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봄날은 올까?

“4만명의 사상자, 25만명의 난민… 정치적 종교전쟁으로 번진 시리아 내전의 끝은 어디인가”

2012-12-11     박소담 기자
얼마 전, 시리아의 정부와 반정부 세력이 휴전 협의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많은 세계인들은 잠시 동안의 휴전이었지만 휴전을 계기로 오랜 시간 서로 총구를 겨누며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던 지긋지긋한 전쟁이, 이제야 끝이 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버린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조국을 떠나 레바논이나 터키 같은 인근 국가에서 난민 생활을 하고 있는 시리아 국민들에게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었던 휴전이었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월, 휴전협정중이던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했고 시리아의 봄날은 다시 멀어져 가고 있다.

시리아, 휴전 협의중 폭탄테러…42명 사상
내전이 격화하고 있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유엔 특사가 시리아 대통령과 만나 휴전 문제를 논의하는 와중에 수도의 다른 곳에선 폭탄테러가 발생해 42명이 죽거나 다쳤다. 라크다르 브라히미 유엔-아랍연맹 시리아 담당 특사는 지난 10월 21일(현지시간) 다마스쿠스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을 만나 이슬람권 최대 명절인 이드 알 아드하(희생제)가 시작하는 26일부터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해 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이드 알 아드하를 맞이해 모든 사람이 일방적인 휴전을 결정해줄 것을 호소하며 이번 휴전은 오늘이나 내일이든, 모든 사람이 원할 때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사드 대통령은 이에 대해 브라히미 특사의 노력을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시리아 주권에 대한 존중과 외국의 간섭 배제에 기반을 둔 정치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모든 진지한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고 시리아 국영 사나 통신이 보도했다. 이런 와중에 다마스쿠스의 기독교도 거주지역인 밥 투마의 경찰서 앞에서는 차량폭탄 테러가 발생해 13명이 숨지고 29명이 다쳤다고 사나 통신은 전했다. 이 통신은 이번 테러가‘무장 테러단체(반군 지칭)’의 소행이라고 비난했다. 시리아인권관측소는 밥 투마 지역의 폭탄테러로 10명이 죽고 15명이 다쳤다고 집계한 뒤 사상자들이 경찰인지 민간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리아에서 소수인 기독교도들의 상당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을 것을 우려해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사나 통신은 또 이날 다마스쿠스 남쪽에 있는 아살리 지역의 한 사원에서도 테러리스트들이 설치한 폭탄이 너무 일찍 폭발하면서 테러리스트 다수가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밖에 다마스쿠스 외곽에 있는 하라스타 지역에서도 정부군과 반군 간의 충돌로 9명이 숨졌으며 시리아 북부 제2의 도시 알레포의 프랑스 병원 밖에서도 차량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해 7명이 다쳤다. 한편 브라히미 특사는 아사드 대통령과 회담에 앞서 지난 10월 20일 다마스쿠스에 도착해 왈리드 알 모알렘 시리아 외무장관과 반군 지도자들과 회동했다. 반군측은 브라히미 특사의 휴전 제안을 환영했으며 정부 측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반군이 동시에 휴전에 들어간다는 점을 보장해달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바이의 벤 헬리 사무차장은“휴전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부와 반군 간 휴전에 대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을 해 휴전의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시리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2011년 1월 하산 아클레의 분신 자살로 촉발된 중동 민주화 시위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 시리아 사태는 애초에 소규모 평화시위로 시작되었다. 40여 년의 장기집권에 대항한 민주화 요구로 시작된 시리아 사태는 시리아 정부 측의 무리수 때문에 점점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2011년 3월 경 부터 시작된 시리아 사태는 1년 반이 경과하는 동안 연일 국제면 헤드라인에 오르내리며 현재까지 약 2만명에 가까운 인명피해를 유발시키면서 내전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리아의 비극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시리아 사태는 2011년 튀니지아와 이집트에서 촉발된‘쟈스민 혁명’에서 영향을 받은 바 크다. 그 발단은 튀니지아의 경우와 같이 어떻게 보면 작은 사건에서 촉발되었다. 2011년 3월 시리아 남부의 도시, 데라(Derra)에서 약 15명의 학생들이 튀니지아와 이집트의‘쟈스민 혁명’에서 사용되었던 구호를 벽에 써 놓았는데 그 후 그 학생들은 체포되었고 고문을 받았다. 이에 데라 시민들은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였고 그 와중에 민주주의와 자유의 보장을 요구했다(그러나 그 당시 시위에서 아사드(Assad)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렇듯 온건하게 제기된 아사드 행정부에 대한 불만 표출은 정부군의 과잉대응으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3월 18일 실시된 평화적 시가행진에서 정부군의 발포로 4명의 시민이 사망했고, 그 다음 날 사망자의 장례에서 정부군의 발포로 또 다른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3월 말에 이르러 시리아 정부는 제4 기갑사단을 시위진압 부대로 지정하여 차출하는 결정을 내리는데, 그 부대의 지휘는 현 대통령의 동생인 마허(Maher)에게 맡긴다. 곧바로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탱크가 주거지역에 포탄을 발사하거나 군대가 민가를 습격하는 일들이 발생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당연히 시리아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켜, 시위의 발원지 데라(Derra)를 넘어서 전국적인 반정부 운동이 촉발됐다. 베니야스(Baniyas), 홈즈(Homs), 하마(Hama) 등 주로 다마스커스(Damascus) 교외 지역이 반정부 운동의 거점이 되었는데, 정부군은 이들 지역을 포위하고 진압을 계속했으며, 5월 중순에 벌써 사망자 수는 1000명을 돌파했다.

