하고 미술가의 권익을 옹호하며 국제교류와 미술가 상호간의 협조를 목적으로 한국미술협회가 창립한 지 어언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간 미술계 최대의 축제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이었다. 정부기관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주도하던 것을 1986년 민간단체인 한국미술협회가 이관 받음으로써 관전무용론을 해소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민간이양에도 불구하고 입상자 선정에 학연과 인맥 등의 요인이 작용해왔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 했던 것이 사실이다. 급기야 2007년 미술대전과 관련한 미협의 해묵은 심사비리가 드러남으로써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미술대전의 위상이 곤두박질치게 된 것은 미술계에 치명적인 상처로 남아있다.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환부작신(換腐作新)
낡고 썩은 사고방식과 관행을 전면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 없이 회복을 말할 수는 없다. 미술대전의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방안으로 차대영 이사장은 미술대전의 독립법인화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운영과 심사의 투명도를 높일 수 있는 대안이라고 본 것이다. 물론 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사람의 문제이고, 원초적으로는 서열화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고질적인 병폐를 잘라내기 위해 한국미술협회는 미술대전과 관련하여 올 6월부터 릴레이 공청회를 열 예정이다. 미술계 각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심사위원에 대한 공정한 검증을 하겠다는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시도의 일환이다. 가을이후에는 그 형태가 드러날 것이라고 하는데, ‘최고의 등용문’이라는 미술대전의 명예를 다시 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미술협회는 예총(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산하 10개 단체 중 유일하게 직선제로 이사장을 뽑는다. 회비를 내고 있는 회원에 한하여 투표권이 주어지는데, 서울지회에서만 한정되어 있다가 2000년 이후부터는 전 지역회원에게 참정권이 확대되었다. 그러다보니 이사장 선거는 대통령선거를 방불케 한다. 과열된 경선과 선거전에 대해 소모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회원규모가 2,700여명에 달하는 협회가 제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회원의 의견을 배제하고서는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차대영 이사장은 선대본부를 구성할 때부터 공개적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데서 묘수를 찾았다. 제22대 미협을 조각(組閣)하는 데에도 지역적인 안배를 하기 위해 지역의 민원을 참고하고 지역에 일일이 전화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는 “조각 이후에 실질적으로 이 일을 어떻게 실행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보고, 능력 있는 사람을 기용하기 위해 범의 눈을 뜨고 있었다는 것이다. 새 집행부가 구성될 때마다 개혁을 외치지 않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의식과 운영의 틀이 바뀌지 않으면 공염불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미술대전이 투명하고 공정한 심사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한국미술협회가 쇄신을 할 수 있도록 최적의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임기 3년 동안 차대영 이사장이 중점을 두는 과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메세나(mecenat)란 로마시대 문화부흥을 위해 노력한 정치가 마에케나스(G.C.Maecenas)의 이름에서 유래한 프랑스어로, 1967년 미국에서 기업예술후원회가 발족하면서 이 용어를 처음 쓴 이후 예술·문화·과학·스포츠에 대한 기업인들의 각종 지원과 후원활동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아트메세나의 후원을 통한 창작의 활성화
기업의 본래적 역할만 중시되는 한국적 토양에서 메세나의 활동은 활발하지 못 했다. 그러나 기업과 문화의 파트너십에서 경제적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은 뉴거버넌스 네트워크의 확장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메세나협의회(www.mecenat.or.kr)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문화예술분야 지원규모는 2008년 기준 1800억 정도에 달한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의 여파로 문화예술지원 총액은 몇 년 동안 제자리걸음에 있지만 오히려 지원 기업 수는 16% 이상 증가하였는데, 이것은 문화예술지원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을 읽을 수 있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기업과 예술단체의 협력은 이미 새로운 트렌드가 된 것이다.

