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주의를 향해 피케티가 던지는 질문

전 세계가 주목하는 소득 불평등 시대의 ‘신(新)경제학’

2014-08-28     김미진 기자

국내에 아직 출간도 되기 전 학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 사이에서도 큰 화제를 몰고 있는 책이 있다. 전 세계 반응 역시 거의 신드롬이라 할 만큼 열광적이다. 이른바 ‘피케티 신드롬’은 지난해 프랑스에서 토마 피케티 교수가 펴낸 <21세기 자본>이 5개월 전 영문판으로 출간되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경제 분야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키며 오늘날 ‘소득 불평등’ 시대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돌아보게 한 피케티의 저서는 벌써 파이낸셜타임스(FT)와 매킨지가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경영서’로도 선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자본주의가 중심이 된 우리 사회에서 피케티가 제시하는 ‘新자본론’은 과연 무엇일까.

피케티에 주목하는 까닭은

 
갈수록 빈부 격차는 심해지고, 무일푼에서 부자가 될 확률은 서울 땅에서 혼자 힘으로 ‘내 집 마련’을 이루는 꿈만큼이나 힘들어졌다. 서울에서 내 집을 마련하려면 홀로 부지런히 돈을 모으기보다는 결국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도 있다. 부지런히 ‘일해서’ 돈을 모으는 속도보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더 앞서간다는 이야기다. 경제적으로 힘든 가정에서 자수성가하여 성공하는 사례도 분명 있지만, 부모가 부자라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쉽게 풍요로운 삶을 이어가는 삶과 비교하면 어딘가 불공평해 보이기도 하다. 부(富)가 세습된다는 의미는 결국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자녀 세대에 그대로 이어지는 것을 뜻하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저소득층이 비집고 들 틈은 더욱 사라져버리고 만다. 소득 양극화 문제는 비단 국내뿐 아니라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전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다. 소장경제학자이자 파리경제대학 교수인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자신이 펴낸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21st Century)>에서 이와 같은 사회에 화두를 던진다. 피케티 교수는 ‘소득(Income)’과 ‘부(Wealth)’의 불평등이 구조적으로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이는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범세계적 차원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누구나 알고 있던 문제를 본격적인 수면 위로 끌어올린 피케티는 그저 관념이나 이상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지난 18세기 이후 소득세와 관련해 20여 개 나라에 걸친 수많은 자료와 현상을 두고 거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논지를 이끌어간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불어로 출간된 책은 올해 4월 영문판이 출간되며 단숨에 전 세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세계 경제학자들은 무려 300여 년에 걸친 방대한 자료를 기초로 이 같은 문제를 분석해낸 사실에 우선 감탄하면서도 그 내용 역시 되짚어볼 만하다고 평가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프린스턴대 폴 크루그먼 교수는 피케티의 저서가 “경제학 흐름을 바꿔놓았다”며 극찬하며 “올해, 아니 향후 1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경제학 저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장담했다. 경제 칼럼니스트 스티븐 펄스타인 역시 “이론과 수학적 모형이 대세가 돼버린 최근 경제학계를 넘어서는 경제사의 쾌거”라는 평과 함께 “지적인 역작”이라는 찬사를 쏟아냈으며,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의 근간을 이루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잇는 연구라는 평도 나왔다. 물론 실질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에게는 피케티의 자본론 역시 불만족스럽다. 그만큼 피케티가 주장하는 이론은 하나의 ‘논쟁적’ 지점에 서 있다. 그럼에도 피케티 이론이 주목받는 이유는 갈수록 심해지는 자본주의 사회에 이러한 논의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데에 있다. 피케티 신드롬은 당장 피케티가 주장하는 이론을 전 세계가 따라야 한다거나 찬성해야 한다기보다 이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반대 의견도 내면서 다 같이 해결 방안을 논의해보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대립에서도 보듯 이 같은 문제는 어느 한 방향으로 쉽게 결론 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다양한 분야와 계층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면 나올수록 그 과정을 통해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고 이것이 하나의 출발선이 된다. “가장 완벽한 순간에 불평등이라는 주제를 다뤘다”는 평가와 함께 미(美) 재무장관 및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경제학자 로런스 서머스가 피케티를 “새롭게 지성계에 떠오른 록스타와도 같은 존재”라고 추켜세운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거의 1,000여 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 탓에 국내에는 아직 번역본이 출간되기 전임에도 경제학자는 물론 일반인까지도 ‘피케티 이론’에 이처럼 관심을 보이는 현상은 분명히 주목할 만하다. 이달 국내 번역서 출간을 앞둔 피케티 교수는 제15회 세계지식포럼 행사를 위해 오는 9월 19일 한국을 찾아 강연과 토론회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기도 하다.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을 통해 내놓은 구체적인 내용은 과연 무엇이기에 이토록 세계가 열광할까.

