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서울에도 있다는 거 아셨나요?

성곽의 도시 서울 “역사탐방부터 숲길산책까지”

2012-04-06     김엘진 기자
기획-서울 성곽길

서울은 성곽의 도시다. 북악산ㆍ인왕산ㆍ남산ㆍ낙산을 잇는 서울성곽은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어있다. 이 성곽을 따라 조성된 약 18.6㎞에 달하는 길이 바로 서울성곽길. 낙산공원ㆍ남산공원ㆍ와룡공원ㆍ삼청공원 등 10개가 넘는 녹지공원과 국보 1호 숭례문, 보물 1호 흥인지문을 포함해 170개에 달하는 문화재가 성곽을 따라 산재돼 있다. 서울성곽길은 조선 왕조가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600년간 도성을 지켜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3월 역사ㆍ문화ㆍ생태까지 삼박자가 어우러진 서울을 대표하는‘걷기 좋은 길’로 이 길을‘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로 지정했다. 서울의 도성 올레길, 봄나들이로 가볍게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 성곽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수도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1396년(태조 5년) 축조한 도성이다. 이후 세종과 숙종 때 성을 보수하며 조선시대 각기 다른 성곽 축조 기술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며 무너진 성곽을 보수하다 보니 한 공간에 태조와 세종과 숙종이 동시에 공존하는 특이한 역사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것. 특히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도성 중 세계에서 가장 긴 기간(514년, 1396~1910) 동안 도성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총 길이 18.6km에 이르는 세계 최장의 도성이기도 하다. 한양도성은 4대(大)문, 숭례문(남대문ㆍ국보 1호), 흥인지문(동대문ㆍ보물 1호), 숙정문(북대문), 돈의문(서대문)과 4소(小)문(창의문ㆍ광희문ㆍ혜화문ㆍ소의문), 그리고 두 개의 수(水)문인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 중 돈의문(1915년 멸실)과 소의문(1914년 멸실)은 지금은 이름만 남아 있다. 한양도성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곳이 파괴되었다. 특히 성곽 중 1.1km가 도로로 사용 중이고, 4km는 이미 사유화돼 복원이 어려운 상태. 서울시는 이미 복원을 완료한 12.3km와 복원 공사 중인 1km를 제외한 도로 부분을 다양한 형상화 작업을 통해 연결할 예정이다.

<역사탐방> 낙산성곽길
?동대문?낙산성곽길?낙산 정상 마을버스 정류장?비우당?청룡사?낙산전시관-한성대입구역
?약 4km, 약 2시간 소요
동대문역<사문화공원 근처 광희문에서 시작되는 낙산 코스는 완만한 산책길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서울 성곽은 한양의 내사산, 즉 네 개의 산을 넘는데 낙산은 그중 가장 낮은 산으로 내사산 좌측이자 동쪽 산으로 한양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이다. 광희문과 동대문을 지날 때 복잡한 도심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약간의 흠이다. 동대문시장을 빠져나오면 성곽을 따라 낙산공원까지 산책로가 이어진다. 낙산 코스는 혜화동에서도 진입하기 쉬워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며 낙산에 얽힌 역사적인 흔적들을 돌아볼 수 있어 가족나들이로도 안성맞춤이다. 또한 밤에도 환한 조명이 성곽을 비추고 산책로도 잘 정비 돼 있으며 정상에서는 서울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관이 뛰어나고 접근성이 용이해 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받는 곳이다. 동대문의 정식 명칭은 흥인지문으로 한양의 동쪽 대문.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 7번 출구나 1호선 6번 출구 쪽에서 흥인지문을 볼 수 있다. 지하철 동대문역 1번 출구에서 뒤로 돌아 조금만 걸으면 동대문교회 옆길로 서울 성곽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성곽 밖을 걷는 길인데 조금 더 올라가면 잘 꾸며진 길이 조성되어 있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첫 암문을 통과해 성곽 안으로 들어가 성곽 안쪽 길로 걸어 올라가면 된다. 성 안으로 걷는 길은 이화동 옛 동네를 끼고 걷는 길로 70년대 낡은 집들이 늘어서 있다. 길을 올라다가 보면 동대문을 향해 길게 능선을 타고 흘러가는 성곽과 그 너머 서울 시내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곧 낙산 정상으로 이곳에서 성곽이 끊겨 있다. 