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노들의 안타까운 외침 “우리 아버지를 찾아주세요”

국내법원 첫 친자확인 승소… 코피노 약 3만 명 추정

2014-07-29     김미진 기자

‘코피노(KOPINO)’란 한국인(Korean) 남성과 필리핀(Filipino)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 2세를 말한다. 정상적인 국제결혼을 통한 경우도 있으나 결혼 실패나 문화 부적응 등으로 인해 버려지는 아내와 아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데다 최근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코피노 아빠 찾기 소송’에서도 알 수 있듯 필리핀 현지에서 불법 성매매 등으로 인해 무책임하게 생겨나고 버려진 뒤 그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코피노들이 적지 않다. 자신들의 아버지를 ‘코리안 보이(Korean Boy)’라 부르는 그들은 왜 자신들의 친부(親父)를 직접 찾아 나서야만 했을까. 그리고 이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삶은 무엇일까.

코피노, 무관심 속에 방치된 아이들

 한국인 아버지에 의해 버림받는 코피노들
한국인 아버지를 두었지만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아이들, 바로 코피노와 그의 어머니들이 아버지를 직접 찾아 나서야 했던 이유다. 한국으로 떠난 아버지가 연락을 끊어버리면 일방적으로 버려질 수밖에 없는 그들은 그동안 영문도 모른 채 남편과 아버지 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최근 한 필리핀 가족이 국내 법원에 제기한 친부 확인 소송에서 한국인 친부와의 혈연관계를 직접 확인받았다. 지난 6월 22일 서울가정법원 가사2단독 권양희 판사는 필리핀에 사는 A군과 B군이 한국에 사는 C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A군과 B군은 C씨의 친생자(親生子)임을 인지한다”고 판결했다. 그동안 시민단체 등에서 이들의 친부를 찾아준 적은 더러 있었지만 현지 가족이 직접 소송을 제기해 이 같은 사실관계를 인정받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써 앞으로 코피노들의 아빠 찾기 소송이 계속 이어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친부를 찾고 싶어도 막막하기만 했던 코피노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열릴지 관련 단체 및 현지 가족들의 눈과 귀가 모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도 하다. 이번 판결에서 코피노 친부로 지목된 사업가 C씨는 이미 한국에서 결혼해 자녀까지 둔 상태로 알려졌다. 사업차 필리핀 현지에 건너가 회사를 운영하던 C씨는 현지 여성과 함께 동거생활중 A군과 B군을 같이 기르다가 돌연 한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게 10년 전 일이다. 이후 D씨는 C씨의 이름과 사진만 손에 들고 한국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를 통해 만난 변호사에게 도움을 받아 지난 2012년 12월 소송을 제기했다. D씨는 C씨의 인적사항을 어렵게 특정해 두 아들과 함께 유전자 검사를 맡겼다. 검사를 계속 거부하던 C씨에게 법원은 강제수검 명령을 내리고 과태료를 고지하는 등 여러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객관적인 혈연관계가 드러났고, 1년 6개월여 만에 이 같은 판결이 이루어졌다. C씨는 그동안 자신의 “국내 가정이 파괴될 수 있다”는 이유로 유전자 검사에 완강히 버틴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어머니 D씨는 이번 판결이 최종 확정되고 나면 C씨에게 양육비 등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들 가족을 무료 변론한 조동식 변호사는 “단순히 금전 취득을 위해 소송을 낸 것은 아니다”라며 “D씨는 A군과 B군을 C씨 호적에 편입시켜 한국에서 키우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필리핀 현지에는 이들 가족처럼 ‘한국인 아버지’에게 무분별하게 버림받은 코피노 가족이 적지 않다. 이들 중 상당수가 해외 성매매로 인한 결과임이 이미 드러났고, C씨처럼 사업가나 유학생이 현지여성과 오랜 동거 후 무책임하게 떠나는 사례도 많다. 어느 쪽이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한국인 아버지, 혹은 아버지라 이름 부르기도 부끄러운 일부 한국 남성들의 삐뚤어진 자화상을 그대로 반영한 현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국내 가정법원에서는 D씨 가족과 유사한 소송이 서너 건 진행중이지만, 소송한다고 해서 100% 승소를 장담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이들 중 패소하는 사례도 있는 데다 양육비 절반을 수임료로 받는 조건을 내거는 로펌들이 현지 가족들에 접근하는 사례도 늘고 있어 코피노 당사자들에게는 상황이 그리 밝다고 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이들로서는 한국 측 남성과 연락할 길이 완전히 차단된 이후 ‘마지막 수단’으로서 소송을 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코피노 양육비 소송을 돕고 있는 현지 교민 구모 씨는 “코피노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길은 한 달에 단돈 5만 원이라도 실제 양육에 필요한 돈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에게는 그만큼 절실한 삶인 것이다. 하지만 D씨의 경우처럼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넘어 ‘아버지가 있는 삶’을 코피노 아이들에게 안겨주고 싶은 바람이 바로 필리핀 어머니들이 가장 원하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무관심과 무책임 뒤로 숨기 바쁜 한국 남성들에게서 받은 상처만이 적나라할 뿐이다. 아빠를 찾아 나선 코피노 가족 중 실제 친부와 연락이 닿는 경우는 겨우 열에 한 가족 정도다. 코피노 친부 중 절반 이상이 이미 국내에 가정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일부에서는 또 하나의 가정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로 지난해 8월경 자신의 아내와 두 자녀에게 필리핀 여성과 코피노 자녀의 존재를 고백했던 한 자영업자 남성은 가족 모두에게 ‘변태’ 취급을 받으며 이혼당할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피노는 그 태생부터가 붕괴된 가정, 혹은 가정조차 이루지 못한 환경에서 시작하기 일쑤다. 이들에게 제대로 된 가족을 찾아주어야 할 책임은 당연히 그 당사자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그러한 의무를 스스로 지지 않아 결국 법원이 직접 나서 그 책임을 강제적으로 묻는 상황까지 오고야 말았다. 이번 판결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그래서다.

