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중 정상회담의 성과와 한계
시진핑 방한… 양국 경제적 협력관계 재확인, 정치는 ‘글쎄’
지난달 3일 청와대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2014 ‘한ㆍ중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중국 측은 이 성명을 ‘중화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간의 공동성명’으로 이름 붙였다.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 한ㆍ중 양국이 전략적 협력을 맺고 동반자적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 다양한 논의를 펼친 결과 영사협정, 자유무역협정(FTA), 직거래 시장 개설 등에 서로 의견을 일치했다. 하지만 일부 현안 대응법과 관련해서는 이견을 노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두 나라 간에 희망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이번 정상회담에는 각각 북한과 미국이 보이지 않는 세력으로 양국에게 서로 영향을 미친 결과로도 보인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가동?
한ㆍ중 FTA 협상 본격 진행
현재 2단계 협상 진행중인 한ㆍ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해 양국은 올 연말까지 협상을 타결하는 데 서로 협조하기로 했다. 양국 무역액은 현재 연간 3,0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번처럼 공동 성명에 협상 타결 시점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해 9월 1단계 협상이 끝난 뒤 10개월 가까이 교착상태에 머물렀던 협상이 이로써 활력을 얻게 됐다. 정부 관계자는 “협상시한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타결 의지를 천명한 만큼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과연 한ㆍ중 수교 이후 22년 만에 경제 협력의 큰 전환이 이루어질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연내 타결’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양국은 식품, 어업,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간 경제협력을 더욱 공고히 다질 실질적인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해 6월 양국은 한ㆍ중 FTA 1단계 협상을 통해 ‘품목 수 기준 90%, 수입액 기준 85%’ 관세 철폐에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구체적인 양허수준을 조율하는 2단계 협상에서는 그동안 제자리를 맴돌아왔다. 한국은 농수산물 시장을 방어하며 석유화학, 자동차 등 제조업과 서비스시장의 개방을 요구하는 반면, 중국은 한국 측이 농수산물 시장을 개방해야만 협상을 진전시킬 수 있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아왔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2개월에 한 번씩 개최하던 협상을 앞으로 더 자주 열 것”이라며 “쟁점에 대한 합의만 도출하면 시간을 오래 끌 이유가 없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농민과 중소기업들의 반발이다. 그간 농산물 추가 개방 불가라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해온 한국 정부는 이번 연내 협상 타결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결국 일부 시장을 개방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최필수 중국팀장은 “과거 FTA 사례에서 보듯, 농민과 중소기업을 설득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취약분야를 보호하기 위해 각계 의견을 수렴해 협상장에서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역으로 그간 막혀있던 한국 김치의 중국 수출길이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동안 중국은 절인 채소류에서 대장균 및 그와 유사한 균이 100g당 30마리 이상 검출될 경우 수입을 금지하는 수입위생기준을 근거로 김치 수입을 금지해왔다. 중국은 이 같은 수입위생기준을 개정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김치 수출길이 열리면 농가 소득 증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양국은 이 같은 FTA뿐 아니라 식품, 어업, 금융, 첨단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조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작년 정상회담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내용일 뿐이라는 시각도 나왔다. 아직은 ‘선언적 수준’의 합의라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진행될 양국의 협상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이유다.
