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공통된 트렌드와 화두는 ‘변화’일 것이다. 이에 어울리는 가장 ‘HOT’한 사람은 미래의 설계자로 불리는 테슬라로 대표되는 일론 머스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30년을 한결같이 외길을 걸어온 장인의 삶이 일론 머스크와 비교한다는 건 누구나 억지라 할지 모르나, 그 진정한 가치는 오늘을 있게 한 과거의 소중한 자산이자 현재진행형의 기반이기에 현재에 재조명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지만 강한 소기업을 이끌고 있는 (주)포이코의 하민호 대표를 소개한다.
황소걸음으로 뚜벅뚜벅
(주)포이코의 하민호 대표에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한마디로 표현해달라는 말에 서슴없이 스스로가 “전기쟁이”라며 “하지만 전기쟁이 중에는 아주 고급 전기쟁이”라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하 대표는 동국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오일뱅크에 입사해, 정유산업 플랜트 분야의 전기계장(Instrument), 컨트럴 시스템 관련 업무를 시작해서 지금의 (주)포이코에 이르기까지 올해로 30년간 외길을 걸어온 장인이다. (주)포이코는 정유플랜트 관련 전문시공 용역업체다. 모든 플랜트 분야는 건설을 기반으로 하는 건설, 장치시공 등의 분야와 이 장치들을 효율적으로 가동하기 위한 제어분야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주)포이코는 시스템의 컨트롤을 위한 계장판넬의 생산과 시공을 하고 있는 업체이다. 업종으로는 전기공 사업으로 분류되지만 전기공 사업 중에서도 정유 관련 플랜트를 이해해야만 하는 하이테크한 전기공사 시공이기에 하민호 대표의 ‘고급 전기쟁이’라는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주)포이코는 일반 건설 분야의 전기공사 시공 또한 아무 문제없이 가능하다. 시장 또한 경쟁은 치열해도 회사의 외적 성장을 쉽게 이룰 수 있으나, 그는 작지만 강한 강소기업(强小企業)을 추구하는 경영이념으로 한 눈 팔지 않고 외길만을 고집해옴으로서 전기공사협회 13,000여 개의 회원사 중 상위 10%에 들어가는 알찬 기업으로 성장해 왔다. 외형 불리기에 급급하다 경제위기 때마다 허덕이며 부실해진 많은 기업들과 비교될 뿐 아니라 황소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온 뚝심이 느껴진다.수출의 대표적 선봉장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정유 산업은 과거의 전유물이며 한물간 산업쯤으로 오인하고 있다. 또한 자동차, 반도체, 정보통신 같은 후발산업의 눈부신 성장에 가려져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기여가 과소평가되고 있으나, 정유 산업과 석유화학산업은 우리나라의 아주 주요한 기반산업이며 수출의 대표적 선봉장이라 할 수 있다. 정유란 원유 즉, 석유를 정제해 휘발유와 경유뿐 아니라 석유화학 관련 원료 등을 생산해내는 것을 말한다. 이는 우리나라 전 산업분야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일 뿐 아니라 상당 부분을 수출하는 수출산업이기도 하다. 그 규모가 놀랍게도 우리나라 원유 수입 금액의 70~80%에 달하는 금액만큼을 정유와 석유화학 관련 제품들로 수출하고 있다.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자동차와 반도체, 핸드폰을 팔아서 원유를 수입하고 있는 것이 아닌 셈이다. 세계 시장 점유율도 2013년 기준 통계로 5.43%(에틸렌 정제능력 기준-835만 톤)로 세계 4위권에 달한다. 또한 플랜트를 수출하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정유 산업의 기술이 이미 오래 전부터 기술 혁신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세계적 상위 수준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유 산업의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기여는 우리가 지난 30여 년 동안 연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었으며, 화학 산업에 필요한 원료를 구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에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순하게 휘발유를 만드는 것이 정유 산업이 아니라 생산되는 원료가 공급돼 최종적으로 만들어지는 완제품을 보면 모든 산업의 구석구석 관련되지 않는 것이 없을 만큼 광범위하다.묵묵히 외길 걸어와
정유 산업은 Plant 장치산업이다. 장치산업의 특성상 Instrumentation(계장)은 매우 중요하다. 쉽게 이해하려면 자동차에도 Instrument Pannel(계기판)이 있듯이 정유공장이나 화학공장에도 중앙조정실이 있어서 조정원(Board Man)들이 분산제어장치(DCS)의 Board를 보면서 큰 공장을 운전하는 셈이다. Instrument Engineer는 그러한 System을 구축하는 사람을 말한다. 안정된 생산을 위해 시스템컨트롤은 매우 중요한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정밀한 전기, 계장 관련 시공은 오랜 숙련도와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장인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안성맞춤으로 (주)포이코 하민호 대표의 외길 30년이 빛나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이나 대만의 경제력이 단단한 이유는 외길을 걸으며 성장한 중소기업이 있기 때문이다. 장인 정신으로 대를 이어 운영하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산업의 기초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여러 경제 위기 속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의 중소기업에 대한 대책들이 명분과 허울만 번지르르할 뿐 실제로는 방치해 놓은 것과 다르지 않음에도 묵묵히 외길을 걸으며 기술을 쌓아가는 기업들의 역할과 존재가 더욱 큰 빛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위기를 기회로
