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형 인간’의 재발견
“‘안철수 바람’이 불어온다”
2011-12-05 박소담 기자
뉴욕타임스 미국판 2011년 11월 20일 14면 보도의 편집자註이다.
안철수, 한국 국민을 사로잡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 이틀 전,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무소속 박원순 후보 선거본부에 방문했다. 수많은 카메라의 플래쉬가 터지고 있는 상황, 서울시장에 출마하려 했던 상냥한 목소리를 지닌 안철수 원장은 박원순 후보의 지지를 다시 한 번 단언하며,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선거 참여야 말로, 시민이 주인이 되는 길이며, 원칙이 편법과 특권을 이기는 길이며, 상식이 비상식을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유권자들에 박원순 후보의 지지를 요청했던 안 원장의 편지는 트위터를 비롯한 여러 가지 네트워크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안철수 원장에 편지에“전 이른 아침에 투표장에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해주시기를 간곡하게 청합니다”라고 적었다. 이는 한국 정치 지형에 큰 변화를 일으킨 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큰 전환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 경제적 불평등에 분개하며 정부는 공익보다 특권층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한국 사회에서 안철수 원장의‘참여’,‘원칙’,‘상식’이라는 말들은 박원순 후보에게 젊은 유권자들이 압도적인 지지를 표출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이 결과 한국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는 무소속 출신으로 당선된 첫 번째 시장이 되었다. 선거 당일 출구 조사에 따르면 30% 가까운 유권자가 안철수 때문에 박원순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며 대중 속에서 사라졌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타 정치인이다. 그의 이름은 한국 사회에서 시민들이 가진 정당 정치에 대한 광범위한 환멸의 상징이 되었다. 지난 주, 젊은 25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서울시장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그의‘오만과 독선’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할 것을 요청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만약 안철수 원장이 출마한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오늘 열리게 된다면 그가 당선될 것이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었다.
대선을 향한 첫걸음?
정치인들은 안철수 원장에게 2012년 12월 실시될 대선 출마 여부를 명확히 밝힐 것을 요청해왔다. 하지만 안 원장은 이에 침묵하고 있다. 지난 주, 박원순 시장은“안 교수가 나중에 정치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시장을 한때 꿈꿨던 것으로 봐선 우리의 정치에 실망하고 절망한 것은 분명하다”라고 말했었다. 비록 한 신문의 칼럼니스트는, 안철수가 민중을 선동하는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며 비난했지만, 그의 팬들에게 안철수 원장은 안철수 의사선생님으로 통한다. 한 때 의사였다가 컴퓨터 바이러스에 전문가가 되었고 이젠 자신이 가진 치료의 힘을 한국 정치에 사용하려는 사람으로 말이다.“스파이더맨처럼 본인이 원해서 얻은 힘은 아니지만,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은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해야 합니다”공상 과학 소설의 팬이기도 한 안철수 원장이 작년 시사 주간지<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한국의 안철수 현상은 왜 종종 많은 사람들이 한미 FTA와 같이 정치인과 기업 엘리트들이 추진하는 정책들에 대해서 불신을 표하는지, 왜 오바마 대통령에겐 존경받는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 사람들에겐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람으로 평가받는지를 설명해준다. “안철수 교수는,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변화의 열망을 대변하고 있습니다”명지 대학교 정치학과 김형준 교수의 말이다.
변화의 대변자변화의 대변자란 말은 안철수 원장만의 독특한 이력서에 최근 추가된 사항이다. 49세의 안철수 원장은 젊은 의사 시절 7년 동안 남는 시간을 활용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널리 사용된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했었다. 1995년 의사를 그만둔 안철수는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소프트웨어 기업인 안철수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는 또한 2005년 CEO직에서 물러나며 안연구소 직원들에게 자신이 보유한 수십억 원의 주식을 기부하기도 했었다. 지난달 15일, 안철수 원장은 그가 보유한 37.1%의 안철수 연구소 주식 절반(1,500억 원 상당)을 사회에 기부할 것이라고 밝히며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고 마음껏 재능을 키워가지 못하는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일에 쓰여지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지난 6월, 모교이기도 한 서울대학교의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맡은 그는, 서울시장 선거 후, 서울대학교 관련 기관인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서 사임했다. 당시 한나라당의 의원들은 그의 정치적 활동을 내세우며 정부 예산을 끊겠다고 위협했었다. 최근까지 각 대학교를 돌아다니며 강연과 인터뷰를 해왔던 안철수 원장은, 이를 통해 젊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선생으로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대기업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회적 비평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
