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아버지들이 흘릴 마지막 눈물”
가치관의 상실로 유실됐던 가족애, 참회의 눈물로 사랑을 되찾다
2010-05-06 이민아 기자
그는 문예지의 등단도 거치지 않은 평범한 중년의 남자였다. 그러나 세월은 그가 자연히 글을 쓰도록 만들었다. 한 때는 경찰로 국가에 봉사하며 창살을 사이에 두고 밑바닥 인생들의 여러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아무리 나쁜 사람도 날 때부터 나쁜 것이 아니구나 하는 이해도 할 수 있게 됐다. 오히려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된 계기가 되어 주었다. 마흔 줄에 들어서는 낙향하여 양계장을 차렸는데 닭들이 병들어 죽어버려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되었다. 그는 서서히‘세상에는 잘 해보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특별히 작가가 되기로 결심을 하거나 연습을 해왔던 것은 아니지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인생을 준비해 보자고 책방에 드나들기 시작했고, 그것이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의 신작‘아버지의 눈물’의 주인공 흥기는 자연히 작가를 떠올리게 되고 또한 우리들의 아버지를 떠오르게 한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멍에를 짊어진 이들의 숙명인 책임감이 목을 죄고, 가족들의 무관심과 원망이 비수가 되어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 그러나 작가는 아버지들이 내몰리는 상황까지도 아버지들의 탓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했듯이‘아버지의 눈물’은 참회의 눈물이다. 진정한 참회는‘모든 것은 나의 탓’이라는 반성의 태도를 가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유년시절, 그가 믿고 따라왔던 어른들은 하나같이 진실하고 순수한 열정으로 살아온 분들이었다. 하지만 그가 어른이 된 지금에는, 물질을 소유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고, 성공해야만 인생을 제대로 살았다는 평을 받게 되는 세상이 되었다. 지금까지의 가치관이 부정되고 하찮아 지는 것이 참을 수 없었던 그는 다시금 세상을 향해 외치는 것이다.“더 늦기 전에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고.
Q. 제목이 아빠가 아니라 아버지다. 아버지란 말이 어쩌면 친근감이 덜 할 수 있지 않나.
우리 때는 아빠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아버지도 아니고 아부지라는 말을 많이 썼다.(웃음)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아빠보다 아버지라는 말이 더 친근했다.
Q. 아버지의 눈물은 무엇을 의미하나.
‘아버지의 눈물’에서 눈물은 반성과 참회를 의미한다. 96년도에‘아버지’를 저술했을 때는 아버지란 사람에 대해 제대로 얘기할 만한 나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글을 쓴 이유는 그 당시가 산업화사회의 주역으로 열심히 달려온 나의 아버지 세대의 삶이 무참히 난도질당하기 시작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산업화 사회의 성공적인 발전, 그 이면에 묻혀 있던 그들의 과오가 비난받게 되었던 시절이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모든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이 있는데 그러한 문제점들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바라보고 생각하는 주변의 아버지들은 가족을 외면한 채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가족을 끔찍이 사랑하면서도 표현을 못 할 뿐이었다. 아버지들의 숨겨진 마음속에 있는 사랑에 대해 죽음이라는 화두를 놓고 풀어냈던 것이다.‘아버지’와는 달리 아버지의 눈물을 통해서는 아버지들의 반성을 촉구하고 싶었다. 지금의 이 사회는 과거와는 달리 단순히 잘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고비를 넘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치열한 경쟁구도가 되어 버렸다. 우리 세대 또는 보다 젊은 아버지 세대들이 삶의 가치를 망각했기 때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삶의 가치가 돈, 성공이 되어버렸다.‘아버지’에 나오는 세대는“내 가족을 고생시키지 않기 위한, 내가 겪었던 가난과 설움을 대물림하지 않고, 내 아내에게 더 나은 삶을 살게 해 주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목표들이 달성되고 그 성과를 누리고 있는 지금의 아버지 세대들은 돈과 막연한 성공에만 집착하게 된 셈이다. 때문에 다시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Q. 보통 어머니와 자식들은 친한 편인데 아버지는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비단 아버지 뿐만아니라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녀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아버지의 눈물’에서처럼 주인공 흥기는 실패한 아버지는 아니다. 가족을 굶기는 것도 아니었고 무책임하게 밖으로 나도는 깜냥도 아니다. 그럼에도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대화가 단절이 된다. 이처럼 많은 가정이 그러하다. 엄마와 자식들이 거실에서 얘기를 나누다가도 아빠가 들어오면 형식적인 인사만 나누고 각자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확실한 가치관을 가지고 그 것으로 가족을 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들이 허황된 꿈, 물질적인 성공만 좇으며 헛발질만 하는 인생을 살아온 결과다. 