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수열풍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손실된다

고비용 감당할 수 있는 고소득층 자녀들이 명문대 진학해

2010-08-06     이민아 기자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대학 합격하고도 휴학하는 재수생과 2학기 때 휴학하고 대학 입시에 재도전하는 이른바‘반수생’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경제력 높은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재수생 비율이 높다. 과거 학력고사 세대와는 달리 대학에 떨어져 어쩔 수 없이 1년 더 공부하는 개념이 아니라 요즘은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 되는 수험생과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원해서 재수하는 경우로 바뀌고 있다. 즉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로 하여금 재수·반수를 통해 좋은 대학으로 갈 수 있는 새로운 교육격차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재수·반수과정에서 낭비되는 사회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반수생이 몰려온다

반수생(半修生)은 대학을 휴학하거나 다니면서 재수를 하는 학생을 일컫는다. 무턱대고 재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한군데라도 합격해 놓고 나서 결정하려는 학생들이‘반수생’인 것이다.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도 새내기의 즐거움을 누려보기도 전에 자신이 목표로 했던 대학에 재도전하는 이른바 반수를 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반수생들은 지난해 수학능력시험에서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게 아쉬워 대입에 재도전한다. 반수를 하면 대학입학 등록금 등 1000만원에 달하는 비용과 시간이 날아가지만 원하는 대학에만 합격하면 전혀 아깝지 않다고 한다. 반수생들은 대학전공서적과 고3수험서를 함께 공부하게 되는 것이다. 한 반수전문학원은“학원을 직접 방문하거나 문의 전화를 해오는 대학 재학생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특히 201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변별력이 없었다는 지적이 일면서 대입 결과에 미련을 떨치지 못한 대학 신입생들이 속속 합류하며 반수행렬은 예년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수험생의 수요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교육 시장은 이미 늘어난 반수생들의 수요를 예측하고 있다. 서울의 한 재수전문학원에 따르면 이 학원은 6월말부터 개강하는 반수생 반을 지난해에 비해 2배가량 늘렸다. 이미 모집이 끝난 반을 기준으로는 학생 수가 지난해에 비해 15%정도 늘었다. 온라인 시장에서 오프라인 학원까지 시장확대를 꾀한 한 학원도 직영 7개 학원 중 한 곳을 기준으로 지난해에는 23명의 반수생 반이 1개가 운영되다가 이번에 3개 반으로 증설되고 177명으로 인원수를 늘렸다. 이는 모두 반수생 증가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6월 평가원 모의고사는 대학생들의 반수생 전환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또 다른 기준이다. 수능 시험 출제를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지난 6월 10일에 치러진 모의고사에서 반수생들의 관심이 상당부분 입증되었다. 지난해보다 응시생 수가 1만1000여명이 증가했다. EBS를 통해 혼자 공부하는 학생들이 증가하는 것도 반수생 증가와 맞물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입시전문가들은 대학 첫 학기가 끝나자마자 대입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 반수생이 몰려드는 현상에 대해“변별력 없는 지난해 수능으로 인한 미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비상에듀의 이치우 입시평가실장은“지난해 수능이 쉬워서 언어와 수리 등 주요 영역에서 원 점수를 잘 받고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 학생들이 많다”며“미련을 버리지 못한 학생들이 수능에 또다시 도전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정부가 EBS 70% 연계안을 발표하면서 수험생들 사이에서 EBS위주로 열심히 준비하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선 것도 반수 선택이 많아진 이유로 꼽힌다. 현재 고등학생 2학년들이 보게 되는 2012학년도 수능은 수리영역에서 미적분 등 일부 과정이 추가돼 현 수험생들은 재수를 할 경우 추가되는 부분을 새로 학습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2011학년도 수능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인해 이번 수능은 수험생과 재수생은 물론 증가한 반수생까지 섞여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학생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등록금,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

