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연기에 특별한 시선을 담아
어느 여름 날, 열정과 영화 사이에 그녀가 있다
2006-09-01 신성아 기자
“정말 너무 덥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원망의 대상이 되는 익어버릴 것 같은 날씨, 뜨거운 태양은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눈부셨다. 명동의 한 호텔 커피숍, 영화 <신데렐라>의 히로인 도지원을 만났다. 그녀는 만나자마자 가방에서 휴대폰 액정클리너를 꺼내어 나눠준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기쁘게 받았다. 그리고 점점 도지원에 대한 호기심이 나의 마음을 묶어 두었다.
#. 새로운 필모그래피 더하기
드라마 <여인천하>의 경빈 역으로“뭬야”라는 시대의 유행어를 낳으며, 독기어린 표독스러운 연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도지원. 그녀가 이번에는 연기생활 17년 만에 당당히 영화의 첫 주연배우로 돌아왔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공포영화로 말이다. 도지원은 1989년 일일드라마 <서울뚝배기>로 데뷔한 이후, <목욕탕 집 남자들>, <종이학>, <여인천하>, <토지> 등 많은 드라마에서 도회적인 역에서부터 노처녀, 악역 등 다양하고 폭 넓은 연기를 선보여 왔다. 지난 2004년 변영주 감독의 <발레교습소>를 통해 뒤늦게 영화에 입문한 그녀는 그 당시 영화배우로서도 충분한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리고 2년 후, 봉만대 감독이 연출하는 공포영화 <신데렐라>의 여주인공으로서 무더운 8월의 여름, 관객들과 만난다. “곧 개봉을 앞둔 시점에서 영화를 쭉 해온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부담을 많이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덜 해요. 오히려 편안해서 탈이죠. 대신에 많이 설레요. 그리고 시나리오 자체만으로 너무 좋아서 촬영하는 내내 행복했어요. 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신인이라 조금은 어렵고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감독님이 많이 이끌어 주셨어요. 아예 부담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솔직히 지금은 여유의 부담을 느껴요.”
#. 금지된 욕망, 죽도록 아름답게
영화 <신데렐라>는 아이러니하다. TV드라마나 영화에서 봐왔던 가난한 여자가 부유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신분상승을 하는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성형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라는 것이다. 성형왕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을 받을 만큼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누구보다 강한 우리나라에서 성형수술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데렐라>는 단순히 성형만을 부각시키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릇된 모성애를 더해 올해 개봉된 공포영화들에 비해 전혀 다른 공포를 주고 있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딸(현수)과 단둘이 살아가는 성형외과 의사 윤희 역을 맡아 섬뜩한 눈빛 연기와 함께 슬픈 모정을 보여준다. 엄마 윤희에게서 성형수술을 받은 친구들이 하나 둘씩 죽어가고, 현수는 엄마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끔찍한 저주의 실체가 드러난다는 것이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여태까지의 공포영화는 잔인하고 긴장감과 스릴이 넘치는 장면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깜짝 놀라는 것이 주류였잖아요. 하지만 신데렐라는 가슴에 와 닿아 울면서 볼 수 있는,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공포영화에요. 감독님의 말을 빌리자면 새드호러무비죠.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여인천하>나 <토지>에서 보여 준 악역 때문에 저를 한 이미지로만 각인시켜 놓은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 작품을 선택했어요. 극중 윤희는 평면적이지 않고 절제된 강함이 있는 매력적인 인물이에요. 앞으로도 후회가 없을 영화이고, 제 마음속에 평생 남을 것 같아요.”
