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시위 후폭풍...‘깨지기 쉬운 유리’같은 평온 상태

태국 총리“협력 이뤄지면 조기총선 실시”, 정국 정상화는‘잰걸음’

2010-07-08     이지영 기자
탁신(Thaksin) 친나왓 전 총리의 자금 지원과 배후 조종 속에 2개월 넘게 반정부 시위대를 이끌던 지도부는“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지금 항복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적 신념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으며, 우리는 끝내 승리할 것입니다”라며‘로열타이 경찰본부’에 자진출석해 체포됐다. 3월 12일 탁신의 고향인 북부 치앙마이와 지지자들이 몰려 있는 북동부 지방을 출발해 방콕의 레드셔츠(반정부 시위대)가 합세한 뒤 69일간 벌인'혈투'는 이렇게 끝났다.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태국 유혈사태의 배경에는 계층 간 뿌리 깊은 불신이 있었다. 조기 총선 실시를 놓고 협상을 진행하던 정부와 시위대는 협상이 틀어진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정면충돌한 것이다. 지난 3월 중순부터 방콕 랏차담넌 거리와 랏차프라송 거리를 점거하고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독재저항민주주의연합전선(UDD, 일명‘레드 셔츠’)은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단체다. 시위대 대부분은 탁신 전 총리의 지지기반인 농촌에서‘상경’한 빈민들이다. 시위 촉발 계기는 대법원이 지난 2월 내린 탁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몰수한다는 판결이다. 저소득층은 탁신을‘태국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를 위해 정치한 지도자’로 여기며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탁신은 재임 기간 농가부채 탕감, 저소득층 무상 의료서비스, 무상교육 등을 통해 빈민층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레드 셔츠는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는 쿠데타로 집권해 정통성이 없으며, 군부·왕실 등 전통적 엘리트 계층과 결탁해 있다고 여긴다. 이들은 시위를 시작하며‘의회해산’과‘조기 총선 실시’를 요구조건으로 내걸었다. 겉으로는 쿠데타 세력을 몰아내고 빼앗긴 권력을 되찾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빈민층과 엘리트 계층 사이의‘계급투쟁’적인 성격을 띠었다. 양측 사이의 불신의 골은 두 달간 대치국면을 거치며 더욱 깊어졌다. 정부는 시위대를‘테러리스트’로 묘사했고, 시위대는 정부가‘폭군 정치’를 한다고 비난했다.

