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않아도 될 것들을 보고, 이해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이해해야 하는 사람들
경찰청 권일용, 이주현 프로파일러를 만나다
2011-09-06 김엘진 기자
프로파일러란?
흔히 알고 있듯이 CIA나 FBI는 벌써 몇 십 년 전부터 전문 프로파일러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프로파일러란 명칭이 들어온 것은 불과 20년쯤 전이었고, 그 명칭을 사용할 수 있을만한 사람은 단 한 명 권일용 프로파일러 뿐이었다. 2004년 유영철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전문적으로 사이코패스 등 이상심리ㆍ행태 범죄를 분석ㆍ연구하여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사실 이전에 벌어진 한국의 범죄는 생활범죄에 가까웠다). 서울 경찰청에서는 2005년을 시작으로 심리학 및 사회학 전공자를 범죄분석요원으로 특별 채용했다. 심리학과 사회학 석ㆍ박사를 대상으로 공무원 채용기준에 따라 채용하였으며 지금은 따로 추가 모집계획은 없다. 2005년, 2006년, 2007년 총 38명의 프로파일러가 뽑혔으며 이들은 각 지방청에 한두 명 정도로 나눠 파견 된 상태다. 프로파일러의 주요 업무는 살인ㆍ강도 등 중요 범죄자와의 면담 및 현장재구성을 통한 범죄분석으로, 무동기ㆍ연쇄ㆍ이상 범죄 등 강력사건 발생 시 범인 유형 및 범행동기 분석을 통해 범인의 거주지를 추정, 참고인 진술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분석하는 등의 수사지원이다. 잘 알려진 활동으로는 2009년 1월,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해결(범행동기와 범인의 거주지 등 범인의 특성을 분석, 검거), 2010년 2월 한국형 연쇄 강간범 거주지 예측 및 알고리즘 개발(미(美)프로그램 대비 예측력이 10배), 2010년 3월 김길태 사건 해결(범인 은신처 등 분석, 검거), 2011년 3월 울산 봉대산 연쇄 산불 사건 해결(범인 거주지 및 직장 예측 적중, 연령대, 전과관계, 성격 특성 등 분석)등이 있다.
* 국내 제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위와, 특채 3기 이주현 프로파일러를 만나다.
Q. 프로파일러가 된 계기가 있다면?
권일용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과학수사(CSI)를 하고 있을 땐데, 당시 과학수사팀을 맡고 계시던 윤외출 계장님께서 어느 날“공부를 더 해서 현장감식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정보를 모아보라. 범죄자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선 어떤 범죄자가 어떤 현장을 남기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는 프로파일러란 명칭도 사용하지 않았을 때고, 그런 업무를 한 전례도 없는 상태였죠. 우선 현장 범죄분석요원으로 발령을 받고, 이미 잡혀온 범죄자를 인터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은 어떠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방식으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범죄자들의 노트가 만들어졌습니다. 노트 속 범죄자가 100명이 되고 200명이 되고, 700명이 되자 어떤 범죄현장엘 가게 되면‘아, 범인은 어떤 캐릭터의 사람이겠구나’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주현 이런 직업이 있다는 건 알고 있고 막연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알려진 부분이 없어 답답하던 차에 경찰청에서 특채를 뽑는 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굉장히 특이한 직업이잖아요, 처음엔 그런 희소성에 매력을 느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원래 사회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만큼 인간의 심리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은 당연하고요.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일반 대학을 다녔고, 일반 직장(IT업무를 이 년간 했습니다)생활을 해온 터라, 초반에는 경찰조직에 적응이 안 되는 부분도 있었던 걸로 기억나요. 업무자체가 오래되지 않아 기존 과학수사계와 공조하는 부분에서도 매끄럽지만은 못했었고요.
Q. 프로파일러의 업무에 대해 설명해 달라.
권일용 매일 아침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지난밤 살인사건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사건의 무게와 지역, 현재 상태에 따라 현장으로 즉시 출동하거나 회의를 소집하게 되죠. 회의에서는 벌어진 사건과 가장 유사했던 다른 사건과 비교ㆍ분석하고 범인을 추정하는 일을 하고요. 혈흔, 족적, 몽타주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현장을 재구성합니다. 그렇게 재구성된 현장의 특징에 따라 범인의 심리상태를 추정하는 것이 바로 프로파일러의 역할입니다. 특히 연쇄살인이 일어났을 경우가 가장 급합니다. 또 언제 다음 살인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죠. 프로파일러는 단지 범죄심리분석 뿐 아니라 혈흔분석과 최면수사교육 등도 받고 있습니다. 흔치 않은 일이지만 혹시 사건이 없을 경우에는 우선 장기미해결 사건을 재분석하고 확인합니다. 또한 기타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행정업무도 처리하며, 강의를 하기도 합니다.
