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권리인 동시에 책임입니다

노숙자 특수 파출소, 영등포역파출소

2011-11-01     김엘진 기자
현장속으로-영등포역파출소

왜 경찰관이 되었는지 묻자 21년차 이원구 경사는“전생에 업보가 있는 것 같아요”했다.“항상 보람되고 즐겁고,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내가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같은 질문에 12년차 남대우 경사는“그런 대답을 바라셨을지 모르지만, 소명의식을 가지고 경찰이 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점차 어떤 경찰이 되어야겠다는 확신은 생겼어요. 정치인들을 우리가 욕하는 것처럼, 우리가 계도해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욕할 수 있을 테니까요”경찰관도 직업인이다. 대다수 직장인들이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도 일을 하는 것처럼, 그러면서도 가끔은 일에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12시간을 함께하며 지켜본 그들은, 솔직히 말하건대 그냥 직업인은 아니었다.


노숙자를 위한 특수 파출소, 영등포역파출소
영등포역 6번 출구에 위치한 영등포역파출소. 관할 지역은 영등포 본동과 영등포동 0.42(13만4천 평)㎢며, 경찰관 1인당 122명을 담당한다. 상주인구는 적은 편이나 영등포역과 롯데백화점 등이 밀집되어 1일 유동인구만 30만 명에 달하는 교통요충지로 사건ㆍ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2011년 상반기동안 살인 1건, 강도 5건, 강간 3건, 절도 31건, 폭력 81건, 기소중지자 282건 등 총 404건을 검거하여, 작년 1/4분기 지역경찰 전국 1위의 우수파출소로 선정되었고, 4/4분기에는 서울 4위의 검거률을 달성, 올해에는 지역경찰우수 6회 수상 파출소로 선정되었다. 이 지역은 시장이 발달한 교통요충지로 노숙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으며, 최근 무료급식소, 쉼터, 무료진료소 등이 생기면서 노숙자는 더욱 늘어났다. 영등포역파출소 관할 내 노숙자 쉼터는 6개로 쉼터의 노숙자 500여 명을 포함, 700여 명의 노숙자가 영등포역 등지에서 장기기거 중이며, 500개의 쪽방이 몰려있는 쪽방촌이 있다.

20:30 영등포역파출소 3팀과의 첫 만남
대부분 파출소는 4개조로 근무한다. 일부러 오후 교대시간인 오후 8시 반에 맞춰 찾아온 파출소 안은 예상외로 한산하다. 3팀장 설성규 경위(이후 설성규 팀장)는“우리는 3조 2교대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오전9시, 오후6시에 교대합니다”라고 설명한다. 각 팀은 7명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오늘 야간근무조인 3팀은 설성규 팀장, 한상훈 경위, 이원구 경사, 남대우 경사, 박일수 경장, 강민희 순경으로 여섯 명이다. 이맹영 경장은 휴무로 얼굴을 볼 수 없지만,‘노숙인 담당’정순태 경위가 일부러 기다렸다며 남아있다. 노숙인 담당이란 국내‘유이(?)’한 특수 포지션 경찰관으로, 서울역과 영등포역에 각각 한 명씩 근무하고 있다. 파출소 내에는 한 노숙자가 눈 부위를 손으로 감싸고 있는데 옆구리가 결리고 눈이 아프다며 119를 요청했다고 한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도착한 119에 올라앉은 노숙자. 이들은 인근의 보라매병원으로 가는데, 치료비는 물론 국가에서 부담한다.

