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리더십 대학 淑明여대
사회각층 지도자로 여성위상 높여
출중한 여성 인재를 배출해도 아직 우리 사회가 그들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세계적으로 가장 저조하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2010년까지 고급인력이 최소한 30%는 부족하다고 한다. 이런 부족한 30%의 고급인력을 어디서 충원해야 하느냐가 과제이다. 외국에서 수입하든지 여성 인력을 고급화해 써야 하는데, 우리나라 여성인력은 굉장히 우수한 것은 사실이다. 여성인력을 잘 배출해 사용할 수 있다면 국가 선진화 기여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향상될 것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에서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 과정의 참여도와 질적인 면에서 좀 더 확대가 필요한 것이다. “지난날의 모든 숙명인 들이 서로 협동함으로써 오늘의 숙명을 이룩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이 시점에서 지난날의 업적을 토대로 대숙명으로 가는 중흥의 계기를 삼자는 것입니다.”세계최고 리더십 숙명여자대학을 통해 숙명인의 능력과 품성으로 여성지위의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들을 재조명하며 또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분야 등에서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숙명인(淑明人) 을 소개 합니다<편집자주>.
뉴스피플 편집국
1990년대 초반까지 숙대를 다녔던 동문들은 최근 학교를 방문하면 엄청나게 달라진 캠퍼스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제2 창학 캠퍼스’ 전체가 사실상 최근 10여 년 동안 새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외형적 변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양반가규수’의 이미지로 인식되던 학교 정서도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리더’를 기르는 캠퍼스로 변했다.
외형적 성장에 못지않은 것은 숙명인 들의 애교심이며 학교전반에 흐르는 학생들의 긍정적 기류이다. 또한 숙명여대는 넓어진 교정보다 더 눈부신 변화는 ‘유비쿼터스 캠퍼스’ 구축이란 질적 성장도 있다. 함께 ‘세계적 명문’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통한 특성화 대학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이 총장은 “국내 대학 최초로 모바일 캠퍼스로 발전시켰다. 이 총장은 “명문여대가 되기 위해선 ‘숙명인(淑明人)’으로서의 자긍심이 필수적”이라며 “여성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리더십 교육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또한“여성들은 자기관리 능력은 뛰어났지만 대인관계에서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이끌어주는 힘이 부족했다”며 “여성의 섬세함과 포용력, 융화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그가 학생들에게 삶의 목표와 비전을 담은 ‘글’을 써보게 한 것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 판단 이였기 때문이다.
무의식에 의한 습관은 자기 스스로의 시비(是非)의식을 마비시키고 그 반복된 행동을 정당화시킨다. 그래서 한번 들인 습관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선 똑 같은 시간이 필요하고 빨리 깨닫지 않으면 불치병이 된다. ‘양성 차별’에 대한 인식을 뒤로한 채 수많은 여성들의, 남성들에 의해 혹은 자의적으로 굳어진 남성 우위의 생각들은 이제 한 때 과거의 잘못된 습관으로 묻혀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습관에 새로운 슬로건을 정해야 할 것이다. "차이(差異)는 인정한다. 차별(差別)은 도전한다."
유엔이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지정한지 30년이 지났다. "아들 낳으면 기차 타고 지방 일주, 딸 낳으면 비행기 타고 세계 일주" 라는 속담이 생겨나고 남성들은 역차별을 운운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 인식 저변엔 구시대적 명분론이 주리를 틀고 ‘평등’ 이란 단어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잘 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개미굴이 둑을 무너뜨리듯 여성들의 끈질긴 노력은 ‘혁명 (Revolution)’ 보다는 ‘계단적 추이 (Devolution)’의 형태로 조금씩 변화해야 할 것이다. 이에 올해 100년 역사의 장을 연 숙명 여자 대학교는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 ‘울어라 암탉’을 내걸어 섬기는 리더십으로 과거의 남성 권위주의에 도전하고, 잃어버렸던 인류 반쪽의 힘을 묵묵히 그리고 강하게 일으켜 세우고 있다.