코피노 3만 명? 정확한 인원 파악 안 돼

코피노 현지 가정 실태
국내에서는 2~3년 전부터 코피노에 대한 다큐멘터리 방송이 제작되는 등 본격적으로 코피노 실태와 관련한 사회적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당시 대사관 추정 약 4천 명~1만 명 정도로 알려졌던 코피노 숫자는 1~2년 후 약 2만 명 정도로 발표되기도 했지만 정확한 숫자가 집계된 적은 없다. 현지 활동가들은 코피노 수를 약 1만 명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코피노협회 한문기 협회장은 <한수진의 SBS 전망대>를 통해 “정확하고 공신력 있는 한국 기관이나 정부기관 같은 단체에서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며 “필리핀 현지 사정 등의 문제로 조사가 쉽지만은 않다”고 정확한 인원 파악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코피노 발생 자체가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이 드물다 보니 “대부분 저소득층과 기초생활수급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아버지 없이 미혼모가 혼자 아이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것은 필리핀보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나 경제 사정이 조금 더 나은 한국에서조차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협회장은 “지금껏 정부에서 코피노에 대한 어떠한 예산과 지원방침 등의 시스템도 없었다”며 “최소한 공신력 있는 조사기관에서 정확하게 인원을 조사하고 주소를 파악하는 일이 첫 번째”라고 주장했다. 정확한 자료 조사 이후 그에 따른 대책을 세우든지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동성착취반대협회(ECPAT) 자료를 인용해 약 3만 명 정도로 코피노 숫자를 보도하기도 했다. 1990년 설립된 엑팟(ECPATㆍEnd Child Prostitution, Child Pornography and Trafficking of Children for Sexual Purposes)은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아동 성매매 관광을 근절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는 시민단체 중 하나다. 2005년 ECPAT 국제회의에 참석했던 필리핀 대표는 ‘한국 유학생들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나 버려진 아이들이 많다’며 실태 조사를 부탁하기도 했다. 2006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친 실태 조사 결과는 매우 심각했다. 유학 생활 도중 현지 여성들과 사귀거나 동거 후 유학을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무책임한 일부 유학생은 물론이고 현지에서 이루어지는 성매매 실태 등 피해 여성들의 현실은 생각보다 처참했다. “가난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돈 많은 자들의 성 도구가 되는 것”이라고 고백한 한 여성은 “그들은 마치 우리를 자신들 소유물인 것처럼 장난감, 물건 대하듯 했다”고 털어놓았다.