원화ㆍ위안화 수수료 없이 직접 거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 인민은행장은 지난달 3일 한ㆍ중 정상회담이 열린 청와대에서 바로 ‘위안화 금융서비스 협력제고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로써 중국은 위안화를 국제적으로 유통하려는 계획에 더욱 힘을 싣게 되었고, 한국은 결제통화 다변화를 꾀하면서 금융산업에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기회를 얻게 됐다. 이 같은 협력 구축을 위해 양국은 ▲ 위안화 청산결제 은행 지정 ▲ 원ㆍ위안화 직거래 시장 개설 ▲ 위안화적격외국인기관투자(RQFII) 허용 등 금융 인프라 ‘3종 세트’를 일괄 타결했다. 중국 밖에서 기관 간 위안화 결제 대금을 청산하고 결제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청산결제 은행은 사실상 중국 인민은행의 역외지점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청산결제 은행이 지정된 국가는 ▲ 홍콩(2003년) ▲ 대만(2012년) ▲ 마카오(2012년) ▲ 싱가포르(2013년) ▲ 영국(2014년) ▲ 독일(2014년) 등 총 6곳이다. 여기에 한국이 추가되면서 중국은 자본시장 개방이 제한된 한계를 극복하고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저변을 더욱 확대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원ㆍ위안화 직거래가 열리며 국내 외환시장에서 더 이상 원ㆍ달러화, 달러ㆍ위안화 재정환율을 거칠 필요가 없게 됐다. 이로써 위안화를 사거나 팔 때 지금처럼 달러를 매개로 할 필요가 없어져 ▲ 환전수수료 절감 ▲ 결제통화 다변화에 따른 대외건전성 제고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현재 중국의 동북지역에서는 원화 환전 및 결제 수요가 상당하다”며 “직거래 시장이 당분간 국내에서만 운영되더라도 원ㆍ위안화 무역결제만 활성화되면 원화의 국제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RQFII는 승인을 받은 해외 기관투자자가 역외에서 조달한 위안화로 중국의 채권 및 주식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로, 한국은 이번 체결로 약 13조 원에 해당하는 800억 위안 규모의 한도를 부여받았다. 2011년 도입된 RQFII를 통해 한도를 부여받은 국가는 ▲ 홍콩(2천700억 위안) ▲ 대만(1천억 위안) ▲ 프랑스(800억 위안) ▲ 싱가포르(500억 위안) 등 총 5개국 66개 기관이며, 액수는 총 5천800억 위안이다. 한국은 그동안 한도를 부여받을 때와 달리 환전 절차 없이 직접 위안화로 투자할 수 있고, 투자자산 배분에도 제한이 없는 것이 장점이다.
영사협정 체결, 체포 시 4일 이내 통보
양국의 인적ㆍ문화적 교류 분야에서는 2002년 공식협상을 시작한 지 12년 만에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간의 영사협정’이 체결됐다. 외교부는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달 3일 양국 정상이 임석한 가운데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한ㆍ중 영사협정에 서명했다. 영사협정은 ▲ 상대국 국민이 체포 및 구금됐을 때 본인이 요청하지 않더라도 4일 이내 영사기관에 통보 ▲ 영사접견 신청 4일 이내 접견 보장 ▲ 상대국 국민의 사형 선고 및 집행 등에 대해 즉시 통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1963년에 만들어진 ‘영사관계 비엔나 협약’에 따라 외국 내 영사 문제에 대응해왔다. 미국과 러시아와는 별도로 양자 차원의 영사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이번 중국과의 협정 체결로 양국 인적왕래의 법률적 기초를 다지고, 양국 영사관계 및 협력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외교부 관계자는 “체포ㆍ구금 시 4일 이내 통보와 영사 접견 4일 내 보장 등을 명문화함으로써 중국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의 안전 및 권익 보호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혔다. 이 같은 협정은 향후 양국 국내절차가 모두 완료되었다고 통보된 날로부터 30일 후 발효된다. 한편, 양국 간 교류도 확대된다. 양국은 한국 대통령국가안보실장과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간에 ‘외교안보 고위전략대화’를 정례화하기로 약속했다. ‘한ㆍ중 청년 지도자 포럼’도 신설된다. 또한 2015년과 2016년을 차례로 ‘중국 관광의 해’와 ‘한국 관광의 해’로 각각 지정하기로 했다. 교육 및 청소년 분야에서도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관용ㆍ공무 여권 소지자에 대한 상호 사증면제 협정 문안에도 합의를 이루고 단계적 확대 방안을 협의해가기로 했다. 이 같은 인적 교류는 2016년까지 1,000만 명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양국은 서로 합의를 이룬 인문교류 세부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한편,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간의 영화 공동제작에 관한 협정’도 체결하기로 했다.
