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여자가 되고 싶어요

순수함으로 노래하는 재즈싱어, 윤희정

2011-12-06     김엘진 기자
집중인터뷰-재즈보컬리스트 윤희정

올 5월‘윤희정&프렌즈’가 100회를 끝으로 드디어‘막을 내렸다’라 생각해 그 동안의 소감을 묻자 윤희정은 내년 3월 101회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올 크리스마스를 위한‘재즈 크리스마스 콘서트’가 끝나자마자 101회를 준비할거라고. 재즈의 불모지라 불러도 부정할 수 없는 한국 땅에서 따로 기획하거나 연출해주는 사람도 없이 FD 한 명과 함께 15년간 약 250명의 게스트에게 재즈를 가르쳐 공연을 올린 윤희정의 그 에너지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미칠 것 같아요, 죽을라고 그래, 깜짝 놀라 기절할 걸”
윤희정과의 인터뷰는 부산하고 활기찼다. 장장 세 시간을 계속된 인터뷰에서(보통 인터뷰는 한 시간정도다) 윤희정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했고, 노래를 했고, 자료를 보여주었고, 음악을 들려주었다. 윤희정은 어떤 질문에든 관련 자료를 태블릿 컴퓨터를 꺼내 확인시켜주었고, 인터뷰 도중 갑자기 훌륭한 커피가 있다며 커피메이커에서 커피를 뽑으며 몇 번씩이나 그 맛과 향을 묻기도 했다. 얼마 전 출연한 TV프로그램에 대한 질문에는 태블릿 컴퓨터에 저장해 둔 해당 프로그램을 찾아 플레이시킨다. 가수인 딸 김수연에 대한 질문에도 마찬가지였다. 딸이 노래한 공연의 테이프를 찾아 들려주고, 사진작가에게 불쑥 연락해 같이 찍은 사진을 보내달라 요청한다. 인터뷰 중 노래이야기가 나오면 윤희정은 불쑥 노래를 시작하며 스캣을 하고, 손가락으로는 책상을 두드리며 박자를 맞춘다. 사용하는 어휘도 강렬했다.‘미칠 것 같았어요. 죽을라고 그래, 깜짝 놀라 기절할 걸?’그것이 윤희정의 에너지였다. 열정적이고 능동적이고 순수하고 불같은 성격의 여성.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면 정치라도 했겠다 싶을 만치 윤희정은 여장부 같았다. 그런 생각으로‘음악을 안했으면 뭐가 되었을 것 같냐’고 묻자‘손재주가 있어 뜨개질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윤희정. 스스로는 예민하고, 꼼꼼한 A형이라고 주장하는 윤희정의 왕성한 독특함은 분명 호불호가 갈릴만한 개성이었다. 그러나 그런 면이 바로‘윤희정&프렌즈’를 15년간이나 이끌어온 에너지의 원천이란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윤희정이 그러한 뜨겁고도 세심한 여성이었기에 우리나라의 재즈가 조금 더 자기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일 것이다.

Q. 데뷔하게 된 과정을 알려달라
20대 초반 워낙 음악을 좋아해서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하러 다녔어요. YMCA 등엘 나가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일했었죠. 아버지가 통기타를 부숴버린 적도 있어요. 그래도 전 고집을 꺾지 않고 노래를 해야겠는 거예요(웃음). 그러다가 주변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1971년, 지금은 없어진‘KBS배쟁탈전국노래자랑’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슈퍼스타K’나‘위대한 탄생’같은 포맷의 방송이었어요. 매 주 새로운 도전자가 등장해서 월장원을 가리고, 이 월장원들이 경합을 벌여 한 해의 장원을 가리는 서바이벌 방식이었죠. 당시에는 TV가 보급되는 중이었고, 제가 나왔을 때가 노래자랑 첫 번째 해였습니다. 전 10월 도전자였고,‘세노야세노야’로 그 해 12월 그랑프리를 수상했어요. 당시에는 각 신문마다 제 얼굴이 맨 앞에 등장할 정도로 나름 유명했답니다(웃음). 그 때가 스물 셋이었는데, 바로 KBS전속가수가 되며 가수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거죠.

