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시장 전면 개방, 이후 향방(向方)은

국내 쌀 시장 관세화 예정… 300~500% 관세 책정 예상

2014-08-28     김미진 기자

내년부터 국내 쌀 시장이 전면 개방된다. 개방 초기에는 관세율이 300~500%로 책정될 예정이다. 이로써 외국 수출업자들은 우리나라가 부과하는 관세만 내고 국내 시장에서 무제한으로 쌀을 판매할 수 있다. 만일 이 같은 수입 물량이 과도해질 경우 한시적으로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으로서 그동안 미뤄온 관세화가 드디어 시행됐지만, 그에 따른 진통이 만만찮을 예정이다. 정부는 쌀 시장 개방과 함께 농가 지원을 위한 쌀 산업 발전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지만, 벌써 농가의 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정부는 우선 국회 보고를 거친 뒤 9월 말까지 양허표 수정안을 WTO에 통보하고 올해 말까지 국내 법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관세화, 올해 말까지 법령 개정

 
농림축산식품부 이동필 장관은 지난 7월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부터 쌀을 관세화하기로 결정했다”며 쌀 시장 개방을 공식 선언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 처음으로 쌀 시장을 외국에 전면 개방하게 됐다. 이동필 장관은 “쌀 관세화 유예를 재연장해도 그 역시 한시적”이라며 “일정 기간 이후에는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으로서 관세화를 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9월 말까지 관세율을 통보할 예정이며, 관세율은 300~500%로 정해질 방침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쌀 시장 개방으로 내년부터 300~500%의 관세가 매겨진 수입 쌀이 국내 시장에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게 됐다. 현재 국내산 쌀 가격은 작년 평균가 기준 1kg당 2,189원 수준이다. 이는 미국산과 비교하면 2.8배, 중국산과 비교하면 2.1배 비싼 수준이다. 하지만 수입 쌀에 관세 300%가 붙을 경우 오히려 국내산 가격보다 가격이 높아져 가격 경쟁력 부분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농식품부 측의 주장이다. 만약 관세가 400% 이상 책정될 경우 중국산 쌀은 1kg당 5,300원대까지 가격이 오른다. 이 장관은 이와 관련해 “WTO 협정에 합치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높은 관세율을 설정해 쌀 산업을 보호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서 “외국 쌀 수입이 급증하면 특별긴급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특별긴급관세(SSG)란 수입 쌀 가격이 급락하거나 수입량이 급격하게 늘어날 경우 관세율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높은 수준의 추가 관세를 수입 쌀에 부과하는 제도를 말한다. 만약 쌀 관세율이 500%인 상황에서 수입 쌀 물량이 급증하면 167%의 특별긴급관세가 붙어 총 관세는 667%가 된다. WTO는 시장 개방 대상인 모든 농산물에 대해 이 같은 특별긴급관세를 허용하고 있다. 이 장관은 또한 “정부가 그동안 체결한 모든 자유무역협정(FTA)은 쌀을 양허 대상에서 제외해왔다”며 “현재 추진중이거나 예정된 모든 FTA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시 쌀을 양허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쌀 시장 개방에 따른 농가 지원을 위해 “쌀 농가의 생산기반을 유지하고 소득안전장치를 보완하여 전업농을 지속적으로 육성해 경쟁력을 높이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대비책을 밝히기도 했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쌀 관세화와 관련한 국내 법령을 개정하기로 하고 9월 말까지 양허표 수정안을 통보하기로 했다. 이 같은 결정과 관련해 이 장관은 “국회와 농업계 의견을 추가로 수렴한 뒤 세부안을 확정하겠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한 뒤 “국내 쌀 소비자들도 당분간은 종전과 비슷한 가격에 쌀을 사 먹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쌀 시장 개방 문제는 언제나 농민들에게는 ‘뜨거운 화두’였다. 이미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정부가 제대로 협상을 해보지도 않고 성급하게 관세화를 결정 내렸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애초 농민단체가 요구했던 쌀 산업 대책은 전혀 담기지 않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농민 반발이 거셀 것이라는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농가 설득을 위해 이렇다 할 대책이나 제안을 내놓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일부 쌀 시장 개방을 조건부 찬성했던 농민단체들마저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내보였다. 정부가 내놓은 고율의 쌀 관세율은 이 같은 상황에서 농민들과 국내 여론을 돌리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나오는 실정이다.

