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설마 국익에 반하는 일을 하겠냐, 믿어라”

한미FTA 날치기 통과

2011-12-06     김엘진 기자
HOT ISSUE-한미FTA 날치기 통과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11월 15일 출입기자들과의 만찬 자리에서“친한 기자와 내기를 했는데 11월 안에 한미FTA를 통과시키지 못하면 내가 100만원을 주기로 했다”면서“이달 내 통과시키면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의 안경을 벗기고‘아구통’을 한 대 날리기로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11월 22일 한미FTA 비준 동의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홍 대표는 같은 달 2일 tvN‘백지연의 끝장토론’에 출연해 20대 시민패널 20여명과 한미FTA, 반값등록금, 취업난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때 홍 대표는“한미 FTA를 자세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정부가 국익에 반하겠나, 믿어라”고 주장했으며, 한 시민패널이 투자자국가제소권(ISD)의 폐해에 대한 예로 볼리비아의 수도 사업을 들자,“한국이 볼리비아처럼 형편없이 당할 나라냐”는 논리를 펴며,“내가 꼼꼼하게 다 따져보질 못했지만 한미 FTA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고 발언했다. 참고로 홍준표 대표는 지난 2007년 5월 28일 CBS‘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인터뷰에서 ISD를“한국의 사법 주권 전체를 미국에 바치는 것”이라고 말하며 강하게 반대했던 당시 야당의원과 동일인이다.


한나라당의 한미FTA 비준동의안 날치기 처리
11월 22일 한나라당 정의화 부의장은 한미 FTA 비준안을 직권 상정해 재석 170석 가운데 찬성 151표, 반대 7표, 기권 12표로 가결했다. 야당 의원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경호권을 발동한 가운데 본회의를 열어 한미 FTA를 강행처리하려고 시도하자 이에 항의하며 대부분 표결에 불참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한미 FTA 비준안과 함께 직권 상정된 이행법안 14개도 함께 처리했다. 다음주(기사 작성:11월 23일)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비준안에 서명하고 나면 곧바로 내년 1월1일 발효를 목표로 미국과 협상을 시작할 방침이라고 한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다. 국가의 이익이 걸린 외국과의 협정 비준안이 여당 단독으로 처리된 것은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1월 한일어업협정 비준안 이후 13년 만이다. 그러나 국민의 삶과 나라의 경제체제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을 사안의 중대성에서는 차원이 다르다. 여야 대치와 시민사회의 비판이 고조되면서 정국이 얼어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쪽은“비준 발효 이후에도 ISD의 재협상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마치 큰 선심이나 쓴다는 투지만 이제 문제는 그런 차원을 떠났다. 어차피 날치기 통과까지 된 이상 FTA의 폐기를 포함한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지난 역사를 보아도 국민의 힘으로 날치기 통과를 원천무효로 돌린 예가 없지 않았다.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파동이 좋은 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도 날치기 통과의 무효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며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권이 그토록 걱정하는‘거대한 촛불’로 진화할 조짐마저 엿보인다. 경찰이 계속 물리력을 동원한 강경진압에 나설 경우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수밖에 없다. 날치기 통과된 비준안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과제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등이 모두 머리를 맞대 지혜를 짜내고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제1야당인 민주당의 책임은 막중하다. FTA 비준안 처리 과정에서 보인 민주당의 갈팡질팡한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앞으로 이런 실책을 만회하지 못한다면 민주당 역시 한나라당과 함께 똑같은 심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12가지 독소조항
1. 투자자국가제소권(ISD):다음 문단에서 자세히 설명하도록 한다.
2. 지적재산권 직접 규제 조항: 한국인과 한국정부, 한국기업에 대한 지적단속권을 미국계 기업이 직접 하게 된다.
3. 미래의 최혜국 대우 조항:다른 투자협정이나 다른 FTA는 서로서로 각국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데, 한미 FTA는 다른 나라 투자협정에서 조금 더 많이 양보하면 자동으로 한미 FTA의 양보내용이 된다. 앞으로 다른 나라에 개방을 할 경우, 자동적으로 한미FTA에도 적용된다는 의미로 만약 일본과의 FTA에 한국은 일본의 반도체를 수입한다고 명시 할 경우, 자동적으로 미국에게도 반도체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4. 역진금지(래칫 조항):한번 개방되면 되돌릴 수 없다. FTA로 인한 어떤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해도 이를 바로잡을 방법을 국가가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5. 비위반 제소:한국정부가 미국계 기업의 불법행위를 시정조치 할 경우, 미국계 기업은 한국정부 때문에‘기대되는 이익’을 못 냈으므로 한국정부에게‘기대되는 이익’을 배상하라며 한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는 제도다.