Q. 재즈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KBS 전속 가수로 일하면서 디스크를 두 어장 냈을 때쯤 가스펠을 부르게 되었어요. 그 무렵 결혼도 했고요. 그런데 어떤 기획자가 절 TV에서 보고, 재즈를 하면 좋겠다며 찾아왔어요. 1991년 이판근 선생님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그래서 이루어졌죠. 처음 이판근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 그 오묘한 음악을 듣고(도가 정확히 도가 아니고, 레도 레가 아닌 아지랑이 같은 음악이었어요) 전 단숨에 재즈에 반해버렸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처음엔 그만두라고 내치셨습니다. 보기에도 고생은 모르는 부잣집 맏며느리 감으로 생긴데다가, 시작하겠다고 하고는 얼마가지 않아 그만두는 학생들도 많았으니까요. 제 기름진 목소리로는 타 장르의 음악을 해도 잘 될거라고 재즈는 포기하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물러날 저도 아니고, 실은 오기가 생기는 쪽이거든요 전. 그래서 그날부터 십여 년을 그 집으로 출퇴근을 했습니다. 제 인생의 가장 큰 터닝포인트였어요. 선생님을 만나고 재즈를 만난 것은. 그렇게 재즈를 배우고 있을 때 지금의‘열린음악회’를 만드신 이문태PD가 절 부르셨어요. 첫 번째 불렀던 곡은 아직도 기억나요.‘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

Q. 재즈를 왜 그렇게 사랑하게 되었는가?
그냥요. 그냥 좋아요. 재즈가. 이판근 선생님 댁에서 처음 재즈를 들었을 때의 그 매혹적인 느낌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요. 재즈를 만나기 직전에 했던 게 가스펠이었어요. 가스펠은 블루스에 속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죠. 블루스는 재즈의 아버지 격이고 저 역시 굉장히 좋아하지만 완전히 충족되지 못하는 어떤 공허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재즈를 듣는 순간 그 공허감이 채워진 거였죠.‘어느 것이 최고, 어떤 음악이 최고’라는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선택을 했기에 그게 귀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랑하게 되었어요. 굳이 표현하자면, 그 자유로움이 좋은 것 같아요. 재즈는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도 가능한 열려있는 음악입니다. 그리고 한 번 갔던 길은 가지 않는 음악이에요. 너무나 멋지고 세련된 음악이죠? 물론 나팔바지가 유행을 하기도 하고, 힙합이 유행을 하기도 하고, 일자바지가 유행하기도 하지만 정장포멀은 여전히 기본인 것처럼, 재즈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올리언스, 밥, 쿨, 퓨전, 라틴, 소울 등 재즈의 종류는 많고 그때그때 유행을 하는 재즈도 있겠지만 정통재즈는 언제나 기본이죠. 저는 우선 그 정통재즈를 제대로 소화하고 싶어요. 거기에 더해 한국인의 정서를 담은 한국적인 재즈를 발전시키고 싶고요. 창의력이라는 것은 타문화, 타인의 것을 받아들이고 배우려고 하고, 비교분석하려고 할 때 증폭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 저는 스테이지에서 하는 아이 컨텍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노래를 하다가 트럼펫이 맘에 차지 않으면 피아노와 맞춰볼 수 있는 것. 정해진 길로만 연주하지 않고 즉흥연주로 얼마든지 이어갈 수 있는 것이 재즈입니다. 베이시스트, 피아니스트와 마찬가지로 보컬리스트인 저도 즉흥연주가 가능해요. 그게 바로 재즈의 스캣(scat)이에요. 그래서 재즈는 5분짜리 음악이 10분이되기도, 15분이되기도 합니다. 그런 자유로움과 창의력이 재즈를 재즈답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하게 된 것, 그리고 재즈를 만나게 된 것은 제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에요.