‘실질 관세율’ 최소 400%는 넘겨야 안심

 
관세화를 피할 수 없다면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얼마나 높은 관세율이 책정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국내산 쌀 가격은 미국산의 약 3배 수준이었다. 단순히 계산하면 관세율 300% 정도를 적용할 경우 국내산과 미국산 쌀 가격이 비슷해진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계산에 따라 ‘최소 400% 이상’의 관세율이 책정돼야만 국내산 쌀이 시장 개방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쌀 관세율은 우리 정부가 임의로 정할 수 없다.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 협정문 부속서에는 ‘쌀 관세율을 계산하는 방법’을 따로 규정해두고 있다. 이는 1986~1988년 사이 국내산 쌀 가격과 국제 가격의 차이로 정해지는데, 국제 가격은 ‘어느 나라’를 기준으로 할 것인지, ‘어느 해’ 자료를 사용할 것인지에 따라 그 결과가 매우 다르게 산출되기 때문에 논란이 뒤따른다. 정부로서는 최대한 높은 관세율을 끌어내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우리 정부의 의지대로 관세율이 정해질지는 미지수다. 한국 정부가 관세율을 결정해 WTO에 통보하면, 이후 회원국들과 협상을 거치게 된다. 이 같은 협상 과정에서 관세율이 낮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미국만 해도 당장 ‘200% 이하’로 쌀 관세율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WTO 규정상 관세율에서 10%가 깎이게 되는 문제점도 있다. 만약 400%로 관세율이 정해지더라도 실제 부과할 수 있는 관세율은 360%라는 얘기다. 따라서 정부가 주장하는 ‘관세율 400%’가 실질적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관세율 445% 정도는 되어야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다. 현재 농식품부나 산업부 관계자들은 대체로 400~500% 관세율을 적당한 선으로 보고 있다. 앞서 쌀 관세화를 결정했던 일본과 대만의 경우 각각 1,000%, 560%라는 높은 관세율이 매겨진 바 있다. 이같이 쌀 관세화가 결정되면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도 쌀이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정부는 FTA나 TPP에서만큼은 쌀 관세율을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미 쌀을 ‘초민간품목군’에 넣어두는 것만으로도 한국으로서는 협상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동시에 다른 품목들의 개방 역시 불가피해진다. 대부분 통상협상에서 핵심 쟁점이 되어온 쌀을 보호하려면 그 정도에 버금가는 대가(代價)를 협상국에 내어줄 수밖에 없다. 일본은 최근 TPP 협상 진행 도중 미국으로부터 쌀 관세율 인하를 요구받으며 곤란한 입장에 놓이기도 했다. 미국은 TPP 가입을 놓고 일본의 쌀 관세율을 걸고넘어졌고, 한국처럼 ‘쌀 관세율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일본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한국 정부 역시 비슷한 상황에 말려들지 않을 도리가 없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쌀 시장 개방 대비, 구체적 대책 마련됐나
농식품부는 올 초 규제개혁의 일환으로 ‘농지규제 유연화’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농지규제 유연화 방안은 농업진흥구역에서 건축이 가능한 시설의 종류를 확대하자는 것으로, 2020년 정부의 식량자급률 목표치 60%를 달성하려면 175만2,000㏊에 이르는 농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농지 면적은 이미 171만㏊ 아래로 추락한 상태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박형대 정책위원장은 “쌀 시장 개방을 선언한 상황에서 식량정책을 어떻게 실효성 있게 가져갈지에 대한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며 “식량 자급률 목표치를 어떻게 달성할지, 경지를 어떻게 유지할지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손재범 사무총장 역시 “농민단체들은 농업 직불금 단가를 높이고, 농업 전기료 인하, 현재 3%대 수준인 농업 정책금리를 1%로 낮추는 등의 대책을 요구했지만 반영이 되지 않았다”며 “앞으로 관련 요구를 계속 촉구하고 관철하겠다, 국회를 통해서도 압박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동필 장관은 “쌀 산업이 위축되지 않도록 전업농과 50㏊ 이상 들녘 경영체 육성 등 규모화와 조직화를 계속하겠다”와 같은 기본 대책을 계속해서 나열했으나, 전문가들은 ‘구체적’ 정책의 뒷받침 없이 이러한 기본적인 대책만으로는 쌀 문제와 농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대부분 지적한다. 쌀 자급률 하락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농지전용을 막기 위한 대책도 전혀 없다. 각 농민단체들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식품부 내부에서는 쌀 산업 대책을 마련했지만 예산권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 눈치를 보느라 발표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FTA와 TPP 등의 양허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농식품부의 방침에 대해서도 통상 주무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아무런 확답을 하지 않았다. 산업부 한진현 차관이 “FTA, TPP에서 쌀에 대해서는 양허 제외하도록 ‘최대한’ 협상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쌀은 양허 제외한다는 ‘확실한’ 방침을 가지고 있다”는 농식품부 측의 확정적 발언과는 다소 표현의 차이가 있다. 이처럼 각 부처가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 속에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리 없다는 불신이 퍼져나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각계 입장 따라 찬반 엇갈려
