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제점’ 받은 공공기관 운영, 정상화는 먼 일?
2013 경영평가 전반적 하락 속 해임 건의 ‘단 2명’
지난 6월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기관의 2013년도 경영실적을 약 3개월에 걸쳐 평가하고 그 결과 및 후속조치를 확정했다. 제10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 공개된 이번 평가는 각 학계 및 법조계 등 관련 전문가 156명으로 구성된 경영평가단에 의해 공기업 30개, 준 정부기관 87개 등 총 117개 기관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지난 한 해 동안 이루어진 이들 기관의 경영실적을 평가하고 공공기관의 과다한 부채와 방만(放漫)경영이라는 비정상적 행태를 바로잡고자 실시된 이번 평가는 지난해에 비하면 다소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2013년도 각 기관 경영실적평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2013년도 경영실적, 지난해 비해 하락
낙제 공공기관 1년 사이 2배로
올해 평가대상인 전체 공공기관 중 25.6%에 이르는 30개 기관이 보통 이하인 D, E등급을 받았다. 이 같은 결과는 방만경영과 도덕적 해이로 물의를 일으킨 기관들이 늘어난 데다 과도한 부채 때문에 중점관리대상으로 지정된 공공기관 및 안전관리에 치명적 결함을 드러낸 공공기관들의 평가가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올해 공공기관에 대한 평가는 지난해보다 크게 악화됐다. 우선 지난해 16곳이었던 A등급 공공기관이 올해는 KOTRA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단 2곳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비해 D등급을 받은 기관은 9곳에서 19곳으로, 최하등급인 E등급은 7곳에서 11곳으로 크게 늘었다. 이처럼 공공기관에 대한 평가가 전반적으로 낮아진 이유는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에 따라 부채가 많거나 직원 복지비 지출이 많았던 공공기관에 대한 평가점수를 대폭 낮췄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A등급을 받았던 예금보험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두 단계 아래인 C등급으로 떨어졌으며 지난해 B등급이었던 한국동서발전과 한국서부발전 등은 D등급으로 하락했다. 부실 안전점검으로 논란이 된 공공기관들도 된서리를 맞았다. 세월호 참사 및 원자력발전소 가동 정지 등과 관련해 선박 안전점검을 부실하게 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선박안전기술공단은 지난해 A등급에서 올해 최하 등급인 E등급으로 곤두박질쳤다. 주요 사업에서 부진한 실적을 냄에 따라 적자로 돌아선 데다 세월호 선박검사에서 불법 증축의 위험성을 지적하지 못한 점이 평가에 반영됐다. 울산항만공사 역시 항만 안전관리에 대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E등급을 받았다. 재무관리 시스템 체계화 필요, 경영성과급 차등 지급 및 실적 저조 외에 액체 위험물을 다량으로 취급하지만 항만운영상 안전관리에 대한 노력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E등급을 받았다. 인천항만공사는 항만 운용사업에 대한 중장기적 대책이 미흡했다는 평가와 함께 안전 관리 역량을 높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전년보다 두 단계 낮은 C등급을 받았다. 또한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합리적인 노사관계 구축에 실패하면서 최장기 파업이 발생해 C등급에서 최하위 등급인 E등급으로 떨어졌다. 한국거래소 역시 보수 및 성과관리, 노사관리 부문의 실적이 미흡하고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전산장애에 대한 사전 대비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아 지난해보다 한 단계 낮은 E등급을 받았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부품 납품비리와 시험성적서 위조에 따른 원전 가동 정지로 대규모 적자를 내면서 D등급에서 E등급으로 떨어졌다. 남부ㆍ남동ㆍ동서ㆍ서부ㆍ중부 등 5개 발전자회사 역시 순이익이 감소해 지난해보다 등급이 내려갔다.
“부임 6개월 안 돼” 면죄부?
공공기관 정상화 후속 계획은?