정상에서 창신역 방향으로 가다 보면‘비우당’이라는 소박한 초가가 한 채 있다. 비우당은 조선 선비의 청빈사상을 상징하는 초가집으로 조선 태조 때부터 세종 때까지 벼슬을 지낸 유관(1346~1433)의 집으로 청백리였던 그는 지붕이 새는 데도 보수하지 않고 방 안에서 우산을 받쳤다고 한다. 후에 유관의 외가 5대손이자 실학자인 이수광(1563~1628)이 이 집에서 조선 최초의 백과사전인<지봉유설>을 집필했다. 비우당에서 나와 쌍용아파트 정문 앞으로 이동해 큰 길을 따라 500m정도 내려가면 청룡사가 있다. 청룡사를 돌아본 뒤에는 다시 낙산 정상으로 올라가 반대편 혜화동 방향으로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낙산전시관을 볼 수 있다. 낙산전시관을 본 후에는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 한성대입구역까지 가거나, 대학로로 바로 내려갈 수도 있다. 낙산 코스는 짧고 수월하나 그늘이 없는 코스로 모자와 생수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서울시민들의 자랑> 남산성곽길
?숭례문-백범광장-남산성곽길-남산 봉수대-남산 남측순환로?국립극장-자유총연맹?장충동 성곽길
?약 4.6km 약 3시간 소요
남산성곽길은 숭례문에서 출발하여 장충체육관, 신라호텔 뒤편, 국립중앙극장을 거쳐 사소문 중 하나인 광희문까지 가는 코스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숭례문으로 가려면 지하철 1호선이나 4호선을 타고 서울역 4번 출구로 나가거나, 지하철 2호선 시청역 8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 가을에 숭례문에서 성곽을 따라 남산을 오르면 아름다운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다. 숭례문에서 남산 쪽으로 올라가 퇴계로를 건너가는 남산육교를 건너면 길가에 서울성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길을 올라가면 도동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더 올라가면 백범광장
이 나오고 더 올라가면 남산 성곽길이 나타난다. 이 길은 성곽 안쪽을 걷는 코스여서 성벽을 볼 수는 없고, 성안에서 여장을 따라 걷게 된다. 길은 중간에 성곽과 잠시 떨어졌다가 다시 성곽과 만나 성곽을 따라 남산 케이블카 승강장을 지나 남산 봉수대까지 이어지는데 이 길이 남산을 오르는 가장 가파른 길로, 거의 전 구간이 계단으로 되어있어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남산 봉수대 옆에는 팔각정이 있는데 이 팔각정 자리가 예전에 국사당이 있던 자리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뒤 이곳에 목멱산신(목멱산은 남산의 옛 이름임)을 모시는 국사당을 짓고 제사를 올렸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이 국사당을 인왕산으로 옮기고 이 자리에 일본식 신사인 조선신궁을 세워, 일본 천왕의 신주를 놓았다가 광복 후 일본으로 가지고 갔다. 정상에서 내려와 팔각정 건너편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남측순환로가 나온다. 남측순환로를 따라 내려가면 국립극장 앞 장충단 길을 만나게 되며, 여기서 장충동성곽길 쪽으로 들어설 수 있다. 이 코스에서는 온전한 성곽을 즐길 수 있으며, 성벽을 쌓은 축조 방식이 다른 부분들이 보여 태조, 세종, 숙종 시절의 성벽을 구분해낼 수 있다. 이 길은 신라호텔 부근에서 끊긴다. 신라호텔에서 광희문까지는 성곽이 없는 길이다. 보통 여기까지를 남산성곽길이라고 한다. 그러나 광희문까지 가고 싶다면 여기에서 계속 이어가면 된다. 신라호텔 옆 성곽이 끊긴 곳에서 바로 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신당동 성당 앞을 지나 신승 빌라 앞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는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수구문길 표시를 따라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광희문 옆 성곽이 나오고, 성곽을 왼쪽으로 따라 내려가면 광희문이 보인다. 광희문(光熙門)은 한양의 사소문 중 하나인 남소문으로, 시구문 또는 수구문이라 불리던 문이다. 시구문(屍軀門)이라 불린 이유는 이 문을 통해 도성 안의 시신을 성 밖으로 내보냈기 때문이며, 수구문(水口門)이란 이름은 이 문에 가까운 곳에서 청계천 물이 나간다 해서 붙여진 이름. 1396년(태조 5년)에 처음 세웠으며 1422년(세종 4년)과 1711년(숙종 37년)에 개축하였다고 전해진다. 1719년에야 문루를 세우고 광희문이란 현판을 걸었으며 그 뒤로 1975년에 도성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석문을 수리하고 문루를 다시 세웠다. 본래는 길 가운데 있던 것을 이때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숭례문부터 광희문까지는 약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숭례문에서 남산 봉수대까지가 계단 길이므로 자신이 없는 사람은 코스를 반대로 도는 것도 요령.

