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불법사찰 흥신소!

“잠복에 미행, 불법도청까지 일삼으며 뒤 캐내어 쫓아내기까지”

2012-05-10     박소담 기자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공직자 비위 감찰이라는 명분으로 사실상 현 정부의‘흥신소’역할을 했다는 의혹은 결국 사실이었다. 지난 3월 30일 한 일간지에서 입수한 지원관실 점검1팀의 사찰 문건 2,169건에는 참여정부에서 임명됐던 인사들을 축출하려 하고, 반대로 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이들을 주요 보직에 앉히기 위해 온갖 뒷조사를 가리지 않았던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번 불법사찰은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정ㆍ관계, 언론계 인사는 물론 민간인을 대상으로도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더구나 단순한 정보수집 차원을 넘어 이를 이용해 사찰 대상에 대한 인사 개입이 벌어진 정황이 나타나는 등 실제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충격은 배가 되고 있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드러난 실체
‘2008년 하명사건 처리부’를 보면 이세웅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김광식 전 한국조폐공사 감사, 김문식 전 국가시험원장, 박규환 전 소방검정공사 감사 등이 목록에 올라 있다. 지난 정부 때 임명된 이들이 지원관실의 조사 대상이 된 이유는‘공기업 임원 사표 거부’라는 것이었고, 진행상황은‘완료’라고 기재돼 있다. 청와대 또는 국무총리의 하명을 수행해 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들은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지원관실의 집요한 사찰이 벌어졌고 그 결과 사표를 받는 데 성공했다는 추정이 가능한 것이다. 이 전 총재 등 각 인사에 대한 구체적인 사찰 보고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찰 과정에서 불법과 탈법이 자행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현 정부 들어 임명된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사찰 보고서도 수두룩하다. 어청수, 강희락 전 경찰청장, 조현오 현 경찰청장은 물론 장수만 전 국방부 차관, 윤여표 전 식품의약품안전청장, 최성룡 전 소방방재청장 등에 대해 지원관실은 상세한 보고서를 작성해 상부에 보고했다. 평가항목은 총 4개로 국정철학 구현, 직무역량, 대외관계, 도덕성 및 복무기강이었는데 지원관실은 각각에 대해 별 5개 만점 기준으로 점수를 줬다. 주목할 부분은‘국정철학 구현’항목이다. 이명박 정부에 친화적인지 아닌지를 최우선으로 검증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9년 1월 방위사업청장에 임명된 변무근 전 청장은 국정철학 구현 항목에서 별 4개 반을 받았는데,“롯데월드 신축 허용, 제주해군기지 건설 등 주요 정책 담당자를 초청, 전 직원들에게 설명토록 해 국가 정책의 이해도를 높이고 국정철학 확산에 노력했다”고 적혀 있다. 이 같은 지원관실의 보고서는 공무원 인사에서 주요 지표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2009년 4월 보고서에서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은‘독불장군형이고 국가정보원과 불협화음을 빚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그는 5개월 후 경질됐다. 또 경찰청 정보계통의 한 호남 출신 간부에 대해서는“터놓고 이야기를 잘 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나 행적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는 등 다소 크레믈린 같은 면도 있다”며“호남정권의 혜택을 입었으며 호남인사와 활발하게 교류해 지역색을 다소 띤다는 평가가 있다”고 기재했다.“앞으로는 해당 보직은 충성심이 담보되는 인사로 발령하는 게 타당하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었다.

