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의 조상들과 그들에 얽힌 설화

혈통의 비범함과 고려 건국의 당위성 확보

2010-11-30     이민선 기자
왕건은 고려를 건국한 인물로 후삼국이 쟁패를 겨루던 시기에 활약했다. 그는 신라와 후백제를 통합해 후삼국을 통일한 전지적인 인물로 처음에는 궁예의 수하로 있다가 궁예의 실정이 거듭되자 918년 궁예를 몰아내고 철원에서 왕위에 올라 고려 태조가 된 인물이다. 왕건은 역사적 인물임과 동시에 설화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조상들에 대한 설화는 [고려사]에 실려 있다. 왕건의 조상은 호경, 강충, 보육, 진의, 작제건, 용건 순으로 거론된다. 그 내용에는 신이한 행적이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혈통의 비범함과 고려 건국의 당위성 확보를 위한 목적과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편년통록>, 왕건의 조상들에 얽힌 민담
김관의의 <편년통록>에는 왕건의 조상들에 얽힌 민담이 소개되어 있다. <고려사>의 편자들은 <편년통록>에 소개된 민담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일축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사실적인 부분들이 담겨 있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일단 <편년통록>에는 왕건의 조상을 당나라 왕실과 연관시키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자칭 성골장군(聖骨將軍)이라고 부르며 백두산으로부터 전국 산천을 유람하고 다니던 호경(虎景)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전국을 떠돌다가 부소산 왼편에 자리 잡은 산골마을에서 장가를 들어 그곳에 정착하였다. 그는 체격이 우람하고 기골이 장대하여 활을 잘 쏘았고, 집안도 부유한 편이었다. 아들을 얻지 못해 사냥을 유일한 즐거움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마을 사람 아홉 명과 함께 근처에 있는 평나산에 매를 잡으러 갔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돌아오지 못하고 굴속에서 잠을 첨하게 됐는데, 그 굴로 호랑이 한 마리가 찾아들어 입구를 막고 울부짖는 것이었다. 함께 간 아홉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자신들 중 한 명의 목숨을 호랑이에게 바치기로 결심하고 모자를 던졌다. 안타깝게도 호랑이는 호경의 것을 물었다. 호경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갔는데, 순간 굴이 무너져 내렸다. 결국에 나머지 아홉은 모두 죽고 호경만이 살아남았다. 산을 내려간 호경은 아홉의 장사를 지내고 함께 산신에게도 제를 지냈다. 그때 홀연히 산신이 나타나 자신과 혼을 맺기를 청했다. 그렇게 호경은 산신과 부부가 되어 산의 대왕이 되었다. 하지만 호경은 그 뒤에도 옛 처를 잊지 못해 항상 처의 꿈에 나타나 그녀와 동침을 하였고, 그녀가 결국 아들은 낳았는데, 그의 이름을 강충이라 하였다. 후에 강충은 이제건과 손호술 두 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손호술은 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훗날 지리산으로 출가해 중이 되어 이름을 보육으로 고쳤다. 보육에게는 두 명의 딸이 있었는데 둘 째 딸의 이름은 진의였다. 그녀는 얼굴이 곱고 재주와 지혜가 많은 여인이었는데, 진의가 성년이 되었을 무렵, 그녀의 언니가 이상한 꿈을 꾸었다. 언니는 꿈에서 오관산 마루턱에 앉아 오줌을 누었는데, 그 오줌이 흘러 천하에 가득 차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진의는 언니에게 비단치마를 주고 꿈을 사기로 했다.

용건과 몽부인으로 추정되는 왕건의 부모
당 현종이 아직 왕자로 있던 753년에 당의 숙종이 산천을 두루 유람하다가 예성강 강나루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때 꿈 속에서 올랐던 곡령재 위에 섰다. 산 아래를 보니 사방이 고요하고 위풍이 서려 있어 나라의 도읍으로 부족함이 없는 듯 보였다. 그날 당 숙종은 보육의 집에 묵게 되는데, 보육은 그가 중국의 귀인이라고 판단해 자신의 둘 째 딸 진의를 그의 방에 들여보낸다. 숙종이 보육의 집에 머문 지 한 달만에 진의에게는 태기가 느껴지고 그리고 그가 떠나면서 그녀에게 아들이 태어나면 자신의 활과 화살을 전해주라는 말을 남긴다. 후에 진의는 아들을 낳고 그를 작제건이라 이름 짓는다. 작제건은 열여섯 살이 되어 아버지를 찾아 당나라로 떠난다. 그 중에 불의의 상황으로 용왕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용왕은 그간 자신을 괴롭혀왔던 늙은 여우 한 마리를 잡아줄 것을 청한다. 작제건은 용왕의 청에 따라 여우를 죽이게 되고, 자신의 소원을 들어준 작제건에게 용왕은 소원을 하나 들어주기로 한다. 작제건은 동방의 왕이 될 것을 원했지만 여의치 않아 용왕의 사위가 되기로 한다. 그렇게 용왕의 장녀 처민의와 결혼을 하고 아내 용녀와 함께 다시 개성으로 돌아온다. 작제건은 송악 남쪽 기슭에 터전을 잡았는데, 그곳은 곧 옛날에 강충이 살던 곳이었다. 작제건은 용녀에게서 네 아들을 얻었는데, 장남을 용건이라고 하였다. 용건은 후에 이름을 융으로 고치고 자는 문명이라고 하였으니 이가 곧 왕건의 아버지다. 용건은 어느날 꿈에 한 미인을 만나 부부가 될 것을 약속했다. 꿈을 깨고 송악산 영안성으로 가는 길에 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가 바로 꿈에서 본 여자였다. 그래서 용건은 그녀와 혼인했다. 사람들은 용건이 꿈에서 보았다 하여 그녀를 몽부인이라 불렀다. 그리고 혹자는 말하길 그녀가 삼한의 어머니가 되었기에 성을 한씨라고 했다고 한다. 그녀가 곧 왕건의 어머니 한씨다. 출처: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