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비봉 遊山記
뉴스피플과 Salewa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북한산 만들기
2006-05-02 이승원 기자
山
산은 늘 위엄 있고 조용한 힘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 특별한 존재이다. 언제 어디서든 산은 보이는 곳에 있고 山은 자신을 보여준다. 산은 영원처럼 존재하면서 그 모든 희로애락을 겪으면서도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생명체가 생멸을 거듭하지만 산은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의 70% 정도가 산지이며, 북쪽과 동쪽이 높고 서쪽과 남쪽으로 갈수록 기울어지는 경동성 지형을 이룬다. 그 많은 산 중 높이 836m의 북한산은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삼각산三角山으로 더 잘 알려진 산이다. 이는 최고봉 백운대白雲臺와 그 동쪽의 인수봉仁壽峰, 남쪽의 만경대萬景臺:일명 국망봉의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삼봉산三峰山, 화산華山 또는 부아악負兒岳 등으로도 부른다. 중생대 말기에 지층에 파고 든 화강암이 지반의 상승과 침식작용으로 표면에 드러났다가 다시 풍화작용을 받아 험준한 바위산이 되었다. 서울 근교의 산 가운데 가장 높고, 산세가 웅장하여 예로부터 서울의 진산鎭山으로 불렸다. 최고봉인 백운대에 오르면 서울 시내와 근교가 한눈에 들어오고, 도봉산, 북악산, 남산, 관악산은 물론, 맑은 날에는 강화도, 영종도 등 황해의 섬들도 보인다. 그 밖에 노적봉(716m)·영봉(604m), 비봉碑峰(560m), 문수봉(716m), 보현봉(700m) 등 이름난 봉우리만도 40여 개나 된다. 등산 코스는 우이동, 정릉, 세검정, 구파발을 기점으로 하는 코스가 대표적이다. 진관내동·세검정·성북동·정릉·우이동 등의 여러 계곡도 볼 만하다. 능선에는 북한산성이 8㎞에 걸쳐 펼쳐지는데, 평균높이는 7m이며, 14개 성문 가운데 대남문大南門, 대서문大西門, 대성문大成門, 보국문輔國門, 용암문龍岩門 등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또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 터를 비롯해 유명한 북한 이궁지離宮址와 진관사, 문수암, 태고사, 원효암, 상운사祥雲寺, 도선사道詵寺, 승가사, 화계사 등 많은 사찰과 문화유적이 산재한다. 서울 외곽에 있어 연중 등산객과 일반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983년 도봉산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산 전체가 도시 지역으로 둘러싸여 생태적으로는 고립된 '섬'이지만, 도시지역에 대한 '녹색허파'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으며, 수도권 이천만 주민들의 자연휴식처로 크게 애용되고 있다. 수도권 어디에서도 접근이 용이한 교통 체계와 거대한 배후도시로 연평균 탐방객이 500만에 이르고 있어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
遊山
우리는 몇몇을 제외하곤 산에 대한 초보자였다. 목표인 비봉능선의 입구 진관사계곡에서부터 지레 겁을 먹고 탐방을 주저하였다. 아직 서늘함이 느껴지는 날씨도 한 원인이었다. '아름다운 산행'이라는 슬로건으로 많은 산님들의 동반자임을 자처하는 등산용품 전문브랜드 사레와salewa와 뉴스피플이 함께하는 <북한산을 아름답게> 캐치프레이즈 아래서 간단히 기념촬영을 마치고 북한산 탐방을 시작하였다. 산뜻한 등산복 차림으로 모인 우리는 북한산국립공원의 안전관리요원 서민수씨의 인솔로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탐방 시작 수 분만에 북한산 계곡의 아름다움에 눈길을 빼앗기고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계곡에는 아직 못다 이룬 꿈같은 하얀 얼음들이 쉬고 있었고, 탐방로 여기저기에서는 노랗거나 파란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코스는 가파름이 더해지고 발 디딤 또한 더뎌지기 시작했다. 앞선 사람은 손을 내밀어 주고 뒤에선 사람은 받치고 힘을 실어주었다.
산에 오름으로써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이어지고 산의 품을 느끼기 시작하는 듯 했다. 배낭 속의 든든한 음식들도 서로 나누며 웃으며 산을 오르다보니 향로봉과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북한산안전관리요원 서민수씨는 이제 조금만 더 오르면 된다. 지금껏 오른 만큼만 더 가면된다고 귀를 얇게 만들었지만, 오고가는 산님들의 말에 따르면 비봉탐방코스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휴식을 취한 후 천천히 탐방을 다시 시작했다. 나무는 더 울창하고 지난 가을 산을 가득 붉혔을 단풍들이 아직 길을 덮고 있었다. 북한산이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라 크고 웅장한 바위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니 바위 위에서 산적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바위와 나무와 그 새로 보이는 봉우리들의 오묘한 조화로 산색山色의 어둡고 밝음과 하늘의 흐림과 맑음의 아름다움 또한 이번 탐방에서 많이 알 수 있었다. 탐방을 시작한 지 두 어시간이 지났을까? 오르고 올라도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던 비봉의 능선에 드디어 오를 수 있었다. 비봉능선에는 많은 산님들이 사모바위와 비봉을 오가며 최고의 만찬을 즐기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북한산안전관리요원 서민수씨는 아직 능선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을 챙기기 위해 선한 얼굴에 표정하나 일그러짐 없이 몇 번이고 탐방로를 오르내렸다.