삐뚤어진 한국 남성의 성(性) 문화 실태

필리핀 낮 시간 유흥가, 한국어로 쓰여진 간판
필리핀 앙헬레스(Angeles)는 세계 각국의 남성들이 모여드는 ‘밤 문화’ 관광지로 유명하다. 대규모 성매매 집결지로 불리는 이곳은 생계를 이어가기 힘든 가난하고 어린 필리핀 여성들이 무방비로 유입돼 무분별한 착취를 당하기도 하는 곳이다. 한국코피노협회 한문기 협회장은 “필리핀 한국인 관광객이 연간 100만 명을 넘었다”며 “골프와 성매매를 함께 판매하는 상품이 음성적으로 늘어나면서 코피노 수도 점차 증가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음성적 성(性) 문화는 다른 국가에 비해 ‘그룹’으로 몰려다니며 단체 성매매를 일삼는 한국 남성들의 특성을 더욱 부추긴다. 혼자라면 가지 않을 남성도 접대든 회식이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여럿에 휩쓸려 동참하기도 한다. 현지 여성 역시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다르게 한국 남자들은 그룹으로 몰려다닌다”고 전했다. 게다가 한국 남성이 성매매 시 피임 기구 사용을 기피하는 잘못된 관습 등이 더해져 한국인과 필리핀 여성 간의 ‘코피노’는 더욱 쉽게 생겨난다. 성매매 장소 또한 국내가 아닌 외국이다 보니 ‘떠나면 그뿐’이라는 무책임한 인식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다른 국적 남성들도 현지 여성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기도 하지만, 소액이라도 매달 양육비를 보 내 ‘책임’을 지려 하는 경우가 많다면 한국 남성들은 대부분 도망가거나 숨기 바쁘다. 유독 ‘코피노’, 즉 ‘한국 아버지’들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이유이기도 하다. 한 여성은 “처음에는 마치 여자친구라도 된 것처럼 잘해줬다”며 “하지만 호텔 안에 들어가니 나를 동물 취급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당시 그녀는 겨우 17세였다. 한국 남성들은 이처럼 해외 성매매에서도 ‘어린’ 여성을 선호하는 것으로 자료에서 드러났다. 성 착취 피해 여성 및 지원단체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벌인 “한국남성의 해외 성 착취 실태 조사 보고서(Korean
 
Men’s Sexual exploitation in Philippines)”를 보면 “한국남자들은 처녀성에 대해 집착한다. 처녀한테는 50,000 페소를 내겠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성관계할 때 피가 나오지 않으면 화를 낸다”라는 진술도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실제로 필리핀 현지에는 마치 한국 나이트클럽 골목을 연상하게 하듯 ‘아리랑’이라는 한국어로 된 간판을 내걸고 버젓이 업소를 운영하기도 한다. 이 같은 한국 남성의 성매매 실태는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성매매 합법화’ 주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여성가족부 보고에 따르면 2010년 전체 성매매 거래액은 6조6천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영화산업 매출인 1조2천억 원의 5배 이상에 해당한다.

“좋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아빠라는 존재 없이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
“그는 필리핀에서 일하던 한국 남자였다. 내가 일하던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오면서 서로 알게 됐고, 임신 후 회사로 연락했으나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코피노 자녀를 둔 한 필리핀 여성은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아이는 출생 등록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필리핀에서는 대부분 낙태를 금기시하며, 어떤 사연으로든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축복이고 그 순간만큼은 함께 기쁨을 나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안 그래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던 그들의 삶에 가족이 한 명 더 늘어난다는 사실은 곧 ‘가난’이 더해진다는 의미다. 관련 단체 관계자는 “코피노 엄마들 중 90%가 다시 성매매를 한다. 돈벌이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또다시 성 착취라는 악순환만을 거듭할 뿐이다. 코피노 아이들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동시에 아버지의 부재(不在)라는 이중고를 겪는다. 결국 한국 남성들은 필리핀 여성뿐 아니라 자신의 자녀마저도 착취의 대상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모든’ 한국인 남성들이 한국으로 도망가버리는 것은 아니다. 일부 극소수지만 현지에 남아 다문화 가정을 이루며 잘 사는 가족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한국에 가정을 두고 잠깐 현지에 나와 있던 남성들은 대부분 본래 가정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처음에는 양육 의지가 있더라도,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기가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구나 연락도 없이 어느 날 불현듯 떠나버리기 일쑤니 필리핀 여성들로서는 이처럼 무책임한 남성에 대한 분노로 양육비라는 말을 꺼내기도 싫을 만큼 체념에 빠져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현지 관계자는 전했다. 그럼에도 코피노 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한 D씨의 경우처럼 양육비 자체보다도 ‘아이들의 아버지임을 인정하고, 한 번이라도 만나줬으면’ 하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다. 2008년경 한국 남성의 아이를 가진 당시 19세 소녀는 6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땐 그를 사랑했지만 나는 너무 어렸다. 그는 나의 첫 남자친구였고, 그와 함께한 내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고 이야기했다. “5년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5년 뒤에는 내가 어디에 있든 날 찾아오겠다고, 꼭 돌아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꼬박 6년이 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필리핀 내 코피노 지원단체의 도움으로 겨우 수소문해 찾아낸 남성은 “미안하다”는 내용과 함께 여전히 자신의 처지만을 설명하는 간단한 이메일 한 장만을 보내왔다고 한다. 그녀가 아이에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아빠는 멀리 일하러 가셨다, 언젠간 오실 거다”라는 말밖에 없었다.