정치ㆍ종교 전쟁으로 번지며 수면위로 떠올라
시리아 사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적, 종파적 색채를 띄게 되는데, 사태가 이런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국제적 이슈로 부각되었다. 사태 발생당시 시리아의 정치적, 종파적 상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시리아는 소수의 시아파가 다수의 수니파를 통치하는 국가다. 아사드 대통령은 시아파의 일파인 알라위파 출신이다. 40년이 넘는 아사드 대통령의 철권통치로 사태 발생당시 정치적 측면에서 야당 또는 재야세력은 미미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들 세력은 정부군의 진압이 과도하게 진행되자 보다 적극적으로 아사드 정권의 퇴진에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반 정부세력이 주로 수적으로 다수인 수니파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수적으로 소수이나 권력을 보유한 시아파와 수적으로 다수이나 권력을 장악하지 못한 수니파의 대결구도가‘쟈스민 혁명’이라는 바람을 타고 자연스럽게 형성된 셈이다. 반정부 세력에는 파리에서 활동하는 갈리운(Ghalioun)을 중심으로 한‘시리아 국가회의(SNC, Syrian National Council)’, 압둘 아짐(Abdul Azim)이 이끄는‘국가조정위원회(NCC, National Coordination Committee)’,‘자유시리아군(FSA, Free Syrian Army)’등을 포함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대결구도는 종파적 분열과 연결되면서 아랍권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는 시리아 사태가 근본적으로 종파분쟁이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리전 성격을 갖는다는 분석과 연결된다. 즉, 아랍권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 이란은 시아파의 맹주이기 때문에 시리아 사태에서 양국이 각각 다른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연맹(Arab League)을 통해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하고 있으며, 이란은 시아파 정권 유지를 위해 경제 및 군사적으로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아사드 대통령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로 시작된 현 사태를 종파간 대립으로 몰아가는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에 종파간 대립구도가 더욱 두드러진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종파간 분쟁을 부추겨 정권을 유지하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반정부 시위의 거점인 홈즈에서는 정부군과 시위대간의 유혈 사태에 따른 희생자 보다 시아파와 수니파 간 충돌로 인한 사망자가 더 많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서도 확인된다. 이런 점 때문에 시리아 사태가‘인종청소’라는 비극을 낳은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도 대두된다.

국제사회의 조치는 없었나?