#. 영화가 가져다 준 현실의 모순
작품을 선택할 때 시나리오와 캐릭터를 보고 출연을 결정한다는 도지원은 봉만대 감독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신데렐라의 시나리오를 접하게 된다. 시나리오를 다 읽은 후, 뭔지 모를 긴 여운으로 출연을 확정지었던 영화 <신데렐라>는 그녀가 평소에 보는 것 자체를 꺼려했던 공포영화라는 사실에 놀라웠다. 이에 지난 시사회 때, 자신이 나오는 영화지만 귀신이 등장하는 장면은 도저히 쳐다볼 수가 없어서 실눈을 뜨고 봤다고 한다. 또, 영화 촬영할 당시에는 귀신으로 나오는 여자연기자 옆에 아예 가지도 못할 정도로 무서움이 많은 그녀다. 그러한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도 영화를 위해 여기까지 온 도지원이다. “신데렐라는 가슴 찡한 모성애를 보여줄 수 있는 공포영화라는 것이 매우 새로웠어요. 봉 감독님이 제 연기를 보시고, 결혼도 하지 않은 여배우가 어떻게 엄마보다 더 엄마 같으냐며 감동받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추천하는 신데렐라의 명장면이 있다면, 마지막 부분에 이혼한 남편과 짧고도 긴 시간동안 이야기를 해요. 계속 제 얼굴에 포커스를 맞추고 영화가 진행되는데, 그 장면을 찍으면서 꽤 힘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네요. 하지만 편집하는 과정에서 정말 놓치기 아까운 장면들이 잘려나가 너무 아쉬워요. 특히, 편집을 담당하셨던 분이 너무 감동을 받아서 울었다고 하는 ‘엄마, 안자!’ 라는 신이 있었는데, 아깝게도 관객들은 보지 못하죠.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속상함이 이루 말 할 수 없어요.”
#. 애로영화 빼고 다 좋아
2006년 여름, 익숙한 동화의 제목을 달고 또 다시 우리를 찾아 온 영화 <신데렐라>.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의 메가폰을 잡았던 바로 봉만대 감독이다. 영화 장르와 내용상 같은 감독이 찍었다고는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에로영화로 유명한 봉만대 감독의 영화에 첫 주연배우로 새로운 영역을 확장한 도지원. 만약 처음 제의 했을 때 공포영화가 아닌 에로영화였다면 그녀는 봉만대 감독을 만날 수 있었을까? 대답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NO다. 그녀가 지난 날,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음에도 굳이 하지 않았던 것은 베드신과 노출신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제 자신이 그런 면에서는 상당히 보수적이라서 앞으로도 노출연기는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이 영화가 에로영화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럼 봉 감독님을 못 만났을 테니까요. 봉 감독님의 연출력이나 통제력은 정말 믿음직스러워요. 영화촬영을 하면서 봉 감독님과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눈빛과 주위의 흐름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했어요. 너무 신기한 일이죠. 다음 영화에서는 맥 라이언 같은 로맨틱 코미디나 홍콩여배우처럼 액션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모든 역할이 다 탐나요”
#. 온화한 카리스마에 말 걸기
카리스마는 타인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빛나는 웃음, 온화함, 상냥함 같은 매력이다. 도지원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그녀의 온화한 카리스마에 젖어들며,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켜 분산시킬 때 다양한 색을 띠는 스펙트럼이 떠오른다. 어떻게 통과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다채로운 빛이 바로 도지원의 모습이다. 어떤 역할이 주어지더라도 그것을 자기만의 것으로 완벽하게 만드는 그녀가 연기를 시작한지도 벌써 17년이 흘렀다. 세월의 흐름을 전혀 알듯 모를 듯 한 얼굴은 비현실적인 존재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줄기 찬 질문에도 상냥한 반원을 그리는 고마운 입술이다. “드라마 <서울뚝배기>는 저의 이름을 알리는 첫 데뷔작이라서 참 기억에 남아요. 유인촌 선배님과 <일출봉>이라는 사극을 했었는데, 그때 제 연기관을 만들어준 작품이죠. 또, 너무나 유명한 <여인천하>는 배우로서 연기에 대한 느낌과 자신감을 심어줬고요. 영화 <발레교습소>를 하면서‘영화란 이런 것이구나’를 느꼈고, <신데렐라>는 연기에 대한 갈망과 동시에 새로운 인식의 전환점을 마련해줬어요. 특히, 이 영화는 완벽한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당분간은 영화에만 전념할 계획이에요. 주어진 역할에 맞게 다양성을 가진 연기로서 대중들에게 인정받고 싶네요.”
오랜만에 마음을 다 준 영화를 끝내고 나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도지원은 일반 사람들이 그녀를 지칭할 때, 이름 앞에 연기파 배우라는 퍼스트 네임을 붙여주길 바랬다. “신데렐라는 제가 첫 주연한 영화라 의미가 남달라요. 관객들이 제가 느꼈던 것을 같이 공감하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고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아직까지는 저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연기할래요.” 지극히 개인적인 사진촬영과 깍듯한 인사, 그리고 배웅을 마지막으로 도지원과의 인터뷰를 마쳤다. 그녀가 전한 소중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재현되었으면 좋겠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