아빠 찾아 삼만 리

그들은 사진 한 장만을 들고 한국으로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이 같은 코피노들의 아버지를 찾아주기 위해서 최근 진행중인 소송 외에도 ‘아빠 찾기 캠페인’을 통한 코피노 인식 변화를 위한 노력이 활발하다. 법무법인 세종 공익센터는 사단법인 탁틴내일(ECPAT 한국지부)과 함께 코피노 아버지를 찾아주는 사업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코피노와 아버지 사이에 양육비 지급 약정서를 써주는 일을 맡아 6건을 검토하고 그중 1건을 성사시켰다. 탁틴내일 이현숙 상임대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한국 남성들의 인식 변화를 통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해외 성 착취에 대한 경각심을 제고하고 코피노에 대한 책임을 되돌아봄으로써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2013년 창립한 한국코피노협회 역시 코피노 현지 가정을 방문하고 어린이재단을 정기 방문하는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협회 창립에 앞서 2012년 열린무지개 코피노센터를 개원하기도 하며 한국계 필리핀 2세인 코피노들의 정당한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ECPAT이 내놓은 자료에서도 보듯이 코피노 아동을 방치하는 것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도 근본적으로 위배되는 사안이다. 그동안 ECPAT 등 여러 국제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필리핀(1992), 대만(1995), 스리랑카(1995), 태국(1996) 등의 국가에서 아동 성 착취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거나 개정되기도 했으며 캄보디아 시민단체인 ‘소말리맘 재단(Somaly Mam Foundation)’은 성매매 피해자를 구출하고 의식주, 의료 지원, 상담 등의 정신적 지원을 제공하기도 했다. 또한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시민단체인 ‘아동들을 위한 조치(APLEㆍAction Pour Les Enfants)’는 아동 성범죄자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고 아동 성 착취를 예방하는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그 밖에도 국제구제 및 개발기구인 월드비전은 2004년부터 미 국무부, 미 건강ㆍ봉사부, 이민ㆍ관세집행국과 함께 미국, 캄보디아, 태국, 코스타리카, 멕시코, 브라질 등지에서 아동 성매매 방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지난 2005년 ‘한국남성의 아동, 청소년대상 해외 성매매 관광 실태 및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필리핀에서 일어나는 성매매 실상을 폭로하기도 했다. 여성가족위원회 남윤인순 국회의원은 ‘성 착취 목적의 인신매매 실태 및 인신매매 등 피해자 보호법 제정의 필요성’ 보고서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관련 문제를 이 같은 오늘날의 현실과 연관 지어 한국을 ‘(일본에 의한)성 착취 피해국’이자 ‘(필리핀에 대한)가해국가’로 규정하고 관련 제도 정비를 주장했다. 또한 코피노 아빠 찾기 사업 등 이미 벌어진 현실에 대한 지원 대책도 시급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국가들의 대응은 참고할 만하다. 일본 역시 필리핀과 일본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피노(Japino)’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다. 일본은 1993년 변호사지원단을 구성해 이름과 전화번호밖에 없는 자피노 아버지를 찾을 수 있도록 인지 청구를 돕기 시작했고, 필리핀 싱글맘들의 생계를 지원했다. 또한 원하는 아이들에게는 일본 국적을 주고 교육 기회도 제공했다. 그리하여 매년 수백 명의 필리핀-일본인 2세들이 일본 정부와 기업을 통해 일본 기업에 취업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 위안부의 책임을 국가 차원에서 묻듯, 코피노 아버지들이 책임을 외면한다면 이 같은 정부 차원의 지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그러한 제도적 지원이 이루어진다 해도 못다 이룬 가정과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다 채워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교육과 건강한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책임은 그들 아버지를 ‘집단적’으로 양산해내고 그러한 환경을 오래도록 묵인한 국가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고 코피노들을 버린 당사자들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코피노들에게는 따뜻한 ‘아빠’ 같은 존재가 되어줄 정성어린 시선과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NP>

* 자료 및 사진 제공
한국코피노협회 (http://kopino.asia/)
탁틴내일 - ECPAT 한국지부 (http://www.tactee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