차대영 이사장의 첫 번째 공약은 ‘기업아트메세나를 조직하여 미협에 대한 기업의 지속적인 후원으로 회원들의 창작활동을 돕겠다’는 것이었다. 미술대전 심사비리 사건으로 인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받던 미술대전 후원금은 전무한 상태가 되었고 협회예산의 거의 대부분은 회원들의 회비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 없이 협회를 운영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기업아트메세나는 차대영 이사장이 7년 전 이사장직에 출마했을 때도 내건 공약이었다. 당시 고배를 마시고 말았지만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 인식의 토대로서는 때 이른 식견이었다고밖에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미협과 회원을 위한 예산확보는 핵심적 선결과제다. 제22대 한국미술협회는 새로 조각한 기구에 한국미술메세나협의회를 두었고 그 이전에 이미 50여 기업인으로 구성된 기업아트메세나의 출범식을 가진 바 있다. 제22대 미협이 들어선 이후 3개월 동안 100여 명의 기업인이 더 가입한 상황이라고 하니 기업과 문화계가 같이 번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업아트메세나는 일방적으로 후원을 받는 형식이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기업의 이미지를 재고하는 방법이 되고 세금감면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명분이 될 뿐 아니라, 지원하는 구좌에 준하는 그림을 살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이것은 동시에 작품이 활발하게 유통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미술창작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술인 전체의 화합의 장이 될 대한민국미술축전
올 12월5일은 미술인의 날이다. 지금까지는 호텔에서 하는 시상식 위주의 행사에 머물렀지만, 차대영 이사장은 미협이 주관하는 대한민국미술축전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일산의 킨텍스(KINTEX) 전시장은 확보해놓은 상태다. 공예, 디자인, 구상을 망라하는 2010년 대한민국미술대전 가을전시와 더불어 IAA(국제조형예술협회)국제전 및 심포지움과 제4회 미술인의 날 기념특별전을 동시에 개최하는 것이다. 여기에 여성작가전, 문인화전, 초대작가전, 지역작가전, 원로작가초대전을 여는 것으로 명실 공히 미술인 전체의 화합을 도모하는 자리가 되게 하고, 미협의 권위를 회복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일반 시민들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미술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미술인이 소외되지 않는 미술협회
대한민국미술축전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의 50% 이상은 작가에게 돌아가게 되고, 일회적 행사에 머물지 않고 지속적으로 축전을 운영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차대영 이사장은 그 중 10%는 지회와 지부의 추천을 받아 회원들의 자녀 30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려고 한다. 차대영 이사장은 미술인의 복지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는데, 위축된 미술시장을 새롭게 개척하여 창작활동의 희망을 주는 것 뿐 아니라 사회적 기업과 연계하여 회원들의 생활자립도를 높이는 일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

사회복지혜택을 전혀 받지 못 하는 전업 작가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형편이다. 차대영 이사장은 미술인 공제조합을 설립하여 건강보험 등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제도화 하고 한국검진협회와 연관하여 미협회원의 건강권을 도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또 65세 이상 원로회원에 대해서는 회비를 면제해 주고 미협이 주관하는 장례위원회를 만들어 한국미술협회장(美協葬)을 치룰 수 있도록 함으로써 미술인이 복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힘쓰고 있었다.

시민들과 공유하는 예술 환경
문화예술은 공공재(public goods, 公共財)다. 영국의 경우 시민들이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모든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을 무료로 운영하기도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일상적인 생활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한 노력은 일반 시민들과 문화예술인이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미술협회가 (주)공공미술사업단 네트워크와 아산시에 있는 신정분교를 활용하여 미술관을 건립하기 위한지원을 하기로 한 것은, 전문 미술인 이외의 일반 시민들에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보기 좋은 예에 해당한다. 협회 차원에서는 소속 미술인의 일자리를 창출하여 지역 작가들의 활동을 유도할 수 있다는 면에서도 실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2010 마을미술 프로젝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마을미술프로젝트 추진위원회’ 및 ‘(사)한국미술협회’가 주관하는 생활공간 공공미술로 가꾸기 사업이다. 지리ㆍ역사ㆍ생태ㆍ문화적 가치가 잠재되어 있는 마을과 거점시설을 공공미술을 통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고 지역문화를 활성화하려는 취지에서 2009년에 처음으로 시행된 행사였는데 반응이 좋아 올 해 특별예산을 지원받게 된 경우이다.
“예산을 산술적으로 나누어 분배하는 것만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질 높은 작품을 상징적으로 만들어 보여주면 다양한 지역에서 그 패턴을 본받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대영 이사장의 생각은 이랬다. 예를 들어 서예가와 디자이너를 팀으로 묶어 인사동의 간판을 이색적이면서 예술적으로 만들어 놓으면 상징성도 살아날 뿐 아니라 본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이 되기도 할 것이라는 말이다.


지난 4월 7일 한국미술협회는 국제아동후원단체인 플랜 한국위원회(www.plankorea.or.kr)와 지구촌 어린이 희망결연을 위한 협약을 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차대영 이사장의 제안으로 한국미술협회 소속 작가 300명이 참여하게 된 이 후원은 미술인들이 가진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

새바람의 붓을 들기 위해 7년 간 먹을 갈다
차대영 이사장은 미술협회 이사장에 두 번 출마했다. 그는 그의 아내와 함께 평생 미술을 해 온 사람이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기존의 미술협회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미술에 종사하는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를 몸소 겪어 본 것이다. 예술가들은 개인적인 성향이 있는 편이다. 순수한 예술 정신을 가진 전업 작가들이 사람다운 삶을 누리지 못 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한국미술협회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더욱 절실히 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리더십이다. 21세기는 세계 전체가 정보화의 물살을 타고 급변하고 있다. 사회나 조직은 스스로 방향을 조정하는 힘을 기를 수밖에 없고,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기 위해 인터넷의 창을 열고 있는 형국이다.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 간의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운용체제인 네트워크와 파트너십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이런 정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선배님에게는 존경과 명예, 후배님에게는 보람과 긍지"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는데,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협회를 운용하여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리더가 될 때 차대영 이사장의 개혁은 비로소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NP)


■차대영 제 22회대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약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대학원 졸업
△제10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한국미술협회 상임이사 역임 (제19대)
△MANIF 서울 국제아트페어 대상
△서울미술협회 부이사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울미술대상전 등 심사위원 55회
△현) 수원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한국미술국제교류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