6. 정부의 입증 책임:어떤 규제든 그것이 필요불가결함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다.
7.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한국에 진출해 있는 미국계 기업 및 미국인들에게는 한국정부의 법보다 한미FTA 조항이 우위의 법으로 적용된다.
8. 서비스 비설립권 인정:미국 기업이 한국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지 않아도 영업활동이 가능해진다. 현지 법인 등록되지 않은 기업은 우리의 국내법으로 규제하거나 처벌 및 세금부과를 할 수 없다.
9. 공기업 완전 민영화 및 외국인 소유 지분 제한 철폐:미국계 기업 및 자본이 한국의 알짜 공기업들을 인수 할 수 있다. 의료보험공단, 한국전력, 석유공사, KT, 농수산물 유통공사, 주택공사, 수자원공사, 토지공사, 도로공사, KBS, 가스공사, 철도공사, 지하철공사, 우체국 등의 민영화 입찰에 미국계 기업,자본이 참여해 인수할 수 있다.
10. 서비스 시장의 네거티브 방식 개방:개방하지 않을 분야만 유보 리스트에 명시하고, 나머지는 모두 개방하는 것. 미래에 생길 서비스업은 무조건 개방 형태가 된다는 의미다.
11. 금융 및 자본시장 완전개방:미국계 자본이 국내 금융기관의 주식을 100% 소유할 수 있게 된다. 미국계 자본이 한국에서 대부업체를 설립할 수 있고, 금리는 자율에 맡겨지게 된다.
12. 재협상불가 조항:위의 11가지 조항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재협상할 수 없다.

투자자국가제소권(ISD)의 위험성
12가지 독소 조항 중에서도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조항이 바로 첫 번째, 투자자국가제소권(ISD)이다. 이는 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해당기업에게 불합리한 현지의 정책이나, 법으로 인한 재산적 피해를 실효적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국제기구의 중재로 분쟁을 해결토록 한 제도를 말한다. 즉, 기업이 상대방 국가의 정책으로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해당 국가를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상사분쟁재판소(ICSID)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그럼 이 제도의 본질을 쉽게 풀이해보자. ISD의 정반대 입장은 바로 이 말이다“로마에선 로마법을”이 당연한 말이 외국에 진출한‘투자자’입장에서는 아주 불편한 것이 된다. 그래서 ISD가 실행되면, 한국 정부가 어떤 법을 만들어도 그 법을 준수할 수밖에 없었던 외국인 투자자가, 제3국에 있는 중립경기장에서 한국 법을 상대로 제소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설명하면 ISD는 제법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ISD제도를 이용해 혜택을 볼 수 있는 자들은‘다국적 대기업’뿐이라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당장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가정하자. 내 과실은 전혀 없이 상대측의 일방과실이었다고 생각될 경우 보통 사고차량 보험사에서 합의를 한다. 물론 그 합의금은 언제나 적다고 생각되기 마련이다. 사고차량 보험사이기 때문. 그러나 소송을 해서 제대로 배상받으려고 하면 문제는 아주 복잡해진다. 소송에서 승소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입증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노동력상실률’이 얼마인지,‘향후 개호비’가 얼마나 들 것인지,‘향후 기대수익’이 얼마인지,‘향후 기대 수명’이 얼마인지 등 수많은 손해의 정도를 입증해야만 한다. 상대는 보험회사이므로 항소는 당연하니 이 소송은 2심, 3심까지도 가게 될 것이다. 실제로 눈앞에 분명히 드러나 있는 부상을 입었을 경우에도 손해의 정도를 입증하기 힘들며, 변호사를 선임할 경우 변호사 선임비용이 더 클지, 받아낼 수 있는 돈이 더 클지 예상하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정책으로 인한 직ㆍ간접손해를 다 입증하고 국가를 상대로 제소권을 쓸 수 있을만한 자금력과 능력이 되는‘투자자’는 누구일까? 정부 측에서는 공평하게‘투자자’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 이러한 제소권을 이용할 수 있을만한 투자자는‘다국적 대기업’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국가정책에 대들 수 있는 직접적인 수단을 지금 미국에 건네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의회와 행정부, 사법부에 이은 네 번째‘부’를 등장시키려 하고 있고, 그 네 번째‘부’는 엄청난 자본을 가진 자라는 것. 이것이 바로 ISD제도의 본질이자 위험성이다.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한국 투자자도 ISD를 써먹을 가능성이 있는데 왜 지레 겁부터 내냐고 비판한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한미FTA서문의 한 문단을 옮긴다.“국내법에 따른 투자자 권리의 보호가 미합중국에 있어서와 같이 이 협정에 규정된 것과 같거나 이를 상회하는 경우, 외국 투자자는 국내법에 따른 국내 투자자보다 이로써 투자보호에 대한 더 큰 실질적인 권리를 부여받지 아니한다는 것에 동의하면서”2007년 5월 재협상 때 들어간 문구다. 미국에서는 이미 다 보호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한미FTA 이행법에 따르면, 이행법으로 미국 국내법에서 바뀌는 것은 관세법, 무역법, 무역협정법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한미FTA로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법률이 무효가 되고 제도의 근본이 바뀌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수입 절차 일부를 보완하는 수준인 것. 미국 투자자에게 한국의 법과 제도를 바꿀 권한과 수단을 주는 것이 바로 ISD다.

