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내놔라”
-아들 병원비, 손자 등록금, 병원비로 쓸 돈이 없어...후순위채 투자자들은 권리 행사 늦어질 전망-
2011-09-29 박소담 기자
“저축은행들이 저지른 불법 가운데 약 90%가 대출한도 위반”
19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이번 하반기 저축은행 경영진단에서 동일인 대출한도 위반, 대주주 신용공여 등 불법 행위가 상당수 포착됐다. 특히 동일인 대출한도 위반은 영업정지 저축은행 7곳뿐 아니라 정상으로 판정된 저축은행들에서도 상당수 적발돼 업계에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 관계자는“저축은행들이 저지른 불법 가운데 약 90%가 대출한도 위반”이라고 밝혔다. 대출한도는 동일인에 대한 대출 총액이 저축은행 자기자본의 20%(특수 관계인을 포함하면 25%)를 넘지 못하게 한 것을 말한다. 이 관계자는“건설경기 위축 때문에 사업장에서 공사가 진척되지 않자 다른 사업자들을 무분별하게 끌어들여 추가 대출을 해 준 사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예금자의 돈이 대주주 소유 업체의 자금줄로 전락한 신용공여 사례도 적발됐다. 한 저축은행은 경기도 소재 개발 프로젝트 2곳에 전체 자산의 70%인 6400억원을 대출해 주기도 했다. 특히 이들 사업장은 당초 별도의 시행사가 있었지만 현재는 대주주의 직영 사업장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금감원 관계자는“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지만 차명계좌를 동원한 대주주 불법 대출 사실도 일부 포착한 상태”라고 밝혔다. 다만 금감원은 영업정지 된 저축은행들이 상반기 부산지역 저축은행들처럼 특수목적법인(SPC)을 동원한 대규모 대출을 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신응호 부원장보는“금감원의 검사 수준으로는 SPC를 직접 조사할 권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실제 사업을 영위하지 않은‘페이퍼컴퍼니’들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면서도“이번에 드러난 사례들은 120여개씩 SPC를 조직적으로 만들었던 사례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영업정지 제일ㆍ에이스저축銀, 한 사업장에 불법대출
영업정지 조치를 받은 제일저축은행과 에이스저축은행이 자기자본의 20%까지 대출해주는 규정을 어겨가며 경기도 일산의 고양터미널 사업에 초과 불법대출을 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은 21일 제일과 에이스저축은행이 경기도 일산의 고양종합터미널 건설 사업에 지난 2002년부터 각각 1600억원, 4500억원을 대출하는 등 불법적인 내용이 발견돼 검찰에 이를 고발했다고 밝혔다. 이들 저축은행은 당초 300억원씩을 대출했으나 사업이 진척되지 못하자 추가로 대출을 해 기존 대출의 이자를 갚는 방식으로 증액대출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동일인 대출 한도에 걸리자 공동 사업자를 차명으로 내세워 우회적으로 대출해주었다는 것이다. 사업 진척이 어려워지자 고양터미널 측은 대출금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터미널 부지 용도를 변경해 상업시설 부지를 늘리는 방식으로 설계변경을 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 저축은행은 분양 피해자들의 민원을 무마하기 위해 금감원이 사실상 불법대출을 묵인해주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금감원은 이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며 이들 저축은행의 불법대출 과정도 살피기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2005년 9월에 관련 민원이 제기돼 저축은행에 민원을 원만히 해결하라고 지시했고 10월에 민원인이 민원을 취하했다”며“개별 대출자들이 대출해 고양터미널 사업에 투자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동일 사업자에 대해 대출을 해준 것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저축은행들은‘고유 영역 상실→새로운 투자처 모색→소액신용대출 부실→정부의 규제 완화 및 업계내 M&A→대형화→PF 부실 직격탄’이라는 궤도를 그리며 생존해왔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몸집이 계속 커졌고 시중은행 보다 높은 수신금리를 만회하기 위해 고수익을 쫓는‘쏠림현상’이 나타났다. 쏠림의 결과는 늘‘부실 대출’이었다.