그렇다면 그 동안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서 국제사회는 어떤 조치를 취해왔을까? 시리아는 리비아와는 달리 주변국과 얽힌 상황이 복잡하기 때문에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는 그 동안 시리아에 대한 구체적 조치를 취하지 못해왔다. 시리아에 대한 유엔 결의는 종종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에 부딪쳤다. 시리아는 러시아 및 중국과 강한 경제적, 군사적 유대 관계를 지속해 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국가는 서방국가들이 시리아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한편, 미국과 나토는 리비아 사태의 여파와 글로벌 경제위기를 처리하는데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최근 들어 시리아에서 인명살상이 급증하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시리아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2012년 3월까지만 해도 시리아에 대한 국제공조로 유효한 조치는 지난 2011년 11월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한 경제제재 조치였다. 시리아는 고실업과 빈곤, 식료품 값의 급등 등 만성적인 경제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아랍리그 회원인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시리아에 개혁조치를 요구했고, 이것이 거절당하자 경제제재에 나섰던 것이다. 그 후 아랍리그, 유럽연합, 미국 및 터키는 시리아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에 참여했다. 관광 및 석유 판매고가 급감했고, 실업율은 20% 수준을 웃도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까운 시일 안에 내전종결은 기대하기 힘들어…
그동안 지속적으로 악화되어온 시리아 사태의 여러 정황을 살펴보던 국제사회는 2012년 6월 시리아 사태가 내전 상황임을 인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 동안 아사드 대통령은 시위가 계속되면 시리아가 혼란과 내전을 향해 갈 것이라고 공언하면서 강경한 진압을 계속했다. 그 결과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고 내전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총리를 포함한 아사드 정권 핵심인사들의 이탈현상이 발생하였고, 군대에서 장교 및 사병의 탈영도 이루어지고 있다. 무고한 시민을 죽이는 과정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낀 이들이 이탈하고 있고, 시리아 사태가 아사드 대통령의 망명으로 종결될 경우 책임 추궁당할 것을 두려워한 이들도 있다고 전해진다. 탈영한 군인과 시민은 계속해서 정부군에 대항해 전투를 수행하고 있고, 종파간 분열에 의한 반감은 이러한 일련의 경향성을 강화하고 있다. 시리아 문제는 최근 들어 증가하고 있는 무고한 시민에 대한 학살에 대해 국제사회의 보호책임(R2P, Responsibility to Protect) 문제와 연계되면서 다시 한 번 국제적으로 민감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중국이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하기 때문에 더욱 더 꼬여가고 있다. 최근 시리아 내전과 관련하여 세계적인 관심은 시리아 내전이 중동지역 내 새로운 분쟁으로 확대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그동안 시리아에 대한 경제제재에 동참하였고, 반군에 대한 암묵적인 지원을 해온 터키에 대한 공격이 즉각적인 보복 공격을 유발시켰기 때문이다. 터키 의회는 시리아에 대한 군사조치를 이미 승인했으며, 미국도 터키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사우디아라비아는 시리아 반군에 대한 급료 지급을 공언해왔다. 이러한 사건들은 시리아 내전이 중동지역 내 오래 묵은 종파간 분열구도와 이어질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으며, 이 때문에 최악의 경우에는 역내 메이저급 분쟁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또한 서방국가들이 점차 심화되는 시리아의 유혈사태에 대한 항의로 자국 주재 시리아 대사들을 추방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는데 이는 서방국가들과 시리아 정부간의 대화 채널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한 동안 시리아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과 협조했던 러시아도 최근 들어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문제다. 서방의 군사개입을 지속적으로 반대해온 중국의 입장은 더욱 더 견고해지기만 한다. 서방의 군사조치로 상대적으로 쉽게 문제를 해결했던 리비아의 경우와는 달리 시리아는 중동의 군사강국이어서 쉽게 군사개입을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보호책임(R2P)을 둘러싼 논쟁만 있고, 실질적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각종 고문과 함께 총알받이로 이용되는 시리아 어린이들
유엔난민기구(UNHCR)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레바논에는 5만명을 웃도는 시리아 난민들이 있다고 한다. 또한 현재 시리아 주변국에서 난민 등록을 완료했거나 진행 중인 사람이 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가 되었다. 정부와 반군, 두 세력 모두에 의해 총알받이가 되어버린 시리아 국민들의 삶은 어떨까. 한 나라에 내전과 같은 전쟁이 발발했을 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여성과 어린이라는 말이 있다. 이들은 군인으로 사용될 가치가 없기 때문에 무기가 지급되지 않고, 결국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인들이 몰려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적절한 상황판단을 할 수 없다. 어른들이 전쟁터로 끌고 가면 그냥 끌려가는 것이며, 총알받이로 내몰리는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총알받이로 이용되는지도 모르는 채, 그렇게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현재 시리아의 어린이들이 보고, 듣고, 겪고 있는 상황은 너무나 참혹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폭탄이 터지고, 주변의 사람들은 물론 친구와 가족들이 죽는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양쪽 군인들 모두의 총알받이가 된다. 현재 난민촌의 사람들을 통해 양쪽 세력 모두 어린이들에게 고문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이 포착된 바 있다. 국제 아동 구호 NGO‘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에서 난민 수용소에 있는 시리아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가혹 행위 보고서를 발표했다. 포로로 잡힌 어린이들은 주로 ▲구타 ▲팔다리와 생식기를 포함한 전기고문 ▲손톱 뽑기 ▲팔을 뒤로 묶어 천장에 매달기 ▲담뱃불로 지지기 ▲상대방 공격을 막기 위해 어린이들을‘인간방패’로 삼기 ▲며칠씩 굶기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게 하기 ▲지나가는 아이를 머리를 겨냥해 내기 사격하기 등의 고문과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세계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레바논 난민촌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한 여성은 연신 매우“힘들다(very very difficult), 끔찍하다(horrify)”를 반복하며“시리아 상황이 너무나 끔찍해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다. 수업 도중 학교가 폭격을 당해 눈앞에서 친구들이 죽는 걸 본 아이를 만났는데,‘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울더라.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난감하고 안타깝기만 했다”라며“대체 왜 이런 유혈 사태가 일어나는지 이유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끝날지도 모르겠다”며 눈물 지었다.