모든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며 여러 번 위기에 맞닥뜨리곤 한다. 또한 그 위기에 좌절하기도 하고 위기를 극복해내기도 한다. 하 대표에게도 삶의 방향을 전환하게 되는 위기가 찾아온다. 대학 졸업 후 현대오일뱅크에 입사해 Instrument Engineer로서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1999년 IMF의 여파로 여러 산업 분야에서 구조조정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때 현대오일뱅크가 한화에너지 인천공장(인천정유로 명칭 바뀜)을 인수 매입했는데, 실사 업무를 수행하는 팀원으로 참가하게 되고 훌륭히 인수 업무를 마친 후 개인 희망여부에 따라 한화에너지 인천공장으로 이직을 선택하게 된다. 당초 첫 근무지인 충남 대산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객지 생활에 대한 가족들의 어려움을 고려한 선택이었으나, 이 선택이 인생의 큰 위기로 닥쳐오게 될 줄은 몰랐다. 불과 3년 후, 노후화된 공장과 유통을 분리하게 돼 공장은 다시 법정관리를 거쳐 SK에너지로 바뀌게 됐고 이 과정에서 신규 참여 인력들은 구조조정으로 퇴사해야 하는 시련을 맞게 된다.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 구직을 해야 할지 장사라도 해야 할지 고민하던 하민호 대표는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결심하고 2002년 6월 (주)포이코를 창업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며 하 대표는 “내가 아는 게 이 분야일 뿐 아니라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도 이 분야이기에 창업에 대한 불안보다는 하던 일을 계속 할 수 있어 즐겁게 일 할 수 있었다”며 “그래서 더 죽도록 한 해 한 해 열심히 일하다 보니 어느새 남들이 인정해주는 우리 회사가 됐다”고 회고한다. 많은 장인들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듯이 그 또한 천직이라 생각하며 외길을 걸어왔고, 그렇게 걸어갈 것이다.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
- 즐거워야 일도 잘 된다
두주불사(斗酒不辭)의 호방한 성격의 하민호 대표는 경영철학을 묻는 질문에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 아니냐. 그리고 아무리 큰 회사들의 큰 일들도 따지고 보면 우리 회사 직원들이 먼저 하나하나 제대로 설계하고 현장에서 설계대로 꼼꼼히 시공을 마쳐야 그 큰 공장이 돌아가는 것이다. 결국은 우리가 모든 일의 최일선인 것이다. 누구에게도 대신 시킬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 같은 회사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회사가 유지되기 힘들 뿐 아니라 유지된다 하더라도 시한부인 셈이다. 그래서 난 무엇보다 일은 힘들어도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복지라고 거창하게 말하기 보다는 열심히 일해서 일한만큼 충분한 대우를 받고 놀 때는 즐겁게 놀 수 있도록 배려하고 회사에 대한 신뢰가 쌓이도록 하는 것이 경영자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회식을 해도 형식적인 회식이 아니고 전 직원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게 이벤트를 많이 한다. 한번 참여해보면 잊지 못 할 것”이라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하 대표의 말처럼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는 이유는 어떠한 상황이든 즐겁게 받아들인다는 그의 소신이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일할 맛 나는 회사
(주)포이코의 직원들에게 회사에 대해 불만과 고마움을 묻자, 이구동성으로 “금반지요”라고 대답해 의아했다. 그러나 이내 그 뜻을 알고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금반지의 뜻은 다름이 아니라 회사에서 상반기, 하반기 한번씩 1박 2일 워크숍이 있는데 워크숍이라기보다는 대학 MT같은 형식으로 전국의 주요 명소를 찾아다닌다. 행사 중, 복불복으로 금반지를 받는 이벤트가 있고 이것이 가장 고맙지만 반지의 수를 늘려달라는 게 불만이라고 직원들도 밝게 웃으며 말한다. 그 모습을 보며 하민호 대표의 유쾌한 성격을 직원들도 공유하고 있는 듯해 그의 경영철학까지 엿볼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하 대표는 직원들에게 회사를 신뢰하길 강요하기 보다는 직원들 개개인의 이익을 보장해주면 자연스럽게 회사에 대한 신뢰도가 단단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중소기업에서는 보기 드물게 직원들의 퇴직금을 사내에 적립하지 않고 은행의 퇴직연금에 적립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연금의 종류나 방법 등을 직원들 스스로 토론 후에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구직난과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중소기업들은 인력난과 잦은 이직률로 고통을 겪고 있는 현 실정에서 하민호 대표는 시간이 걸리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직원과 회사의 신뢰를 쌓는 어떠한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신입사원이 입사해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려면 2~3년의 시간이 필요한데, 일이 능숙해질 때가 되면 이직이 잦아 애로사항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신입사원을 채용해서 인력을 키워내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 중에서 회사와 신뢰를 갖고 뜻을 함께 할 수 있어야 회사도 알차게 커 갈 수 있다고 확신하는 하민호 대표의 경영철학이 이해관계에 너무 예민한 많은 기업들에게 귀감이 될 듯하다.
가화만사성 신념, 직원도 가족
하민호 대표에게 1년 중 6월은 잊지 못 할 두 번의 일이 일어난 달이라고 한다. 이에 하 대표는 “2002년 6월 21일은 (주)포이코를 창업한 날이며, 올해 6월 28일은 평생 처음 골프 홀인원을 기록한 날”이라며 “좋은 조짐이기에 올해 제2의 창업이라 생각하고 초심의 자세로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그의 가족 구성원은 아내 이혜정과 아들 둘이다. 아내 이혜정의 친정아버지는 진흥개발(주)의 창업주인 故이주원 회장이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부인은 5년 여 간 봉은사와 조계사에서 묵묵히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데 하 대표 또한 시간을 할애해 아내의 봉사 활동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이에 하민호 대표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이룬다는 평소 신념으로 가족과 직원들의 가족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며, 소망한다고 말한다. 고집스러운 외길 30년의 작은 거인의 모습은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한결같은 환한 웃음을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