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있는 존엄성을 깨닫고
새겨듣는 법광사 태담 큰스님의 법문
2011-04-29 이태향 기자
자비(慈悲). 자(慈)는 최고의 우정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우정을 말한다. 비(悲)의 원래 의미는 탄식한다는 뜻으로 중생의 괴로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민의 정을 나타내는 말이다. 석가탄신일을 맞는 5월. 대자대비(大慈大悲)라는 가르침에 대해 다시 한 번 새겨볼 일이다.
자비로움은 인간의 본성
“티벳 속담에, 치료의 효과는 의사가 얼마나 인정이 많은지에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가 친절하지 않으면 치료의 효과가 떨어지고 의사는 명성을 잃게 됩니다. 자비로운 동기는 어디에서나 아주 중요합니다. 변호사나 정치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자비로운 동기가 있다면 추문에 빠지지 않을 것이고 해당 지역 공동체가 더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태담 큰스님(법광사,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http://cafe.daum.net/tdn0108)은 자비로운 동기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으며 인간의 본성은 자비롭고 부드럽다고 했다.
“우리 손의 구조는 때리기보다 포옹하는 데 더 적절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때리기 위한 구조라면 손가락이 필요 없겠지요. 그래서 권투선수들은 더 강하게 치기 위해서 주먹을 쥐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체의 기본 구조도 자비롭도록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사랑을 보여주는 훌륭한 스승에게서 배우면 학생들의 마음속 깊이 배움이 남아 있게 됩니다. 애정을 보이지 않는 선생에게 효과적으로 배울 수는 없습니다. 스승에 따라 학습효과는 달라지는 것이지요.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유일한 문제는, 자비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실행하는 것
“진정한 자비는 다른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극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사람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관계없이 그 사람의 안녕에 대해 염려하게 됩니다. 이것이 자비심입니다.”
태담 큰스님은 천성적으로 자비롭고 자비가 필요한 우리 존재들이 자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자비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사랑과 자비심이라고 여기지만 애착인 경우도 많습니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고 고통을 극복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면 사랑도 아니고 자비도 아닙니다.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태도가 바뀌면 친밀한 감정도 사라지게 되는 경우라면 이것이 애착이겠지요. 진정한 자비는 편견 없는 이성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비록 세속에 있어 갖가지 세상일에 힘쓰더라도 법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나니
바르게 생각하는 힘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 마음을 하나로 통일할 수 있나니
오직 지혜가 밝은 사람이라야 하루 속히 열반의 고요함을 얻으리라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은 내 안에 있다
-절대존엄한 나 자신을 알아차려야
“우리는 종종 나를 무시합니다. 나를 남과 비교해서 내가 가지지 못 한 것을 찾아내기도 하지요. 때로는 나의 능력을 과소평가해 시도해보지도 않고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은 내 안에 있습니다. 상상할 수조차 없는 많은 힘이 내재해 있는데 정작 내 안에 있는 것들은 살펴보지도 않고 남의 것에 눈을 돌린단 말입니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살펴보십시오.”
태담 큰스님은 불교의 수행이라는 것이 생활과 유리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지성을 활용하여 지혜롭게 생각하고 자비심을 이끌어내는 태도를 통해 삶의 본질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 수행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비로소 종교가 의미 있게 된다는 말이다.
“부처님이 말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은 ‘나는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존귀하다’는 뜻으로 존재의 절대존엄성을 선언한 것입니다. 재산이나 지위와 상관없이 존재 그 자체가 그냥 귀하다는 뜻입니다.”
석가탄신일을 통해 되새겨 볼 내용은 바로 이 말일 것이라고 태담 큰스님은 강조했다. 법광사는 불교교실을 개원해 불경의 지혜를 알기 쉽게 강의하고, 건강을 위한 명상교실과 요가교실도 운영하고 있었다.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종교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생활의 활력이 되고 위로가 된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