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曰: 나는 왕이로소이다!
포스코 임원의 승무원 폭행부터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까지 도마 위에 오른 갑을(甲乙) 문화
포스코 임원의 대한항공 승무원 폭행 사건과 남양유업 직원의 욕설파문, 윤창중 전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의 인턴 성추행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며 경직된 갑을(甲乙)문화에 경종이 울리고 있다. 여기에 얼마 전 롯데백화점 파견 여직원이 매출 압박을 견디지 못해 일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거래 계약서에서 계약 당사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던 갑과 을이 요즘에는 권력의 상징이자 차별적인 지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변질돼버렸다. 잘못된 갑을 문화의 그 실태와 해결책을 짚어보자.
윤창중 전 청와대 수석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성폭력ㆍ가정폭력ㆍ학교폭력ㆍ불량식품을 4대악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이들 4대악을 척결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입인 청와대 수석 대변인이 대통령의 방미 순방기간 중 4대악의 첫 번째인 성폭력 의혹으로 국제적 망신을 시키며 도마 위에 올랐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5일 만에 수석 대변인으로 임명된 ‘1호 인사’ 였다. 갖은 구설수 끝에 대변인 자리에 오른 윤 전 대변인은 그러나 청와대 생활 78일 만에 전대미문의 불미스러운 추문을 남기고 경질되기에 이르렀다. ‘윤창중 사건’ 은 확실히 ‘예고된 참사’ 였다. 윤 전 대변인이 국가와 대통령을 대변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국민여론이었는데 박 대통령은 윤 전 대변인의 임명을 강행하는 고집을 부렸다. 국가와 청와대를 대표하는 입인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 해외순방 기간 중 성추행으로 국가망신을 시킨 것은 국격의 훼손이고 국민의 치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사건을 전후한 청와대의 대응과 윤 전 대변인의 처신과 언행은 국민 대다수를 분노케 했다.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은 10일 국민과 함께 대통령께 사과드린다고‘엉뚱한 사과’를 해 공분을 샀다. 이에 질세라 윤 전 대변인이 11일 성추행 의혹을 부인한 뒤 이 수석이 귀국을 종용했다고 발언하는 등 ‘뻔뻔한 변명’ 을 해 국민 울화를 키웠다. 국민 분노가 거세지자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 12일 또 다시 사과했다. 그러나 참모들간 ‘진실게임’ 으로 옮아가며 청와대가‘윤창중 사건’을 키우기로 작정했나하는 비난마저 들렸다. 이에 드디어 13일 박 대통령이 나서 대국민사과를 했다. 그러나 직접 기자회견이나 대국민 방송 등을 통하지 않고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간접적으로 사과를 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국민 대다수는 박 대통령이 다수 여론에도 불구하고 부적절한 인물에 대한 인사를 강행하는 ‘오기인사’ 가 사건의 시발점이었다고 지적했다. 13일(현지시간) NYT도 비슷한 의견을 보도했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문이 한국의 온갖 미디어와 SNS 등 대부분 매체를 도배하고 있다며 분노한 한국인들은 윤씨를 미국으로 보내 조사를 받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알렸다. 이번 사건의 배경으로 그동안 한국 직장 내 만연한 남성 상사의 부하 여직원에 대한 성희롱 등 만연한 성 관련 문화가 있다고 NYT는 덧붙였다. 특히 회식, 술자리 등에서 이러한 행태가 만연하며 특유의 집단 조직문화와 술에 관대한 관습 때문에 큰 문제의식 없이 지나왔다는 게 NYT의 지적이다. 가장 비슷한 예로 지난달 LA행 대한항공을 이용한 포스코 임원이 여승무원에 욕설과 폭력을 행사한 일도 신문은 예로 들었다. NYT는 윤 전 대변인 사건은 그렇지 않아도 인사문제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며 개혁조치가 잇따라야 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특히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은 노력이 결여될 것이라고 NYT는 덧붙였다. 한편 사건 발생 8일째인 15일(현지시간)에도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미국 워싱턴DC 메트로폴리탄 경찰 측은 “성추행 경범죄에 대한 수사를 진행중”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할 뿐 수사와 관련된 언급을 더는 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13일 미국 주재 대사관을 통해 ‘신속수사’ 요청을 했으나 현지 경찰은 미국의 법절차에 따라 수사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윤 전 대변인과 피해 인턴의 ‘피해진술’ 이 크게 엇갈리고 있어 구체적인 정황을 확인하려면 경찰이 당사자들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가해자인 윤 전 대변인이 현재 한국에 체류하고 있어 정상적인 수사가 어렵다. 