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는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지원해야

자율성, 민간주도성 빠지면 자원봉사라고 할 수 없어

2010-04-28     김경수 기자
희망을 주는 사람들-한국자원봉사협의회 이제훈 상임대표(전 중앙일보 사장)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재난 때 전국에서 1백30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가 바다를 삼킨 검은 기름때를 깨끗이 씻어내고 절망에 빠진 지역주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되찾아 주었다. 2년여 전 태안반도에서 펼쳐진 우리 국민들의 이 같은 자발적 참여는 자원봉사의 참된 의미와 사회·국가적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자원봉사활동은 누가 등을 떼밀어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의 순수한 선의(善意)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고 그렇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원봉사는 국가가 미처 해결해 주지 못하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며 보다 살기 좋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인간애(人間愛)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이른바 ‘중앙자원봉사센터’ 설립을 추진하면서 자원봉사를 민간주도에서 정부주도로 가져가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많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봉사와 나눔’이야말로 사회를 지탱하는 안전망
한국자원봉사협의회(이하 한봉협)는 자원봉사활동기본법 제17조에 의거, 설립된 유일한 법정단체로 국내 자원봉사단체들의 공식 대표기구이자, 정부의 파트너이며, 현재 세계자원봉사협의회(IAVE)회장국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자원봉사단체에 대한 협력과 지원, 정책의 개발, 정보의 연계, 대국민 홍보 및 국제사업을 위해 설립되었으며 ‘시민이 만들어가는 자원봉사 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한봉협은 이를 위해 민간부문의 자발적 역량이 결집된 대표단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세계자원봉사협회 회장국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자원봉사에 관한 국제적 정보·자료를 보급하는 국제협력 창구로서 기능하는 한봉협은 사회적으로 자원봉사자의 기여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자원봉사 인증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1994년 초대회장 강영훈 전 국무총리가 한국자원봉사단체협의회를 창립하면서 2003년 한국자원봉사협의회로 개편되었으며, 2006년에는 한국자원봉사활동기본법에 의해 법정단체로 지정되었고 지난해 3월 지금의 이제훈 대표가 취임하였다. 한봉협은 항상 일선현장에서 봉사활동을 주도해 왔다. 금모으기 운동, 한-일 월드컵, 태안반도 기름유출사태, 서울디자인올림픽, 인천도시축전까지 한봉협의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자원봉사기본법 제정, 자원봉사국가 5개년 기본계획 수립 지원, 최근 조선일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재능을 나눕시다’ 공동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밖에도‘뉴 노블레스 오블리주, ‘나누는 기쁨, 행복한 세상’ 등 자원봉사의 새로운 흐름 및 의제 설정을 주도하고 있다. 또한 자원봉사자 교육시스템을 구축 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여 전국 각지에서 아름다운 사회를 일구어 갈 자원봉사리더를 양성하고 있다. 6만여 개에 이르는 국내 자원봉사단체들의 대표기구를 자처하는 한국자원봉사협의회의 이제훈 상임대표는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보람과 삶의 의미까지 느끼고 배울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중앙일보 사장 출신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방한 외국인의 언어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된 시민자원봉사 운동인 (사)‘한국BBB(Before Babel Brigade)운동’ 회장을 겸하고 있다. 이 대표는“아무리 작은 나눔이라도 진정성을 갖고 마음으로 봉사한다면 그보다 훨씬 큰 보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이 대표는 정부 주도의 중앙자원봉사센터설립에 대해“국민들의 자원봉사는 자발성, 순수성, 자율성, 무보수성, 공익성 등의 성격을 가져서 정부가 앞장서면 안 되고 정부는 측면에서 지원을 하고 인프라를 조성해서 자원봉사문화를 꽃피우는 방향으로 가야지 관변화로 가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노블레스 오블리제가 계층간 갈등을 치유하는 것이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는 기득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관이 나서서 자원봉사를 주도하려고 한다. 관주도는 부작용이 크다. 서해안 기름유출사태에 1백30만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자원봉사를 했다. 자원봉사는 그 자체도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지만 남을 위해 일하다보면 사회갈등이 해소될 수도 있다.

자원봉사의 참뜻을 살리기 위해 성명 발표
행안부는 지난 3월 12일자 정부조달(나라장터)사이트를 통해 이른바 ‘중앙자원봉사센터’의 설치 및 민간위탁 사실을 전격 공고함으로써 그동안 한봉협이 그토록 반대해오던 관변 자원봉사체제 구축작업에 본격 돌입한 느낌이다. 이에 한봉협은 지난 3월 19일 공동대표단 및 회원(단체)일동의 결의를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성명에 따르면 자원봉사는 무엇보다도‘순수성, 자발성, 자율성’이라는 3대 기본정신을 토대로 최대한 ‘민간주도성’을 살려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행안부는 이를 정부차원에서 지원하고 뒷받침하려는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한봉협과 1백40개 회원단체 일동이 사회안전망 및 국민통합 차원에서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민간 자원봉사활동이 잘못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들의 입장과 주장을 공개 천명하기에 이르렀다는 것. 한봉협은 성명에서“행안부는 자원봉사가 민간주도가 되어야 한다는 기본정신과 더불어 ‘민-관 협력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자원봉사관련 정책 입안 및 수행과정에서 민간 유일의 법정 대표단체인 한봉협을 대등한 파트너로 참여시켜야 한다”며“이를 위해 조속한 시일 내에 한봉협과 함께 자원봉사활동 기본법 개정작업에 착수하고, ‘자원봉사진흥기금’의 설치 및‘자원봉사진흥위원회’의 운영을 활성화하는 작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중앙자원봉사센터의 설치가 한봉협의 대표성과 합법적 역할 수행에 혼선을 초래하지 않고 동 센터의 운영이 관주도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그 설치 및 향후 운영과정에서 한봉협의 의견을 최대한으로 존중하고 최우선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봉협은 또 “중앙자원봉사센터의 설치 추진과정은 물론 지금까지 자원봉사 지원행정에서 보여 온 일방적이고 관료주의적인 밀실행태를 즉각 중단하고 ‘민간주도’라는 자원봉사의 기본정신에 따라 유일한 법정 대표단체인 한봉협이 제 기능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표와 한봉협의 주장처럼, 만약 정부가 지원하고 민간이 주도하는 형태로 한국의 자원봉사운동이 발전해나간다면 더 많고 더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좀 더 살기좋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이러한 잠재력과 자발적 참여의 정신이 우리 사회 저변에 충만해진다면 태안 기름유출이나 천안함 침몰 사태와 같은 국가위기시에도 어렵지 않게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