정부가 쌀 시장 개방을 선언하자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및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등 각 농민 단체들은 이 같은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전농은 쌀 시장 개방을 “식량 주권을 파는 행위”라 규정하며 강력히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발표는 농민 단체의 요구를 모두 무시한 것”이라 주장하며 “정부가 관세율을 공개하지 않은 데다 고율관세 유지 대책 역시 언제든 바뀔 여지가 있어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서 “처음에는 높은 관세로 수입 쌀 진입을 막을 수 있지만 관세 감축과 철폐 압력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 역시 내놓았다. 전농 김영호 의장과 전여농 강다복 의장 등 단체 관계자 4명은 이 같은 기자회견 이후 항의성 삭발을 하며 투쟁 의지를 이어갔다. 이 같은 반대 의견 내에서도 농민단체들의 의견은 다소 엇갈렸다. 소농 중심 단체들은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강력히 반발한 반면, 대농 중심 단체들은 “정부의 결정을 이해한다”면서도 “보완적인 대책 마련에 힘써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또한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는 “쌀 관세화의 불가피성을 이해한다”면서 “추가 유예 협상에 나서면 의무수입물량이 늘어 쌀 시장 추가개방과 다름없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더불어 이들은 “향후 환율, 국제·국내 곡물가 등에 따라 쌀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고, 국내 쌀 농가소득은 하락 추세이기 때문에 선결 조건과 선 대책을 약속하라”며 촉구했다. 이 같은 선결 조건으로 한농연은 ▲ 쌀 고율관세 최대치 확보 ▲ 통상협상에서 쌀 양허 제외 대국민 약속 ▲ 기존 의무수입물량을 대북지원과 해외원조에 활용할 수 있는 용도 변경 권리 확보 등을 내걸었다. 정치권 내에서도 찬반이 갈렸다. 새정치민주연합은 “9월 국회에서 쌀 시장 전면개방 문제를 재검토할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농민과 국민들에게 한 번 설명도 없이 독단적으로 쌀 시장 개방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정부의 일방적 독주”라며 이는 “박근혜 정부의 탁상행정”이라는 규탄을 서슴지 않았다. 유기홍 수석대변인 역시 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도대체 몇 %의 관세율을 수입 쌀에 부과하겠다는 것인지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며 “박근혜정부의 ‘불통 농정’이 농민을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며 비판했다. 새정치연합은 여야와 정부, 농민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쌀 관세화 논의를 위한 4자 협의체’ 구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맞서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시장 개방을 계속 미룰 경우 의무수입물량이 늘어나 재고와 각종 재정적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쌀 관세화는 매우 어려운 결정이지만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불가피한 대안”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농해수위 간사이기도 한 안효대 의원 역시 “쌀 시장 개방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오히려 늦은 것”이라며 “진작 추진했어야 하는데 추진이 늦어져 피해를 키운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찬반 논란은 당분간 팽팽히 대립할 예정이다. 쌀 시장 개방을 찬성하는 입장은 ‘더 이상 관세화 유예 자체가 불가능하고, 설령 유예할 수 있다 해도 쌀 수입물량이 늘어나 불리하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반대 측은 ‘쌀 관세화는 충분히 미룰 수 있으며, 의무수입물량(MMA)을 동결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반박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농민 설득 위한 노력 보여야
