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소설“순례자의 책”으로 단숨에 독자를 사로잡았던 김이경 작가

“마녀의 독서처방”으로 마음의 공동(空洞)을 메우다

2010-08-31     이민아 기자

김이경 작가는 글을 쓰기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도서관에 틀어박혀 장르를 불문하고 책을 탐닉하는 독서 마니아이다. 카프카, 도스토예프스키, 김수영 시인 등 문학의 역사에 위대함을 보탠 이들의 작품을 접하며 작가가 아닌 독자이기를 선택했다. 출판사에 취직하여 편집주간으로 일하며 많은 작가와 작품을 접했던 김이경 작가는 결국 독자·평론가로서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펜을 들게 됐다. 소설가로서 그녀의 개성과 면모를 한껏 보여준‘순례자의 책’과, 최근 출간한‘마녀의 독서처방’은 우리를 풍성한 책의 세계로 인도한다. ‘책벌레’,‘독서광’. 이러한 단어를 접하면 우리는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재미없는 사람, 알 수 없는 얘기들을 늘어놓는 괴짜 등등. 마냥 부질없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카페에 들어섰다. 남들이 떠받들어야 살 수 있는 공주도, 눈치 보며 시중드는 하녀도 아닌, 오로지 자신이 가진 지식과 힘으로 세상을 마주한 매혹적인 독서가(讀書家)‘마녀’가.


Q.‘순례자의 책’으로 문학계에 정식 데뷔한 셈이다. ‘순례자의 책’이 지식소설이라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소감을 말씀해 주신다면.

한국 소설에서 없던 장르를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낯설다는 얘기를 워낙 많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일부러 책을 쓸 때도 독자들이 쉽고 재미있게 느낄 수 있도록 애를 썼다. 그래서 그런지 가볍게 느껴진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 (웃음). 책을 소재로 한 소설책인데, 소설이 나오면 그 뒤에 그 소설을 구상하게끔 했던 실제 역사적인 사례들을 넣었다. 역사적인 자료와 사례를 넣은 이유에 대한 제 생각도 밝혔다. 전통적인 소설과 구성이 달랐기 때문에“소설이냐, 에세이냐, 역사책이냐”하는 논란이 많았고, 독자 분들이 당혹스러워 하셨다. 작가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환상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상,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자신이 의식을 하든, 하지 못했든 작품에 그 영향이 반영된다. 그럼에도 마치 작가를 새로운 지식을 일궈낸 위대한 존재로 여기는 것과, 책이 담고 있는 지식이 절대적인 지식인 마냥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순례자의 책’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소설에 빠져들었다가도 책장을 덮으면 방금 읽었던 내용들을 다시 의심하게 해보는 장치를 두고 싶었다. 이러한 나름대로의 노력을 독자들이 인정해주시는 것 같아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Q.본래 출판사의 편집자셨는데,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
글을 쓰기 시작한지 이제 3~4년 되었다. 그 전에는 출판사에서 기획·편집을 맡았다. 어린이 책을 기획했는데 원하는 저자를 찾지 못해서‘시간도 없는데 내가 직접 써보자’하고 결심하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작가의 꿈을 갖고 있었지만 두려움에 선뜻 할 수 없었다. 그 계기가 있은 후 회사를 그만두고 직접 부딪히면서 책을 내게 되었다.


Q.‘마녀의 독서처방’이라는 제목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어떤 계기로 구상하게 되었나.

어머니께서 암으로 몹시 아프신 적이 있다. 1년 반 정도 투병생활을 하시면서 편찮으신데도 그 당시 취직도 하지 않았고 결혼도 하지 않았던 나로 인해 어머니도 나 자신도 매우 힘들었던 시기였다. 여러 가지 회의가 들었고 굉장히 힘들었다. 어머니께서 계시던 병원 앞에 시립도서관이 있었다. 잠시 안정을 찾으시고 주무실 때면 하루에 다만 한 시간이라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현실의 악다구니에서 벗어나 고즈넉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철학책을 주로 읽었다. 어쩌면 책의 내용이 아니라 책을 읽는 그 시간들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독서 칼럼을 써보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내가 책에서 위로받았던 것처럼 독자들도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도록’에 초점을 맞춰서 썼던 것이‘독서 처방’이다.