21:00 “우리 파출소 고객의 90%는 노숙자입니다”
설성규 팀장, 정순태 경위, 이원구 경사와 함께 파출소 인근 쪽방촌 지역을 순찰한다. 쪽방촌의 여성 주민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경찰관들과 이미 잘 아는 듯 보이는 여성은 누군가 자기 주머니에서 지갑을 빼갔다며 해맑게 웃는다.“어차피 안에 아무것도 없었어요”막내동생뻘로 보이는 여성과 이원구 경사는 몇 마디 더 친근하게 안부를 주고받았다.“이 주변에 150명이 넘는 거리 노숙자들이 생활하고 있는데요, 거기에 관할구역 내의 쪽방촌 주민까지 하면 몇 백 명이잖아요. 저희는 이들의 이름도 거의 다 외우고 있답니다. 그래야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바로 처리하기 쉽거든요”라는 정순태 경위는“사실 노숙자들이 우리 파출소를 찾아오는 고객(?)의 90%이상이죠”라고 웃었다. 설성규 팀장도 입을 연다.“사실 병에 걸린 사람들도 많아 질병에 옮을 것도 항상 조심해야 하고, 또 악취문제도 별거 아닌 걸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들을 더욱 친절하게 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 중 하나입니다”롯데백화점 앞에는 짐을 정리중인 트럭이 한 대 서있다. 근처 교회에서 노숙자에게 저녁을 제공하고 돌아가는 중이라고. 잠시 지켜보는데 노숙자 한 명이 접근해 연락처를 묻는다. 가르쳐주지 않자 이번에는 꼬깃꼬깃한 종이를 한 장 꺼내 쥐어준다. 꼭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손을 내미는 그의 손을 가볍게 쥐는데 악취가 심해 무심결에 뒤로 물러섰다. 영등포역 앞에는 또 다른 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있어 주변이 시끌시끌하다. 설성규 팀장은“교회들도 각기 기업체로부터 후원을 받아 무상급식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급식을 제공하고, 찬송을 부르는 것도 어떤 영역싸움의 일환인거죠”라고 전한다.

21:20 첫 번째 신고전화‘행패’
야간3팀 6명이 모두 모이고 정순태 경위는 뒤늦게 퇴근을 한다. 때맞춰 행패 신고가 들어온다. 파출소 한 블럭 건너의 사우나다. 설성규 팀장, 이원구 경사와 함께 출동하였으나 남성 사우나여서 들어가 볼 수는 없다. 아쉬워하며 입구에서 대기하려는데, 들어갔던 두 경찰관이 바로 나온다.“자주 있는 일이에요. 한 손님이 다른 손님을 좀 집적거렸나봐요. 이 사우나가 이상하게도 동성애자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거든요. 그 자리에서 합의하고 고소 취하했습니다”라는 이원구 경사의 설명.

21:30 범죄에 대처하는 노숙자의 자세Ⅰ
파출소에 들어올 새 없이 바로 모텔촌을 순찰하는데, 머리가 하얗게 샌 50대 여성이 폐지를 모으다말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여성은 꼭 좀 부탁하겠다며 경찰관들에게 몇 번이나 다짐을 받는다.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며 혼자 살고 있는 쪽방촌 주민이다. 최근에 폐지를 주우러 다니던 지역에 경쟁자가 나타났다고 여성은 무려 신고를 했단다. 자기 구역에서 다른 사람이 폐지를 줍지 못하게 해달라는 거다. 이후에도 경찰관을 볼 때마다 거듭 부탁한다는 여성. 설성규 팀장은“물론 가능할 리 없죠. 그렇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드니까, 아무래도 아주머니가 나이도 더 있고, 몸도 안 좋으시고. 그래서 이쪽에서 폐지를 줍는 남자에게 혹시 가능하면 딴 지역에서 폐지를 모아보라고 부탁한 적도 있긴 합니다만, 두 명이 만나서 싸운 적도 있을 정도니까요”라며 고개를 젓는다. 파출소 관할 내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는 영등포공원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탓인지 썰렁하다. 이원구 경사는“불과 이틀 전에도 이곳에서 강간사건이 있었습니다. 노숙자끼리의 강력범죄 발생률도 높고요. 그런데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노숙자여서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 편입니다”라고 전한다. 심지어 이틀 전 강간 신고를 한 것도 피해자가 아니라 목격자들이었다고. 이원구 경사는“이런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노숙자 중에는 스스로를 포기한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강력범죄가 일어나도 묻히는 경우가 많아요”라며 답답해한다.