이경숙 총장
박찬숙 의원
그녀의 홈페이지 도메인인 'She is cool'처럼 그녀의 당당하고 거침없는 말투는 잠시 잊고 있었던 그녀의 35년 아나운서 인생을 다시 회상하게 했다. 그래서 그런지 무소부지(無所不至)해 보이는 그녀의 언행이 믿음직스러운 정치인임을 실감케 한다. 그녀는 나무보다는 숲을 본다. 공공미술의 중요함은 문화적 감성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나라전체의 질을 높이는 일이며 모든 국민들이 잠재적으로 갈망했던 일이었다. 이에 그녀가 나선 것이다. 고소득층만이 즐겼던 문화적 풍족함이 이제 모든 시민들이 보이는 공공장소로 옮겨와 그들의 예술을 향한 갈증을 말끔히 해소시키고 있으며, 그로 인해 숨죽어있던 나라의 전통과 아름다움이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입법순위 4위에 기록될 정도로 추진력이 강하고 에너지가 넘쳐 양성차별을 거론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당연시되고 권리 향상도 급속도로 솟구치고 있지만 아직도 20개 주요 그룹 임원급 간부들의 여성비율은 1%에도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같은 지위에 있더라도 핵심부서는 남자들이 죄다 차고 있어 여전히 보수적인 성향이 가득 찬 남성들의 사회를 투덜댈 수밖에 없다. 이에 박찬숙의원은 여성들이 스스로 준비된 자세로 원하는 자리를 향하여 당당하게 나갈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 있는 출산육아의 문제에 공보육개념이 도입되어 출산기피현상을 막아야 저 출산 문제가 해결되고 여성들이 공정한 잣대로 능력을 겨룰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사회진출과 출산문제를 두고 양자택일하는 일을 없앨 수 있다고 강하게 말했다.
> 김선미 의원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깊게 뿌리박힌 유교사상이 양성평등을 울부짖는 목소리에 반격을 가했고 몇 차례의 전쟁으로 인해 무력(武力)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우리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자존심 상하는 현실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신체적인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는 여성들은 마치 남성들의 보호물인양 집안에만 틀어박혀 그들의 꿈과 열정을 고스란히 접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사라지자 무력에 의한 권력이나 힘은 이제 우리가 무서워해야할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조화와 이해관계가 성립되면서 여성들의 권리가 마침내 물꼬를 트고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김선미 의원은 이점을 집으며 비로소 여성의 힘에 의해 남자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극적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여성과 여성 간의 경쟁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이며, 힘이 동등해진 이상 기득권의 대상은 양성평등에 근거하지 않는다. 이러한 예고는 여성들이 바지를 입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나타났는지 모른다. 여교사의 비율이 월등히 높아지면서 학교의 세력을 여성들이 장악했고 신종 젠틀맨교육에 밀려 남아선호(男兒選好)사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라고 강조하는 그녀다. 넘치는 에너지와 편안한 분위기로 인터뷰에 몰입시킨 그녀는 편(偏)부모에 대한 인식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대단해 보인다. 여성 리더로서 넘치는 카리스마로 지식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그녀는 리더십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리더는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끌어 가는 것이라 말한다. 공존공영(共存共榮)을 위해 스스로 겸손하며 동시에 자기의 소신을 잃지 않을 때 신의를 잃지 않을 명인들이 따를 수 있는 것이다.
배상면 주류연구소 한상은 대표
10년 전만해도 모든 고급 주류의 종류는 위스키나 와인 등으로 소위 물 건너온 외국 술에 국한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대표적인 술은 소주나 막걸리로 ‘대포 (大匏)나 한잔 하러 가자’ 라는 말이 유래할 정도로 질(質)보다는 양(量)을 강조하여 서민적인 술의 의미로만 제한되었다. 이러한 한국 주류 문화를 고급 반열에 끌어올린 데는 배상면 주가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배상면 주가의 한상은 대표는 남편인 배상면 사장과 함께 어려운 생활을 이겨가며 고군분투(孤軍奮鬪 )하면서 주류 연구에만 몰두하였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여자는 어쩔 수 없다’ ‘좁은 소견’ 이라는 무수한 인용구가 난무하던 시절에도 치마를 입지 않았다는 그녀는 한 명의 여성이기 보다는 한 회사의 대표로서 또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며 정직과 신용에 주안점을 두었다. 남들이 그녀에 대해 평가하는 ‘시간과 주고받는 것의 신용’은 그녀가 쌓아온 보증수표의 언행이며 존경 받는 이유일 것이다. 그녀는 누구에게나 당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금 탈세와 악덕 고용주로 인한 노조 문제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정직한 사람만이 당당할 수 있다며 사회의 환원을 강조하는 그녀에게서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청사진을 본다. 한국 주류의 고급화를 이룬 배상면 주가는 한국의 전통을 현대화하여 문화적 발전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술을 고급술로서 당당히 외국에 알릴 수 있는 자존심을 세웠다고 하겠다.
