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악랄한 마음의 소유자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2012-10-08 박소담 기자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란?
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등을 공식적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라 명명한다.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기준 (DSM-IV-TR)은 다음과 같다. 1)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해하는 행태를 전반적, 지속적으로 보이며, 이러한 특징은 15세 이후에 시작된다. 다음 중 세 가지 이상의 항목으로 나타난다. ▲ 반복적인 범법행위로 체포되는 등, 법률적 사회규범을 따르지 않는다. ▲거짓말을 반복하거나 가명을 사용하거나,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는 사기성이 있다. ▲ 충동적이거나,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고 행동한다. ▲ 쉽게 흥분하고 공격적이어서 신체적인 싸움이나 타인을 공격하는 일이 반복된다. ▲ 자신이나 타인의 안전을 무모하게 무시한다. ▲ 시종일관 무책임하다. 예컨대 일정한 직업을 꾸준히 유지하지 못하거나 당연히 해야 할 재정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 ▲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거나 학대하는 것, 또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느끼거나 합리화하는 등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2) 진단 당시 최소한 만 18세 이상이어야 한다. 3) 만 15세 이전에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기준에 따른 행실장애(품행장애)가 있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4) 반사회적 행동이 정신분열병이나 조증 삽화 중에 일어난 것이 아니어야 한다.
도대체 왜?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가 형성되는 원인에는 유전적인 요소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반사회적 인격 자체가 유전되는 것인지, 혹은 충동성, 공격성 등의 기질이 유전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환자들은 선천적으로 충동성과 감각추구 성향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뇌의 세로토닌 전달 기능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뇌에서 감정 반응과 관련된 변연계-전전두엽 회로 기능이 떨어져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지기능 중 공간지각 및 기억능력에 이상이 있어 충동적으로 위험한 자극을 추구한다는 설명도 있다. 환경적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비일관적인 양육이나 학대, 착취, 폭력, 유기를 지속적으로 경험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수상한 그 사람… 혹시?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한 파장을 낳음과 동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이들. 잠재적 범죄자인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라 불리는 이들을 가려낼 수는 없을까? 수상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정기적이고 장기적으로 관찰한다면 가려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선 이들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는 무책임한 행동 양식을 반복적, 지속적으로 보인다고 한다. 또한 많은 이들이 반복적인 범법행위에 참여하거나 연루되곤 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관심이나 걱정이 전혀 없으며, 사기를 일삼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사회적, 가정적으로 맡은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실, 정직, 신뢰와는 거리가 멀다. 반사회적인 사람들 중 일부는 달변의 매력을 갖추어 다른 사람을 매혹시키고 착취하기도 한다. 대개의 경우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관심이 없지만, 타인의 고통에서 즐거움을 얻는 가학적인 사람들도 있다. 특히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마약 등 물질 남용과 연관성이 높다.
가려내기 힘든 정신질환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의심된다해도 진단기준에 부합하는 지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야 한다. 환자 본인뿐 아니라 관련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환자의 행동 유형과 특성을 정확히 파악해야만 진단이 가능하다. 자기애성 인격장애와 감별진단하기가 어렵거나, 두 진단기준을 동시에 만족할 수 있다. 이 두 인격장애는 모두 타인에 대한 공감 결여와 착취, 사기성 등을 보일 수 있다. 그 중 자기애성 인격장애자는 주로 타인에 대한 우월감과 자신의 존귀함, 혹은 지위 상승과 성공에 대한 욕구로 이런 행동 양식을 보인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은 주로 물질적 이익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런 행태를 보이며, 충동성, 무모함, 무책임함을 보이는 경향이 크다. 두 인격장애는 본질적으로 거의 같은 정신병리이면서 서로 다른 발현양식이라 해석되기도 한다. 최근 대중화된 사이코패스(psychopath: 정신병질자), 소시오패스(sociopath: 사회병질자)라는 용어는 공식적인 진단명은 아니지만,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와 거의 비슷한 뜻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한 때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이른바‘사이코패스 진단 검사’는 정신의학적 진단도구로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치료는 가능한가?