22:10 범죄에 대처하는 노숙자의 자세Ⅱ
영등포역 대합실에 들어서자 곳곳에서 노숙자들이 설성규 팀장과 이원구 경사를 반긴다. 노숙자 사십여 명이 삼삼오오 모여 술판을 벌이고 있는 영등포역 대합실을 가로질러 반대편 문으로 나서는데 둥글게 모여선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파출소에서 인사 나눈 한상훈 경위의 모습도 보인다. 주인공은 노인이다. 바닥에 깔린 몇 장의 신문지 위에 주저앉은 노인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다. 얼굴을 감싼 양 손이며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온 화장지며 윗옷이 모두 피투성이다. 설성규 팀장은 재빨리 다가가 노인의 상태를 살핀다. 좌측 눈썹부분에 깊은 자상을 입어 출혈이 심하고, 코뼈가 부러졌는지 잔뜩 부풀어올랐으며, 입안에도 출혈이 있었다. 설성규 팀장은 노인의 신원을 파악한다. 1945년생 이관우(가명), 거주지 불명. 그러는 사이에 한상훈 경위가 부른 119가 도착한다. 이관우 씨는 처음엔 병원에 가는 것을 거부하다가, 치료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서야 따라나선다. 설성규 팀장이 따라나서며 가해자의 처벌을 여부를 묻자, 그는 싫다고 했다가 처벌해 달라고 했다가, 다시 싫다고 하는 둥 계속해서 말을 바꿨다. 결국 병원으로 실려 가는 이관우 씨. 우선 가해자를 잡는 것이 먼저다. 설성규 팀장은“이런 상해는 무조건 처벌감입니다. 그러나 노숙자들 간의 폭력사건인 경우, 피해자이면서도 경찰서를 무조건 거부하는 경우가 많으며, 처벌을 해도 이후 이 지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며 부딪혀야 하니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이 많아요. 거기에 경찰 측에서도 벌금을 제대로 못 받기 일쑤고(일반인의 1/2정도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구속하기에는 공간도 부족하고 경비충당도 많아 꺼리기도 하지요”라고 밝힌다. 그 사이 한상훈 경위는 롯데백화점에서 설치했다는 CCTV를 확인하고 돌아왔다. 방금 전까지 노인을 둘러싸고 구경하던 사람 중 하나로, 노숙자 황성길(가명) 씨가 범인이란다.