도대체 왜? 문제의 시발점은 무엇?
1. 무분별한 PF대출 바람과 정부의 관리ㆍ감독 소홀
저축은행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은행의 대출금지 대상이었던 음식, 숙박, 유흥업소에 대한 대출 규제가 1998년 1월 폐지되면서 은행들에게 고유 영업 무대를 내주게 되었다. 이로 인해 새로운 활로로써 개인신용대출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렇듯 소액대출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당시인 2004년, 카드대란 당시에 연체율이 60.8%로 치솟으며 저축은행의 소액대출은 2007년 말 총규모 대비 1.8%로 축소되었다. 이후 부동산시장의 호황과 이에 따른 PF대출 수요의 증가는 저축은행이 PF대출 바람을 가속화 시켰다. 이러한 PF대출로의 쏠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전체 대출의 30%를 넘지 못하도록‘30%’룰을 제정하였지만, 정부당국의 허술한 관리감독과 저축은행이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여 PF대출을 일반대출로 둔갑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PF대출이 이루어졌다.
2. 금융당국의 규제 실패, 대형화의 기폭제
2005년 말 8.8클럽(BIS비율 8%이상, 고정여신비율이 8%이하인 우량저축은행)에 대한 대출규제 완화가 저축은행 부실화의 기폭제로 작용하게 된다. 우량저축은행으로 분류된 저축은행에 한하여, 여신한도를‘80억 원 이내’에서 자기자본의 20%까지 완화하게 된 것이다. 금융당국의 본래 취지인 서민금융을 활성화하고 이중규제(80억 또는 20%이내로 저축은행은 이중규제를 받고 있었음)를 완화하는 차원에서 도입한 규정이 오히려 독이 되어 금융업계를 혼란에 빠뜨리게 된 것이다. 더불어 1인당 5000만원까지 보호되는 예금자보호제도가 저축은행에까지 똑같이 적용됨으로써 저축은행이 고금리 예금을 대거 유치하게 되어 대형화의 초석이 되었다. 또한 금융감독위원회가 저축은행간의 자율적인 M&A를 활성화하기 위해 인수 이후에도 BIS비율이 7% 이상이거나 일정 기간 내에 7% 이상을 달성할 수 있으면 다른 저축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감독규정을 2005년 말 변경하였다. 이러한 금감위의 저축은행간 대형화 장려조짐은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에서도 이어졌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한 저축은행에 서울 등 영업구역 외에 지점을 최대 5개까지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저축은행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IMF 외환위기 직후부터 2004년까지 정리된 저축은행이 130곳에 이르렀던 과거와 비교하여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1개가 줄어드는데 그쳤다.
금융위가 제시한 해결책, 과연 최선인가
1. 1금융권 구원투수로의 등반
금융위는 부실저축은행 정리 차원에서 우리, 하나, KB금융지주에서 저축은행과의 M&A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경제의 혈액순환 역할을 담당하는 은행의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저축은행 리스크가 해소되지 못하고 사회 저변으로 확산될 경우 결국 은행에까지 그 여파가 미칠 것이라는 예측이 있어서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규제와 관리, 감독의 역할을 하지 못했던 금융감독기관이 제1금융권으로 그 책임을 떠넘긴다는 비판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2. 공동계정을 통한 책임연대
공동계정을 통한 예금자구제방안도 고려중이다. 공동계정은 은행, 증권, 보험, 저축은행이 예금보험기금 중 일정부분을 공동으로 각출하는 것으로 저축은행 파산에 대비해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가용 한도가 9000억 원에 지나지 않아, 3조 2000억 원에 달하는 저축은행의 적자를 채우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예금자의 돈으로 저축은행의 빚을 충당해주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정부가 앞장서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들을 수 있다.