이웃나라로 뿔뿔이 흩어지는 난민들… 더 늘어날 전망
유엔난민기구(UNHCR)가 최근에 파악한 시리아 난민 수는 25만명을 넘어섰으며 이들 중 절반은 어린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겪고, 본 것들에 고통을 받으며 식량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활하고 있다. 현재 시리아의 난민들이 시리아 인근 국가에 얼마나 거주하고 있는지는 http://data.unhcr.org/syrianrefugees/regional.php (UNHCR)에 들어가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난민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들은 이라크, 레바논, 터키, 그리고 요르단이 있다. 2012년 10월 25일까지 난민으로 등록되거나 등록 신청을 하고 기다리는 시리아인의 수는 274,712 명이다. 10월 20일, 북아프리카에서는 6,815명의 시리아인들이 난민으로 등록이 되었다. 북아프키라에서 난민으로 등록되거나 등록 신청을 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수까지 합치면 시리아 난민의 수는 359,589명에 다다를 것으로 추정된다(2012년 10월 23일까지의 상황). 한편 난민의 연령대별 분석통계를 살펴보면 어린이 난민이 전체 난민수의 26%를 차지하고 있다.
▲ 터키: 현재 시리아 난민들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국가는 터키이다. 터키에 거주중인 시리아 난민수는 101,834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시리아인들이 계속해서 터키로 넘어옴에 따라 시리아와 터키의 국경 역시 전쟁터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리아와 터키의 국경지역에서는 교전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데 최근 터키 일간 밀리예트는 터키가 시리아군 박격포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시리아에 포격을 가해 시리아군 12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익명의 터키군 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시리아가 먼저 27차례 박격포 공격으로 선제공격을 가했고, 이로 인해 터키 남부 산리우르파 주악차칼레 마을에 박격포탄 18발, 하타이 주에 9발이 각각 떨어졌다고 한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터키군은 87차례 보복 포격을 가했다. 이처럼 시리아 내전이 터키와의 전쟁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을 보이고 있어 국제사회는 더욱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난민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자 최근 터키 정부에서는 난민의 수가 수용범위를 초과했다며 더이상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터키정부에 의하면 5월 24일부터 7월 16일 사이의 기간 동안 난민촌의 인구수는 거의 두 배 가량으로 증가하였으며, 그 이후에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터키정부는 새로운 난민촌을 건설하고 기존의 난민촌 보수를 통해 수용인원을 늘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전쟁이 종식되지 않고 계속된다면 터키의 난민 수용인원도 포화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 레바논: 레바논의 경우도 2012년 10월 23일까지의 통계에 따르면 72,301명으로 적지 않은 난민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29,311명의 새로운 난민들이 UNHCR에 등록됨으로써 그 수는 101,612로 늘어났다. 터키에 거주하고 있는 시리아 난민들과 그 수가 거의 비슷해진 것이다. 레바논 지역에서는 며칠 전, 휴전 교섭 중에 폭탄 테러가 일어나면서 레바논 내부에서도 내전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실 레바논의 경우는 폭탄테러 이전에도 난민들의‘안전’이 가장 큰 문제로 떠올랐다. 8000여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들이 레바논과 시리아 국경부근의 위험한 지역에 위치한 마을에 붙잡혀있기 때문이다. 레바논 정부역시 계속해서 늘어나는 난민들의 수 때문에 수용 인원을 초과하고 있다며 더 이상의 수용은 힘들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요르단: 요르단의 경우는 2012년 10월 21일에 집계된 난민의 수가 58,622명에 이른다. 현재 요르단에서는 불법적으로 요르단에 들어와 난민 신고를 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난민 캠프를 무단으로 이탈해 그 소재가 파악이 되지 않기도 하며 난민 캠프에 보고하지 않고 본인의 의사로 시리아로 돌아가는 등, 통제에 어려움이 있어 난민수 집계에 난항을 겪고 있다. 따라서 UNHCR에서는 정확한 인원 집계를 위해 난민 캠프 입/퇴소 절차를 개선해나갈 것을 요르단과 협의한 상태이다.
