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관리비 왜 비싸나 했더니 비리사슬 줄줄이
“아파트 주민을 봉처럼 여겨온 괘씸한 입주자 대표·업체들”
2010-10-06 이민아 기자
입주자 대표의 영향력이 막강해 위탁업체들은 계약을 위해 아파트 발전기금, 상품권, 명절 선물 등의 핑계로 입주자 대표에게 금품을 제공해왔다.
위탁관리·용역업체 선정에 뒷돈제공
지난 8월 5일 서울 지방경찰청 형사과는 아파트 위탁관리와 용역업체 선정, 관리소장 채용을 놓고 금품을 주고받은 업체 임직원과 아파트 관리소장, 입주자 대표 등 총 79명을 적발하여 이 중 위탁관리업체 대표 박 모(60)씨 등 3명에 대해 배임수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나머지는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 씨 등 위탁관리업체 임직원 11명은 아파트 위탁관리 계약을 따내려고 강원도 속초시 모 아파트 입주자 대표 임모(44)씨에게 1천 400만원을 건네는 등 올 초부터 최근까지 전국 10여개 아파트 입주자 대표에게 모두 2억4천8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04년부터 최근까지 경비, 청소, 소독, 소방방재, 전산 등 자신들이 위탁받아 관리하는 아파트의 각종 업무를 맡기는 조건으로 용역업체 9곳에서 7억8천600만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조사결과 박 씨 등은 자사가 맡은 아파트의 관리소장을 채용하며 김 모(45)씨에게서 500만원을 받는 등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가진 49명에게서 모두 1억4천700만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아파트 위탁관리업체는 일반적으로 동대표 과반수 동의를 얻어 선정한다. 이 과정에서 입주자 대표의 영향력이 막강해 위탁업체들은 계약을 위해 아파트 발전기금, 상품권, 명절 선물 등의 핑계로 입주자 대표에게 금품을 제공한 것이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의 이권은 암묵적으로 인정된 것이어서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대표 선정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 결국 법정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관리소장 채용비리의 경우 주택건설촉진법상 500가구 이상 아파트의 경우, 공동주택관리사 자격증 소지자를 관리소장으로 채용하게 돼있다. 하지만 이에 따라 주택관리사가 과다 배출되는 바람에 이들이 업체에 뒷돈까지 줘가며 채용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 측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업체와 입주자 대표, 관리소장 사이에 먹이사슬처럼 엮인 비리 관행으로 발생한 모든 비용은 고스란히 아파트 관리비에 포함되어 주민들이 부담해야 했다”면서“경찰이 운영하는 아파트 관리비리 신고센터에 적극적인 신고와 제보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관리소장 월급이 200만~250만원임에도 불구하고 450만원으로 책정하여 상당액을 빼돌리기도 해”
아파트 관리소장 월급 부풀려
지난 1999년 경찰이 전국의 아파트 비리를 수사한 결과, 전국 아파트 단지의 22.5%에 이르는 아파트에서 관리비 횡령 등의 비리가 적발됐다. 5838명의 입건자 중에는 아파트 동대표(898명)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925명)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당시‘아파트 주민들의 권리찾기’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됐으나 그 후에도 별 다른 시스템 구조조정은 없었고 지금에 이르러서야 곪았던 상처가 터진 셈이다. 서울경찰청 형사과 관계자는“아파트 단지 관리 실태가 복마전이라고는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며“1차 수사 결과가 언론에 보도된 후 곪을 대로 곪은 아파트 관리 비리 신고가 쇄도하여 다른 사건은 손도 못 댈 정도”라고 말했다. 경찰은 현재까지 접수한 비리 신고 중에 서울 44개와 경기 29개, 인천 8개 단지를 비롯하여 내용이 구체적이거나 범죄 혐의가 짙은 100개 아파트 단지를 추려 수사에 나섰다.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주민은“최초 몇 개월간 관리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는 제안에 솔깃하여 메이저 위탁관리업체 중 하나인 B사에 아파트 관리를 맡겼다. 주민들은 관리소장 월급이 450만원에 이르는 등 관리비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자 그제야 속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경찰 관계자는“대부분 관리소장 월급이 200만~250만원인데 이 아파트의 경우 450만원으로 책정하여 상당액을 빼돌렸다”고 밝혔다. 또한“B사는‘3~6개월 관리 수수료 무료’를 조건으로 위탁관리 계약을 따낸 뒤 이런 방식으로 아파트 청소나 경비, 시설관리 용역 단가를 올려 수수료 무료 분을 충당해왔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단지 내 시설 유지와 하자 보수를 위해 가구별로 미리 걷는 적립식‘장기수선충당금’문제도 심각하다. 입주민 대표나 위탁관리업체들의 충당금 빼돌리기는 노후한 상·하수도관과 엘리베이터, 보일러 수리 교체, 주차장과 화단 정비, 외벽 단장 등 각종 명목으로 사업비를 과다 계상한 뒤 돌려받는 방식을 이용했다. 한 예로 서울 강북의 한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현관 출입문 개선과 폐쇄회로(CCTV)설치 등 자동화 공사를 시행하면서 충당금으로부터 16억 원을 사용했다고 밝혔으나 실제 들어간 공사비용은 14억 원에 그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기도 안산의 한 아파트에서는“현관 유리를 강화유리로 교체한다”면서 1억 3000만원을 사용했으나 일반 유리인 것으로 밝혀져 주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경찰은 충당금으로 옥상 방수작업을 하면서 방수제와 직접 상관없는 제품의 가격까지 부풀려 뒷돈을 챙기는 일도 허다하다고 밝혔다. 경기도 파주의 한 아파트 주민은“부녀회장이 민간업자와 결탁하여 쓸모도 없는 억대의 폐열회수기를 설치하면서 관리비와 공사비를 과다 청구했다”면서 수사를 촉구했다.