워싱턴DC 경찰은 필요하면 피해자인 여성 인턴 등을 상대로 추가조사를 할 것으로 전해졌다. 또 성추행이 벌어진 것으로 파악된 워싱턴DC 시내 소재 W호텔 지하 바 상황과 관련해 당시 근무했던 직원이나 CCTV 화면 등 증거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DC 경찰이 수사결과를 취합해 기소 여부를 판단할 단계가 되면 연방검찰에‘기소’와 관련된 결정을 요청하게 된다. 연방검찰은 ‘기소동의’ 나 ‘기각’ , ‘기소중지’ 등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되며 이후 워싱턴DC 경찰이 수사권을 갖고 수사를 계속하거나 중지하게 된다. 현지 소식통은 “가해자인 윤 전 대변인이 미국 현지에 체류하지 않는 만큼 기소중지의 가능성이 크지만 향후 수사방향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예단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포스코 임원의 승무원 폭행 사건
포스코에너지 임원 A씨는 4월 15일 인천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대한항공 여객기 비즈니스 석에 탑승, 라면 제공 등 기내 서비스를 문제 삼아 여승무원을 폭행해 물의를 빚었다. A씨는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가 비어있지 않다며 자리에 불만을 나타낸 뒤 기내식에 대해 밥이 상한 것 같다는 주장을 하며 다시 차릴 것을 요구하다 여승무원 눈 주변을 잡지로 폭행했다. A씨는 이에 대해 처음에는 치지 않고 여승무원 눈두덩이 부분을 책으로 갖다 댔다고 주장하다가 여승무원이 폭행당했다고 말하자 자신이 폭행한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 아냐고 반문했다. 이어 승무원 폭행이 불법행위라는 것을 전해 듣자 A씨는 자신이 책을 들고 있는데 여승무원이 와서 부딪혔다고 변명했다. 한편 A씨는 사건 이후 신상이 알려지며 비난이 거세지자 피해자 승무원에게 직접 찾아서 용서를 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포스코에너지는 4월 23일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최근 불미스러운 일과 관련된 당사 임원 A씨가 사표를 제출했으며 23일부로 회사에서 수리됐다”고 밝혔다. 이어 “당사자가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해당 항공사 및 승무원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4월 23일 운영회의와 신임 임원 특강에서 계열사 임원의 기내 여승무원 폭행 사건과 관련, “포스코가 그동안 쌓아온 국민기업으로서의 좋은 이미지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한 충격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최근 언론에 보도된 일에 대해 임직원 모두가 충격을 받고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며 “나 자신이 먼저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정준양 회장은 “포스코가 과연 국민기업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돌이켜 생각해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한 번 더 우리의 일하는 방식, 남을 배려하고 대하는 태도를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고 임원들에게 주문했다. 정 회장은 “포스코그룹의 임원 자리는 군림하고 누리고, 사람을 부리는 자리가 아니라 솔선수범하고 봉사하는 자리라는 말을 수없이 강조해왔는데 그럼에도 이런 일이 발생해 포스코패밀리 이미지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고 탄식했다. 정 회장은 앞으로 포스코패밀리의 임원 승진에 있어서도 남을 배려하고 솔선수범하는 것을 포함해 소통과 신뢰를 최우선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황은연 포스코 CR본부장은 4월 26일 경기 파주 출판단지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창피한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포스코 문화 45년간 갑(甲) 노릇만 하다가 언젠가 분명히 터질 일이었다”고 말했다. 황 본부장은 “이 사건으로 우리나라 전체 산업체의 임원, 힘주고 있는 부장, 직원에게 우리가 교보재를 제공했으니 정말 정신 차려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남양유업 사태 ‘갑의 횡포’ 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은 남양유업 사태였다. 사태의 발단은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 업주에게 욕설을 하며 ‘밀어내기’ (대리점에서 주문하는 물량보다 많은 물량을 배송하고 그에 따른 대금을 청구하는 행위)를 강요한 녹취록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부터다. 지난 3일 온라인에는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 업주에게 물품 구매를 강요하는 내용의 녹음 파일이 올라왔다. 2분 40초 분량의 녹음 파일에는 영업사원이 대리점 업주에게 “죽여버리겠다”, “(제품을) 버리던가”, “맞짱 뜨려면 (회사로)들어오던가. ××야”등 폭언을 퍼붓는 내용이 담겨있다. 