지난달 1일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전KPS의 노사는 지난 6월 경영 악화 등으로 인한 인원 조정 시 노조와 합의해야 한다는 조항을 없애는 대신 사전 협의를 거쳐 결정하기로 하는 등 방만경영 14개 사항을 개선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또한 1인당 직원 복리후생비를 줄이고 직원가족 특별채용, 순직직원 위로보상금을 없애기로 하고 근무시간 외 체육대회 운영, 임차사택의 월 임차료 입주직원 부담, 선택적 복지제도에 직원 대상 단체보험 통합에도 합의했다. 전력거래소 역시 같은 날 정부 경영평가 성과급의 퇴직금 산정 제외를 비롯한 방만경영 정상화 과제의 시행에 합의했다. 합의안에는 대학생 자녀 장학금 삭감, 경조금 등 복지기금 축소, 장기근속 격려금 폐지, 공무원 수준의 휴가 및 휴직제도 조정, 장기 재직휴가와 선택적 휴가제도 폐지 등이 담겨 있다. 한전 노사 역시 이에 앞선 지난 6월 24일 장기근속 격려금 지원 중단을 포함한 11개 방만경영 사례를 개선하기로 합의했다. 한전은 감원 시 고용안정위원회의 사전 합의 규정을 협의로 바꾸고 산재보상금 이외에 순직 조위금을 추가로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경조 휴가 일수는 공무원 수준으로 조정한다. 한국지역난방공사도 노사 합의를 통해 경영성과급의 평균임금 제외, 직원 복리후생비감축 등 20개 과제를 일괄 개선했다. 공기업 관계자는 “에너지공기업을 중심으로 노사가 경영 정상화 방안에 합의하고 있어 현재 진행중인 다른 공공기관의 노사 협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공공기관운영위원회 회의에서 현오석 부총리는 “공공기관 정상화가 노조의 방해 때문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현 부총리는 “노조가 교섭권을 상급단체에 위임해 연대 투쟁을 하거나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장을 마련하기 위해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코레일은 방만경영 해소를 위해 자동승진제 폐지 등을 추진했지만 노조가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 양측은 경영평가 성과급을 퇴직금에 반영할지 여부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며 노조 측은 공공기관 운영 방침의 결정권을 가진 기재부가 공공기관을 대표해 협상 테이블에 나오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부는 “정상화 대책은 공공기관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의해 추진한다는 기본 원칙을 재확인했다”며 거부 의사를 밝히고 대법원 판례를 들어 성과급 퇴직금 반영은 어렵다고 통보했다. 이에 반발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서울역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 동안 추진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노조가 상급단체에 교섭권을 위임했다는 핑계로 협상에 소극적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합법적인 절차로 권리를 요구하고 나선 노조를 ‘개혁의 걸림돌’로 여기는 정부의 인식을 문제 삼는 지적도 나왔다. 공대위 관계자는 “상급단체에서 협상을 하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데 정부가 ‘오버’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정책 실패로 공공기관 부실을 키워놓고 이제 와서 책임을 노조에 전가하고 있는 것”이라 주장했다. 또한 일각에서는 정부가 기관장 해임 카드를 꺼내 들며 공공기관 정상화를 밀어붙였지만 눈에 띄는 성과가 나지 않자 “노조에 화살을 돌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잇따랐다.
엄정한 평가 vs 눈 가리기식 정상화
기획재정부 이석준 2차관은 이번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국민적 관심이 큰 부채와 보수성과 지표를 엄정히 평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세월호 사태 이후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을 반영해 안전관련 기관에 초점을 맞춘 평가”가 이루어졌고 경영 과정에서 나타난 사건사고 및 각종 비리에 관한 내용도 평가에 반영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핵심 국정과제인 공공기관 개혁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폭넓은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재임기간이 짧더라도 이 기간 중 경영성과를 제대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정한 공공기관 평가를 위해서는 평가기준과 처벌조항을 구체화하고 기재부가 맡고 있는 평가업무를 독립기구에 넘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진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산하 공공기관을 거느린 기재부가 경영평가를 주관하는 것은 선수가 심판을 맡는 것”이라며 “공공기관 운영위원회를 독립시켜 경영평가를 전담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양대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는 “경영평가가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노력한 업무실적이 정당하고 공정하게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의 ‘가짜 정상화’를 밀어붙이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면서 “무조건적인 부채감축으로 공공사업이 축소되고 국민 자산이 헐값에 매각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일부에서는 이번 공공기관 정상화 방침을 두고 그 속내는 ‘규제완화 및 민영화’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는 공공개혁 논리는 ‘부채가 늘어난 공공기관들의 방만경영이 지속됨에 따라 자산 매각과 경쟁체제 도입이 불가피하며,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 등 내부 기득권의 양보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보진영과 노동계는 정부의 이러한 진단과 해법에 전혀 동의하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 김남근 집행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공공개혁 방향은 곧 공공부문의 축소를 의미한다”며 “정부가 말하는 경쟁체제 도입은 민영화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공공개혁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과다 부채와 비효율성 등을 말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규제완화와 민영화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현 집권세력의 ‘작은 정부, 큰 시장’ 정책 기조에 맥이 닿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외압을 막아내야 할 정점인 기관장 자리에 권력의 낙하산이 줄줄이 내리꽂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들이 공공기관의 정치적 사업과 부실을 키우는 통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경제연구소 김회승 연구위원은 “공공기관들이 목적 외 사업 등 방만한 경영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정치적 외압’ 때문”이라며 선거 때마다 새로운 공약 사업이 남발되고 이를 공공기관에 떠넘기는 관행이 반복되는 현상을 비판했다. 고용노동연수원 박태주 교수 역시 “공공기관 노조와 구성원들이 경제적 실리주의를 뛰어넘어 책임 있는 공공서비스 감시자로서의 위상과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은 과거 어느 정부도 쉽게 성공하지 못한 정책이었다. 그처럼 어려운 과제를 제대로 해결해내기 위해서는 관계 부처 및 당사자들의 충분한 의견 일치와 공동의 노력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각자 입장만을 내세우거나 눈에 보이는 결과에 급급하기 보다는 진정한 정상화란 무엇이며 실제 국민들이 바라는 정상화는 무엇일지에 관해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