Q. 프로파일러이기 때문에 일상에서 불편한 일이 있다면?
권일용 출퇴근 시간 자체는 정해져있지만 사건이 터지면 언제든 출동해야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계획을 세우기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친구를 만날 시간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시간을 정하는 것은 저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범인에게 달린 것이죠(웃음). 물론 한 번 범인 검거를 위해 잠복할 경우엔 더 심각해집니다. 김길태를 검거했을 당시엔 11일이나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거든요. 이런 저런 이유들로 살아가면서 점차 주변인들에게 신뢰를 잃기도 합니다(웃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이주현 확실히 평소에 안전에 관해 지나치게 결벽증을 보이게 되는 면이 있어요. 이건 저뿐 아니라 모든 프로파일러들이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동기 중에 프로파일러 부부가 있는데, 결혼하고 집을 구하는데 세 달이 넘게 걸리더라고요. 집을 볼 때마다, 그 집이 어떤 범죄에 취약한지 알게 되고, 뭐가 위험한 지 따지게 되고(웃음). 물론 선배님 말씀처럼 개인적인 계획을 세우기도 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든 그 일을 한다는 것은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잖아요. 일을 할 때는 일의 특성에 내가 맞춰야 하는 것이지, 일을 나 편한 대로 맞출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Q.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권일용 사실 이런 질문은 매번 받고 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제가 경험했던 수많은 살인사건을 한 건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건이든 모두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사건이며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똑같은 억울한 사건입니다. 그런 부분은 아니지만, 기억나는 건 하나 있네요.‘2006년 정남규연쇄살인사건’을 좇을 때였습니다. 정남규 집에 갔더니, 저에 대한 스크랩북이 있더라고요. 자신을 잡으려는 우리를 주시하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후엔 수사법에 대해 말하기가 더욱 조심스러워지기도 했습니다.
이주현 처음 채용되었을 때 광주청으로 발령이 났었어요. 발령받은 지 일 년 만에‘광주 여신도사건’이 터졌습니다. 한 교회 옆에서 두 명의 신도가 각각 살해당한 사건이었어요. 기본적으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피해자 위주로 수사를 진행합니다. 원한, 돈, 치정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순서죠. 그런 식으로 수사를 하면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이면 대략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드러나고요. 그런데 그 사건에는 전혀 그런 게 없었어요. 당시 저희 프로파일러들은 사건이 일반적인 살해사건과 달리 범인의 개인적인 욕구에 의한 연쇄살인이라고 추정했고, 그때까지의 수사방향과 다른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사건은 해결되었는데, 예상대로 피해자와 직접적 관계가 없는 연쇄살인이었습니다. 다문화가정에서 여성이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도망을 가자, 평소 여성이 다니던 교회의 도움을 받아 도망갔을 거라고 생각한 남편이 무작위로 교회 다니는 사람을 살해한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프로파일러와 수사팀의 방향이 아주 다른 경우는 많지 않은데, 이때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고, 전혀 방향이 달랐던 일이라서 기억에 남네요.
Q. 수사 업무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떤 것인가?
권일용 사건이 발생하고 그때마다 모든 상황을 판단ㆍ분석해서 범인을 지목하고, 범인의 은신처를 추정하지만, 실제로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항상 힘듭니다. 막상 범인을 검거하고 나면 그때까지의 추리가 맞았다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 전까지는 완전히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범인은 분명 이 안에 있을 것이다’라는 100%의 확신이 전혀 없이(그런 건 신(神)만이 알지 않겠어요)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과 부담은 20년 경력을 쌓아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사실 제 실수로 저만 피해를 입는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아요. 문제는 제가 잘못 판단한 사이에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분명 그 죄책감과 자괴감은 평생을 따라다닐 테니까요.
이주현 선배님과 통하는 대답이네요. 처음 사건을 접하고, 범죄자와 인터뷰를 한 후가 참 어렵습니다. 몇 십 년을 살아왔고 강력범죄를 저지른 자를 단 몇 시간의 인터뷰로 완전히 파악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파악한 정보를 스스로 신뢰하고 수사팀에 전달한다는 것이 언제나 부담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Q. 프로파일러가 된 것을 후회하는 순간이 있다면?
권일용 일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평범하고 멀쩡한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가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그게 안 됩니다. 이 직업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항상 살인자, 강간범, 사이코패스 등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과 부딪히고,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입장에 서려고(그들의 편이 되겠다는 게 당연히 아닙니다. 심리를 분석하기 위해선 그들이 되어봐야 하는 거니까요) 노력하며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건 정말 생각보다 많이 힘든 일입니다. 신입 프로파일러들에게도 그런 얘길 했었어요. 평생 살면서 안 봐도 되는 것들을 보는 것이 생활이 될텐데, 정말로 괜찮겠느냐고. 우리는 정말 매일매일 살인사건을 접하거든요. 그것도 생활범죄가 아니라 강력하고 잔인한 범죄만을 접합니다.