다른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할 때 반사회적 인격장애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피상적으로는 후회, 반성, 치료자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아 치료자를 현혹하여 치료 과정을 망가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군대나 교도소 등의 제한된 환경에서는 내면의 우울감이나 자기성찰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으며, 동료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면서 변화된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중 일부는 치료자와 성공적인 치료적 동맹 관계를 맺고 호전되어, 경쟁적인 직종에서 성공을 거두는 경우도 있다. 이들을 치료할 때에는 양심, 죄책감, 후회를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친사회적인 행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장기적인 이익과 물질적 가치에 초점을 두는 것이 효과적이다. 동반된 정신과 증상에 따라 정신과 약물은 대증적으로 시도해 볼 수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
이들은 공통적으로 아동기에 행실장애를 보인다. 특히 10대 이전에 복합적인 비행을 보이기 시작하면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나이가 들면서 파괴적인 행동이 줄어들기도 하지만, 건강염려증이나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많은 이들이 치료시설보다는 교도소 등 범죄인 교화시설에 수감되어 있다. 간혹 특유의 공격성과 냉혹함으로 사회적인 성공을 이루는 경우도 있으나, 충동성과 무모함으로 인해 지속적인 사회적 성공은 어렵다. 마약과 같은 물질 관련 장애, 충동조절장애가 합병될 가능성이 높다.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속설과 달리, 통계적으로는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이들 중 상당수는 나이가 듦에 따라 자신의 반사회적 행동이 오히려 사회 생활과 대인관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고 행동을 교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양육 과정에서 폭력이나 착취, 학대를 경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외에 특별한 예방법은 없다고 한다.
김길태ㆍ유영철ㆍ강호순ㆍ정남규… 희대의 사이코패스 살인마
전문가들은 김길태(33)가 사이코패스의 전형적 특징을 상당 부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이 ▲ 위험을 감수하고 범행을 저지른 점 ▲ 충동 절제력이 떨어지는 점 ▲ 사회성이 부족한 점 등이 그 근거라는 얘기다. 경기대 이수정(범죄심리학과) 교수는“김길태는 명백한 사이코패스”라며“피해자가 미성년자에서 30대 여성까지 다양하고 자신의 충동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냉혈한”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김길태의 경우 잠재돼 있던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좋지 못한 환경에서 표출됐다고 설명했다. 어릴 때 입양돼 부모와 충분한 신뢰관계를 쌓지 못하고 학교도 중도에 그만둔 점 등이 그 성향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김길태는 수감 중 정신질환 증세를 보여 2년4개월간 치료를 받았다고 법무부가 밝혔다. 반면 경찰대 표창원(행정학과) 교수는“이번 사건만 놓고 볼 때 김길태가 사이코패스라고 단정 짓기는 섣부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표 교수는“그는 절도 목적으로 집에 침입했다가 혼자 있는 이양을 보고 성적 충동을 느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사이코패스로 분류된 대표적 살인자들은 유영철ㆍ강호순ㆍ정남규 등이다. 유영철은 경찰이 실시한 심리 검사(PCL-R) 결과 40점 만점에 38점을 받아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분류됐다. 우리나라에선 이 테스트에서 24점 이상을 받으면 사이코패스로 판단한다. 유영철은 그중에서도‘복합형’으로 분석됐다. 살인을 통해 스릴ㆍ권력욕ㆍ성욕ㆍ보복심리 등을 동시에 충족시키려 한 경우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위와 같은 테스트를 두 차례 실시한 결과 각각 27점과 28점을 받았다. 당시 그를 담당한 프로파일러들은“강호순은 현장 검증이나 기자들 앞에선 뉘우치는 척하다가 뒤에선 경찰관들에게 농담을 던진다”며 그를‘쇼의 명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강호순은 또“(희생자 가족처럼) 내가 슬퍼해야 하는 건가”,“(피해자들을) 억지로 차에 태운 게 아니다. 안 탔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범 정남규도 죄의식이 없고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사이코패스로 분류됐었다. 평소 이웃들에겐‘말수가 별로 없는 선량한 이웃 사람’이면서도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그의 극도의 이중성도 근거다. 하지만 이 교수는“정남규는 어릴 때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런 개인적 경험이 범죄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으므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와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정남규가 2009년 11월 서울구치소 수감 중 자살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주변에도‘소시오패스’가 살고 있다
“워낙 밖에 나오질 않아 그저 조용한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죠.”,“말수도 적은 편이었고, 순하고 착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지난 7월 12일 제주 서귀포시 올레길에서 관광객을 무참히 살해한 강성익(46)에 대해 동네 주민들은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언론이“마을 사람 중 그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지난 4월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한 오원춘(42) 역시“일만 하던 조용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와 알고 지내는 사람은 공사장 인부 몇 명과 성매매 여성들이 전부였다. 그는 홀로 집에서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았고 대인기피증까지 있었다. 