22:40 두 번째 신고전화‘행패’
파출소에 도착하자 이미 황성길 씨가 잡혀와 있다. 성길 씨는 다짜고짜 화를 내며 자신은 절대 싸운 적이 없다고 한다. 설성규 팀장이 회유하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했으나 소용없다. 그때 꼼장어집에서 행패가 벌어졌다는 신고가 들어온다. 이원구, 남대우 경사와 출동했으나 꼼장어집은 조용했다. 경찰관이 신고자를 찾자 꼼장어를 먹던 한 남성이, 지나가던 사람이 들어와 핸드폰을 빌려달라고 고집을 부려 신고했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한다. 그것으로 현장정리 끝. 돌아오는 길에 남대우 경사는“이런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신고가 들어오면 무조건 출동해야 하는 것이 의무지만, 그리고 사실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신고가 적은 편이라서 이런 출동건도 별 상관이 없지만, 때로는 이런 신고 때문에 정말 급한 일을 처리하는 것이 늦어질 때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22:30 북한 주민과 남한 노숙자의 차이
파출소로 돌아오는 쪽방촌 공중화장실 앞. 쪽방촌은 말 그대로‘쪽방’으로 이루어져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외관에 들어서자마자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조로, 방 하나의 크기는 소형차의 내부만하다. 겨우 한 사람이 몸을 구겨 넣고 잘 수 있는 수준. 물론 화장실도 없다. 그래서 쪽방촌 주민들은 대부분 공중화장실을 이용한다. 남녀화장실 사이 4m쯤 되는 공간에는 이미 노숙자 대여섯 명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란히 누워 잠들어있다. 파출소로 들어서자 병원에 다녀온 강민희 순경이 이관우 씨의 상태를 전해준다. 눈 윗부분, 코, 입은 물론 폐에도 이상이 있다고. 그러나 황성길 씨는 여전히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뗀다. CCTV를 다시 확인해 증거로 제출할 수밖에. 이원구 경사와 함께 영등포역으로 돌아가 CCTV를 확인했으나 사각지대에서 일어난 일이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사진만으로는 증거가 되기 어려울 것 같아 핸드폰을 이용해 CCTV동영상을 핸드폰동영상으로 담아 돌아오는 길, 이원구 경사는 자고 있는 노숙자들을 하나하나 살핀다. 이렇게 자다가 변사체로 발견되는 경우가 잦다고. 모든 노숙자들의 옆에는 저녁급식 때 단체로 받기라도 한 듯 초록색 술병이 나뒹굴고 있다.“아세요? 북한에서는 몰래 이런 노숙자들의 사진을 찍어서 북한주민들에게 보여주면서‘한국에는 이렇게 거지가 많다’고 가르친대요. 우리가 북한 주민들이 기아 때문에 죽어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접하는것처럼요. 그런데 가장 큰 차이가 뭔 줄 아십니까? 바로 술입니다. 북한 주민들의 사진에는 그저 굶주린 사람만 찍히는데, 남한의 노숙자 옆에는 언제나 술병이 함께 찍히거든요”이원구 경사를 이야기를 들으며 노숙자들과 빈 술병을 보는데, 어디서 컵라면 냄새가 풍겨왔다. 술냄새, 오물냄새와 섞여 식욕을 돋구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느 교회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노숙자들에게 컵라면을 나눠준다. 그러나 모든 노숙자들이 컵라면을 받아들지는 않는다. 저녁급식을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라면보다는 술이 더 좋으니까. 이원구 경사는 말한다.“수많은 노숙자와 함께 생활하며 항상 절감하는 건, 이들에게는 재활의 의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매달 20일이 기초수급이 나오는 날인데, 그 때엔 날짜를 세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20일부터 노숙자들이 맥주병을 들고 있거든요.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막걸리도 간간히 나왔다가, 결국 또 소주병이 등장합니다. 수급을 받아 술을 마시고, 세 끼 식사는 무상급식으로 해결하고, 술에 취해 밖에서 잠을 자고 괴로우니 다시 술을 마십니다”영등포역 바깥 편의점 옆에 쭈그리고 누워 잠을 자는 노숙자를 보고, 이원구 경사는 대뜸‘성일아’하며 깨운다.“퇴원한 지가 며칠이나 됐다고 다시 이래. 뭔 술을 그렇게 마셔”하는 그의 타박에 성일 씨는“괴로워서요”라고 웅얼대고는 다시 잠들어버린다. 성일 씨는 얼마 전 폐병으로 입원치료를 받았었다. 그리고 지금은 퇴원한 지 불과 두어 주 만에 병원 들어가기 전보다도 상태가 심각해졌다. 보기에는 예순쯤으로 보이는 성일 씨는 이제 겨우 마흔 다섯이다.“얼마 전에도 노숙자 한 명이 세상을 떴습니다. 술을 너무 마셔 복수가 찼는데, 수술비로 700만 원 이상이 들었어요. 물론 세금으로 국가가 대준 거고요. 수술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더니 얼마 되지 않아 변사체로 발견됐습니다”라고 이원구 경사는 설명한다. 성일 씨에게 남은 생도 이제 그리 길지 않은 것 같다며, 그는 말끝을 흐린다.