도청ㆍ미행 등 불법 정황 속속포착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2008년 7월 신설된 직후부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공직자들 사이에서는‘관가의 저승사자’로 불렸다. 엄연히 국무총리실의 하부조직임에도 공식 직제상의 지위체계는 무시됐고 정권의‘친위대’ 역할에 충실했던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공무원이라면“지옥가기보다 싫어한다”는 의미에서‘지옥의 외인부대’로도 불렸다. 지원관실 소속 직원들의 사찰 과정과 보고 문건을 살펴보면 이 같은 풍문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한 매체가 지난 3월 29일 공개한 지원관실의 내부 문건에는 이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사찰 대상자들을 추적했는지 적나라하게 나타나있다.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를 감시해야 할 이들이 자신들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도청, 미행 등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드러났다. 2009년 5월 지원관실의 내부 첩보망에 사정기관 고위 간부 ㄱ씨가 걸려들었다. ㄱ씨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지원관실은 5월 19일 ㄱ씨의 뒤를 밟으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사찰 내용은 시ㆍ분 단위로 정리돼 상부에 보고됐다.“밤 10시30분. 차 밖에서 선 채로 내연녀와 이야기하다가, 가볍게 뽀뽀를 하고 헤어질 듯하더니, 같이 아파트로 걸어 들어갔다”와 같은 식이다.“병맥주 2병과 과자 3봉지를 구입했으며 계산을 하려다 내연녀가 맥주 1병을 떨어뜨려 깨졌다”와 같이 사찰의 핵심과 무관해 보이는 세부사항까지 꼼꼼하게 기록돼 있었다. 도청이나 아주 가까운 거리의 미행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들을 수 없는 구체적인 대화 내용도 문건에는 그대로 복기돼 있었다. 보고서를 보면 ㄱ씨는“당신 딸에게 뭘 사주지?”라고 물었다. 이에 내연녀는“ABC초콜릿이면 돼”라고 답했다고 돼 있다. 사찰 대상자가 지었던 표정과 상황까지도 자세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보고서에는“계속 소주를 마시며 애원하듯이 이야기를 했지만 내연녀는 다소 무덤덤한 표정으로 듣고만 있었음. 술은 별로 마시지 않았음”이라고 기록했다. 이 문건이 상부에 보고된 지 두 달여 만에 ㄱ씨는 결국 사표를 냈다. 사직 이유는“건강이 너무 나빠졌다”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지원관실의 집요한 감시가 결정적인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원관실의 집요한 미행ㆍ추적 행각은 이전에도 일부 드러난 적이 있다. 2009년 12월 말 배정근 한국노총 공공연맹위원장이 지원관실의 미행을 당한 사실이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의 불법사찰 폭로 직후인 2010년 7월 초 알려졌다. 배 위원장은“당시 경기 송추에서 서울 여의도로 이동하던 도중 검은색 차량이 계속 쫓아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차를 세운 뒤 신분을 확인하니 경찰에서 파견한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이었다”고 폭로했다. 미행 당시는 복수노조 허용 문제 등을 놓고 노ㆍ정 갈등과 노ㆍ노 갈등이 고조된 시점이었다.

지위고하 따지지 않은 무차별 사찰
이번에 공개된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 1팀의 사찰 문건에는 개인 사업자, 산부인과 원장 등 평범한 일반인까지 포함돼 있다.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에 대한 불법사찰이 드러난 이후 민간인 사찰은 김 전 대표뿐이라고 한 당국의 해명이 사실상 거짓으로 드러난 것이다. 민간인 사찰은 이 대통령을 패러디한 그림을 병원 벽보에 붙인 서울대병원 노조와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에게 반기를 든 같은 당의 정태근 의원을 만난 개인사업가 박모씨 등 주로 이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이 대상이 됐다. 김 전 대표 역시 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패러디물‘쥐코’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로 불법사찰을 당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또 선진화시민행동 상임대표인 서경석 목사 관련 동향, 모 월간지 기자에 대한 동향도 파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설립한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도 사찰 대상에 이름이 올라 있는 등 기업인과 기업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사찰 문건에는 장ㆍ차관 등 상당수 고위 공직자의 이름이 포함됐다. 특히 복무동향 등이 꼼꼼하게 기록돼 있다.‘충남홀대론’을 제기하며 청와대와 각을 세웠던 이완구 당시 충남도지사,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이세웅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김문식 전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장, 김광식 전 한국조폐공사 감사, 박규환 전 소방검정공사 감사 등에 대한 사찰 내역도 상세하게 정리돼 있다. 이들 중 선출직인 이 전 지사를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은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했다. 경찰 총경급 100여명과 경찰 내부망에 비판적인 글을 올린 하위직 경찰에 대한 동향 파악도 적시돼 있었다. 