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농(林農) 의 화폭에 고요한 한국이있다
사실적표현 기법으로 부드러운 완벽
2006-04-04 장병권 부장
한국화에서 먹의 진하고 옅음으로 표현되는 묵향이 가득한 세계는 사람들에게 속삭인다. 당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조금 더 깊숙하게 들여다보라고 말이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치는 소소한 사물과 작은 생명의 소리에까지 귀를 기울여 보라고 말이다. 전하려는 마음이 깊은 울림이 되어 마음에 남는다.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 감동을 주는
프랑스 미술평론가 마틸드 클라레는 임농 하철경에 대하여 이런 평을 내린 바 있었다.“하 화백의 작품이 전하는 분위기는‘부드러운 완벽’그것이다. 그는 동양미술의 고루한 전통에서 벗어나 맑은 자연미를 자유롭고 섬세하게 표현한다. 하철경 화백이 우리 서양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한국 산수에 대한 따뜻한 감성과 사실주의의 높은 기량을 독창적으로 결합시키고 있게 때문이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루소가 한 말이 그대로 가슴에 와 닿는다.‘나는 거기서 따뜻함과 고요함, 그리고 영혼의 평화를 얻었다’...”진실하게 표현된 것들은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 감동을 전한다. 동양의 정신으로 무장한 그림이지만 그 안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진심어린 표현들은 서양과 동양을 나누지 않고 그저 하나의 그림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가장 한국적인 것들을 그의 화폭에 담아내고 있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산은 산으로 나무는 나무로 그릴 줄 아는 작가이다. 솔직하고 사실적인 표현방법으로 한국이 가진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고자 항상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화폭에 담기는 세계에는 한국이 들어있다. 생소하지 않은 우리의 풍경이 고스란히 한국의 관람객들을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익숙하지만 신선한 느낌으로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기다린다. 친숙한 우리의 것이 어떤 신선함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라는 기대를 품고 말이다. 이렇듯 동양정신이 짙게 밴 오브제가 치밀하고 정제된 테크닉으로 형상화된 작품은 서양인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신한 그의 터치와 조화로움이 사람들의 시선을 자꾸만 그의 그림 앞으로 모여들게 만든다.
남농(南農) 허건 선생에게 배우다
임농 하철경의 스승은 남농(南農) 허건 선생이다. 1977년 그의 문하로 들어갔으니 그가 그림을 그린지도 올해로 30년째이다. 남농 허건 선생에게서 배웠지만 그의 그림은 고스란히 임농 하철경의 것으로 표현된다. 스승의 그늘에서 머무르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평가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는 그의 노력이 이루어낸 결과물이기에 더욱 값진 것이리라. 초대전과 단체전에 참여한 것만 하여도 500여회를 넘어섰으며 국내외 34회의 개인전을 통하여 사람에게 그의 세계를 전달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1998년부터 1992년까지 연이은 네 차례의 특선과 한국예총예술문화상 대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그림은 공인 받은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더군다나 4년 연속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이라는 기록은 한국화 부문에서는 이 지방의 아산(雅山)과 희재(希哉) 두 사람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기록이라고 한다.예술을 통한 사회활동 역시 그에게 주목할 만한 점이다. 현재 한국 미술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협회 직선제로 당선된 이사장이라는 점 때문에 관심을 받기도 했었다. 그리고 매년 미술대전을 통해 대통령상,을 받은 작가에게는 병역혜택과개인초대전 등의 다양한 혜택과 그동안 300만원이던 장학금을 3,000만원으로 확충하여 어려운 회원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다른 나라와의 꾸준한 교류를 통하여 미술을 통한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경비엔날레 유치를 비롯한해외 교류전, 각종비엔날레, 아트페어 등을 미술협회의 주도로 이끌어나가면서 말이다. 더불어 앞으로는 6.25이후 중단되었던 근·현대미술사를 재조명 하기위해 남북미술인 교류전을 추진 중에 있으며 북한 어린이들에게 물감보내기 동 역시 추진 중에 있다. 이외에도 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한 미술치료와 그림지도를 통해 전시회를개최 하였으며, 약 3만 명의 미술협회 회원등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중이라 전했다. 물론 이러한 사회 활동이 그들의 창작활동에 방해 요소로 작용할지는 모르겠으나 더 많은 사람을 예술로 감싸고 보듬는 그들의 마음이야말로 그림 안에서 표현되는 그 어떤 세계보다도 진실 되고 아름다운 것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고향의 풍경에서 그림을 낳다