해당 녹음파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타고 인터넷에 퍼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이 가운데 영업직원이 대리점 주에게 떡값을 받았다는 정황이 담긴 녹취록까지 공개되며 또 한 차례 파장을 몰고 왔다. 녹취록에는 지난 1월31일 남양유업 서부지점 영업팀장과 정승훈 연합회 총무의 통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영업팀장은 “내가 사장님한테 돈을 받은 것은 진실이다”라며“그러나 (그 돈이) 어디로 갔느냐는 오리무중이고 받은 사람이 안 받았다고 하면 내가 뒤집어쓰는 거야”라고 말했다. 떡값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그 돈을 일부 다른 곳에 상납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 총무는 “이날 공개한 녹취록 외 약 30분 길이의 녹취록을 확보한 상태다. 내용을 파악하는 중”이라며 “사실 관계가 파악되면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명절마다 한 지점에서 떡값 명목으로 내야하는 돈만 10~30만원이고 그 외 각종 리베이트와 장려금 등을 합하면 수 천 만원은 될 것”이라며 “신규 매장을 개척하면 몇 백만 원을 지원해줬다 다시 가져가는 등 떡값 외 다른 횡포도 심하다”고 토로했다. 이에 남양유업은 지난 4일 홈페이지를 통해 “현재 인터넷에 회자되고 있는 당사 영업사원 통화녹취록에 대해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다”면서 “실망을 안겨드린 모든 분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영업사원은 사직서를 제출했고 사태의 엄중함을 감안해 즉각 수리했다”고 알렸다. 남양유업은“이번 통화녹취록은 3년 전 내용으로 확인됐다”며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관리자를 문책하겠다. 다시 한 번 회사 차원에서 해당 대리점 주께 진심어린 용서를 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임직원 인성교육시스템을 재편하고 대리점 관련 영업환경 전반을 면밀히 조사해 이번과 같은 사례가 결코 재발하지 않도록 엄중히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파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시작된 남양유업 불매운동은 증권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박 대통령 “정말 불공정하고 억울한 갑을관계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중소기업인 20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가진 만찬에서 “최근 본사의 밀어내기 압박에 시달린 대리점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남양유업 사태에 이어 전통주류 업체인 배상면주가 대리점주의 자살까지 부른 ‘갑의 횡포’ 문제에 대해 옐로카드를 내민 것으로 분석된다. 박 대통령은 또 “정말 불공정하고 억울한 갑을관계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며 “건강한 경제 생태계가 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은 발붙일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새 정부는 우리 사회에서 불공정 거래를 근절하고 공정한 시장경제 원칙을 바로 세우고자 한다”며 “상생의 질서를 제대로 확립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현장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확실하게 챙기겠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질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중산층을 확실히 복원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중소기업 활성화가 중요한 과제”라며 “저와 정부는 중소기업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힘차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아울러 “여러분의 노력이 정당한 대가를 누릴 수 있도록 경제민주화 정책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박 대통령은 전날 발표된 벤처산업 생태계 선순환 방안 등에 대해서도 “단지 이런 정책을 내놓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박 대통령은 “여러분이야말로 창조경제의 주역이고 경제민주화의 중심축”이라며 “여러분과 함께 경제부흥, 국민행복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여야, 갑의 횡포 방지를 위한 법안 마련 경쟁