<최고의 단풍명소>북악산성곽길
?혜화문-와룡공원-숙정문-촛대바위-곡장-청운대-1.21소나무-백악마루-창의문
?약 4.7km 약 2시간 25분
서울 분지를 둘러싸는 북악산ㆍ남산ㆍ낙산ㆍ인왕산 중 가장 높은 산이 북악산. 경복궁 북쪽에 솟아 있으며 백악산이라고도 불리며 높이342m의 산으로 산의 형태가 뾰족뾰족해 중간중간 가파른 구간이 있다. 성의 하나인 창의문이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의 사이에 있어 시내와 쉽게 연결된다. 창의문에서 정릉의 아리랑고개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는 창의문ㆍ팔각정ㆍ풀장 등을 연결하는 관광도로로 울창한 숲과 서울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조망이 좋은 경승지다. 북악스카이웨이와 남동쪽 산기슭의 삼청공원은 좋은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서울성곽 단풍명소 중 단연 으뜸으로 꼽는 곳도 바로 이 북악산성곽길. 숙정문의 빨간 단풍 때문인데 가을에 붉게 단풍으로 물든 숙정문을 찾는 시민들의 입에서는 절로 감탄사가 난다고. 다른 성곽길과 달리 북악산성곽길은 오후 3시 이후 출입이 통제된다. 하절기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동절기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개방된다. 말바위 안내소나 창의문에서 오후 3시 이전에 입장을 해야 하며 반드시 주민등록증을 소지해야 한다. 북악산은 청와대 뒷산으로 1968년 북한의 무장침투조가 세검정까지 들어와 전투를 벌인 뒤 일반인에게 출입이 금지되었던 산으로 2007년 개방되어 일반인들도 이 북악산을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민등록증 확인이나 시간제한 등이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 울창하고 멋진 숲을 즐길 수 있으며 최근 서울성곽 복원공사가 진행되어 길도 잘 닦여있다. 세종 때와 숙종 때 만들어진 성곽이 산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다. 혜화문에서부터 성곽길을 따라 오르면 경신 중고등학교와 서울과학고등학교를 지나게 되는데 바로 성곽길 입구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길이 완만하지만 갈수록 경사가 있는 길. 그러나 조망도 좋고 숲도 좋아 걷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성곽의 안쪽을 걷기도 하고 바깥쪽을 걷기도 하면서 30분 정도 오르면 와룡공원에 닿으며 말바위 안내소까지는 20분 쯤 더 걸린다. 이곳에서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출입신고서를 작성한 뒤 출입증을 받아야한다. 여기부터 본격적으로 아름다운 숲길이 이어진다. 숙정문, 촛대바위, 곡장, 청운대을 지나면 1.21소나무가 나온다. 1968년 1월 21일 청와대 습격사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1.21소나무에는 15발의 선명한 총탄 자국이 치열했던 당시의 총격전을 보여 주며 이 사건 이후 북악산 성곽의 경계가 삼엄해졌고 75년부터 대대적인 성곽 보수공사가 시작되었다고. 나무를 지나 백악마루에서 본 서울 도심은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배산임수의 전형이다. 경복궁과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구성됐고 그것을 남산과 낙산과 인왕산이 감싸 안은 모습이다. 그리고 종착지인 자하문에 닿을 때까지 많은 계단을 거쳐야 하는데 계단을 오르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가을 성곽길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다. 창의문으로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급한 내리막. 창의문은 사소문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1623년 인조반정 때 반란군이 이 문을 통해 도성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창의문에는 그때 공신의 이름을 적은 현판이 아직도 걸려 있다. 하지만 숭례문 방화사건 이후 적외선탐지기를 설치해 문루 출입을 철저히 막고 있어 멀리서만 볼 수 있었다. 북악산 코스는 오랫동안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서인지 성곽이 끊기거나 부서진 구간 없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도심 한 가운데서 만나는 역사> 인왕산 성곽길
?창의문-윤동주시인 언덕-인왕산 정상-국사당-경교장-돈의문 터-정동공원-배재학당-소의문터-남지터-숭례문
?약 5.3km 약 3시간 15분
인왕산 코스는 창의문에서 시작해 인왕산을 넘어 남대문인 숭례문까지 걷는 코스이다. 인왕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온통 바위더미로 험하고 가파르다. 출발점인 창의문으로 가려면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 3번 출구 앞에서 버스를 타고 자하문고개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창의문 건너편 계단을 올라가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나오며 짧게 성벽이 복원되어 있다. 성벽을 따라가다가 정자 쪽으로 내려가 정자를 지나 도로(인왕산길)로 나가 걸으면 길 건너편에 철문이 보인다. 철문을 통과해 계단을 오르면 또 성벽을 만나게 된다. 성벽 안으로 계단을 걸어 오르면 탁 트인 전망대가 나오는데 이름도 없는 전망대이지만 전망 하나만은 일품이다. 