임농 하철경은 진도 출생의 화가이다. 그림을 그리는 이들에게 있어서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그곳에서 하철경은 태어났다.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정겨운 사람들의 인심에 둘러싸여 그의 감수성을 키워나갔던 것이리라. 그래서 그의 그림에서는 따뜻한 감정들이 베어 나온다. 그중에서도 그가 태어난 삼막리는 장전(長田)하남호의 미술관이 있어 더욱 유명한 곳이다. 신기하게도 이 고장에서는 서화인들을 20명 넘게 배출해냈다. 70여 가구가 오순도순 모여살고 있는 조그마한 고장에서 20명이 유명한 서화인이라면 뭔가 있을 듯한 장소이지 않은가. 그곳 삼막리를 다녀와 분이라면 알 것이다. 그곳에 얼마나 살기 좋은 땅인지를 말이다. 보드라운 흙이 좋은 향을 풍기고 풍경은 그림 이상으로 아름다우며 평온한 기운이 흐르는 곳이니 말이다.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마을 앞에는 여귀산이 높이 솟아있고, 뒤로는 산막산이 그 못지않게 받치고 있으며 양옆으로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감싸 안고 있다. 특히 좋은 소나무와 바위가 많아 임농은 남농의 송암이 여기 다 모여 있다고 말할 정도였으며 은은한 삼막리의 자태가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숨이 멎게 만들고 있었다. 이 같은 풍경을 보고자라니 예술인이 아니더라도 예술인의 감성을 지닐 것이며 예술인은 더욱 뛰어난 감성을 그의 화폭에 그려내게 될 것이다. 임농은 자신의 고향이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하기를“예부터 풍수가들이 더러 찾아와 좋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들었다.
삼막산의 문필봉 정기를 받아 붓 봉사 하는 이들이 많이 난다고도 했다.”그는 어려서부터 서화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시간이 나면 무언가를 항상 끄적이곤 했다고 한다. 앞동산에 올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림을 그리는 날이 수도 없었다. 그 시절 그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화폭에 담기도 하였으며 명절이면 동네 누나들이 강강술래를 하며 노는 꽃 같은 모습을 그리기도 하였다. 그런 기억 속의 그림은 요즘도 그의 그림에서 은연중에 나타나고 있기도 한다. 물론 그에게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양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준비한 입시에서 두 번의 낙방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그에게 닥친 커다란 시련에 방황도 많이 했지만 오히려 그 시간을 기회로 삼아 남종화라는 영역으로 그의 시선을 돌리게 된다. 그래서 1977년 2월 10일 남농 선생께 큰 그림을 배워보고자 다짐을 했다는 것이다. 장독대에 쌓인 눈으로 세수를 하며 다짐을 하던 아침이었다. 그러나 쉬운 길은 없었다. 남농 선생의 문하에 들어갔지만 정작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는 허드렛일을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러나 그 역시 공부라 여기고 마음을 다잡았다. 고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20여명의 제자들이 떠나버렸으나 하철경은 묵묵히 일을 하며 그림을 향한 그의 열정을 쌓아가고 있었다. 스승이 때때로 그려주는 난과 대나무 등의 채본을 받아들고는 집에서 밤을 새워가며 임모했으며 다시 교정을 받아 그리기를 반복했다. 화실에서 공부를 할 때에도 차마 화선지에는 연습을 하지 못하고 신문지에 겹겹이 붓질을 했다. 힘든 시간 속에서 열심히 노력을 한 결과 어느덧 그의 손에는 이런저런 준법이 손에 익어가고 있었으며 입문한지 1년만인 1978년에는 국전에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을 하는 성과를 얻기도 하였다.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매진하는 그의 모습이 이루어낸 결과물들이었으며 이 같은 모습에 그의 스승 역시 기쁨을 감추지는 못하였다고 전했다.
예술과 문화는 한 나라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경제적인 이익은 둘째치더라도 그것이 가지는 자긍심과 자부심이 어마어마한 힘이 된다. 이제는 정부나 각 단체들이 특정 예술인뿐만 아니라 소외된 미술인들에게도 관심을 돌려 보호하고 육성할 때라고 이야기하는 그이다.
임농 하철경의 화폭에는 그가 뛰놀던 뒷동산이 담겨 있다. 고향 마을의 다정한 풍경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가 그려내는 경치들이 더욱 아름답고 가슴 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안에 사람의 채취가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한국이 가지는 우리만의 감성이 존재하여 사람들에게 진한 울림을 전달하고자 한다. 항상 화첩을 끼고 다니며 산천경개 안으로 뛰어드는 하철경이기에 그의 그림에서는 항상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의 묵향 가득한 작업실과 그의 화첩에 담기게 될 모든 자연의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