검거 초기 강성익과 오원춘은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 때문에‘사이코패스(psychopath)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특성을 분석해 보면 이들은 사이코패스보다는‘소시오패스(sociopath)’에 가깝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오원춘의 경우 검거 후 실시한 35점 만점의 사이코패스 진단에서 기준점수 25점에 미달하는 22점이라는 낮은 점수가 나왔다. 전형적 사이코패스로 밝혀진 연쇄살인마 유영철이 34점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소시오패스는 사이코패스와 마찬가지로‘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갖고 있고, 일반적으로‘자신의 성공을 위해 어떤 짓을 저질러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죄의식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살인ㆍ강간 등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고, 타인을 괴롭히는 등 일탈행위도 일삼는다. 그러나 소시오패스는 사이코패스와는 다른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을 지닌다. 힐링유 심신치유센터의 최지환 정신과 전문의는“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다른 정신병리라는 근거가 속속 나옴에 따라, 최근에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전혀 독립된 정신병리로 봐야 한다는 관점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차이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대인관계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사이코패스는 거짓말과 속임수에 능해 외관상 언변이 뛰어나고 사교적으로 보이는 반면, 소시오패스는 인간관계에 소극적인 경향을 나타낸다. 오원춘을 인터뷰했던 경찰청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감은“오원춘은 고향(중국 내몽골)에서도 가난과 무식 때문에 무시를 당해 대인기피 증세가 심했다”고 말했다. 어려서 당했던 무시와 학대가 그가 사회성을 형성하는 데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또“부모가 정해줘 몽골인 아내와 결혼했고, 말이 안 통해 제대로 얘기를 해본 적도 없다”고 한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두려워하거나 긴장하는‘소심’한 모습을 보인 것 역시 그가 사이코패스가 아닌 소시오패스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반면 사이코패스 유영철은 이웃 주민들 사이에서“의리 있고 예의도 바른 청년”으로 평가됐다. 여성 7명을 살해한 또 다른 사이코패스 강호순 역시 평소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겉모습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힐링유 심신치유센터 최지환 정신과 전문의는“소시오패스는‘반사회적 행동패턴’의 유지가 중요한 진단 요인이 되지만,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행동 그 자체보다는‘사고’와‘감정’이 주요 판단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판단 기준으로서의 사고와 감정이란 죄책감과 후회, 공포반응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사이코패스 경향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인 정신질환자와는 달리 눈에 띄는 특징이 없다. 오히려 강호순처럼 타인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거나 착실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치료 가능 여부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사이코패스는 치료법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교화가 사실상 불가능해 재범률이 50%에 이를 정도로 높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반면 소시오패스는 대개 어릴 때 훈육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소시오패스는 길러진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이코패스는 흔히 연쇄살인마를 생각하지만 미국이나 독일 등 서방국가에서 생각하는 사이코패스는 이보다 확대된 개념이다. 거짓말에 매우 능하고 자신의 말이 들통 나더라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뻔뻔스런 자들이며 불쌍한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악랄한 행위를 하고 사기 치는 상습범, 저축은행 등에서 예금자들이 겪게 되는 서민의 애환은 고려하지 않은 채 뇌물을 챙기는 일부 권력층 인사 등 남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자들을 모두 사이코패스로 본다. 흉악범만 사이코패스가 아니란 것이다. 미국의 어느 보고서는 사이코패스가 500만명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으며 그중 살인자는 몇만명 정도만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들 중에는 반사회적 은둔형 외톨이였다가 범죄를 폭발시키는 자, 사회에 대한 사적인 분노와 좌절을 불특정 다수에게 폭발시키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등이 있다. 은둔형 외톨이는 집안, 방안에만 칩거한 채 가족 이외 소수의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고 혼자 컴퓨터, 인터넷과 씨름한 채 비현실적인 영상 또는 폭력물에 몰입하면서 보통 6개월 이상 사람과 접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일본의 히키코모리, 한국의 나홀로 문화 등에 탐닉하는 자를 말하며 일본의 10년전 통계자료에는 은둔형 외톨이가 16만명이란 데이터가 있고 한국에도 1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돼 교도소를 다시 찾아가는 재범전과자,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 그들이 동일한 점은 사회와 교감이 없고 대화가 없으며 좌절과 분노를 축적했다가 별것도 아닌 일에 흉악범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현재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는 건강검진에 정신건강검사가 반드시 필요함에도 제외되고 있다. 정신건강에 대한 정기신체검사는 범죄의 예방적 차원에서 추가돼야 한다. 평범한 사람들도 좌절을 겪고 나면 반사회적 인격장애자가 될 가능성이 있고, 그들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고 있다. 정부와 위정자, 우리 모두 대책을 생각해야 할 때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