泰 반정부 시위사태 일단락…정부진압 후 시위대 지도부 투항
태국 반정부 시위대 지도부가 5월 19일 정부 측의 진압작전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투항을 선언하고 시위대 해산을 공식 선언해 시위 정국이 2개월여 만에 끝났다. 태국 정부는 상원 중재하의 협상 재개 안이 무산된 지 하루 만에 장갑차 등을 동원해 전격적인 진압작전을 펼쳐 시위대의 항복 선언을 받아냈다. 태국 반정부 시위대 레드셔츠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인 나타왓 사이쿠아는 방콕 시내 라차프라송에서 반정부 시위대 지도부를 대신해“지도부가 고심한 끝에 추가 희생자 발생을 막기 위해 반정부 시위를 끝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군경은 시위 거점인 라차프라송 거리로 이어지는 룸피니 공원 등에 수십여 대의 장갑차와 병력 등을 집결시킨 뒤 곧바로 강제해산 작전에 돌입했다. 태국 정부의 전격적인 강제해산 작전은 상원 중재하의 협상 재개 안이 정부 측의 거부로 무산된 지 하루 만에 이뤄진 것이다. 군경은 장갑차 등을 동원해 시위대가 설치해 놓은 폐타이어와 바리케이드 등을 철거하고 라차프라송 거리로 연결되는 진입로를 장악한 뒤 시위대를 향해‘투항하지 않으면 사살하겠다’고 경고 방송을 내보내면서 시위대에 자진 해산을 종용했다. 한편 태국 시위대 지도자는 지지자들에게 폭력 행위를 자제해줄 것을 촉구했다. 시위대 지도자인 코캐우 피쿤통은 경찰에 자수하기에 앞서“모든 당사자들이 국가에 해를 끼치고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면서 시위대 지지자들에게 폭력 행위 자제를 촉구했다. 코캐우는 보안당국이 시위대 거점인 라차프라송 거리에 대해 진압작전을 벌이는 동안 현장을 탈출했으나 이날 웨라 무시가퐁과 웽 토지라칸 등 다른 지도자 2명과 함께 경찰에 자수했다. 코캐우는 또“군인들도 탄압을 중단하고 군부대로 되돌아가야 한다”면서“정부와 언론 매체들이 과도하게 시위대를 비난하면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시위대의 운동은 정당한 것인 만큼 레드셔츠는 폭력을 통해 분노를 표출하면 안 된다”며“레드셔츠는 장기적인 투쟁을 위해 힘을 비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캐우는 이어“아피싯 웨차치와 총리는 신속하게 의회를 해산하지 않을 경우 시위대 탄압과 관련된 법적 절차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조속한 의회해산을 주장했다. 코캐우는“아피싯 총리가 레드셔츠를 계속 무시하면 레드셔츠가 시위를 재개하게 될 것”이라며“시위가 재개되면 태국 사회가 결코 평화를 되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국 시위 후폭풍…泰 정부-탁신, 체포영장 놓고‘신경전’
군경의 강제 진압으로 태국 반정부시위 사태가 일단락되었지만 방콕 시민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무력을 동원한 정부의 강제 진압 방식을 놓고‘레드 셔츠’상당수가 반발하고 있어 사태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2개월이 넘도록 수도의 도심을 마비시킨 시위 사태가 종결됐지만 이 과정에서 정국 관리의 허점을 드러낸 아피싯 총리는 가장 큰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협상 등 정치적 해법이 아닌 강제진압으로 시위대를 몰아냈기 때문에 안팎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방콕의 외교 소식통은“아피싯 총리가 동원할 수 있는 정치적 해법은 모두 시도해 봤다”며“진압에 회의적인 군 실세 아누퐁 파오친다 육군 참모총장을 밀어붙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태국 정가에선 아피싯 총리가 이번 시위 사태에서 드러난 태국 사회의 계층·지역·도농 간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화합이라는 큰 과제를 풀어낼 수 있는 적임자인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콥삭 삽하와수 총리 비서실장은“국가 화합을 위한 계획을 추진할 예정이며 이 계획을 마무리하는 데는 4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국가 화합 계획이 목적을 달성하면 총선이 실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태국 정부가 테러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탁신 전 총리에게 귀국을 촉구하고 탁신 전 총리는 근거 없는 정치 공세라고 맞서면서 양측 간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형사법원은 최근 해외도피 중인 탁신 전 총리가 두 달 넘게 지속된 반정부 시위에 자금을 지원하고 무기 사용 등을 배후조종했다고 밝히면서 테러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파니탄 와타나야곤 정부 대변인은“태국 정부는 법률 절차를 준수하고 있다”며“탁신 전 총리는 귀국해서 법정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보 담당인 수텝 타웅수반 부총리도“탁신 전 총리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면 먼저 태국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정당함을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텝 부총리는 탁신 전 총리에게 시민권을 부여한 몬테네그로를 조만간 방문, 탁신 전 총리의 신병인도를 요청할 계획이다. 탁신 전 총리는 지난 2008년 8월 대법원의 부정부패 공판에 참여하지 않고 해외로 도피한 뒤 두바이를 주요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거처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최근에는 몬테네그로와 프랑스 파리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태국 정부 측의 주장과 관련, 탁신 전 총리는 5월 26일 호주 ABC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나에 대한 테러혐의는 정치적 동기에 의해 만들어 진 것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인터폴은 어떤 사안이 정치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자체 기준을 갖고 있다”며“인터폴이 정치적 동기에 의한 체포영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탁신 전 총리는 변호사를 통해 자신에 대한 체포영장을 취소해달라며 태국 법원에 이미 항소한 상태이며 국제소송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관광산업은 깊은 수렁에 빠져 회복의 기미 안보여
반정부 시위로 최악의 유혈사태를 빚으며 국가 마비사태까지 갔던 태국의 관공서와 경제 부문이 업무를 재개함에 따라 태국은 정상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외신에 따르면 태국의 은행, 증권거래소와 관공서 등이 다시 문을 열고, 시위 당시 군 기지 안으로 옮겼던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도 집무실로 돌아왔다. 지상철과 지하철도 정상 운행에 들어갔다. 군부대도 시내 검문소를 경찰에 넘기면서 방콕 시내에서 철수하고 있다. 하지만 유혈시위사태를 겪은 태국의 관광산업이 깊은 수렁에 빠진 채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태국의 외국 관광객 수와 관광 수입은 지난해에 비해 20% 가까이 떨어졌다. 태국 정부는 관광산업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근 관광분야에 1억5000만 달러(약 1800억 원)를 투입하고 비행기 공항 이용료를 낮추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는 방콕 거리가 방화되는 장면이 관광객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데다 반정부 시위대가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호텔 등 관광 서비스 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 역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현 비상사태를 향후 수개월 동안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태국 정부가 수도인 방콕 등에 선포해 놓은 비상사태를 향후 수개월 동안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현지 언론들이 지난달 3일 보도했다. 정부는 반정부 시위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 4월7일 방콕과 주변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한데 이어 군경이 시위대에 대한 진압작전을 벌인 5월 19일 비상사태 선포 지역을 지방으로 확대했다. 수텝 타웅수반 부총리는“비상사태 선포로 인해 관광업이 지장을 받을 수 있지만 치안유지를 위해 비상사태를 수개월 동안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수텝 부총리는“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해 반정부 시위 이후의 상황을 계속 점검해야 한다”며“외부의 압력에 의해 비상사태를 해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태국이 다시 혼란 상태로 빠져드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황에서도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의 화합 정책은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피싯 총리는 지난 5월초 입헌군주제 수호와 사회 평등 확대, 시위대와 군경 간 충돌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등의 화합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한편 아피싯 웨차치와 태국 총리는 반정부 세력과 야당을 포함한 모든 당사자들이 협력한다면 조기총선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피싯 총리는 베트남 호찌민에서 개최되고 있는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한 가운데 기자들과 만나“야당 등으로부터 협력을 받을 수 있다면 조기총선을 실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말까지가 임기인 아피싯 총리는 조기 총선을 실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현재 태국의 장래는 현 정부가 정치적 분열을 얼마나 신속히 치유하느냐에 달려있다. 특히 반정부 시위대의 최대 요구사항이었던 의회해산과 조기총선이 언제 실시되느냐가 정국 안정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는 분명한 정치일정을 밝히지 않은 채 반정부 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만을 고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시위대가 지하운동에 나설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또 한 번의 대규모 시위사태가 재연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