저축은행 7곳이 영업정지... 예금자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해
이와 같은 저축은행들의 불법 행위로 인한 투자자들의 피해는 극심할 전망이다. 한 관계자는“부산저축은행의 전례 등을 살펴보면 5000만원 초과 예금자들은 초과분의 절반 정도만을 돌려받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그나마 후순위채 투자자들은 권리 행사가 늦어져 피해를 보상받지 못할 확률이 크다”고 덧붙였다. 손자의 등록금이나 결혼자금, 병원비로 써야 하는 돈까지 급하게 써야 할 예금이 묶인 예금자들은 가지급금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지난 달 22일 부터 1인당 2천만 원 한도로 가지급금을 신청하면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받을 수 있긴 하나 신속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5천만원 이하 예금자는 이자도 챙겨봐야 한다. 영업정지 기간에도 이자가 붙기 때문이다. 다만, 영업정지 저축은행이 회생절차를 밟거나 다른 금융기관으로 계약이 이전될 때는 약정이율을, 파산 절차를 밟을 때는 소정의 이자(현재2.49%)를 받을 수 있다. 가족명의로 나눠 예금한 것도 금융실명법에 따라 돈을 맡겼다면 보호를 받는다. 비밀번호나 인감, 이자를 받는 계좌가 같아도 예금 명의자별로 원리금 5천만 원까지 보장이 된다.‘멀쩡한 저축은행에 예금하고도 불안한 마음에 중도해지하는 것은 손해가 크다’고 관계자들은 밝혔다. 예를 들어 4천500만 원을 1년 만기 5.5% 이자 상품에 가입했다면, 만기직전에 중도 해지할 경우 손실액이 150만 원이 넘는다. 그러나 잇따라 쓰러지는 부패한 저축은행의 행태가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현재(기사작성일: 2011. 9. 23)문제가 없다고 판단이 된 저축은행에도 예치금을 빼겠다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부실한 견제가 저축은행 부실 키웠다
올 들어 저축은행이 영업정지 될 때마다 사외이사와 감사의 부실한 견제기능은 도마에 올라왔다. 고위 관료나 감독당국 출신 인사들이 포진해 있으면서도 불법ㆍ부실 경영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던 것.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근 영업정지 된 저축은행의 사외이사와 감사들은 부산저축은행처럼 대주주와 경영진의 불법행위에 적극 가담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불법ㆍ부실 경영을 견제하는 데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제일저축은행 이사회는 지난 1월6일‘부동산 PF 대출 규정 개정의 건’을 처리했다. 당시 사외이사 4명은 이 안건에 모두 찬성했다. PF대출은 이번에 영업정지를 받은 저축은행의 부실을 키운 최대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4월 5일 안건으로 올라온‘대출 규정 개정의 건’과‘여신거래 기본 약관 개정 및 시행에 관한 건’에서도 반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8월19일‘리스크 익스포저(위험노출액) 측정 결과 보고 및 종합리스크관리계획 수립의 건’에도 만장일치 찬성이었다. 당시 리스크관리와 내부통제를 강화했다면 1년 뒤 영업정지라는 파국을 피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회를 놓친 셈이다. 프라임저축은행의 사외이사 3명은‘PF 대출채권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매각 결과 보고’,‘대출이자의 감면’,‘리스크관리규정 개정’등의 안건에 모두 찬성했다. 대영상호저축은행 감사위원회에는 지난해 8월27일 내부통제 운영실태 자체점검 결과 보고에 관한 안건이 올라왔다. 사외이사 2명과 상근감사위원 1명으로 구성된 이 은행 감사위는 100% 찬성으로 이 안건을 통과시켰다. 사외이사 4명이 포함된 토마토저축은행 이사회는 지난해 12월23일 토마토2저축은행에 대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참여 안건을 가결했다. 이처럼 4개 저축은행이 지난 1년간 59차례 이사회 안건을 처리하는 동안 사외이사들이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또한 이들 저축은행에는 전직 관료가 사외이사로 대거 참여하고 있다. 지난 3월말 기준으로 제일저축은행에는 김창섭 전 대전지방국세청장, 감사원, 은행감독원 출신 이국희씨가 사외이사로 활동중이다. 