이주현 저는 아직 경력이 오래되지 않아서일까요(웃음). 물론 업무는 언제나 벅차고, 이해할 수 없는 범죄자와 마주앉아 인터뷰를 하는 일은 힘겨운 일입니다만, 아직 후회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Q.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가장 뿌듯한 순간은 언제인가?
권일용 ‘그럼에도 불구하고’와‘그렇기 때문에’가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그럼에도 불구하고’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비전문가들은‘그렇기 때문에’도망간다고 해요. 제가‘그럼에도 불구하고’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요. 피해자와 유가족의 모습 때문입니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피해자의 마지막 모습을 보거나, 피해자의 유가족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그 누구도 이 일을 버리고 떠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뼛속까지 경찰인가 봅니다.
이주현 사실 막상 경찰청에 들어오기 전에는 프로파일러가 회의실에서 세미나를 하는 것만 상상한 적도 있었어요. 이제는 사건현장에서 뛰고, 시체를 만지는 일이 일상이 되었지만요(웃음).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그런 모든 업무가 저는 좋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생생한 현장을 보고 분석하고, 제 의견이 수사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하고 감사합니다. 현장에 나갈 때는 언제나 설레는 느낌도 받고 있습니다.
Q. 프로파일러는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일이 필수라고 생각되지만, 또한 피해자의 입장에서 분노하는 마음 없이는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어떤 마음이 주(柱)가 되는지 궁금하다.
권일용 물론 객관적인 시선과 분노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후자 쪽에 가깝습니다. 피해자 입장에 서서 범인을 추적하는 것 같아요, 기본 적으로는. 그렇지만 사실 범인의 입장에서 사건을 생각해보지 않으면 또한 범인을 추적하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범인을 이해해야만 잡을 수 있는 거죠. 정남규, 유영철 등은 추적하는 데 이 년씩이나 걸렸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어떤 상대에게 집중하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범인화’되고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범인을 이해해야지만 그들의 움직임과 심리를 추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이는 필수적인 과정이기도 합니다(마치 영화배우들이 캐릭터에 빠지는 것처럼요). 어떤 경우에는 정말로 범인의 입장이 이해돼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이해는 할 수 있되, 용서할 수는 없다는 거지만요. 특히 살인이나 성폭력은 절대, 어떠한 이유로도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요즘엔 매체를 통해서 불우한 어린 시절이 범죄자들의 면죄부처럼 다뤄지는 경우가 있던데, 저는 그런 시선에는 반대입니다. 물론 불우한 환경이 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다고 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게 조금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환경에서라도 훌륭히 중심을 지키는 사람들이 더욱 많으니까요. 아, 참고로 정신분열이나 망상증 등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범죄를 더욱 저지르기 쉽다는 편견에도 반대합니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의 범죄 발생률은 극히 낮아서 관련 연구에서는 정신질환자의 범죄는 거의 0%로 다루고 있을 정도입니다.‘사이코패스 테스트’도 요즘 유행한다고 알고 있는데, 저도 그거 반 이상 체크할 걸요. 그런 것과 실제 범죄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Q. 미래의 프로파일러를 꿈꾸는 사람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권일용 솔직히 프로파일러의 입장에서, 누군가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다고 하면, 우선 말릴겁니다(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되고 싶다면, 한 가지 분야만 공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프로파일러를 심리학, 사회학 전공자들로 뽑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심리학, 사회학 책만 열심히 읽는 것에는 반대라는 이야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입니다. 세상은 계속 변화하고, 그에 따라 범죄는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FBI나 CIA와 달리 우리나라에 프로파일러란 직업이 늦게 생긴 이유도 그겁니다. 한국에서는 90년대 중반‘막가파’,‘지존파’등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강력범죄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없었어요. 90년대를 넘어가며 경제적ㆍ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생기고, 사회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며 사회를 대상으로 분노하고, 부자를 혐오하는 자들이 생기고, 그렇게 유영철도 등장한 겁니다. 범죄는 사람이 저지르지만, 그 사람을 만들어내는 게 사회입니다. 그러니 지금 사회를 보는 눈과, 앞으로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프로파일러가 되든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든 말이에요. 저 역시 미래의 범죄자를 잡기 위해 퇴직하는 그 날까지 계속해서 공부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열정만으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소질만 가지고 되는 일도 마찬가지로 없어요.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다면 우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과, 사람과 사건을 파악하는 기본적인 감각이 필요합니다. 거기에 만 시간을 노력할 수 있는 열정 또한 필수적입니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