북핵 대응 의견 엇갈려
양국 정상은 정상회담 직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양측은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회담 당시에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점에 인식을 공유한다”고 명시했었다. 그에 비하면 한층 강경한 입장을 담은 셈이다. 하지만 공동성명 조율 과정에서 한국 측은 ‘한반도 비핵화’와 같은 포괄적 문구가 아니라 ‘북한 비핵화’ ‘북한의 4차 핵실험 반대’ 등과 같이 구체적인 문구를 포함시킬 것을 중국 측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 주석은 취임 후 북한 방문은 거부 입장을 취하며 한국을 단독 방문함으로써 북한을 압박하는 태도를 간접적으로 드러냈으나, 이 같은 공격 태도를 명시적으로 취하는 것에는 부담스러움을 내비쳤다. 세종연구소 이태환 중국연구센터장은 “‘한반도 핵 개발 반대’라는 문구로 중국은 북한의 자극을 피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최근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고 핵실험 위협을 거두지 않는 상황에서 시 주석의 방한은 북한 비핵화에 분명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시진핑 주석은 박 대통령이 제시한 드레스덴 구상과 관련해서도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기울인 한국 측 노력을 적극적으로 평가한다”고만 답했다. 그 내용은 지지하면서도 명시적으로는 지지 표명을 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공동성명에 드레스덴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드레스덴 구상의 핵심 내용은 모두 들어 있다”면서 “북한이 드레스덴 구상에 반대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중국 측의 지지를 확보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대해서도 양국 모두 그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실현 방안에서는 뚜렷한 해법에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양국의 공동성명에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견해를 같이했다”는 문구가 포함돼 북한의 ‘조건 없는 대화 재개’ 주장에 대해서는 양국 모두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외교부 윤병세 장관은 지난달 11일 국회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아직 (6자회담 재개 조건에 대한) 합일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한ㆍ미, 한ㆍ중, 미ㆍ중 간에 서로 논의하고 있다”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조건이 중국보다 조금 더 높아 아직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ㆍ중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를 이루기 위한 의미 있는 조건을 준비해야겠다는 데 중국도 동의한 만큼 이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과”라고 강조했다.
향후 동북아 정세 및 주변국 반응
한ㆍ중 정상회담으로 두 정상 간 친밀감은 높였지만, 한국 정부로서는 일본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미국과 대등한 신형대국관계를 형성하려는 중국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할 신세가 돼버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북아역사재단 최운도 연구위원은 “이번 한ㆍ중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 정부의 입장이 중국 쪽에 가 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면서 “이를 불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미국과의 대화 채널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달 3일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문제의식은 우리와 중국이 비슷하지만 (그 대응에 있어) 중국과 같이 갈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한국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 비핵화’를 중국 측에 요구했듯 중국도 일본 문제와 관련해 한국 측에 꾸준히 공조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회담 직후만 해도 양국 공동성명이나 기자회견에서는 일본과 관련한 언급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 시진핑 주석의 방한 일정이 끝나갈 무렵 양국 정상은 일본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나섰다. ▲ 고노담화 검증 ▲ 독자적 대북 제재 해제 등 일본의 최근 행보에 대해 양국은 조목조목 비판하며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대’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미국이 일본의 자위권 확대를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이 같은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었다. 안보부처 전직 고위 당국자는 “아무리 싫어도 일본은 전략적으로 끌어안고 가야 할 파트너이자 한ㆍ미 동맹의 동반자”라며 “중국과 손잡고 일본을 비난하는 메시지를 발표하는 방식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은 최근 미국과 일본을 배제하고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4일 서울대 강연에서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적극적인 참여를 강조했다. 이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대응하는 성격이 짙다. 우리 정부는 참여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또한 중국은 회담에서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MD)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다방면에서 한ㆍ미 관계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측은 시진핑 주석의 방한에 대해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의 동맹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의하면 맨스필드재단 프랭크 자누지 사무총장은 “중국은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한국을 떼어낼 기회를 감지하고 있으며 동아시아에서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확대되는 경제적 영향력을 활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시아에서의 외교 다툼’이라는 제목하에 이 같은 내용을 전한 기사는 이러한 외교 다툼이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를 놓고 “몇 차례 내부 토론을 가졌으나 딱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며 깊은 고민을 드러냈다. 일본은 중국에 대한 대응으로 오히려 북한과의 관계를 발 빠르게 쌓아나가고 있다. 일본은 대북 제재 일부를 해제하고 북한 역시 납치 피해자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며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더욱 곤란한 입장에 처하는 셈이다. 이와 더불어 러시아와 북한의 경제 협력도 한국과 중국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역시 이번 회담에서 최대한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 신중을 기하는 태도를 보였다. 어느덧 ‘한국 대(對) 북한’, 그리고 ‘중국 對 일본’, 또는 ‘한ㆍ중 대(對) 북ㆍ일’ 관계가 성립돼가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현명한 선택이 필요할 것이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