전ㆍ현직 경찰관 모임으로 경찰조직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던 무궁화클럽에 대한 문건은 150건에 달할 정도로 상당 기간 감찰 대상이 됐다. 엑셀로 작성된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의‘사건 진행 상황’이라는 자료를 보면 고속철 궤도이탈 관련 수사 중단 압력행사 건, 이기권(현 고용노동부 차관)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관련 건 등은‘BH(청와대) 하명’사건으로 등재돼 있다. 이밖에도 농촌정보문화센터 소장 비위, 전 서일대 관선 이사장 비리,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지도위원 관련 비리 등도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막가자는 靑, 사찰 전문 공개해보라”
문재인(민주통합당)의원은 지난 3월 31일 청와대가 민간인 불법사찰 문건의 80%가 노무현 정부 때 작성됐다고 강변한 데 대해“잘됐습니다. 불법사찰 전체 문건, 한 장도 남김없이 다 공개하십시오”라고 청와대에 사찰 전문 공개를 촉구했다. 문 후보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서“청와대 주장, 어이없군요. 참여정부에선 불법사찰 민간인 사찰,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막가자는 것인데요”라며 이같이 질타했다. 그는 이어“참여정부 때 총리실에 조사심의관실이 있었습니다. 공직기강을 위한 감찰기구였죠”라며“MB정부초에 작은 정부한다며 없앴다가 촛불집회에 공직자까지 참여하는 걸 보고서 공직윤리지원관실로 확대되었다네요. 그때 마음에 들지 않는 민간인사찰 등 무소불위 불법사찰기구가 된 거죠”라고 지적했다. 그는“그런 연유로 파일에 조사심의관실 시기의 기록이 남아있다면 당연히 참여정부 때 기록일 것입니다. 물론 공직기강 목적의 적법한 감찰기록이죠”라며“그걸 두고 참여정부 때 한 게 80%라는 등 하며 불법사찰을 물타기 하다니 MB청와대 참 나쁩니다. 비열합니다”라고 맹비난했다. 박영선 의원도 트위터에서“그러면 왜 그렇게 사찰자료를 다 없애버렸을까요?”라며“대포폰은 왜 사용하고 디가우징을 했을까요? 증거인멸을 왜 MB정권청와대가 지시하고 검찰은 압수수색을 늦게 했을까요?”라고 비꼬았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도“이러다 BBK도 사실은 노무현 거라고 기와집에서 성명내는 사태 나오겠어요”라고 힐난했다.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은“청와대가 입만 벌리면 검증없이 읊어주는 자들아, 너희가 기자더냐”라고 청와대 주장을 비판없이 중계보도하고 있는 YTN 등을 질타했다.

불법사찰 또 축소ㆍ은폐하나
검찰이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에 대한 재수사에 들어갔지만 권재진 법무부 장관 체제 하에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권 장관은 2010년 1차 검찰 수사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직하면서 검찰의‘부실 수사’에 영향을 미치거나 증거인멸 사건을 은폐하는데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은 최종석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이‘대포폰’을 사용해 장진수 전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한 정황을 포착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민정수석실은 검찰 조사 요구를 거부하고 최 전 행정관에 대한 자체 조사를 벌인 뒤‘문제 없다’는 내용만 검찰에 통보했다. 최 전 행정관은 서울 시내 호텔에서 검찰의‘방문’조사를 받는‘특혜’도 누렸다. 그는 결국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또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 비서관실 장석명 비서관이 장 전 주무관의 일자리를 알선해 준 사실이 드러났고, 장 전 주무관에게 변호사 비용 5000만 원을 건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아울러 불법 사찰을 한 것으로 알려진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보고라인은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과 민정수석실까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KBS 새노조가 입수한 불법사찰 문건에 따르면 BH(청와대) 하명 사건 중‘민정’이라고 표시된 부분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정황에 따르면 당시 민정수석실은 증거인멸에 개입했거나 적어도 증거인멸 사실을 알고도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 때문에 권 장관이 계속 법무장관직에 남아있는 한 이 사건을 재수사 중인 검찰로서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 법무부 관계자는“권 장관은 민정수석 시절 일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라며“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하더라도 일종의‘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검찰이 이 사건을 재수사하면서 수사에 협조적인 제보자의 집을 압수수색 하는 등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도 석연찮다. 검찰은 장 전 주무관이‘VIP(대통령)’도 보고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한 다음날 장 전 주무관의 자택을‘추가 증거 확보’명분으로 압수수색했다. 