FTA관련 해외 사례
1. 스위스는 우리나라와 경제규모가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스위스에서는 국민투표로 미국과의 FTA를 중단했다. 우선은 자국의 농업이 망하면 안 된다는 전 국민적 관심이 컸다. 농업에 관해 원산지 표시와 먹거리에 대한 안정성이 중대한 이유였으며 유전자 조작과 호르몬을 먹인 식료품에 대한 표시 거부가 결정적이었다.
2. 일본은 세계경제대국중 하나로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미국에 대한 의존도도 낮으며, 미국과 비교해 뛰어난 산업도 우리나라보다는 많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미국과의 FTA체결을 여전히 검토 중이다. 농업개방만큼은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것도 일본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3. 칠레는 미국식 의료체제를 도입해 국민의료보험제도가 붕괴되었다. 미국식 의료체제 도입이란 서비스 도입이 아닌 미국의 보험회사를 도입하는 것이며, 국민의료보험의 의무화가 폐지되는 것이다. 미국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국민건강보험이 없는 나라로서 개인파산자의 절반이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한다. 미국식 의료체제가 들어오면 부자들은 미국 병원으로 옮기고, 국민보험에서 빠져나가 미국계 보험회사에 가입할 것이라고 예측된다. 상위 12%인 부자들이 국민건강보험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다. 그들이 빠져나가면 자연스럽게 보험료는 상승하게 될 것이다.
4. 볼리비아는 미국과 직접 FTA를 맺지 않았지만, IMF재정지원을 받는 경제위기를 거치며 실제로 대부분의 공공서비스, 자원산업을 다국적 기업에 팔아 넘겼다. 상수도는 IMF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미국의 다국적기업 벡텔에게 장기 시설운영권을 넘기는 형식으로 해외매각했다. 수도가 민영화된 후 수돗물 값은 원래 가격의 4배로 뛰어 올랐다. 빈민들은 어쩔 수 없이 오염된 강물을 먹고 병에 걸리거나 빗물을 받아 마셔야했다. 강가로 물을 뜨러 나간 아이들이 악어에게 물려죽는 일도 빈발했다. 그런데 벡텔은 빈민들이 빗물을 받아 마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수돗물 판매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였다. 빗물을 지붕에서 통에 받는 것이 강수량을 떨어뜨린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도 내세웠다. 결국 볼리비아 정부는 빈민들이 지붕에 설치해놓은 빗물받이 통을 단속했고, 빗물에 세금을 부과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2000년 1월부터 3개월간 거대한 민중투쟁이 발생했다. 경찰이 총을 쏘고 민간인들을 진압하는‘물전쟁’을 치르고서야 비로소 민중들은 볼리비아 정부로 하여금 벡텔의 상수도 시설운영권을 박탈하게 할 수 있었다. 상수도 사업권을 잃은 벡텔은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배상금을 요구하는 재판을 걸었고, 볼리비아 정부와 벡텔 간의 지리한 소송이 계속되었다. 벡텔이 이 소송을 최종적으로 취하하고 볼리비아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된 것은 물전쟁이 발발한지 6년이 지난 2006년 이후였다. 이 투쟁을 이끌었던 오스카 올리베라라는 지도자가 2007년에 방한하여 볼리비아 투쟁사례를 소개하고 한국의 물 민영화 저지투쟁에 대한 연대활동을 벌인바 있다. 볼리비아의 물전쟁 사태는 공공부문 민영화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벡텔이 볼리비아 정부를 압박하고, 실제 제소사태를 벌일 수 있었던 ISD는 한미FTA의 ISD와 다르지 않다. 게다가 벡텔이 볼리비아와 FTA를 맺지도 않은 미국 국적의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를 제소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말로 ISD의 특성과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ISD를 포함한 한미FTA가 미국 기업만이 아니라 한국의 재벌과 다른 나라의 다국적 기업들 또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5.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멕시코의 경우 미국과의 FTA를 체결한 이후 국민의 절반 이상이 빈민층으로 전락했다. 물론 이 나라의 재벌은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세력을 키웠다. 멕시코 역시 미국식 의료체제를 도입하며 국민의료보험제도가 붕괴하였으며, 중소기업 역시 붕괴했다. 당시 멕시코와 미국의 FTA체결을 주장하던 대통령은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던 자로 지금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 시장과 현정부가 보는 한미FTA