‘약탈자들의 정글’은 안 된다
안철수 원장은 삼성과 LG등 대기업이‘약탈자와 무법자들의 정글’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들이 중소기업들에게 노예계약과 같은 족쇄를 채우고 있다고 말했었다. 아울러 그는“빌게이츠가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종종 말해왔다. 그는 한국의 아이콘이라 여겨지는 삼성 이건희 회장 또한 비판했다. 이건희 회장의 엘리트적인 분석들은‘대기업이 나라 경제를 이끌어야 하며 이로 인해 사회 전체가 혜택을 보게 된다’는 전형적인 한국의 국가전략과 일치한다. 이 회장은“천재 한명이 10,000명을 먹여 살린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었다. 안철수 원장은 지난 MBC와의 인터뷰에서“이건희 회장이 말하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10,000명을 먹여 살리는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빼앗아 간다면 그는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아닌 것이죠. 우린 모두 함께 살아야만 합니다”라고 말했었다. ‘부자들만 탑승하는 비행기’도 안 된다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지난달 100분 토론에서 소위‘안철수 현상’을 설명했다. 그의 이런 언급은 현재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불만 및 잠재적인 정치적 불씨라고 여겨지는 문제를 열어제낀 것이다. 과거 현대그룹의 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은 당시 2007년 대선에서 747공약을 내세웠었다.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7%의 경제 성장을 달성하고, 국민소득이 4만 달러에 달하며, 세계 7번째 경제 대국이 되어, 한국이 보잉 747처럼 날아오른다는 말이었다. 그 후 한국의 경제가 다소 성장하긴 했지만, 놀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이명박의 747은 부자들만이 탑승하는 비행기’라고 비판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외국으로 공장을 이전을 하고, 중소기업들은 점점 낮아지는 납품 단가를 맞추기 위해 수익을 줄여서 결국 대기업들만 상당한 수익을 취했다. 또 서민층의 삶은 한층 더 팍팍해졌고 젊은이들은 취업난과 박봉에 시달리지만 상위 5%는 승승장구하며 자식들까지 그 후광을 뻗쳐 개인의 노력과 재능만으로는 뚫어내기 힘든 장벽을 공고히 하고 있다. 한국의 사회학자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현 체제에 대한 불만이 끓어오르고 있다는 경고를 해왔었다.“현재 한국 사회는 한편으로 군부독재 시절보다 더한 면이 있다고 봐요” 매주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다운받는 정치 풍자 팟캐스트‘나는 꼼수다’를 만드는 김어준씨의 말이다.“당시 독재자들은 학생들을 때리고, 육체적으로 그들은 다치게 했죠. 최근 한국의 기득권층은 젊은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며 자존감을 파괴하고 그들의 영혼에 굴욕감을 주고 있어요”지난 8월, 안철수 원장은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조언을 구하러 오는 많은 학생들이 절망에 차서 울부짖는다’라고 말했었다. 또한 안철수 원장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하버드 정치 철학자 마이클 센델의<정의란 무엇인가>열풍을 설명하며“정의의 결핍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만약 이 문제를 풍선처럼 부풀어오르게 방관한다면, 결국 엄청난 사회적 문제들이 결국 폭발할 것이라고 봐요”라고 말했다.
‘안철수 바람’의 여파서울시장 선거가 있기 전, 일부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원장은 박원순 후보보다 약 10배나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9월 6일, 안철수 원장은 박원순 후보에게 선거를 양보하며“저에 대한 기대도 우리 사회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었다. 만약 박원순 서울시장이 안철수의 인기에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에게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사람은 한나라당 전 대표이자, 1963년부터 1979년까지 한국의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의 딸, 박근혜 의원이다. 안철수 원장이 나타나기 전까지, 박근혜 의원은 법적으로 재선이 불가능한 이명박 대통령을 이어갈,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였다.“안철수 원장이 부각되면서 박근혜 의원은 갑작스럽게 구시대, 노년, 과거의 사고방식으로 대변되는 기득권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어버렸습니다”고려대학교 정치학과 함승덕 교수의 말이다. 하지만 그는 안철수를 둘러싼 후광이, 실제 대선까지 유지될 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했다.“사람들은 신선한 얼굴을 원하죠. 그리고 사람들이 처음으로 발견한 신선한 얼굴이 바로 안철수 원장인 것입니다. 만약 안철수 원장이 실제로 정치에 뛰어든다면, 그를 둘러싼 신비로움과 아우라는 곧 사라질 거라고 봅니다”
변화의 바람은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일기 시작했다. “(박근혜)대세론이라는 얘기를 하면 할수록 국민들은 한나라당과 멀어지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이제 그런 단어를 언론에서 쓰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의 말이다. 박근혜 대세론이 종언을 고했다는 말은 이제 한나라당 내에서도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안철수 바람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던 박근혜 대세론은 서울시장 선거가 박원순 후보의 승리로 돌아가면서 수명을 다하는 모습이다. 박 전대표와 지원 대결을 벌이는 모양새가 되었던 안철수 원장이 지원 대결에서 승리하는 결과가 되었고, 실제로 지원 효과에 있어서 안 원장 쪽이 월등하게 앞섰던 것으로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선거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양상 바뀌어