01:00 침낭과 밥으로 정말 충분할까요?
파출소 앞에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이 한 대 서 있다. 트럭에서 내린 사람들은 교회에서 왔다고 했다. 노숙자를 위해 침낭과 음식을 준비해왔다는데 내미는 검은 봉지 안에는 떡과 이천 원씩의 현금이 들어있다. 이원구 경사는 진지하게 권유했다.“돕는 것도 좋지만, 이런 도움을 위해 분명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하고 희생을 했을 겁니다. 그런 소중한 돈을 기왕이면 값지게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여기의 노숙자에게 침낭을 주면, 대부분 내일 아침에는 쓰레기로 변할 겁니다. 어떤 의지도 없는 사람보다는 희망과 의지가 있는 사람을 돕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쪽방촌에는 정말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은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서 찬 방에서 잠을 잡니다. 이 침낭은 그런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하면 더 좋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전혀 강요하지 않으며, 그저 실상을 설명하는 이원구 경사의 말에 교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용산역으로 향했다. 영등포역에는 노숙자의 수가 너무 많아 준비해 온 침낭을 다 나눠줄 수 없다면서. 파출소 경찰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침낭은 분명 오물에 뒹굴다 내일 아침 청소부에 의해 버려지거나 혹은 싼 가격에 되팔려 그만큼의 술로 변할 것이 분명하다. 몇 년 전 인도ㆍ네팔 여행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떠오른다. 그 곳의 아이들은 여행객의 동정심을 유발하여 구걸을 하는데, 몇 몇 아이들은 돈을 구걸하기보다는 먹을 것을 구걸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다는 것을 알아냈다. 아이들은 여행자의 팔을 잡아끌고 배고픈 시늉을 해가며 가까운 매대의 과자나 빵을 가리킨다. 그래서 과자나 빵을 얻은 아이들은 여행자가 채 그 곳을 떠나기도 전에 전리품을 되팔아 본드나 담배, 대마초를 산다. 영등포의 노숙자들이 물건을 받으면 되팔아 술을 사는 것처럼. 용산의 노숙자들은 그 이천 원과 침낭을 어떻게 사용할까?

01:40 세 번째 신고전화‘간통’
끈질기게 달랜 끝에 황성길 씨는 겨우 경찰서에 출두하기로 맘을 먹었다. 막 순찰차에 오르려는데 간통사건 신고가 들어온다. 부인이 다른 남자와 호텔에 들어가는 것을 방금 목격했다는 50대 남성의 전화다. 황성길 씨를 다시 파출소에 앉혀놓고 출동하려는데, 남성이 다시 전화를 했다. 너무 겁이 나 도저히 안에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다며, 조용히 처리하고 싶으니 신고를 취소해달라는 것이다. 경찰관들은 전화를 끊고도 그 상황을 이해한다며 남성을 걱정한다. 그리고 황성길 씨는 결국 경찰서로 인계되었다. 한상훈 경위, 박일수 경장과 함께 순찰을 나선다. 오늘은 정말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주말 밤이다. 쪽방촌 앞에 모여 술을 마시는 사람들, 거리 이곳저곳에 쓰러져있는 노숙자들, 아직까지 야간작업을 하고 있는 공장 근로자들을 살피며 영등포역 주변을 순찰한다. 편의점 벽에는 여전히 성일 씨가 기대어 자고 있다. 취기가 없다면 이런 날씨에 밖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그런 취기가 있기에 이 생활에서 벗어날 길은 더욱 요원할 것이다.

04:50 한 밤의 영등포역 대합실, 이곳에도 정말 인권이 있다고요?
노숙자끼리 시비가 붙었다는 신고에 남대우, 이원구 경사와 대합실로 들어선다. 한 밤의 영등포역은 결코 추천할 만한 장소가 아니다. 들어서는 순간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에 코를 감싸 쥐지 않고서는 걷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 이는 노숙자들의 몸에서뿐 아니라 그들이 자면서 그대로 해결해버린 생리현상의 결과물로 인한 것이다. 여성 노숙자 한 명이 소변을 본 플라스틱 통을 흔들다가 바닥에 뿌려댄다. 남대우 경사가 제지하려하자, 그녀는 그 통을 입에 가져다대고 한입 꼴깍 마셨다. 밤의 영등포역은, 말 그대로 거대한 쓰레기장이다. 신고한 남성은 마산에서 올라온 지 열흘쯤 되었다는 노숙자로, 그 동안 서울역과 용산역에 있다가 오늘 영등포역으로 왔단다. 남성은 영등포역 터줏대감격인 술 취한 노숙자를 가리키며 자기를 너무 귀찮게 해서 신고했다고 했다. 영등포 노숙자에게서 냄새가 너무 나는데다 쉴 새 없이 말을 걸어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다고. 어눌한 말투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남성을 이원구 경사와 남대우 경사는 어르고 달래준다. 신고를 당한 노숙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반복해대는 술 취한 자와, 바닥에서 볼일을 해결하는 자와, 병에 걸린 자와, 악취를 풍기는 자들을 이 경찰관들은 전혀 싫은 티 내지 않고, 오늘 처음 근무를 시작한, 마치 냄새를 맡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편안하게 상대해주고 돌아선다.

