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회복하는 힘

어떻게 다시 일어설 것인가. 신뢰와 협력, 다양성으로 작동하는 회복 시스템 구축법

2015-06-08     김보연 기자

〈크로니클 오브 필랜스로피〉 선정 주목해야 할 혁신가, 세계적인 혁신네트워크 팝테크의 기획자이자 관리자, 〈뉴욕타임스〉〈와이어드〉〈패스트컴퍼니〉 등 전 언론이 주목하는 미래학자 앤드루 졸리가 마침내 밝혀낸 흔들릴 순 있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 개인과 조직의 비밀! 자메이카 산호초에서 뉴욕 월스트리트까지, 개인을 넘어 조직과 기업까지, 혼란을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역전의 지침서!

링필드 4인방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잉글랜드 서리에 위치한 링필드 마을의 어느 고아원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24명의 어린아이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세 살에서 여덟 살 사이였던 24명의 어린이 중 대다수는 아우슈비츠나 테레진과 같은 수용소, 혹은 숨어 살고 있던 곳을 떠나 고아원에 도착했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아이들은 이미 트라우마로 인한 스트레스에 익숙했다. 테레진 수용소에서 머물렀던 아이들은 수감자들을 단체로 교수형에 처하는 장면을 숱하게 목격했으며 여섯 살이 넘는 아이 중 상당수는 잿더미가 된 사람의 유골을 이리저리 나르는 강제노역을 해야만 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았던 아이들은 시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취 속에서 생활하고 매일같이 눈을 뜨면 화장장에서 나오는 연기를 들이마셔야 했다. 숨어서 살던 아이들은 과거의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배신당한 후 가짜 이름과 신분으로 위장한 채 살아야만 했다. 아이들의 삶은 온통 혼란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했다. 링필드 고아원에 도착한 후 한 아이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저 벽이 내일도 이곳에 있는 건가요?”
가장 어린 4명의 아이들은 생후 몇 개월이 채 안 된 갓난아기였을 때 테레진 수용소에 보내졌다. 이 아이들은 엄마를 여읜 아이들을 위해 별도로 마련된 수용소 내 병동에서 생애 첫 2년 반을 보냈다. 수용소에 머무르는 동안 아이들은 아우슈비츠로 이송될 날을 기다리는 수감자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테레진 수용소에서 갓난아기들을 돌봤던 어느 수감자는 1946년에 작성한 편지에서 갓난아기들을 위한 병동 환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일이 너무 많았으며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은 턱없이 적었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 외에도 빨랫감도 처리해야 했습니다. 빨래를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지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아이들이 벌레에 물리지 않도록 3년 동안 온갖 신경을 썼지요. 힘든 상황이었지만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줄 시간이 없었습니다”

최연소 어린이 4명이 링필드에 도착했을 무렵, 아이들은 심각한 영양실조를 겪고 있었고 나이에 비해 몸집이 작았다. 아이들은 전혀 일관성 있는 보살핌을 받지 못했고 대부분의 경우 함께 수용소에 머물렀던 다른 아이들에게 애착을 느끼고 이들에게서 위로를 받으려 했다.
4명의 아이 중 셋은 입양되었다. 반면 벌이라는 이름의 네 번째 아이는 새로운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데 두 차례 실패한 후 링필드로 되돌아왔다.
4명의 아이가 서른일곱 살이 된 1979년, 사라 모스코비츠Sarah Moskovitz라는 미국 심리학자가 아주 어린 나이에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맨 처음 이들의 존재가 언급된 곳은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와 소피 댄Sophie Dann이 작성한 논문이었다. 모스코비츠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추적하기 위해 1979년과 1984년에 몇 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다. 넷 중 가장 왜소하고 약했던 벌과 레아가 가장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벌과 레아는 사회적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으며 학업 성취도도 낮았다. 링필드 마을 어른들은 레아를 ‘울보’라고 불렀다. 모스코비츠와의 인터뷰에서 레아는 극심한 수치심과 불안감을 드러내 보였으며 성인이 된 후에 불면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벌은 자신을 차례로 입양한 두 입양가정의 일원이 되는 것을 거부했고 열일곱 살이 되어 친척집에 입양되어 미국으로 떠날 때까지 줄곧 고아원에서 생활했다. 모스코비츠가 벌을 찾아냈을 때 벌은 여전히 양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서른일곱이나 되었지만 다양하고 심각한 병리 증상으로 힘겨워하며 거의 제 몫을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벌과 레아는 살아남았지만 불안과 수치심, 과거에 대한 슬픔에 사로잡혀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4명의 어린이 중 나머지 2명인 잭과 벨라가 인터뷰에서 들려준 내용은 한층 더 놀라웠다. 모스코비츠가 연락을 했을 당시 잭은 언제나 자신을 따뜻하게 격려해주는 아내와 결혼해 2명의 자녀를 낳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잭은 런던에서 개인택시를 운전했으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운전을 할 때마다 얼마나 놀라운 모험이 펼쳐지는지 이야기했다. 잭도 물론 이따금 우울증에 시달리곤 했다. 어머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 때문에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어떻게 보더라도 잭은 행복하게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었다.
링필드 4인방과의 인터뷰 중 가장 놀라운 것은 벨라와의 인터뷰였다. 벨라는 링필드 고아원에 도착하자마자 탐험을 시작했다. 식당을 나가 고아원을 가로질러 자신이 머무를 방을 찾아가는 대담한 행동을 한 아이도 벨라였다. 고아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벨라는 ‘요구쟁이 벨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도록 요구하곤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벨라는 양부모도 직접 ‘선택’했다. 벨라는 장차 자신의 아버지가 될 사람에게 다가가 무릎 위에 앉았다. 성인이 된 벨라를 인터뷰 한 모스코비츠는 벨라가 명랑하고, 활력이 넘치고, 자신감으로 가득했다고 설명했다.