지난 11월 7일 서울시는 외교통상부와 행정안전부에 낸 의견서를 통해“시민의 삶에 미치는 중대한 영향을 고려해볼 때 깊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며 협정에 대한 대책 등을 마련하는 데 지방자치단체의 참여를 보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ISD 재검토’,‘공공요금 인상제한 권한 협정문 포함’,‘자동차세 세율 인하로 감소하는 260억 세수 보전 대책’,‘미국계 SSM 진출에 따른 소상공인 보호 대책’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자 정부는“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과장된 우려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정부는“정부의 공공정책과 규제가 합리적이라면”ISD를 재검토해야할 근거가 없고, 설령 피소가 된다 하더라도 배상 책임은 중앙정부에 있는데다 지자체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지자체의 재정 부담이 늘어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자동차세 세율 인사에 따른 260억 세수 감소분에 대해서는“정부가 전액 보전하기로 통보”했고, SSM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1988년부터 유통시장을 개방했는데, 한미 FTA로 처음 개방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서울시 의견은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여전히 논란은 남는다. 우선 ISD와 관련해 정부는“피소가 되면 지자체가 아니라 법무부가 소송 절차를 밟는다”고 반박했지만, 서울시 의견서의 핵심 취지는 지자체의 조처가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 때문에 지자체의 정책을 마련할 때 ISD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한미FTA 11.3조를 보면 지방정부가 채택한 조처로 재산상의 손실이 발생했을 때에도 투자자가 상대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중재를 청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또 정부는“ISD에 대한 폭넓은 적용 배제 및 유보 조치를 취했다”고 하지만 현재 지자체 법규와 한미 FTA 협정이 어떻게 충돌하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SM으로부터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유통법과 상생법도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지난달 21일 열린 국회의‘끝장토론’에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FTA가 발효돼도 실정법(유통법과 상생법)이 자동무효가 되지 않고 국내에서 효력을 갖고 집행된다”면서“협정이 발효되면 분쟁을 제기하겠다는(미국 측의) 의사표명은 지금까지 없다”고만 말했다. 그밖에 자동차세율 인하로 감소하는 지방 세수 보전의 경우“이미 전액 보전을 통보”했다는 정부 주장과 달리 서울시는“정부가 지난달 지방세제 분야 워크숍에서 이행조치를 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한 데 불과해 후속조치를 촉구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조중동과 한겨레가 보는 한미FTA
한미FTA에 대한 비판을‘괴담’으로 몰아왔던 조중동은 지난 11월 8일과 9일 서울시 의견서를 낸 박원순 시장을 비난했다. 반면 한겨레신문은 협정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자체의 의견을 정부가 수용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조선일보는 8일 사설에서“박 시장이 바쁜 일정 중에 언제 1500쪽에 달하는 협정문을 다 검토해봤다고 느닷없는 의견서를 제출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꼬았다. 또“만일 한미 FTA에 반대 입장이 그렇게 확고하다면 노 정권 시절에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전달해 노 정권의 정책을 바꾸려 노력했어야 옳다”,“말이 서로 통하는 정권이 FTA를 시작할 땐 원론적으로만 반대하다가 미국 의회가 FTA 비준안을 통과시키고 나서야 이미 출발한 기차를 향해 느닷없이 정지 신호를 보내는 건 우습다”며 지자체장으로서 박 시장의 FTA 의견서 제출 취지를 호도하기도 했다. 또한‘ISD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며 서울시 의견서에 대한 반박을 중심으로 정부 주장을 다시 한 번 다뤘다. 동아일보는 9일 사설에서, 조선일보의 주장을 똑같이 반복해 실었다. 