티켓링크 우성화 대표
뉴욕 브로드웨이는 예술의 거리라 불릴 만큼 문화적 분위기가 강렬해 모든 사람을 예술의 한 부분으로 만든다. 이제 이러한 문화적 기운이 세계 각국에 퍼져 모든 나라의 모든 거리가 공연과 음악으로 풍성하여 생활에 깊이 배고 미술이 곧 삶과 연결되는 고급문화의 세상이 찾아왔다. 10년 전 티켓링크의 우성화 대표가 예매 문화를 우리나라에 전파하면서 고급 문화의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였고 그런 문화적 발전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영화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하였으며 ‘한류’라는 문화가 탄생하기도 하였다. 여자이기 때문에 조금 더 까다로운 관문을 거쳐 도끼눈을 한 비관적인 시선들을 이겨낸 그녀는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더욱 정확했어야 했고 그로 인해 더욱 높은 신뢰도와 완성도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고진감래 (苦盡甘來)가 따로 없다.
그녀는 물질에 대한 욕심보다는 엄마가 아이를 키우듯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결혼이 인생의 유일한 전환점이고 인생 역전 의 기회라는 저질적 오판(誤判)은 미련 없이 버려야 할 것이다. 저 출산 시대에 여성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에 환원을 해야 한다는 잠재적 의무감에 대한 양심불량 적 태도라 하겠다. 유럽의 독특한 캐릭터가 패션 문화를 주도하듯 한국 문화의 색다른 캐릭터가 갖는 문화 수준은 앞으로 뉴욕을 압도할 것이며 그를 위해 지금까지 문화 발전의 숨은 공헌자인 티켓링크의 계속적인 발전을 기대해 본다.
김창숙 부띠끄 대표
외국 속 한국인들의 패션은 그들에게 ‘Fashionable’ 이라는 형용사를 연발시킬 정도로 유명하다. 소위 말하는 잘사는 동내의 거리는 패션쇼의 스테이지를 연상시킬 정도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을 한 ‘명품 족’도 쉽게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사실상 우리나라는 이처럼 잘 입고 다니기엔 그렇게 유리한 여건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의류 산업의 가격 거품들은 ‘한 패션’ 한다하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홍콩으로 일본으로 유혹하고 있으며 그렇게 쇼핑으로 외국에 뿌려진 외화는 국가적 손실로 크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김창숙 부띠끄의 김창숙 대표는 날카롭게 지적하였고, 우리 시장이 20,000불 시대의 돌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의류 산업을 세분화하여 전문화시키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라 주장하고 있다. 김창숙 부띠끄는 우리나라 의류 산업에 가장 큰 공로를 끼쳤다고 했을 정도로 산업화 발전의 기류를 잘 이해하여 발전에 기여해 왔다. 고급스러운 소재와 색감에 대한 연구, 디자인에 대한 현대적인 감각은 한국 브랜드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한 김창숙 부띠끄가 다시 한 번 ‘의류 부문별 전문화’로서 의 고품질의 저가 상품을 제안한 것이다. 그녀의 이런 아이디어와 발전 방향의 비결을 묻자 ‘즐겨라!’라고 짧지만 명료하게 대답한다. 머리 좋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당해내지 못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당해내지 못하는 법이다. 그녀는 또한 중국의 전통 있는 좋은 문화를 잘 이용할 것을 당부한다. 중국과 유럽 그리고 한국 문화의 조화에 메커니즘이 형성될 때 우리의 의류 문화는 더욱 꽃을 만발할 것이다.
이금희 아나운서
방송 중에 풍겨져 나오는 당당함과 카리스마를 보고 있노라면 그녀에게 ‘모태 방송인’ 이라 는 수식어를 달아주고 싶다. 또박또박 흘러져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의 명확함과 대화의 설득력은 상대방을 압도시켜 취재자로서 약간의 억울함을 느끼게 했다. 모델들의 쭉 뻗은 다리와 거만한 듯 보이는 표정 뒤에는 거식증이나 식사 불균형 등의 어두운 현실이 심심치 않게 따라다니듯 멋있게만 보이는 ‘방송인’으로서의 타이틀 뒤엔 체력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발생하고 어떠한 방법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그야말로 천하무적 1분대기조가 따로 없다. 그래서11년 8개월이라는 세월을 제대로 된 쉬는 시간이나 휴일 없이 달려온 그녀지만 그녀는 마치 방송국이 그녀의 집인 양 마냥 행복해 보인다. 이것이 방송인 이금희의 열정인 것이다. 그녀는 "진정한 성공은 자기 스스로 만든다." 라고 말한다. 여성의 불리함을 따지기 보다는 여성이 남성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수평적 사고와 유연한 네트워킹을 사용하고 여기에 열정을 더하는 것이다. 아직 미혼인 그녀는 눈이 너무 높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눈은 눈썹 밑에 있다며 유쾌한 농담을 던진다. 여성 리더로서 그녀는 한국의 ‘오프라 원프리’로 방송계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신달자
1990년 한국 영화계에 페미니즘 영화로서 반란을 일으킨 ‘물위를 걷는 여자’는 여성의 사랑과 사회 진출의 갈등이 그 시대상과 오묘하게 조화되어 발간된 소설이자 영화이다. 시인 신달자는 그녀의 시나 소설에서도 강조되고 있지만 " ‘여자니까 봐 달라’는 생각은 동등한 위치를 꿈꾸며 알게 모르게 노력해온 여성들의 각고를 한 번에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라고 말한다. 능력 위주로 평가 받는 세상에 복종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어떤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문인 신달자가 원한 그녀의 천직은 시인이었고 그녀가 ‘시’를 선택함으로써 돈이나 명예가 주는 월계관은 받지 못했지만, 그녀는 행복과 자기 자신을 얻었다고 말한다. 실존하는 그녀보다 시 안에 그녀가 더욱 존재한다는 그녀는 시와 사랑을 선택했고 그녀의 글귀로 단조롭고 냉담해 보이는 미니멀리즘 적 세상에 따뜻함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여성의 힘이 교과서나 강의(講義) 밖으로 나와 표출되기 시작하면서 더 많은 기회가 생겨났고 사회는 남성이 가지지 못한 여성의 힘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신달자는 그녀가 가진‘부드러운 힘’으로 세상을 리드하고 있다. 마치 동화‘해와 바람’의 해가 사람의 옷을 벗겼듯이 말이다.