강남지역, 반수생 열풍 심해

특히 강남지역 학생들은‘고등학교를 4년간 다니는 셈’이라고 할 정도로 재수가 일반화 되었다. 서울지역에서 재수생 비율이 가장 높다는 강남구의 고료들은 모두 재학생 대비 재수생비율(반수 포함)이 80%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명문대학 합격생을 다수 배출하고 있는 서울 강남구 휘문고, 중동고, 영동고 졸업생의 80%이상이 재수, 반수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강남 학력의 상당부분이‘재수와 반수 효과 덕분’이라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조선일보와 입시기관‘하늘교육’이 함께 서울·경기지역 469개 고교의 대학 진학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수능을 치른 서울지역 수험생 중 재수생은 4만3181명으로 재학생(9만4480명)의 45.7%에 달했다. 고교 정원에 큰 변동이 없다고 가정할 경우 졸업생 100명당 46명이 재수를 하여 이듬해 수능을 치른 것이다. 이에 대해 강남구 고교 측은 신뢰할 수 없는 수치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학교 알리미’사이트에 공개된 고교별 대학진학률과 2010학년도 수능 응시 자료를 기초로 분석했다지만 당해 연도 재수생과 반수생뿐만 아니라 대학교에 재학 중이면서 한 번 응시만 해보려는 경우도 있어 단순 통계로 재수생 비율을 산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80%이상의 재수생 비율이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자칫 상, 중, 하위권을 막론하고 강남 지역의 모든 학생들이 재수를 하는 것처럼 잘못 비춰질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학교 측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강남지역의 한 고교 관계자는“졸업생들의 대학등록현황 자료를 근거로 보면 대부분 대학진학률이 50~60% 정도로 나온다”면서“재수비율 역시 그 정도 선에서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또 다른 학교 관계자는“당해 연도 졸업생들의 대학진학률이 지난해만 해도 50% 미만에 그쳤기 때문에 거의 반 이상의 학생들이 재수를 한다고 보면 된다. 거기에 반수생과 삼수생까지 더해지며 재수생 비율이 높아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재수생 비율이 어떻든 강남 지역 고교 졸업생들 중에는 한 번의 대입 지원만으로 만족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수능 점수만으로 선발하는‘수능우선선발 전형’을 노리고 재수를 한다는 것은 비단 강남지역 학생들에게만 국한된 경우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 학생들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강남 고교에서는 내신 성적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3년 동안 주로 내신 중심의 공부를 하다가 수능의 전 영역을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한 채 시험을 보게 되는 학생들이 많다. 또한 수능준비에 전력을 쏟아야 할 시기인 8월부터 수시모집 준비를 시작하고 지원하느라 수능준비를 소홀히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에 1년 동안 수능공부를 하고 조금만 더 점수를 올리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것 같은 미련으로 인해 재수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학생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등록금과 1년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강남 학생들 중 50%가 자신이 상위 10%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재수·반수를 선택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실제로 고 1,2학년 때까지 모의고사에서 1,2 등급이 나오던 학생들이 막상 3학년이 되면 등급이 떨어지게 되고 실제 수능시험에서는 그보다 낮은 등급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학생들은 자신의 점수를 납득하지 못하고 재도전을 선택하게 된다. 한편 학생들이 재수를 선택할 때 개인의 여건·목표보다는 학교나 지역 차원의 분위기에 많이 휩쓸려 가는 것으로 한국교육고용패널(KEEP)자료 분석에서 드러났다. 강남 학교들이 유난히 재수생 비율이 높은 이유는 재수를 안 하면 이상하다는 특유의 지역적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반수는 대학의 학문적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대학 서열화 체제를 공고하게 해 학벌의 악순환을 낳고 있다