검찰의 수사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던 장 전 주무관 측은 압수수색이 진행된 후“검찰이 각본에 따라 움직인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며“새 휴대전화와 명함 등을 압수한 것은 장 전 주무관의 폭로 배경에 대해 수사하겠다는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장 전 주무관의 추가 폭로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실제 장 전 주무관측의 폭로만 차단할 수 있다면 검찰은 지난 1차 수사 때처럼 표면에 드러난 관련자들에 대해서만 사법처리한 뒤 신속하게 사건을 종결할 수 있어 논란이 계속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참여정부 국정원 사찰’발표, 성격 다른 사안에 중요 사실관계도 달라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은 지난달 1일‘청와대 총리실 사찰 문건 관련 논란에 대한 청와대 입장’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참여정부의 불법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최 홍보수석은 특히 지난 2006년 8월부터 11월까지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주변인물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열람한 혐의로 기소돼 형사처벌을 받은 국가정보원 전 직원 고 모(47) 씨의 사례를 지목했다. 최 수석은“당시 법정에서 고 씨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했다”며 참여정부가 국정원을 동원해 야권의 강력한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을 조직적으로 사찰한 것처럼 표현했다. 이같은 청와대의 반격에 일부 언론은‘참여정부, MB측근 131명 사찰’이라는 제목으로 전 정권의 불법 사찰 의혹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그러나 법원 판결문을 검토한 결과 최 수석의 발표는 중요한 사실관계를 다르게 인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 씨는 법정에서‘서울 서초동에 이명박 대통령의 차명 부동산이 있다’는 첩보를 듣고 상급자의 승인을 받아 조사 업무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또 고 씨의 상관인 A과장은“다른 사안을 보고받으면서 차명부동산 소문이 있다고 들었지만 이후 아무런 보고를 받지 못해 조사를 그만둔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진술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최 수석의 발표대로 사찰과 관련된‘상부의 지시’가 있었다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1, 2심 재판부도“고씨는 A과장에게 정보열람 사실 및 조사 결과에 대해 구두 또는 서면을 통한 보고를 전혀 하지 않았고, 따라서 A과장 역시 이를 상부에 보고한 바 없다”며“국정원 직원이라는 지위와 권한을 남용해 독자적으로 조사를 벌인 것”이라고 판단했다. 최금락 수석은 또 고 씨의 유죄판결에 대해“유력한 대권 후보 주변에 대해 광범위하게 불법 사찰이 벌어진 사실이 법원에 의해 인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 씨는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자격정지 1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고 씨는 재판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변인물 131명의 정보를 열람한 행위는 공직자의 비리를 적발하기 위한 것으로, 정당한 업무범위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고 씨는 국정원에서 수도권 지역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실태를 조사하는 업무를 맡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임명한 원세훈 국정원장 역시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서“공직자의 부패ㆍ비리행위를 적발하기 위한 정보 수집활동은 국가정보원의 적법한 직무범위에 속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조직적ㆍ지속적인 업무관행이라는 이유만으로 위법한 업무수행을 용인할 수 없다”며“직무 범위를 넘어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권한을 남용한 사안으로서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판결했다. 즉 정보와 보안업무를 담당하는 국정원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공직자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도 엄연한 불법이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하물며 공직자의 복무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만든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은 사안의 중대성이나 불법성 측면에서 고 씨 사건에 비할 바가 아니다. 행위의 주체와 대상 역시 확연히 구분된다. 이처럼 사안의 성격 자체가 다르긴 하지만 국정원의 사찰 행위에‘위법’딱지가 붙은 것처럼 이번 민간인 사찰 사건 역시 불법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더구나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검찰 수사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까지 나온 마당이다. 청와대가 사과 한 마디 없이 사실관계조차 다른 엉뚱한 사례를 인용해‘물타기’에 나선 것은 여전히 사건의 파장을 축소하기에 급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만 더 부풀릴 뿐이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