07:00 백문이 불여일견
강민희 순경은 그 사이에 노숙자가 둘 다녀갔다고 전했다. 한 명이 동료를 끌고 들어와, 자고 있는 자신의 신발을 훔쳐갔다며 처벌해달라고 했다고. 그래서 어찌했냐고 묻자 강민희 순경은“그냥 잘 설명해서 돌려보냈습니다. 어쩌겠어요. 훔쳐간 사람이 물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라고 대답한다. 곧이어 엄청난 악취를 몰고 노숙자 한 명이 들어선다. 대뜸 핸드폰 번호를 부르면서 아들을 불러달라는 노숙자. 강민희 순경이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핸드폰을 받는 사람은 없었다. 집에서 나온 지 열흘이라며 장가를 아직 가지 않은 38, 36살 두 아들의 이야기를 밑도 끝도 없이 늘어놓기 시작한 노숙자의 말을 듣다가 자리를 떴다. 그와 함께 나타난 악취는 단 몇 분간도 참을 수 없는 수준이다. 문 앞에 피신해 있다가 들어오자 노숙자는 없다.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처럼 태연히 앉아있던 경찰관들은 파출소의 문이란 문은 다 활짝 열고 이 악취는 열흘짜리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집을 나온 지도 오래되었을 거고, 자녀에게도 버림을 받은 경우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슴이 아프기에는 코끝에 남아있는 악취가 조금 더 자극적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타인의 이야기를 브라운관이나 신문을 통해 듣는 것과 현장에서 겪는 것 사이에는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 것일까.

07:50 네 번째 신고전화‘손괴’
한상훈, 강민희 순경과 함께 영등포 지하철 내 공중전화 손괴신고전화를 받고 출동한다. 정신지체장애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공중전화 옆에 앉아 있다가 경찰관을 발견하고 달아난다. 전화기에는 별 이상이 없다. 주변 상인들이 전하기로는 매일 같은 시간 한 여성이 공중전화기를 붙잡고 소리를 지르고 벽에 부딪혀 소음을 낸다고. 경찰관들은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같은 일이 있으면 꼭 신고해달라고 부탁한 뒤 돌아선다.

8:30 다섯 번 째 신고전화‘도난’
1팀원들의 출근시간이다. 1팀과 3팀은 간밤의 사건들을 브리핑하고, 금일의 일정을 확인하는 회의 시간을 가진다. 편의점 도난 사건 신고가 들어와 1팀의 함명철 경사, 김영환 경위와 출동. 편의점에 도착하자마자 주인은 우리를 밖으로 데리고 나와 처벌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해서 신고했다며, 훈방조치를 해달라고 미리 부탁한다. 1944년생 청각장애2급의 노인이다. 함명철 경사는 노인을 부드럽게 달래서 돌려보낸다.

동정이 곧 도움은 아닙니다
1948년 UN위원회의 규정에 따르자면 인권이란‘인종, 성별, 언어, 종교에 차별을 두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특권과 책임이 주어지는 기회’를 의미한다. 생존, 자유, 안전 등 기본적인 시민권을 물론 포함한다. 노숙자들에게는 노숙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책임은? 재확인하지만 인권은‘특권과 책임이 주어지는 기회’다. 노숙자의 특권은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유를 원하고 무위를 원하기에 일하지 않고, 보호단체 생활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지는 책임은 무엇일까? 물론 노숙생활이 우리가 말하는‘무위도식’의 편안한 이미지는 아니다. 그들이 길거리생활을 하는 것은 자유를 원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노숙자들은 무상급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모은 돈은 술을 마시는데 사용하며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의 무기력함이 스스로를 구제하지 못한다면 국가가 해야 할 것이다. 당장의 값싼 동정이 희망을 주지는 않는다. 밥을 주기 이전에 밥을 해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국가의 역할이다. 이들의 재활을 위한 제도가 시급하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