홍신자
사람은 태양의 기와 하늘의 바람을 받아 존재한다. 그리고 그 조화로움이 개개인의 가슴 속으로 벅차오를 때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끼는지 모른다. 전위 예술가이자‘구도의 춤 꿈’으로 잘 알려져 있는 홍신자 그녀의 인생엔 신조차 범접할 수 없는 자유를 향한 열망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자아는 유일무이(唯一無二) 한 존재(存在)함으로 탄생되어 그대로 부재(不在)함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그녀는 자유롭다. 그녀의 영혼이 자연의 무생물에도 생명을 부여하는지 이름도 그렇게 ‘웃는 돌’이다. 그녀는 말한다.’나를 무인도에 떨어 뜨려도 난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이러한 용기는 그녀가 여태껏 살아온 삶과 너무나 일맥상통한다. 30이라는 늦은 나이에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그녀는 진정한 예술인으로서 하늘이 임명이라도 한 듯 넘치는 기운과 몸짓이 금방이라도 하늘로 사라질 것 같다. 뉴욕에서 시작한 그녀의 무용 인생은 한국으로 전달되어 한국 최초의 사단법인 ‘웃는 돌 무용단’을 설립하게 되고 현대 무용에 필요한 18인 중 유일한 동양인으로 꼽히게 되었다. 여성으로서의 위치를 묻는 질문에 그녀는 짓밟혀온 여성의 힘이 비로소 순수의 꽃을 피울 때가 왔다고 하며 이제는 남성이 여성의 눈치를 봐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녀는 언제나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꿈꾼다. 그녀의 책 ‘자유를 위한 변명’에 나와 있듯이 그녀는 죽는 날까지 어떤 것에도 구속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것이다. 봄날 한가로이 날갯짓을 하며 모양새를 뽐내는 나비들처럼 말이다.
유니세프 박동은
플라톤의 다섯 가지 행복 조건 중 그 첫 번째는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너무 많이 가진 자도 또 너무 적게 가진 자도 결국은 행복하지 못하다. 부익부 빈익빈의 불행한 현실은 한 나라 안에서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아프리카나 캄보디아 부근에선 일 년에 110만 명의 죽지 않아도 될 어린이가 목숨을 잃어가고 AIDS로 고통당하고 마실 물이 없어 입술은 메마른 진흙처럼 갈라져 버렸다. 한국 유니세프의 박동은 사무총장은 이러한 어린이를 위한 대책 마련에 그녀의 열정을 쏟아 부었다. 이에 유니세프는 세계 교육을 실시하여 나눔의 정신을 가르치고 문화의 우열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승화시키는 데 노력하고 있다. 한국의 유니세프는 1950년 6.25 사변에 긴급 구조 사업으로 들어와 93년 까지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다가 94년 1월 1일부터 도움을 주는 나라로 전환하여 세계 아동의 생존과 발달 그리고 보호를 모토로 아동 사망률을 줄이는 데 물심양면으로 힘쓰고 있다. 유니세프 박동은 사무총장은 그 모든 과정을 리드하였고, 여성으로서의 따뜻한 힘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어떤 일을 성취함에 있어 남녀의 구별을 두는 것은 인류의 막대한 손해이며 케케묵은 사고방식이라 말한다.
자기 자신을 위함이 아닌 어린 생명들의 목숨 부지를 위해 자신의 신체적 편안함을 버리고 평생을 그들을 위해 희생해온 그녀에게 존경을 표시한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