이제 산악가이드 생활 5개월에 접어든 그는 평온하고 온유한 산의 얼굴 자체였다. 그는 비단 우리 일행 때문이 아니더라도 항시 산을 오르내리며 산불예방, 재난구조 등의 임무를 맡고 있다고 했다. 이런 겸손한 산사나이들이 있음으로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산을 배우고 즐길 수 있음이 아닐까. 우리 일행이 목표로 삼은 비봉은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인 북한산 신라진흥왕 순수비로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가 있던 봉이다. 지금은 훼손을 우려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으며 터에는 모조품이 세워져 있다. 최종목표인 비봉의 정상은 지금까지 올라왔던 탐방로와는 완전히 달랐다. 하나의 화강암 바위로 까마득한 절벽위에 떠 있는 하늘위의 땅같았다. 조심스런 발걸음과 손길로 바위를 껴안다시피 하며 결국 비봉의 정상에 우뚝 섰다. 차가운 바람이 몸을 날릴 듯 세차게 불었다. 산을 정복했다는 범인의 마음이 앞섰으나, 박영석 대장의 말처럼 산의 겸손을 배우기 위해 산을 오른 우리는 서로를 보며 한바탕 웃으며 다시 산을 내려가기 위해 몸을 바짝 낮추기 시작했다. 비봉은 오르기보다 내려가기가 더 어렵고 무서웠다.
下山
비봉의 능선에 있는 사모바위는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남자는 전쟁터로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사랑하는 연인의 반가운 얼굴 대신 그녀가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전쟁이 끝나도 그녀의 소식은 없고, 그는 당시 포로에서 풀려났지만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여인들이 모여 살던 북한산 자락을 떠돌며 그녀를 찾았지만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결국 그는 북한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언제고 돌아올 그녀를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말이 없는 바위는 정말 슬프게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사모바위 앞에는 넓은 터가 있어 많은 산님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초보산행자들인 우리는 이미 물도 떨어지고 배낭 속의 음식도 죄다 동이나 그 광경을 사모바위처럼 쳐다보고만 있었다. 비봉과 사모바위를 뒤로 한 채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산을 오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시원하게 느껴졌다.
산에 오를 때는 겸손을 배울 수 있었고, 내려갈 때는 쌕쌕이며 산을 오르느라 놓쳐버린 여러 풍경들이 발길을 잡았다. 산색을 찬찬히 살피며 조심스런 발걸음을 내디디니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는 풍경들이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새로운 산수화들을 액자에 씌우는 것 같았다. 어느 자리든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조심하라고 했던가. 수기水氣가 나타나기 시작해 바위와 계곡이 비에 젖은 듯 촉촉해 내림길이 많이 더뎌졌다. 그리고 오를 때 미처 보지 못했던 쓰레기들이 눈에 띄어 우리는 미리 준비해갔던 비닐봉지에 쓰레기를 주어담으며 내려왔다. 아직은 산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에 비해 산을 배우고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부족한 듯 했다. 한 번의 산행으로 어떻게 산을 알 수 있을까. 차가운 계곡물에 손을 담그고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면서 산을 생각해 보았다. 옛날 어떤 스님이 위대한 스승 약산유엄藥山惟嚴(755-828)에게 이렇게 물었다.
"스승님, 그렇게 정좌靜坐한 채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요?" 그러자 스승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에 관하여 생각하고 있다."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지 않음에 관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스승이 대답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산은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산이 아니기 때문에 산을 배우기 위해서 산과 같은 마음을 같기 위해 생각해야 한다. 산처럼 모든 것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가 의연한 자세를 가지기 위해선 산을 기억하고 또 다른 산을 배워야 할 것이다. 오후 해가 낮아지기 시작할 즈음 뉴스피플 모든 가족들이 북한산 비봉 탐방을 마치고 내려왔다. 초보산행의 실수로 배고프고 목마른 우리들은 다 같이 막걸리 한 사발씩을 들고서 오늘의 유산遊山과 유산遺産을 떠들고 마셨다.NP
산행협조 : 국립공원관리공단 북한산사무소 02)909-04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