세습 자본주의, 두고만 볼 것인가

▲ 마르크스의 자본론
피케티 교수가 주장하는 바는 간단히 말해 “파이를 키워 나누자”라는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 주요 국가는 물론 국내에서도 자본 수익률(return to wealthㆍr)이 경제 성장률(growth rateㆍg)을 앞서면서 점차 소득과 부가 상위로 편중되고 있는 현상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주요 선진국에서 경제는 연간 1~1.15% 성장하는 데 반해 자본 수익률은 4~5%대에 이른다. ‘부(富)의 세습’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졌고, 상위 1%와 하위 1% 간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져가기만 할 뿐이다. 국내에서 2007~2012년 국세청에 신고된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 납부자 가운데 중복자를 제외한 100분위 자료를 보면, 상위 10%의 소득이 ‘1,634만 원’ 늘어날 때 반대로 하위 10%의 소득 증가액은 겨우 ‘18만 원’에 그칠 뿐이라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피케티는 이러한 현상이 ‘신분을 이동할 수 있는 사다리’조차 아예 없애버릴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양극화가 더욱 심해져 결국 ‘세습 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들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주장이 바로 증세다. 피케티는 국가 단위로 세금을 회피하는 부유층들을 상대로 범세계적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나온 개념이 부유세다. 피케티가 주장하는 ‘글로벌 부유세’란 고액 자산가들과 연 소득 50만~100만 달러 초과 소득자들에 한해 ‘최고 소득세율 80%’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피케티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예일대 로버트 실러 교수가 “피케티의 이론이 100%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와 같은 주장에는 동의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반면 하버드대 그레고리 맨큐 교수는 “단지 억측이나 추정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정부 보조금이나 복지 정책 등은 오히려 국민의 세후 소득을 증가시킨다”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는 홍익대 김종석 경영학과 교수가 “부유세는 국내 경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자본 투자의 효율성을 낮춰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고 주장하며 “모든 나라가 부유세를 부과할 때 한쪽만 부유세를 낮춰주면 큰 이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공조가 될지도 의문”이라고 평했다. 이와 반대로 KDI 국제정책대학원 유종일 교수는 “자본주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지금 당장 실현하기 어렵더라도 언젠가는 부유세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찬성하는 뜻을 밝히고 “도입 여부는 정치권 의지에 달린 것”이라 덧붙이기도 했다. 시민경제사회연구 홍헌호 소장 역시 “선진국에서는 전체 GDP의 약 10% 정도를 소득세로 내는 반면 우리는 3.5% 정도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만큼 세율을 높여 추가로 세금을 거둘 명분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홍 소장은 “외국에서는 부유세로 평균 5조 원 정도를 거둬들인다”며 “부유세를 도입하면 우리나라 역시 그와 비슷한 세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찬성하는 입장은 대부분 과도하게 높아져만 가는 자본 수익률 시대에 상속과 증여를 막기 위해 부유세 도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홍 소장의 설명대로 실제 외국에서는 스페인과 프랑스가 부유세를 도입한 바 있다. 지난 2011년 재정적자와 세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스페인은 한시적으로 부유세를 도입해 70만 유로 이상 재산 보유자들에게 세금을 거뒀고, 프랑스는 올 연말까지 연봉 100만 유로 이상을 지급받은 사람들에게서 그 초과분에 한해 50% 특별세를 내도록 결정해 일부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와 같은 증세 해결법 말고도 국민대 조원희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 사회의 경우 경제성장 이후 복지 확대와 같이 제대로 된 부의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에 따라 소득 불평등에 따른 부작용이 더욱 일상화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현 정부가 고용과 투자를 확대하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 50여 년간 압축 성장을 거듭해온 한국사회는 분명히 이 같은 문제점을 돌아볼 여유 없이 숨 가쁘게 달려온 것이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부작용은 클 수밖에 없고, 이와 관련한 논의도 매우 부족했다. 빛나는 ‘한강의 기적’ 뒤에는 그만큼 큰 빛에 드리운 ‘그림자’도 있기 마련이었다. 더구나 1998년 IMF와 2003년 카드 대란을 겪으며 한국은 2008년 전 세계가 금융위기를 맞기 전 이미 계층 간 불균형이 더욱 심해졌다. 모든 계층이 타격을 받는 시기에 저소득층이 겪는 피해 규모는 더욱 심각하다. 경제 성장의 그림자가 고달픈 서민들에게만 드리우는 현상은 분명히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어느새 부의 판가름은 ‘그 시대에 열심히 살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로 떠넘겨져 버렸고, 부를 가진 쪽은 무조건 ‘(그러한 부를)가질 자격이 충분하며, 그것을 나눌 의무는 없다’라는 이야기마저 슬며시 나오기도 했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부의 재편은 사실상 거의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한국사회의 빛과 그림자