“벨라의 남편이 심장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지만 벨라는 두 사람이 힘을 모으면 어떤 일이든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벨라는 미술품을 거래하는 사업도 하고 있었습니다. 사업이 잘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벨라는 사업 자체를 즐겼습니다. 벨라는 어린이들과 관련된 사건을 다루는 치안판사로도 활동했습니다”

유아기에 수많은 고난을 겪었음에도 벨라는 단순히 살아남는 데서 그치지 않고 훌륭하게 자랐다. 모스코비츠는 벨라를 회복력 모델이라 칭했다. 또한 모스코비츠는 위험과 역경에 관한 좀 더 뛰어난 통찰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정신건강 전문가들에게 또 다른 어린이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할 것을 권했다.
똑같이 충격적인 환경 속에서 자란 4명의 아이가 어떻게 그토록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을까? 이 세상의 수많은 벌과 레아는 괴롭게 살아가는 반면 잭과 벨라는 역경에 잘 대처하고 심지어 행복하게 잘사는 이유가 무엇일까.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이 되자 아동정신의학과 발달 심리학의 교차점에서 활동하는 심리학자들이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방해한 유아기 요인(예: 모자분리, 이혼, 태아기의 합병증, 모든 요소 중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여겨지는 빈곤)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 이런 연구로 인해 사람들이 앞의 질문에 좀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런 부류의 연구 중 상당수는 정신분열병 환자를 상대로 한 임상 심리학자 노먼 가메지Norman Garmezy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가메지는 연구를 진행하던 중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가메지가 만나본 성인 정신분열병 환자 중 일부가 놀라울 정도로 사람 구실을 잘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직업도 있었고, 체계적으로 활동하며, 심지어 만족스러운 연애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메지가 ‘반응적’이라고 표현한 이런 부류의 연구 대상들은 ‘과정성’ 분열병 환자들과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후자의 환자들은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가 일자리를 잃고 급기야 살 곳마저 잃어버리는 악순환의 고리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 부류가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산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 가메지는 정신분열병 환자를 부모로 둔 자녀들을 상대로 새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결과, 가메지는 놀랍게도 정신분열병 환자의 자녀 중 90%가 친구들과의 우호적인 관계, 학업 성취, 목적의식이 있는 삶의 목표 등을 토대로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메지는 동료 임상의들에게 위험 요인에 대한 관심을 낮추되 ‘이런 아이들이 살아남고 적응하도록 만드는 힘’이 무엇인지 좀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구했다. 가메지의 적극적인 관심 덕에 1970년대 초반에 심리적 회복력에 관한 연구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어떤 시스템은 망가지고 어떤 시스템은 회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8년 1월 31일 오전, 멕시코시티의 좁은 골목과 널따란 대로는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이른 아침을 알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열린 문 사이로 다람쥐처럼 요리조리 뛰어다니는 아이들,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는 가족, 멕시코 사람들의 주식 중 하나인 토르티야를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노점상들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온 도시를 가득 채워갔다.
한데 전혀 평범하지 않은 어떤 하루가 멕시코 사람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2008년 1월 31일, 토르티야의 주재료인 옥수수 가격이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1년 전만 하더라도 파운드당 35센트라는 가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단 3개월 만에 옥수수 가격이 무려 400%나 폭등했던 것이다. 전체 멕시코 국민 중 절반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이토록 갑작스러운 옥수수 가격폭등은 단순히 골칫거리 정도로 여겨지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옥수수 가격폭등 현상 뒤로 인도주의적 위기, 혹은 정치적 위기가 발발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옥수수 가격폭등 사건만큼은 그들이 주범이 아니었다. 시위대는 물론 멕시코 정부가 옥수수 가격폭등을 초래한 사건이 무려 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최근 지구촌을 강타한 금융위기건, 이라크에서 전쟁이 초래한 지정학적 결과건, 자연재해의 놀라운 결과건 혼란 가운데 있는 몇 가지 특성들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이런 사건들에는 한 가지 예상하기 힘든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런 사건들로 인해, 숨어 있었던 상호의존성이 수면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상호의존적임에도 불구하고 개별적으로 연구되고 논의되는 탓에 연관성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던 영역 간의 상호의존성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다. 