정부는 쌀 시장 개방과 함께 성난 농가를 달래기 위한 ‘당근’책을 내놨다. 쌀산업발전대책 수립과 수입보험제도 도입 등이 그것이다. 이번 쌀 시장 개방을 계기로 쌀 농가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포석도 깔아 놓는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쌀산업발전대책의 주요 방향은 ▲ 안정적 생산 기반 유지 ▲ 농가 소득 안정 ▲ 경쟁력 제고 ▲ 국산 쌀과 수입 쌀의 혼합 유통 금지 등의 부정 유통 방지 등이다. 정부는 쌀 산업의 기반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우량 농지를 보전하고 기반 시설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생산 기반을 유지 강화한다는 계획으로 국회와 농업계 의견을 수렴해 세부 내용을 확정할 예정이다. 또한 벼 재배 면적이 매년 1.7%씩 감소하는 상황에서 시장 개방으로 인해 쌀 산업이 위축되지 않도록 소비와 수출을 촉진하고 가공 산업을 육성해 수요 기반을 넓힐 계획이다. 더불어 쌀값 하락과 농가 소득 감소에 대비한 소득안전장치도 보완하기로 했다. 쌀 직불금 제도를 보완하고 쌀 재해보험 보장 수준을 현실화하는 등의 제도 개선과 함께 이모작을 확대해 곡물과 식량 자급률을 제고한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는 ‘이모작 논 10만㏊가 늘어날 경우 곡물 자급률이 2.5% 상승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다른 대안으로 수입보험제도도 도입이 논의됐다. 수입보험제도란 농가 수입이 일정 기준에 못 미칠 경우 정부와 농가가 공동으로 적립한 기금 중 일부를 농가에 지급하는 제도다. 현재의 직불제처럼 가격 차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보전하거나 수확량 증감에 따른 수입 감소를 보전해주는 방안 등이 검토되는 중이다. 이와 함께 장기적으로 수입 쌀 경쟁에 대비해 국산 쌀의 경쟁력을 강화 방안을 제시하겠다는 목표다. 또한 쌀 전업농과 경작 규모 50㏊ 이상의 ‘들녘경영체’를 지속적으로 육성해 국내 쌀 산업을 규모화ㆍ조직화한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동시에 쌀 생산비 절감 기술을 개발하고 고품종 종자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 개발(R&D)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는 농민 단체의 우려를 반영해 국산 쌀과 수입 쌀의 혼합 판매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부정 유통에 따른 제재도 대폭 강화한다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성난 농심(農心)은 쉽게 달래지지 않고 있다. 전농 광주전남연맹 회원 300여 명은 지난 7월 21일 ‘한ㆍ중 FTA 중단ㆍ쌀 포기 정책 규탄’ 농민집회를 열고 쌀 시장 개방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쌀 관세화는 전면 개방의 시작점”이라며 “관세를 300~400% 적용할지라도 한ㆍ중 FTA 협상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을 통해 관세감축과 철폐의 압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주장하면서 정부의 개방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아스팔트 위에 모를 가져와 심으며 집회를 진행했다. 경남 지역 농민들도 반발하고 있다. 경남농민연대(준)는 경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쌀 개방 중단을 촉구하며 노숙 투쟁에 들어갔고, 앞서 전농 부산경남연맹 역시 창녕군 도천면의 한 논에서 1,300여㎡에 이르는 면적에 자라고 있던 벼를 트랙터로 갈아엎는 등 쌀 개방화를 결정한 정부를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이들은 “관세율을 공개하지 않은 채 쌀 수출국들이 수용한 수준의 관세율 먼저 언급하는 통상관료들을 믿을 수 없다”며 “임기도 보장되지 않은 장관이 FTA, TPP 협상을 거론하는 것부터가 신뢰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 지역을 관리하는 관계자는 “쌀 면적이 줄고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쌀 생산기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고품질 쌀 재배단과 반자동화시설, 공동방제 등 생산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지원하고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농민들은 “그동안 정부가 밀어붙인 수많은 농업정책으로 고통과 시련을 겪어 왔다”며 “쌀 개방에 따른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라”고 거듭 강조했다. 농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말뿐인 정책 약속보다는 ‘제대로 법적 장치’ 마련이다. 향후 WTO에서 만약 고율관세를 받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FTA나 TPP를 걱정하는 농민들의 걱정도 그런 연유에서다. 농업계로서는 과연 수출 중심 경제정책을 펴왔던 정부가 거기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농업을 보호하겠느냐며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쌀 산업 발전 대책을 통해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고율관세 부과라는 대전제가 깨져버리고 나면 그 같은 대책마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점을 반대쪽 지지자들은 지적한다. ‘계획’만을 거듭해서 약속하는 것이 아닌,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제도 시행과 최소한의 ‘주고받는’ 소통이 진행되는 대화를 농민들은 바라고 있다. 그것이 비록 결과적으로는 농민들의 마음을 충족해주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설득을 위한 노력의 움직임이라도 보여야 농가의 성난 민심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