▲ 레바논: 현재 이라크에는 41,955명의 시리아 난민이 유입된 상태이며 이는 레벨1 신청 단계를 끝마치고 UNHCR에 난민으로 정식 등록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17,047 명의 사람들까지 포함한 수이다. 요르단 역시 더 이상의 난민 수용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대변인 아드리안 에드워즈(Adrian Edwards)는“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터키 이 4개국 모두에서 수많은 신규유입난민들은 겨우 옷가지 몇 개만 가지고 온 채로 수개월 동안 실업상태에 있다. 인도적 지원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라며“올해 초에 도착한 난민들의 경우 저축해둔 돈을 모두 소진하였기 때문에 이들로부터의 인도적 지원에 대한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시리아 난민들을 돕고 있는 단체들 역시 지역 기반시설 및 물자, 특히 식수, 주거, 학교 및 의료시설에 심각한 재정적 압박을 받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라크 수니파까지 가담… 파국으로 치닫는 시리아 내전
시리아 내전에 이라크 시아파에 이어 최근 이라크 수니파 무장세력까지 가담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10월 29일 보도했다. 작년 초‘아랍의 봄’이래 독재정권 퇴진을 목표로 시작한 시리아 내전이 수니파 대(對) 시아파의 아랍권 종파(宗派)분쟁으로 변질한 모양새다. 이라크 수니파 무장세력은 시리아 반군 편에서 시리아 정부군과 수개월째 싸우고 있다. 이라크 정부가 같은 시아파인 시리아 정부에 병력·군수물자 등을 지원해주자 앙숙인 이라크 수니파가 시리아 내전에 뛰어든 것이다. NYT는‘이라크의 종파 분쟁이 시리아로 이식됐다’고 전했다. 인구 분포가 수니(60%) 대 시아(40%)로 양분되는 이라크에서는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 몰락 이후 각종 테러와 권력 다툼이 수년간 계속돼 왔다. 이라크 정부군은 이란과 연대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돕고 있다. 이라크 정부군은 성지순례객으로 위장해 관광버스를 타고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잠입한 뒤 시리아 정부군에 합류해 있다. 다마스쿠스에는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의 외손녀인 자이납의 묘지 등 시아파 성지가 여럿 존재한다. 일부 이라크 정부군은 이란에 먼저 넘어간 뒤 이란 정부군과 함께 항공기를 통해 다마스쿠스로 들어간다고 NYT는 전했다. 알아사드 정권은 알라위파라는 소수 종파지만 시아파 계열에 속해 이란 등의 지지를 받는다. 시리아 내전은 레바논에도 종파 분쟁을 불렀다. 지난 10월 19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수니파인 위삼 알하산 보안부 정보국장이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사건 직후 암살 배후에 시리아 정권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레바논 수니파들은 알아사드 정권 등 시아파를 비판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사우디아라비아ㆍ카타르ㆍ터키 등을 비롯 알카에다도 시리아 내전에 깊숙이 개입한 상태다. 사우디ㆍ카타르는 시리아 반군의 병참을 적극 지원 중이고, 터키는 국제사회에서 알아사드 정권 퇴진을 위한 여론몰이와 함께 국경지대에서 포탄 공격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시리아땅이 종파분쟁의 각축전이 됐다”고 말했다.

시리아 내전, 사망자 4만명 육박… 대부분 민간인
지난해 3월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이후 시리아에서 지금까지 3만 9천여 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시리아 인권관측소는 희생자는 대부분 민간인으로 2만 7천 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이는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인근 국가의 난민 캠프로 가고 있으며, 어떤 이는 총알받이로 희생이 되고 있으며, 또 어떤 이는 폭탄이 터지는 거리를 지켜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 하지만 정부군과 반군의 눈에는 시리아 국민들의 고통을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저 자신의 종파 세력을 유지하는 것에 급급해 이들을 모른 척 하는 것인지, 정말 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갈등으로 인해 하루에도 수백, 수천명의 시리아인들이 죽음을 맞거나 인근 국가의 난민 캠프로 목숨을 걸고 국경을 건너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하는 국가가 오히려 그들을 국가 밖으로 내쫓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