Q.직장에서 고달프고 가정에서 외로움을 겪는 중년을 위해 처방을 내려준다면.
사람들은 중년이 되면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자기 반성을 하기보다 자기 연민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은 가장 초라한 사람이 된다. 자기 연민은 독이다. 책을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자기 분석을 많이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제 자신도 출판사에서 편집주간으로 일 했을 때 함께 일했던 직원들에게 좋은 상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원들에게는 좋은 상사란 없었다. 당연하게 지시했던 일들도 그들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 되었고 압박을 주었던 것이다. 오히려 자기 반성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면서 의사소통을 배워나가야 하는 시기이다.

Q.소설가이자 독서칼럼니스트로서 책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어렸을 때는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배우기 위해 읽었다면, 이제는 제가 얼마나 무지한지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읽는다. 책은 지식을 담는 그릇인데,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인 지식, 영원한 진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 책을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수집하는 사람도, 책 자체로도 권력욕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굉장히 어려운 책을 마지막까지 읽은 사람은 성취감과 희열마저 느끼게 되는데 결국 이러한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욕망이 얼마나 위험하고 위태로운 것인지에 대해 의심하고 부수는 역할을 하는 것도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자신도 최대한 의심하는 자로서 책을 읽고 쓰려고 한다.

Q.글을 써오면서 작가로서 많은 변화가 있었을 거라 본다.
글을 그렇게 많이 쓰지는 못했으나, 계속 써가면서 자기 한계를 발견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자기 한계를 발견하는 것이 두려워 나의 글을 남에게 보여주지도 못했다면, 지금은 타인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독자들로 하여금 무엇이 한계인지 알아가며 예상치 못했던 부족한 점을 채워간다. 독자를 만나는 것이 저에겐 가장 큰 공부이고 굉장히 즐겁다.‘순례자의 책’독자들과 만난 적이 있는데, 리뷰를 읽는 것도 기뻤지만 직접 만나서 함께 얘기를 나눠보니 제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자극이 되는 것을 느꼈다.

Q.개인적으로 좋아하시는 작가가 있다면?
작고하신 김수영 시인을 경모(敬慕)한다. 서경식 작가와 버지니아 울프의 산문을 참 좋아한다. 소설가 중에는‘인간 실격’의 다자이 오사무 작가를 굉장히 좋아한다. 당시‘인간 실격’을 읽은 일본 젊은이들은 잇따라 자살을 했다는데, 저는 오히려 죽고 싶은 만큼 힘들었을 때 이 책을 읽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갈수록 과묵한 작가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카프카는 좋아한다기보다 저의‘숙제’같은 작가다. 절대로 죽을 때 까지 그런 작품을 쓸 수 없겠지만, 카프카의 작품처럼 한 번 쯤 소름마저 돋는 작품을 써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품의 구성을 보면 독자로 하여금 퍼즐 맞추듯이 의미를 계속 찾아내게 하는 작가를 좋아한다.

Q.독서이외에 무엇으로 기분전환을 하시는지.
실내 야구장에 가면 500원에 공을 칠 수 있다. 110~120km씩 나올 때도 있고 컨디션이 나쁘면 한 공도 못 친다(웃음). 산책하는 것도 좋아한다.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춤추며 노는 것도 좋아해서 집에서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를 틀어놓고 막춤을 추기도 한다. 맥주마시는 것도 굉장히 좋아해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노래들으며 집에서 춤을 춘다. 잘 맞아서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책을 쓰는 사람 중에는 춤추면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웃음).

Q.차기작 또는 향후 활동계획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신다면.
시립도서관에서 독서회 지도강사로 15년을 강의해 오고 있다. 대부분 30대 이후의 여자 분들이 많다. 그분들과 함께 인문고전을 읽으며 얘기를 나누는 모임인데, 이 모임을 더욱 잘 이끌어 나가고 싶다. 소설작업을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기존에 전혀 없던 새로운 주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소설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글을 쓰기 위해 실험을 거듭해 나갈 생각이다.<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