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교화가 둘이 아니다

중생구원의 보살불교를 실천하는 도각스님

2011-04-12     이태향 기자
한국불교태고종 선암사 도각스님

하심(下心). 나를 낮추고 남을 공경하는 마음을 말한다. 자연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낮아지려고 하는 것이 자연인 반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하고 앞으로 나서려고 하는 것이 인간사이다. 불교에서 하는 마음공부는 낮은 곳에 머물도록 수행하는 것이며 이 겸손한 마음이야말로 지극한 경지라고 가르친다. 또 한편 하심(下心)이라고 스스로 아는 순간 이미 그것은 하심이 아니라고 하니, 하심의 공부야 말로 진정으로 나를 닦아가는 수행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중생들과 고통을 나누며 보살불교를 실천하는 태고종

한국불교태고종은 고려 말의 고승인 태고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 1301~1382)를 종조로 하는 한국불교의 대표적 교단이다. 선(禪)과 교(敎)의 원융을 추구하는 통불교사상은 신라시대 때부터 싹터 태고보우국사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태고종은 자기 수행만을 위주로 하는 은둔적이고 폐쇄적인 소승적 태도를 지양하고 사회 속에 뛰어들어 직접 중생들과 고통을 나누며 중생구원의 보살불교를 실천하는 ‘대승교화종단’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 가르침의 바탕은 ‘하심(下心)’에서 출발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사바세계의 사람들에게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야 합니다."
도각스님(한국불교태고종 선암사)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 보살의 지상과제이지만 그와 함께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의지도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어린 시절 몸이 병약하여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하기보다는 인생의 의미와 우주의 원리를 깨우치기 위한 노력을 더 하게 되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깨달음을 구하는 일이 곧 중생교화이고, 중생교화하는 일이 곧 깨달음의 길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上求菩提 下化衆生]는 말은 먼저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이 아니라 깨달음을 구하는 일이 곧 중생을 교화하는 일이며, 중생을 교화하는 일이 곧 깨달음을 구하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도각스님은, 지장보살이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한 것도 깨달음과 교화가 따로 있지 않음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이 가없어도 건지고야 말리라.
번뇌무변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가 끝없어도 끊고서야 말리라.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이 한없어도 배우고야 말리라.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가 위없어도 이루고야 말리라.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을 하는 불자들이 가져야 할 도덕률을 ‘상구보리(上求菩提)’라고 합니다. 자신을 위해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지요. 이와 더불어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수행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깨닫지 못 한 타인을 제도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도 이롭게 하면서 타인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공동체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각스님은, 정법(正法)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소유에 관한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진정한 보살행이 가능하게 됩니다. 사람은 인과(因果)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떤 씨앗을 심는가에 따라서 열매 맺음은 결정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매사에 수행하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꼭 산중에서 수행에 몰두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살아가면서 개인의 업장을 소멸시키기 위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본인의 업은 변경되는 것입니다.”
출가수행을 근본으로 하되 출가(出家)와 재가(在家)가 다르지 않고, 선(禪)과 교(敎)가 둘이 아니어서 둘 사이에 걸림이 없어야 한다고 하는 대승불교의 정신을 바탕으로 도각스님은 수행과 중생교화에 힘을 쏟고 있었다.<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