Q. 윤희정&프렌즈에 대해서…
올해 5월에 100회를 끝으로 잠시 막을 내렸어요. 내년 3월에 101회로 새롭게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에요. 좋은 장소를 물색 중이고, 첫 게스트로 모실 분도 몇 분 생각 중입니다. 금년 말에 크리스마스 빅쇼가 있는데요, 이 쇼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준비할 예정이에요. 윤희정&프렌즈는 재즈의 스캣과도 같아요. 이 쇼를 15년 간 올리면서 정말 제대로 쉰 적이 없었어요. 여행도 제대로 갈 수가 없었고, 항상 잠은 새벽 두세 시가 넘어서 잤어요. 그렇지만 이 쇼를 하는 것 자체가 언제나 행복했어요. 윤희정&프렌즈는 제 엔도르핀을 샘솟게 해요. 그 동안 모셨던 250여 명의 게스트를 섭외할 때도 전 언제나 직관이 시키는 대로 했어요. 물론 끝까지 섭외하지 못했던 몇 분은 계시지만, 거의 다 섭외에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예요.‘이 사람이다’싶은 사람은 반드시 섭외했습니다. 특히 그 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송인준 당시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섭외할 당시에는 제가 그 분의 시집을 밤새 읽어 시 한 수를 골라 거기에 곡을 붙여드렸을 정도로 노력하기도 했어요. 섭외과정에 몇 주가 걸렸죠. 게스트를 일단 섭외하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나 재즈를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세 달 정도가 소요돼요. 재즈가 어렵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직 대중들에게 친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로는 누구나 배우기만 하면 할 수 있는 쉬운 음악이에요. 바로 그걸 보여주고 싶어 가수가 아닌 유명인들을 게스트로 섭외하는 거고요.

Q, 활동하며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사실 예전에는 영어가사를 외우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다 외국곡이니까요. 사실 제가 영어가 유창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노래를 하기 위해서는 그냥 가사만 외워서 되는 게 아니라, 그 느낌을 살려야하거든요. 그게 참 어려웠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보컬리스트에게 기악곡에 가사를 붙이는 일이 요구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일본의 경우에는 벌써 20~30년 전부터 자국어로 재즈를 부르는 것이 당연시 되어있었고요. 가사를 붙인다는 것이 어렵기도 하지만 자국어 가사가 있는 재즈는 대중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고 훨씬 친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영어가사로 인한 어려움은 다행히 줄어들었어요(웃음).‘윤희정&프렌즈’에서 세 달간 수업을 받은 게스트에게 갑자기 사정이 생긴 경우도 있었어요. 15년 동안 겨우 세 번이었지만 당시에는 정말 하늘이 노래질 정도였답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다음 주자를 항상 준비해 두려고 노력해요.

Q. 공연 중 특별한 실수담이 있다면?
작년에 관객 150분을 모신 VVIP쇼 도중이었습니다. 무대가 대리석이었는데 굉장히 미끄러웠어요. 원래는 카펫이라도 깔려고 했는데 사정상 그냥 무대에 올랐거든요. 드레스자락도 굉장히 길었는데, 제가 마지막 딱 두 곡을 남겨두고 넘어졌습니다. 노래를 부르던 도중이라서 노래는 계속 하면서 다시 일어났어요. 남은 두 곡도 이어서 불렀고요. 관객들도 제가 바로 일어서 노래를 이어가니까 별게 아니구나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공연이 끝나자마자 바로 구급차에 실려갔었죠. 꼬리뼈를 심하게 다쳐서 한 달 이상을 기어 다녔습니다. 그 이후로는 절대로 미끄러운 무대에 서지 않아요. 노래 때문에 벌어진 실수는 없어요. 이게 재즈의 장점인데, 재즈는 정형화되어있지 않고 즉흥적인 음악이잖아요. 혹시 가사를 씹거나 기억이 안 날 경우에도 스캣으로 부르면 되기 때문에 관객들은 전혀 실수를 눈치 챌 수가 없습니다. 다행이죠(웃음).

Q.‘이노래, 아세요?’란 책을 소개한다면?
‘윤희정&프렌즈’의 100회를 기념할만한 특별한 걸 하고 싶어 고민하다가, 대중들을 위해 재즈 지침서를 내는 게 어떨까 싶었어요. 책은 크게 다섯 챕터로 나뉘어요. 레드, 블루, 그린, 브라운, 옐로우로 각각 열정, 그리움, 휴식, 추억, 희망을 노래하는 곡을 실었어요. 그날의 기분에 맞춰 곡 설명을 읽다가 직접 노래가 듣고 싶어지면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으면 돼요. 유튜브로 연결되어‘윤희정&프렌즈’공연 장면이 바로 뜹니다. 영상은 총 80개가 들어있어요. 물론 무료로 감상할 수 있죠. 이건 제가 원해서 쓴 책이기도 하지만, 정말로 독자를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외출 했을 때 전혀 모르는 분이 다가가 책 너무 잘 봤고, 밤새 영상을 찾아보느라 잠을 설쳤다는 이야기들을 해주시곤 해요. 그럴 때 정말 행복하고 뿌듯합니다. 참고로 이 책은 출간되자마다 삼 주 만에 예술베스트 1위를 하기도 했어요(웃음).