 
피케티는 경제적 하위계층에서 상위계층으로 가는 통로를 ‘계층 간 이동 사다리’로 표현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그 사다리는 매우 좁은 통로임이 분명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제시한 자료를 보면 지난 8년간 저소득층이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으로 올라가는 확률은 끊임없이 하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2005~2006년 31.7%던 확률이 ▲ 2011~2012년에는 23.5%까지 떨어졌다. 이와 같은 한국의 소득 불평등 수준은 전 세계 3위에 해당한다. 지난 7월 노동연구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의 임금소득과 하위 10%의 임금소득 격차’ 수준은 4.85배로 전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은 사실이 드러났다. 고용노동부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를 조사한 바로 불평등 수준은 5.98배로 더욱 높아진다. 더구나 국내 고용 환경에서는 비정규직의 비중이 높은 탓에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 계층의 안정성을 더욱 위협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 1,824만 명 가운데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은 46.1%에 이른다. 게다가 이들 직업 대부분이 거의 서비스업에 편중돼있는 점도 문제다. 관리자급으로 올라가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서비스업은 일정한 연령대가 지나면 직장을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서울시립대 허창수 경영학과 교수는 “노동 시장이 점점 고소득 직업과 저소득 직업으로 양극화하고 있다”면서 “미국에서도 최근 생겨난 직업 가운데 70%가 호텔, 식당, 편의점 등 서비스업에 속하는 직업”이라고 덧붙였다. ‘80만 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20대들은 전체 연령대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고도 30대가 넘어서야 완전히 경제적으로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추세다. 물론 그마저도 일부에 한해서다. 결혼을 하고도 부모의 경제력에 의존하는 자식들이 적지 않고, 이는 최근 한국뿐 아니라 독립을 강조하는 미국사회에서 역시 마찬가지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동국대 김낙년 경제학과 교수는 “그래도 미국의 경우 계층 간 상향 이동의 길이 열려 있음을 뜻하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믿음이 긍정적으로 퍼져 있는 편”이라면서 “이와 같은 희망 없이 계층 간 상향 이동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고 생각되면 사회적으로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교육 기회 역시 도마 위에 오른다. 일반 대학은 물론 최근 들어 각종 법학ㆍ경영ㆍ의학 전문대학원이 늘어나면서 등록금도 ‘전문화’됐다. 지난해 전국 25개 로스쿨의 연간 등록금은 ‘평균 1,500만 원’을 넘는 수준이었다. 고소득자가 되기 위한 전문 교육을 받으려면 그만큼 이미 비싼 등록금을 치를 수 있는 ‘고소득 가정’에 속해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돼버리는 셈이다. 경희대 신동균 경제학과 교수는 “저소득층에게도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월급만으로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진 주거 비용과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세율 역시 계층 간 단절을 심화시킨다. 신 교수는 “부모 도움 없이 본인만의 노력으로 중산층 정도의 삶을 영위하려면 사회가 먼저 근로 소득자에게 손을 내밀고 배려해야 한다”며 “그렇다고 무작정 임금을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먼저 근로 동기를 부여하고 부동산 가격을 하향 안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맞벌이 부부가 모두 연봉 5천만 원을 받더라도 내 집 마련과 육아에 드는 비용을 걱정하며 사는 시대다. 동국대 경제학과에서 발표한 논문(김낙년ㆍ김종일 교수) 자료를 보면 국내 상위소득 5% 인구(만 20세 이상)가 벌어들이는 평균 연 소득은 이미 ‘1억 원’을 뛰어넘었다. 2002년 7천만 원대 수준에서 거의 40% 가까이 높아진 기록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연 8천7백만 원대 연봉이면 ‘상위 1%’에 가까스로 들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최소 1억 457만 원은 벌어야 상위 1%라는 명함을 내밀 수 있다. 전국 성인 남녀 81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국민들이 ‘이상적인 중산층 가구’라 생각하는 가계 경제 규모는 한 달 평균 ‘515만 원’의 봉급과 생활비 지출 341만 원 정도 수준으로 드러났다. 응답자 대부분이 여기에 못 미치는 경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추가 문답으로 확인됐다. 아마 이들 눈으로 바라본 실제 중산층에 해당하는 계층은 다시금 자신들의 소득이 중산층이라 할 정도로는 여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소득 45%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현상은 갈수록 심해져 간다. 이와 같은 ‘부(富) 집중도’ 현상에 관해 피케티 교수는 자본 수익률이 경제 성장률보다 높을 경우 자본의 집중도가 갈수록 심해져 결과적으로는 경제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부의 재분배는 그래서 필수라는 주장이다.