<한겨레>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10월 29일 실시한 대선주자 양자 가상대결 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표는 45.9%, 안철수 원장은 48.0%의 지지율을 보였다. 오차범위(±3.5%포인트) 이내지만 지난 9월 이후 실시된 세 차례 양자대결 조사에서 안 원장이 박 전 대표를 처음으로 앞선 결과이다. 그리고 <중앙일보>와 YTN-동아시아연구원(EAI)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0월 29일 실시한 두 사람의 대권 가상 대결에서도 안 원장(47.7%)이 박 전 대표(42.6%)를 앞서기 시작했다. 지난달 조사에서는 안 원장 42.8%, 박 전 대표 43.7%였다. 서울시장 선거 이후 안철수 바람의 강도는 더욱 거세지는 모습이다. 선거 효과가 지나고 나면 다시 조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은 박 전 대표가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내주는 상황이다. 그동안‘박근혜 대세론’이 박 전 대표가 부동의 1위를 달리는데 근거했던 것이므로 이제 더 이상‘박근혜 대세론’은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이 된다. 대세론이 한번 무너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은 역대 대선에서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다. 물론 박 전 대표의 경우는 안철수 바람 앞에서도 아직까지 지지층의 견고함을 보여주고 있다. 안철수 바람이 태풍이 되는 시점에서도 지지율이 크게 하락하지는 않은 상태에서 서로 근접한 지지율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영남, 연령적으로는 노년층, 이념적으로는 보수층의 안정된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드러낸 확장성의 한계를 박 전 대표 또한 안고 있으며, 그가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안철수 바람을 당해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안철수 바람 = 박 前대표의 위기?
현재 박 전 대표는 대선 가도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여기서 위기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박 전 대표가 처한 어려움이 여론조사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라 내년 12월 대선까지의 환경과 트렌드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1, 2위 자리가 바뀌는 것이야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 박 전 대표는 환경적으로 불리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첫째는 2040의 반란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정치, 경제, 사회적 현실에 불만을 쌓아온 20, 30, 40대는 반란의 동맹을 형성하여 여권 세력을 심판했다. 특히 선거 때마다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왔던 40대 층이 심판에 함께 나선 것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회복되지 않고, 젊은 세대가 처해있는 사회경제적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 한 이들의 반란은 내년에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둘째는 SNS의 위력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터넷 방송 등을 망라하는 SNS의 위력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올드미디어와 소셜미디어 사이의 대결에서 SNS라는 소셜미디어가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당연히 내년에도 지속될 뿐 아니라 더욱 강화될 것이다. 국내 스마트폰 인구는 최근 2천만 명을 돌파했다. SNS 인구는 모바일 인구의 증가에 비례해서 함께 증가하게 되어있다. 현재와 같이 SNS에 대한 활용능력에 있어서 야권이 여권을 월등하게 앞서고 있는 한 SNS를 통한 경쟁의 격차는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 셋째는, 앞의 환경들을 극복할 한나라당의 대책이 사실상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선거가 끝난 이후 젊은 세대와의 소통, SNS 대책 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에서 패배하면 항상 나오던 얘기였고 막상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근본적인 사고와 정책의 혁신없이 방법만 바꾼다고 성과가 나오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한나라당이 단기적으로 이들 문제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할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해 보인다. 이런 상황은 곧 박근혜 전 대표의 한계가 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드러내고 있는 한계들을 박 전 대표 개인의 힘으로 돌파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컨텐츠를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며 안철수 바람 앞에서는‘구 정치의 일원’으로 경계선이 그어질 수밖에 없는 취약한 위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조적인 위기의 고비는 내년 4월의 총선이 될 것이다. 박 전 대표가 내년 총선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결과를 낳느냐. 그에 따라 12월 대선을 앞둔 박 전 대표의 운명은 일찍 결판이 날 가능성도 있다. 철옹성 같은 입지를 다지던 박 전 대표는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다.
안철수. 그의 행보에 요즘 온 나라의 관심과 촉각들이 모두 모여드는 것 같다. 아무래도 요즘 힘든 세상살이가 새로운 인물을 원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최근‘1500억 사회환원’이라는 기부 결정은 흠집내기에 골몰하던 수구 세력을 또 충격으로 몰아넣고 그들과는 격이 다름을 또 한 번 보여주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을 직접 실현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릴레이 향연이 펼쳐질 수 있을까 하는 꿈을 꾸게 하는 오늘이다. 아울러 어마어마한 돈의 규모만큼 많은 곳에 뿌려질 수 있길 바란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