성 바깥으로는 기차바위가 우뚝 솟아 있고 성벽이 이어진 곳에는 인왕산 정상 바위가 보인다. 이 길을 조금 더 가면 철계단을 지나 정상으로 오르게 된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은 바위길로 조심해야 한다. 이 길을 내려가다 보면 멀리 성벽이 뾰족한 산능선을 휘돌아나가는 지점이 보인다. 인왕산 성곽 곡장이다. 곡장 앞에서는 등산 안내도를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오른쪽길은 보수공사 중으로 출입이 금지되어있다. 인왕산 약수터를 지나 내려가면 도로(인왕산길)로 내려서게 된다. 여기서도 왼쪽 길로 가면 길이 갈라지는데 여기서 직진(오른쪽). 이 길 오른쪽에 성벽으로 올라가는 철문이 나오고 왼쪽에 성벽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 있다. 왼쪽으로 내려가는 성벽을 따라 걸어 내려가다 보면 성벽으로 올라가는 작은 철계단이 나온다. 이 철계단을 오르면 인왕산으로 올라가는 성벽이 한눈에 보이고 인왕산도 시원하게 눈에 잡힌다. 다시 성벽 안쪽으로 성벽을 따라 내려가면 암문이 나온다. 이 암문을 통해 성 밖으로 나가 성벽의 바깥쪽을 걸으면 된다. 이 길을 조금 내려가면 상록수어린이집에서 성벽이 끊긴다. 성벽의 흔적은 다시 홍난파 가옥이 있는 월암근린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상록수어린이집을 지나자마자 나오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고, 유신빌라 앞에서 다시 왼쪽 길로 들어서야 한다. 좁은 빌라골목이다. 이 골목을 따라 걷다가 오른쪽을 보면 빌라 1층 주차장 안쪽에 성곽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삼거리에서 좌측길로 가면 왼쪽에 홍난파 가옥이 있다. 홍난파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6년을 보낸 집이다. 현재 홍난파 가옥에서는 이따금 하우스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홍난파 가옥 앞으로는 월암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월암근린공원 동쪽으로 서울 성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성벽은 거의 다 허물어져 낮게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왼쪽으로 접어들어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새문안길에 있는 강북삼성병원이 나온다. 강북상섬병원에는 김구 선생이 머물던 경교장이 있다. 이제 새문안길로 내려간다. 신호등을 건너 경향신문사 앞 정동길로 들어가면 막바지 서울 성곽길이 이어진다. 길 왼쪽 예원고등학교 골목 안에 구 러시아공사관 터가 있다.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고종이 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던 아관파천이 일어났던 건물이 있던 자리. 그러나 현재는 건물은 없고 3층탑만 하나 남았는데 공사 중이다. 러시아공사관 터를 나와 다시 정동길을 조금 걸으면 정동극장이 보인다. 정동극장 옆 골목 안에 중명전(重明殿)이 있다. 중명전은 1901년에 세워진 건물로, 본래는 이 자리도 덕수궁 안이었다고 한다.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 설계한 서양식 건물로, 처음에는 수옥헌(漱玉軒)이라 불렀다고. 처음 용도는 왕실도서관이었는데, 1904년 덕수궁 대화재로 덕수궁 건물들이 소실되어 고종은 이 중명전에서 정무를 보았다고 전해진다. 덕수궁의 편전 역할을 한 셈이다. 1905년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겼던 을사조약이 이 중명전에서 체결되었고, 1907년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헤이그에서 자결한 이준 열사에게 고종이 직접 친서를 주었던 곳도 이 중명전이라 한다. 그러나 이곳도 현재는 공사 중이다. 정동극장 앞을 지나면 서울시립미술관 앞 로터리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서소문으로 이어지는 길로 가야 한다. 오른쪽에 배재학당 건물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이 문을 열었던 건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을 보고 다시 서소문길로 나가 길을 건넌 뒤 왼쪽으로 조금 가면 횡단보도가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중앙일보사 건물이 나온다. 이 중앙일보사 앞이 소의문이 있던 소의문터다. 소의문(昭義門)은 한양 사소문 중 서소문에 해당하는 문이다. 1396년 태조 때 한양 성곽을 쌓으며 처음 세웠는데 당시 이름은 소덕문(昭德門)이었다. 그후 1744년(영조 20년)에 이름을 소의문으로 바꾸었다. 이 소의문은 광희문과 함께 도성의 시신을 도성 밖으로 옮기던 문이었다고 한다. 또 조선 후기에는 이 소의문 밖에 칠패시전이라 불리던 큰 시장이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1914년 일본인들이 도시계획을 구실로 철거해 버린 뒤 현재까지 복원되지 않고 있다. 서소문로에서는 중앙일보사 앞길인 왼쪽 길로 접어들어 숭례문으로 가면 된다. 이 길을 가다 보면 길 왼쪽으로 성곽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옛 성곽의 흔적은 조금 남아 있을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최근에 복원한 성곽들이다. 이 길을 따라가면 상공회의소 옆길로 빠져 숭례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여기까지 오면 인왕사 성곽길도 끝이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