이종남 전 감사원장은 사외이사로 있다가 지난 5월 저축은행 사태 이후 사임했다. 토마토저축은행 사외이사인 조성익씨는 전 재정경제부 출신이다. 프라임저축은행에는 전 육군본부 장교 출신인 김창현씨가 사외이사로 있다. 전직 고위관료들이 사외이사로 있었지만 견제와 감시라는 본래의 기능은 상실한 채‘거수기’역할만 해온 셈이다. 한편, 감사는 금감원 출신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제일저축은행 김상화 감사, 토마토 신창현 감사는 모두 금감원 출신이다. 또 제일2와 에이스에는 전 금감원 수석검사역 출신인 안정석씨와 곽재을씨가 감사로 있었다. 고위관료와 감독당국 출신 인사들이 사외이사나 감사로 있었지만 이들 저축은행은 불법대출과 부실 경영이 드러나면서 결국 영업정지를 당했다. 저축은행 사외이사나 감사가 대주주와 경영진을 감시하거나 견제하지 못하고‘바람막이’역할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법 비리 및 부실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전직 금융당국자들의 책임론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최근 저축은행 경영진단결과 불법대출이 난무하고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 등 각종 건전성 지표를 속인 저축은행이 한 두 곳이 아닌 것으로 지적되면서 그간 저축은행 감독을 허술하게 해 온 감독기관장 및 관계자 모두에게 부관참시까지도 불사할 정도로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금융당국의 봐주기식 감독과 솜방망이 처벌이 저축은행의 부실을 키웠다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검찰과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합동 수사단 가동에 앞서 그동안 부실은행을 방치한 책임부터 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2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7개 저축은행 영업정지 명령이 내려지면서 지금까지 저축은행 관리감독을 책임져 왔던 감독기관장을 비롯, 모든 책임있는 당국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게 일고 있다. 85개 저축은행에 대한 경영진단에서 대주주 대출과 동일인 대출한도(자기자본 20%) 초과 등 불법 비리 대출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됐기 때문이다. 부산저축은행 퇴출 이후 더 이상의 퇴출은 없다고 선언했던 금융당국이 이번 경영진단에서 7개 저축은행에 대한 영업정지 조치를 내려‘88클럽’에 대한 신뢰도 무너졌다는 평가다. 영업정지 대상 저축은행들의 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은 지난해 12월 8%를 넘었으나 올해 마이너스대로 떨어졌다. 이에 금융업계 관계자는“지난해 경영진단에서 일부 저축은행의 부실과 불법을 적발하지 못한 것들이 이제야 터진 것”이라며“금융당국은 정책 및 감독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저축은행 비리사태는 전, 현 정권 모두의 책임으로 사태의 원인과 더불어 책임 규명을 분명히 해야 한다. 아울러 투명한 경영정보 공개를 통해 저축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고 금융소비자들을 보호하는 책임 있는 금융당국의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진위 여부에 대해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를 통한 검증이 필요한 사안이며, 사실로 밝혀질 경우 관련자 처벌과 함께 퇴직 공직자들의 전관예우 금지를 더욱 확대ㆍ실질화 하는 방안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는 막대한 국민 혈세로 투입될 공적자금을 제대로 관리ㆍ집행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더 이상 제2금융권의 도덕적 해이와 경영실패로 인한 중산ㆍ서민층의 금융피해가 없도록 확실하게 옥석을 가려야 할 것이다. 아울러 불법을 저지른 경영진과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물어 유사 사태가 재연되지 않도록‘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금융행정에 일대 개혁을 촉구한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