가령, 토르티야 폭동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보면 에너지 부문(석유 굴착 장치), 생태계(카트리나), 농경 부문(옥수수 수확), 세계 무역(북미자유무역협정), 사회적 요인(도시화와 빈곤), 멕시코와 미국의 정치 제도 간의 연결 고리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현대 사회(전혀 무해한 것처럼 보이는 사건으로 인해 별다른 경고도 없이 엄청난 변화가 발생하며 그로 인해 그동안 감춰져 있었으며 거의 부조리하게 느껴질 정도로 터무니없는 상관관계가 밝혀지는 그런 사회)가 갖고 있는 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복잡성, 상호연결성, 변동성과 마주한 상황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옆으로 한 올 빠져나온 실을 잡아당기면 옷이 통째로 풀려버린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구성 요소들이 원래 어떻게 엮여 있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혼란이 발생한 이후에 돌이켜 생각하면서 비로소 사건의 전말을 깨닫는다. 사건과 관련된 개별 시스템을 심도 깊게 이해한다 하더라도 일련의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또한 사람들은 정보사회를 요란하게 찬양하고 정보사회가 마치 대단한 힘을 갖고 있는 존재인 것처럼 추앙한다. 하지만 단순히 좀 더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 고동쳐 흐르는 개별 데이터 패킷 하나하나, 혹은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화학적 상호작용 하나하나를 실제로 볼 수 있게 되면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시스템이 어디로 향할지, 혹은 그 과정에서 어떤 이상한 결과가 발생할지 장기적으로 예측할 수 있을까? 제아무리 완벽한 지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마치 지뢰밭 한가운데서 사교춤을 추듯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엉뚱한 행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내려놓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변덕스러운 변화의 물결을 제어할 수 없다 하더라도, 배를 좀 더 튼튼하게 만드는 방법을 익힐 수는 있다. 좀 더 효과적으로 혼란을 받아들이고, 좀 더 다양한 조건하에서 원활하게 작동하고, 하나의 환경에서 다른 환경으로 좀 더 부드럽게 이동할 수 있도록 각종 조직과 기관,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다.(혹은 재설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최근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회복력 분야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경제학, 생태학, 정치학, 인지과학, 디지털 네트워킹 등 서로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 세계의 과학자, 정책 입안자, 기술 전문가, 재계 지도자, 활동가들은 모두 비슷비슷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어떤 시스템은 망가지고 어떤 시스템은 회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시스템이 완전성과 원래의 목적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얼마나 많은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시스템에 내재된 어떤 특성이 변화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까? 요즘처럼 끊임없이 혼란이 발생하는 시대에 자기 자신, 지역사회, 기업, 경제, 사회, 지구를 위해 좀 더 충격을 잘 흡수하는 시스템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치 현상 중인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이들이 연구를 통해 찾아낸 통찰력과 교훈, 경험 법칙은 완전히 새로운 분야가 존재함을 알려주었다. 혼란을 예측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 치유하며,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할 때에도 핵심 목표를 잊지 않도록 스스로 개편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회, 경제, 기술, 비즈니스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되며 보편화시킬 수 있는 통찰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염두에 두고, 멕시코인들이 옥수수 가격폭등이라는 곤경을 피하려면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좀 더 많은 양의 옥수수를 비축하거나 좀 더 적극적으로 식용 작물을 다각화했더라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좀 더 효과적으로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했더라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옥수수의 용도 전환을 장려하는 미국의 정책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는 모형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제작했더라면 틀림없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위기 발생 시에 미국을 대신해 옥수수를 공급해줄 공급처를 좀 더 신속하게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메커니즘이 있었더라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독점기업이 세력을 떨치지 않게 시장 구조조정을 단행하거나 빈곤층을 위한 사회적 프로그램에 투자해 가격급등이 미치는 영향력 완화를 위해 노력했어도 역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혹은 애당초 초대형 허리케인이 불어 닥치더라도 옥수수가 식용이 아닌 에탄올 생산용으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일련의 인과관계가 진행 중일 때 필요에 따라 적절히 개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더라면(예를 들자면 미국의 에너지 생산 다각화 같은) 역시 커다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각각의 개입 방안에는 어떤 상황에서건 모두에게 원활히 공급할 수 있도록 충분한 양을 비축해두는 전략, 투입을 다각화하는 전략, 운영 및 성과에 대한 양질의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하는 전략, 구성 요소에 한층 뛰어난 자율성을 부여하는 전략, 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전체가 파괴되지 않도록 방화대를 설계하는 전략 등 다양한 전략이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전략은 결국 회복력을 강조하는 전략이다. 지금부터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전 세계에서부터 지역사회, 각종 조직, 개개인의 삶에 이르기까지 규모를 막론한 모든 것에 이런 전략을 적용할 수 있다. -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