Q, 100회 동안‘윤희정&프렌즈’에 나온 프렌즈들에게…
정말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 한분한분께 모두 인사를 드리고 싶지만, 그럴 순 없으니까. 100회 기념 공연 때 나와 주신 분들에게 대표로 좀 인사를 드릴게요. 강석우, 신애라, 김보연, 김효진, 박미경, 박상원, 송일국, 박준규, 유열, 이유리, 이소정, 이윤미, 왕빛나, 홍수현, 윤영미, 박경림, 백승조, 변우민, 소유진님 감사합니다. 특히 마술사 이은결씨. 전 이 분이 정말 멋졌어요. 정말 감사하고 싶어요. 어떤 프로젝트가 주어져도 깜짝 놀랄만한 아이디어를 내는 친구예요. 이야기를 하거나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이은결 씨가 품고 있는 세계의 넓이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답니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친구라고 생각해요.

Q. 특별한 팬이 있다면?
팬은 누구나 다 특별하지만, 그 중에서 한 분을 꼽자면, 10년이 넘게 절 좋아해주시는 여성분이 계세요. 항상 콘서트를 빼놓지 않고 오셔서 결국 안부도 묻는 친한 사이가 되었죠. 어느 날 이 분이 친구 분을 데리고 오셨어요. 친구 분이 재즈가수가 되고 싶다고 하셨다고. 작업실에서 수업을 했었는데, 결국 친구 분은 음악을 포기하고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제 팬 분은 오히려 음악을 시작하게 되어서, 지금은 콩가를 배우고 계시답니다. 워낙 음악적으로도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고, 오랜 시간 팬과 가수로 알고 지냈기에 스승과 제자 사이인 지금도 매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답니다.