형, 아우 하던 사이가 자치회 전·현직 회장 맡으면서 갈등의 골 깊어지고, 칼부림으로 번져 목숨까지 잃어
이권다툼으로 20년 지기도 원수로 돌아서
서울 압구정동 모 아파트 단지 주민회의장에서 큰 소란이 빚어졌다. 100명이 넘는 용역 깡패들이 동원되어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로 번졌다. 이유는 바로 재건축을 둘러싼 아파트 동대표간‘알력싸움’이었다. 최근의 아파트 동대표, 입주자 대표와 재건축·재개발조합의 조합장은 웬만한 기업 CEO에 버금가는 파워를 갖는다. 공사비만 수조 원에 달하는 강남의 재건축조합장 정도면 조 단위 매출 기업의 CEO와 맞먹는 권한을 갖게 되는 셈이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평형에 따라 다르겠으나, 1000가구짜리 단지만 해도 연간 관리비 총액이 40~50억 원에 달한다. 3000가구 이상의 대형 아파트 단지가 흔하고, 더구나 6000가구가 넘는 도시만한 단지도 생겨나고 있다. 이로 인해 그들의 권력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은 아파트 관리업체를 선정하는 데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관리 사무소 소장과 직원·경비들에 대한 인사권까지 주무르고 있다. 권한이 막강한 만큼 이를 둘러싼 이익다툼도 끊이지 않는다. 직무집행정지, 업무방해 등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를 둘러싼 법정싸움도 수없이 벌어지고 있다. 도를 지나친 이권다툼으로 흉기를 휘두르는 행위마저 서슴지 않는다. 최근 부산의 한 아파트 동대표는“입주자대표회의 간 분쟁 중에 감금당했다. 저녁 10시 반부터 4시까지 감금됐다. 통장 내놔라 도장 내놔라 하면서 새벽에 화장실도 못 가게 했다”고 밝혔다.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 자치회의 경우도 이권다툼으로 얼룩진 것은 마찬가지다. 최근 아파트 입주자 대표를 맡았다가 칼부림으로 인해 상해를 입은 A씨는 친하게 지내던 후배마저 잃게 됐다. 형, 아우 하는 사이였던 자치회 현 회장 A씨(63)와 전 회장 B씨(56)는 A씨가 회장이 되자마자 갈등관계에 놓였다. B씨가“선거 서류를 제때 제출하지 않았다”면서“자신이 계속 회장직을 맡겠다”고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 발단이었다. 이에 A씨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가 고소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B씨의 비리가 드러나 둘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B씨가 방수공사를 하면서 업체 측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다. 결국 B씨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자치회 임원들 앞에서 시인서를 쓰는 모욕을 당했다. 그러나 B씨는 시인서를 쓰다 말고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간 후 흉기를 들고 들어와 A씨와 감사 C씨(66)를 마구 찔러 중상을 입혔다. B씨는 범행 직후 흥분한 상태에서 차를 몰고 나갔다가 사고를 내 목숨을 잃게 됐다. 한편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두 입주자 대표회의가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는 법정다툼을 벌였다. 이로 인해 애꿎은 주민들만 지난겨울 난방도 못한 채 추운 겨울을 보내야 했다. 양 측의 입주자 대표가 서로 지지하고 있는 아파트 관리업체 문제로 소송을 벌이면서 아파트 관리비 통장의 지급이 정지되었기 때문이다. 관리비를 통장에서 지급받지 못하자 아파트 관리가 부실해졌고 중앙난방기 부품이 고장 났음에도 수리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이 아파트 관리업체를 쫓아내고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결국 비상대책위원회를 포함해 세 입주자대표회의가 끊임없이 마찰을 빚고 있는 것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추정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연간 공동주택 관리비는 약 5조2900억 원에 달한다. 이런 천문학적 돈이 투명한 감시 시스템도 없이 쓰이다 보니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아파트 입주자대표는 물론, 아파트 관리사무소 경리담당 20대 여직원이 수년간 억대의 관리비를 빼돌린 사건도 발생했다. 아파트 단지 부녀회가 벌이는 불투명한 수익사업도 비리로 이어지기 쉽다. 야시장, 알뜰장터 상인들에게서 받는 자릿세, 게시판 광고료, 재활용품 판매 등 관리비에 포함되지 않는 수입도 무시할 수 없다.