사회적 비용 낭비 어마어마

반수를 준비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보통 학원비·생활비 등으로 매달 200여만원을 쓰고 하숙비만 해도 월 100만원씩 든다. 학원비로 매달 몇 십만 원은 우습고 주말 과외비와 인터넷 강의 비용 등을 합치면 월 사교육비만 120만원이 훌쩍 넘는다. 뿐만 아니라 밥값, 간식비, 교통비, 친구를 만날 때 쓰는 돈 까지 합하면 어마어마하다. 기본적으로 개인당 연 2000~3000만원이 소요되는 것이다. 재수생 학원가에는 우스갯소리로‘재수생들은 1년간 학원에 감금돼 공부만하고 돈은 3천만 원씩 들기 때문에 징역1년, 벌금 3천만 원이고 반수생은 그 절반이어서 징역 6개월, 벌금 1500만원’이라고도 한다. 조선일보가 연세대 장용석 교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연간 사회경제적 손실을 추산해 보았을 때, 올해 재수생(반수생 포함)15만 명(추정인원)이 쓰는 연간 총 비용은 3조원에 달한다. 게다가 재수로 1년 늦게 사회에 진출하는 비용 2조2797억 원을 합치면 총 비용이 5조원을 넘는다. 반수생은 재수생보다 학원비가 적게 들겠으나 어차피 1학기 대학 등록금과 기타 용돈이 포함되면 결과적으로 비슷하다. 한양대 이영 교수(경제금융학부)는“재수라는 것은 꼭 안 해도 되고, 학생들 입장에서도 자기계발이나 능력신장은 거의 없이 학벌 랭킹만 바뀌는 제로섬(zero-sum)게임”이라며“재수에 드는 비용은 그대로 사회경제적 손실로 온다”고 꼬집었다. 또한 반수를 위해 휴학한 자리는 편입으로 메워지고 사회적 평판이 더 낮은 지방대나 전문대에 다니는 학생들이 편입을 통해 그 자리를 메우면서 전문대-지방대-수도권대-명문대로 이어지는 서열이 고착화돼 문제가 더해지고 있다. 때문에 반수는 대학의 학문적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대학 서열화 체제를 공고하게 해 학벌의 악순환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명문대에 합격해도 취직이 잘 되는 의대와 한의대 등에 가려고 다시 재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반수생의 60~70% SKY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합격해 놓고도 다시 수능을 준비하는 반수생들도 많다. 취직이 어려운 시점에서 미래가 보장되는 의대나 취직이 잘 되는 과에 들어가려고 반수하는 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SKY’나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반수생이 주가 되었지만 최근에는 명문대에 붙어놓고도 취직이 잘 되는 의대와 한의대 등에 가려고 다시 재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런 학생들은 놀랍게도 대부분 수능 언어·수리·외국어 영역 모두 1등급인 최상위권인 경우다. 한 재수학원 부원장은“반수생반 수업에 들어가서‘SKY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 손 들어보라’고 했더니 60~70%가 손을 들었고 그런 경우 대부분 의대와 한의대 지망생이라고 설명했다.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거나 소위 학벌 상승을 위해 다시 입시 준비를 하는 것이다. 대부분 의예과, 치과, 한의예과로 졸업 이후 자격증이나 취업이 보장되는 학과 지망생들이다. 의대의 경우 대부분은 이공계 생들이며 간혹 경영, 경제 등 상경계열 학생들도 있다. 또한 서울대를 비롯하는 명문대 생들이 다수이며 의대 편입보다는 반수가 쉽다고 생각하여 반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학기 말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강의실에 빈자리가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며 취업이 어렵다고 생각되는 학과일수록 그 현상이 두드러진다. 명문대를 비롯해 서울 중위권 대학의 文, 史, 哲 학과 교수들은 학기 초 신입생들을 상담할 때 반수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는데 붙잡을 수도 없어 난감한 입장에 놓여있으며 학생 수가 계속 줄어들면 학과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하다고 털어놓는다. SKY와 같은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와 반수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후에 또 의대와 치대, 한의대와 같은 미래가 보장되는 직업을 갖기 위해 재수·반수를 한다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낭비될 것이다. 더불어 그러한 비용을 치룰 경제력이 있는 고소득층의 자녀가 좋은 학벌, 선망의 직업을 갖게 되어 또 다른 교육 격차를 낳게 되는 것이다.


대학과 학과에 따라 사회적 위치가 달라진다는 잘못된 인식은 한국사회의 고질병

반수열풍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

수험생 상당수가 선배들의 취업난을 지켜본 세대이다. 더 나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1년 정도 포기하는 일은 어렵지 않게 생각한다. 혹시 모르니 일단 대학 등록금을 내고 반수를 한 뒤 더 나은 대학에 진학할 경우 등록금과 1년이란 세월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 후자의 경우처럼 성공하지는 않는다. 적지 않은 반수생이 재도전뿐 아니라 대학생활까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돈 버리고 몸 버리고 시간까지 버리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재수생 신분이 싫어 대학에 등록을 해놓고 학기 내내 대입수능시험 준비로 학과 활동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 학교 수업에도 소홀하게 된다. 더 좋은 대학에 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학점관리는 물론 대학생활 자체를 제대로 하지 않게 되어 낙방하게 되면 복학해서 원래 합격했던 학교에 다니더라도 1학년 학점 관리를 다시 하거나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도 재수와 반수에 뛰어드는 현상은 유독 한국사회에서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대학 입학시험에서는 입학사정관들이 학생들의 지적(知的)열정과 교외 활동 실적 등을 가려내 합격생을 뽑는다. SAT(미국의 수능시험)성적을 몇 점 더 올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재수는 비효율적인 선택이라고 한다. 다른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고교 졸업생의 대학진학률이 40~60%여서 84%에 달하는 우리보다 낮아 모든 학생이 대학 입시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일을 배워 직업을 가질 학생들은 직장에 다니고 공부를 계속 할 학생들만 대학공부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졸업 후 직업을 가질 학생들을 위한 마이스터 고교(전문적인 특성화 학교)등 대학진학이 아니더라도 사회에 기반을 다지고 진출할 기회를 충분히 마련해 놓았다. 교육선진국인 핀란드는 말할 것도 없다. 학교도, 가정도, 사회도 학력을 부추기지 않는다. 교사도 아이들을 야단치거나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 때문에 학생들‘공부하는 이유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는 의식이 전제에 깔려있다. 핀란드의 대학들도 서열화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특성이 있을 뿐이다. 한국사회가 재수·반수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유는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입학했느냐에 따라 사회적 위치가 결정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인한 것이다. 이는 대학의 질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자질과 능력을 성장시키지 못하게 하며 부의 대물림을 부추기는 한국사회의 고질병이다.<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