때문에 나를 포함한 지금 아버지 세대가 철저한 반성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쓴 것이‘아버지의 눈물’이다. 자식들의 경우도 부모의 기대와 욕심 때문에 일류 학교, 대기업을 위해 자신이 진정 가고 싶은 길을 포기하고 있다.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아버지들이 자식들의 인생도 망쳐놓을 수 있는 위험한 시대인 것이다. 책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생각은 얼마나 반듯한가. 큰 아들 상인과 그의 친구 수경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정해진 가치관에 맞춰서 사는 것만이 성공한 인생이 아니다. 대학졸업과 상관없이 식당을 운영하고 카센터를 운영하더라도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며 살아간다는 것이 대견한 것이다. 식당도 크기나 요란한 인테리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음식을 가장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을 위해 식당을 운영하겠다는 그러한 올곧은 생각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올곧은 생각이 존중받지 못하는 이 사회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하고 싶었다. 우리 다음 세대들은 틀에 박힌 가치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얼마 전 경찰관 동기들을 만나 얘기를 나눴는데 많은 친구들이 주식과 펀드에 목을 매고 있었다. 연봉보다 더 많은 수입을 얻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서“그거 더 많이 벌어서 뭐 하는데?”라고 물어보니 사실 불안하고 위험하기만 하지, 따지고 보면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이처럼 돈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그 한계가 있는 것이다. 과거의 아버지 세대의 희생과 노력, 성공을 발판 삼아 새로운 전기를 맞은 우리 세대는 자식들에게 방향타가 되어 주어 격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Q.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오시면서 힘들었던 순간과 뿌듯했던 순간은?
힘들었던 순간은 아들이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역사학 석사를 따기 위해 유학을 갔다. 방학 때 집에 잠깐 들어왔다 나와 함께 학교 얘기와 더불어 진로에 대해 얘기하다 집을 나가서는 통 들어오지를 않았다. 연락이 닿질 않다가 3,4 개월 만에 연락이 왔다. 만나서 집을 나간 이유를 물어보니 옥스퍼드 대학이 자신에게 정말 맞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는데 아빠는 옥스퍼드에서 계속 공부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결코 강요가 아닌 충고고, 조언이었는데 아들은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다. 아들이 연락도 없이 사라져 버렸던 그 시간이 나에겐 절망이었고 깊은 슬픔이었다. 또, 이렇게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나 싶었고 내 방식에 큰 문제가 있었나 하며 돌아보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한편 제일 뿌듯했던 순간은 중국 오지여행을 간다고 배낭을 꾸리고 있는데 아들이 와서“아빠 이번엔 어디로 가세요?”하기에“운남성 지역에 간다”“거기는 왜 가요?”“마약 중독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는데 한 번 가보려고 한다”고 했더니 아들이 한숨을 푹 내쉬면서“말도 잘 안통하고 몸도 시원찮으실 텐데 이제 위험한 곳은 그만 다니시지?”라면서 빈정대는 말투로 한 마디 내뱉었다. 하지만 난 그 말 속에서‘내 아들이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구나, 저놈이 나를 사랑하는 구나’하고 통감했다.
Q. 가족에 대한 글을 많이 쓰시는데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나.
세상 모든 것은 가족 얘기를 하고 있다. 또한 모든 것이 가족에서부터 시작된다. 나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온통 가족에 대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가족이라는 화두는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에 대한 글을 주로 쓰는 것도 그 이유다.
Q. 모든 자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용기를 갖고 자기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 세상이 말하는 제일 좋다는 것을 좇지 말고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것이 중요한지를 생각하고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아갔으면 한다.
Q. 다음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가.
우리 시대의 가장 아쉬운 부분이 우정이라는 덕목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이제는 우정, 의리에 대해 들어본 지 꽤 오래됐고 진정한 의미의 우정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버린 것 같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글을 쓰고 싶은데 지금 얼개를 짜느라 끙끙대며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웃음)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