서울시는 관리비 잡수입과 중간관리비는 매월 한 차례씩 건 별로 내역을 공개하도록 하고, 내년 하반기부터 서울시 공동주택 홈페이지에서 단지별로 관리비를 비교할 수 있게 했다.
서울시, 투명한 시스템 만들고 입주자 권리 회복
국토해양부는 상반기 중에‘주택법 시행령 등 관련 규정’을 개정하여 시행할 계획이다. 여기에 ▲동별 대표자 주민 직선제▲관리비 예치금 이자, 부녀회 수입 등 잡수입의 관리비 편입▲외부 회계감사▲주택관릴업자 선정 및 각종 계약시 경쟁입찰방식 도입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정부가 제도를 도입하여 강제적으로 시행하지 않더라도 주민들이 투표로 입주자 회장과 감사를 선정하여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아파트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외부감사 의무화는 자칫 회계사 사무실 운영비를 아파트 관리비에서 지불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서울시는 아파트 관리비 세부 내역을 매월 공개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단지별로 관리비를 비교할 수 있게 하는 등의 방안을 추진했다. 그동안 아파트 관리를 둘러싸고 일어난 비리와 분쟁을 해소하여 투명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서울시는 관리사무소와 입주자 대표회의가 사실상 독점해 온 아파트 관리를 입주민에게 위임하여 권리를 확보케 하고 주민간의 공동체 의식을 높여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킬 방침이다. 그동안 주택의 56.7%, 신규주택의 73%, 재개발 방식의 주택 93%가 공동주택일 정도로 서울에서 아파트는 보편적인 주거형태로 자리매김했다. 아파트 관리비는 연 2조400억 원으로, 절반을 차지하는 일반 관리비와 용역비, 수선유지비에서 공사 계약 담합과 금품제공, 횡령 등의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항상 잔재해 온 것이다. 더불어 아파트 관리에서 주요 의사 결정 과정이 공개되지 않고, 소수가 권리 행사를 해와 전국적으로 입주민간 분쟁이 과거 2005년 158건에서 지난해 966건으로 급증한 사실을 서울시는 밝혔다. 정부나 지방자치 단체에서도 사적 영역이라고 치부하여 방치하여 24개 자치구의 분쟁조정위원회가 2년에 걸쳐 딱 3차례 개최되었고 장기수선충당금 적립과 집행에 대한 공적 관리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처럼 아파트 관리비가 부실 운영되기까지는 입주민의 84%가 관리비 공개 사실을 모르고 있을 정도로 무관심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서울시는 아파트 관리의 투명성과 공동체 의식을 높이기 위해 공동주택관리규약을 13년 만에 수술대위에 올려놓았다. 또한 시민 제안 등을 토대로 기획한 3개 분야 25개 사업에 4년간 182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공동주택 정책의 방향을 기존의 주택공급 위주에서 유지관리와 공동시설 공급으로 전환하여 대표자와 관리소장 위주에서 주민 위주로, 자율관리에서 공공의 적극적 지원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아파트 평가 요소에 교통, 교육, 환경 외에 ‘이웃’이 추가되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관리비 잡수입과 중간관리비는 매월 한 차례씩 건 별로 내역을 공개하도록 하고, 내년 하반기부터 표준 회계관리 프로그램을 보급하여 서울시 공동주택 홈페이지에서 단지별로 관리비를 비교할 수 있게끔 하였다. 관리업체 선정과 경비, 청소, 소독 등 용역사업에서 총액기준 최저가 입찰을 통해 부실업체가 선정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노무비와 재료비, 일반 관리비 등 상세내역에 의한 입찰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한편 장기수선충당금이 합리적으로 활용되게끔 2년에 1차례 이상 감독하고 자치구에 공동주택 관리 자문단을 운영하여 2억 원 이상 공사와 1억 원 이상 용역 등에는 자문을 받게 할 계획이다. 아파트 주민간 공동체 의식 강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도 마련됐다. 시는 또 신축 공동주택에 들어서는 경로당, 보육시설, 도서관 등 커뮤니티 시설 설치기준을 현재 가구당 0.3~0.6m²에서 1.3m²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주민 교류에 기여하는 사업을 공모하여 매년 1000만원 한도 내에서 사업비를 지원하고, 자치구 지원도 시설 유지 보수보다는 공동체 사업에 우선순위를 두기로 했다. 이번에 개정되는 공동주택관리규약은 각 공동주택의 의사결정기구가 자율적으로 채택하는 것으로,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분쟁 발생 시에 판단 근거로 효력이 있다고 서울시는 설명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정비사업과 공급 위주의 하드웨어적 주택정책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이웃 주민과 공동체 관계를 따뜻하게 복원하는 선진형 주택정책을 통해 아파트의 주민주권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NP>
※ 아파트 관리비리 신고센터(☎02-723-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