Q. 딸 김수연과, 가족에 대해서…
저는 정말로 수연이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생각될 정도입니다. 사실 저도 노래 잘 하시는 아버님께 재능을 물려받았는데 수연이는 정말로 타고난 게 분명해요. 딸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음악적으로는 타고났어요. 작사, 작곡, 편곡, 악기연주, 노래 못하는 게 없는데 실은 딸에게는 이렇게 직접 말해 본 적이 없어요. 언제나 문제점만 지적하죠. 매너리즘에 빠질까 염려가 되어서요. 그렇지만 가끔은 정말 그 애의 재능이 부러울 때도 있답니다. 수연이는 지금도 작곡을 하면 전화로 음악을 들려주고, 의견을 물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우린 모녀지만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세대차이가 없답니다. 그게 너무 좋아요. 늙어죽을 때까지도 딸과는 음악으로는 항상 소통이 되겠죠. CC 휴스턴과 휘트니 휴스턴처럼요. 아들은 결혼을 했고 아이가 셋인데, 지금 외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요리를 배우고 있답니다. 노래는 잘 못하지만 리듬감이 있어 랩에는 굉장한 소질이 있습니다. 아들과 딸과 셋이서 무대에 선 적이 있었는데, 정말 그 때의 행복함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살면서 어렵고 힘든 일도 있었고, 후회되는 일도 있지만 아이들을 낳고 함께 음악을 즐길 수도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감사합니다. 남편은? 남편은 음악적 소질이 전혀 없고요(웃음). 다른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살면서 여러 번 부딪히기도 했지만 결국은 조금씩 타협을 하고 이해를 해나가고 있어요. 얼마 전에 TV프로그램‘자기야’에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그런 말을 했거든요.“똑똑한 여자가 훌륭한 남자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은 방안에 앉아서 벼락 맞을 확률과 똑같다”고. 어째서인지 편집이 되어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웃음), 저는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너무 똑똑하고 스스로는 모두 옳다고 믿는다면 그런 상대를 만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리고 사실 그렇게 완벽한 상대 같은 건 없어요. 사람과 사람은 서로 안 맞을 수 있고, 그때마다 공격하기보다는 타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일본 TV프로그램중에‘커피&커피’라는 토크쇼가 있어요. 재즈음악이 흐르는 중에 MC와 게스트가 앉아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포맷이에요. 그런 쇼를 해보는 게 제 꿈이에요. 지금의‘윤희정&프렌즈’를 언젠가 브라운관에서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몇 년 전에 비해 재즈가 많이 알려졌잖아요. 심지어 최근에는 어떤 커피숍에 들어가면 몇 분 지나지 않아 흘러나오던 음악이 재즈로 바뀌는 일이 잦아요. 절 알아보고 배려해주시는 거죠. 그건 이제 재즈는 어디서도 들을 수 있는 대중성 있는 음악이 되었다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제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뒤에서‘소프라노다’라고 수군댔거든요. 지금은 재즈를 하는 여자라고 많이들 알아봐주세요. 아직까진 어려운 음악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많이 친근해지지 않았나요? 그래서‘윤희정&프렌즈’를 방송화 하고 싶은 거예요. 대놓고 재즈를 들으라고 틀어주지 않더라도 일상생활 속에서 흐르는 음악이 재즈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면 재즈는 지금보다 대중들과 훨씬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게 되지 못한다고 해도‘윤희정&프렌즈’는 계속 될 겁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고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 제 인생의 방식이에요. 열심히 즐기고 노력한 중간과정이 훌륭하다면 결과는 좋을 수밖에 없다고도 믿고 있고요. 그래서“넘버원이 되기보다는 온리원이 되자”고 생각해요. 가수로서는 기술적으로도 물론 훌륭한 보컬리스트가 되어야겠지만, 그보다는 영혼을 담은 소리를 내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진심을 담아 마음을 울리는 노래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평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건 걱정 없어요.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핸콕(Herbie Hancock)이 언젠가 자기는 손가락이 부러질 때까지 피아노를 치겠다고 말했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노래를 할 겁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보고 싶은 여자’가 되고 싶어요. 누구와 만나 무슨 일을 하든 나중에 제 이야기가 나왔을 때“보고 싶다”는 소리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모두에게 최선을 다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Q. 최근의 작업에 대해서 알려달라.
월드뮤직, 스윙, 깐똠블레, 사물놀이 등에 관심이 많아요. 폴리리듬(편집자 주:대조적인 리듬이 2성부 이상에 동시에 사용되고 있는 현상을 말하며 크로스 리듬이라고도 한다)을 사용해 이판근 선생님께서 패턴화해서 만든 음악을‘셔플모리’라고 부르는데요. 지금 그걸 자주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향할 음악이고요(여기서 그녀는 불쑥 그 음악시디를 찾아 틀었다. 판소리와 재즈의 느낌이 섞인 끈적거리는 목소리에, 흥겨운 장단이 느껴지는 음악이었다. 태평소인 줄 알았던 악기소리는 소프라노 색소폰이었다고). 들어보면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한국적인 장단과 소리에, 재즈가 입혀진 거죠. 외국에서 이 음악을 연주한 적이 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외국인들이 다 너무 좋다고 미칠라고 그랬어(웃음).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건 제가 살아가면서 언제나 따르려고 노력하는 말이에요.“항상 꿈꾸되 구체적이고 작은 꿈을 꿔라”그 구체적이고 작은 꿈들이 모여 산더미처럼 큰 꿈이 되고 큰 행복이 될 거라고 믿어요. 키다리아저씨에 나온‘나는 신작로에 주저앉아 조그만 행복들을 산더미처럼 쌓을 거예요’라는 문장도 참 좋아해요. 언제나 이 순간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최고의 모습으로, 최고로 즐겁게. 그렇지만 또 살다보면 이해도 되지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어떤 일들이 반드시 일어납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그 상황을 헤쳐나가는지, 무엇으로 위로를 받는지가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재즈와 종교생활이 위안이 되었어요. 저에게는 재즈 같은 그 무엇을 모두들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인생을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12월 24.25일 양일간‘윤희정의 재즈 크리스마스’콘서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길 바랄게요. 연말에는 역시 재즈잖아요(웃음).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