같은 날 중앙일보는 박 시장이 정부, 타 지자체 등과‘불협치’,‘소통 역행’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앙은 박 시장의‘서울역 노숙인 퇴거 조치 재검토 요청’,‘교통요금 인상 유보’등과 함께 한미FTA 의견서를‘불협치’,‘소통 역행’의 행보로 꼽았다. 같은 면 다른 기사에서는 지자체의 조처가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외면한 채‘중앙 정부가 ISD의 소송 당사자가 된다’는 점을 부각하며 정부 반박을 전했다. 앞서 8일 중앙일보는 박 시장의 FTA 의견서가 이른바‘친노세력’과의 교감 속에 나왔다며‘정치적 의도’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한겨레신문은 8일 사설을 통해 서울시 의견서가“당연하면서도 정당한 요구”라며 정부가 이를 수용할 것을 주문했다. 또 이 같은 의견서가 나오기까지 FTA 문제를 처리해 온 정부의 일방적인 태도에 대해 지적했다. 또“정부는 지자체에는 협정상 의무를 포괄적으로 유보했다고 주장하지만‘국제 관습법상 최소대우 기준’은 지켜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며“지자체도 미국 투자자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적 관습에 따른 의무를 져야 하는 것”으로“이를 저버리거나 게을리 하면 협정을 근거로 미국 투자자가 지자체를 국제중재절차에 넘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9일 기사에서도 서울시 의견서에 대한 정부의 반박 내용이“비판의 요지를 흐리는 것”이라며 허점을 짚었다. 기사는 지자체의 조처가 ISD의 소송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지적하는 한편, 정부가“현행 자치법규는 포괄적으로 규제권한을 유지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협정이 발효된 뒤에는 현행 자치법규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경할 수 없다”며 협정과 어긋나는 지자체 정책을 파악해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자동차세율 인하에 따른 지방세수를 보전하겠다는 내용이 주행분 자동차세 정액보전금을 인상하는 방식이라서 결국 직접세를 간접세로 전환해 소비자 부담을 늘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한미FTA, 어디로 나아가야 하나
한미FTA를 둘러싼 논쟁은 이제 감정싸움의 단계에 들어섰다. 한쪽에서는 한미FTA를 안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말하고, 반대편에서는 한미FTA를 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한미FTA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영향을 예측하고 우리가 한미FTA에서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한미FTA를 하면 개방경제가 되고 한미FTA를 반대하면 폐쇄경제가 된다는 주장에는 어폐가 있다. 우리 경제는 이미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개방되어 있으며 관세 장벽도 높지 않다. 한미FTA를 체결하더라도 정부가 주장하는 것만큼의 효과가 추가로 나타날 여지도 거의 없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한 ISD, 비위반 제소, 간접수용에 대한 손실보상 등은 분명한 독소조항이며 자유무역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므로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 정부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ISD가 필요하고 그래야만 외국인 투자가 촉진된다고 주장하지만, 외국인 투자자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내국인 대우 원칙만 확실히 보장해주면 족하다. 외국인 투자자에게 ISD를 허용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이다. 지난 10월22일 국회‘끝장토론’에서 이해영 교수가 폭로했다시피, 이제까지 한국 정부의 말과는 달리 한미FTA에서 미래의 공공정책결정권은 결코 포괄적으로 유보되지 않았다. 전기, 수도, 통신 등 공공부문도 미국 기업이 제소할 수 있는 ISD 제소대상이 맞다.“설마 상수도마저 민영화할 것이냐, 또 설령 민영화한다고 해도 설마 해외매각 하겠느냐”란 의문은,“왜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느냐”라는 질문처럼 부질없다. 다만 한미FTA는 민영화, 개방화의 원칙, 사유재산권 절대의 원칙을 어떤 필수 공공서비스 정책보다 중요시한다는 점은 명확한 사실이다. 한미FTA는 단순히 미국과 한국 양국 간의 국익을 저울질 하는 단순한 무역협정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 문제가 달린 공공정책ㆍ서비스를 파괴하고 재편하려는 다국적기업의 문제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