여야는 국회에서 갑의 횡포 방지를 위한 법안 마련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른바 ‘남양유업 사태 방지법’ 1호 법안은 이미 발의된 상태다.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지난 15일 ‘대기업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을 대표 발의했다. 법률안에는 불공정행위가 발생한 경우 매출액의 3% 범위에서 과징금을 부과하고, 대리점 본사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손해의 3배 범위 안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았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은 지난 14일 이종훈 의원 대표발의로 불공정 ‘갑을 관계’해소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을 포함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이 의원은 징벌적 손배제 외에 집단소송제 전면 도입, 사인의 행위금지 청구제 도입, 공정위 결정에 대한 고발인 불복 기회 부여 등을 입법 방향으로 제시했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도 같은 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참여연대의 입법청원을 받아들여 대리점 거래 공정화법 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제정안은 본사가 제품 강매나 밀어내기 등을 강요할 경우 대리점이 입은 손해의 최대 3배 범위 내에서 배상책임을 묻도록 하고, 본사가 대리점 사업 희망자에게 대리점 매출 현황, 불공정 거래 관련법 위반 사실 등을 공개하지 않거나 허위 정보를 제공할 경우 공정위가 매출액의 2% 범위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지난 15일 나란히 선출된 여야 원내 사령탑들은 관련 입법 추진에 공감을 표시했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16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과도한 갑을 관계는 시정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입법도 보완해가면서 또 공정거래위원회가 엄정한 법 집행에 나서야 한다”고 피력했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6월 국회는 을(乙)의 눈물을 닦아주는 국회로 만들겠다”며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 활동에 중점을 두겠다”고 했다. 갑의 횡포를 계기로 재부상한 경제민주화 입법이 새로운 여야 관계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대형 유통 업체의 갑을문화 해소 방안
이같이 사회 전반으로 ‘갑’ 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늘어나면서 유통업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윤리 경영과 상생 방안에 대한 개선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갑을 상징하는 대표급인 유통업계에서 맨 먼저 갑과 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나섰다. 현대백화점은 5월 10일부터 3,500여개 협력사와 체결하는 거래 계약서에 갑과 을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갑은 백화점으로, 을은 협력사로 바꾼다는 것이 요지다. 또한 매달 온-오프라인을 통해 올바른 비즈니스 예절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시사했다. 회사 관계자는 “협력사는 백화점의 성장을 위한 동반자로 동등한 파트너이다. 현재 왜곡돼있는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130명의 상품본부 바이어가 매주 목요일 협력사를 직접 방문해 그들의 고충을 듣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맨투맨 프로그램과 상품 본부 팀장이 협력사 담당자들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하는 런치 미팅 등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롯데백화점 역시 협력업체와의 상생 방안을 모색 중이다. 지난해 9월 설치된 협력사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고충상담센터가 힐링 센터로 변모했다. 또한 본사와 협력사 직원이 서로의 역할을 맡아 고충을 느껴보는 교육도 실시할 예정이다. 한편 신세계백화점은 이미 2001년부터 계약서상에서 갑과 을이라는 용어를 없앴다. 대신 구매자와 공급자, 임대인과 임차인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또한 연 4회 회사와 협력사에서 각 8인의 대표가 참석하는 동반성장협의회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본질적인 원인 해결 필요
유통업계의 강매행위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잠복돼 있던 것이 늦게 터졌을 뿐이다. 여태껏 갑을(甲乙)관계에 있어 을의 위치에 있던 대리점 업주 등이 갑의 눈치를 살피느라 숨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급기야 밀어내기에 눌린 대리점주가 자살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사태에 통감했던 대리점 주들은 물론 소비자들의 공분을 샀고 곧 해당 업체의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번에 도마 위에 오른 갑의 횡포 사태는 잘못된 갑을관계를 청산하는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 전반에서도 잘못된 갑과 을의 관계를 바꿔야한다는 원성이 빗발치고 있다. 갑을 대표하는 기업과 사회 지도층들이 변화의 모습을 보이겠다고 포부를 밝히지만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고질적인 갑과 을의 관계가 바뀌려면 본질적인 원인 해결과 함께 문화와 인식의 차이가 뒷받침되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