피케티 이론을 둘러싼 갑론을박(甲論乙駁)

 
물론 ‘피케티 해법’이 소득 불평등 시대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정답만은 아니다. 신드롬은 말 그대로 현상일 뿐 모두가 그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피케티 교수가 제시한 ‘글로벌 누진세’ 부분은 유명 학자들 사이에서도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증세가 “전혀 실효성이 없다”는 맹비난도 쏟아지는가 하면,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지에 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다. 하버드대 그레고리 맨큐 교수는 “자산소득과 노동소득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며 데이터 분석 자체를 비판하고 나서기도 했으며, 국내에서도 부유세 도입에 대해 전문가 18명 중 16명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들 주장은 기본적으로 부유세 자체가 실현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국제 공조는 더더욱 어려우므로 궁극적으로 피케티가 주장하는 ‘글로벌 협력’은 제대로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부유세와 달리 소득세는 찬성하는 의견도 많다. 물론 ‘최고세율 80%’를 주장하는 피케티의 주장에는 반대하더라도 부의 쏠림 현상을 해결하는 데 가장 현실적인 해법은 어쨌건 세금을 통해서라는 이야기다. 서울시립대 박기백 세무학과 교수는 “소득세율 80%는 너무 높다고 보지만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을 높이는 자체에는 찬성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일부 의견은 나뉜다. 현진권 자유경제원장은 “현재 국내 조세 정책은 이미 상위층이 상대적으로 높은 세금을 부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상위 10%가 전체 소득세의 68%, 법인세의 경우 상위 1%가 전체 86%를 부담하고 있는 한국에서 피케티 이론은 적용하기 힘든 모델”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한편,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기사를 통해 피케티 교수가 사용한 데이터 자체에 의문을 품기도 했다. FT는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데이터와 입맛에 맞는 데이터를 인용해 미국과 유럽 내 소득 불평등 문제를 1차 세계대전 이전 수준으로 확대하며 잘못된 결론에 도달했다”며 피케티 교수가 내세운 21세기 자본론의 오류를 지적하고 나섰다. 이에 피케티 교수는 4,400자에 이르는 공개서한을 통해 FT가 지적한 부분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논리정연한 반론을 펼치기도 했다. 피케티는 “최근 수십 년간 유럽과 미국에서 부의 불평등이 심화됐고, 미국 내 소득 불평등이 유럽보다 더욱 심각하다는 결론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각주에서도 이미 밝혔듯 역사적으로 각각 다른 시대의 수치를 인용했기 때문에 원본 데이터를 하나의 기준에 맞춰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한 뒤 “역사적 자료를 다소 수정한다고 해서 실질적 결론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NYT)가 추가 의견을 묻자 “유럽과 미국의 소득불평등 정도는 1차 세계대전 이전에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가 20세기 들어 약간 떨어졌지만, 다시 최근 30년간 급속도로 올랐다”며 자신의 견해를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혔다. 그만큼 본인이 내놓은 분석과 주장에 확신과 신념이 있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그렇기에 전 세계를 뒤흔들어놓을 만한 ‘新자본론’을 들고 나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피케티 주장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이 같은 사회적 논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계속’ 이끌어나가는 데에 있다. 피케티 덕분에 지금 경제학계에는 자본주의 사회에 관한 ‘전 세계적’ 토론의 장(場)이 열렸다. 폴 크루그먼 교수 말마따나 “부와 불평등에 관해 더 이상 그동안 우리가 해온 방식대로 (조심스럽게) 거론할 필요는 없어”진 것이다.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 찾아온 피케티 신드롬의 가치는 바로 이러한 기회 자체에 있을는지도 모른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