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세상을 바라보면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
2006-09-01 장인혜 기자
최근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차량에 대한 LPG 지원제도가 오는 2009년까지 단계별로 폐지된다는 ‘장애인 지원 정책방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4~6급에 해당하는 경증장애인은 내년부터 LPG 지원이 완전 폐지되고 1~3급 중증장애인에 대해선 오는 2009년까지만 한시적으로 현재대로 최대 월 250ℓ(60만원)까지 지원해 주기로 했다. 장애인 지원수당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장애인들의 거센 반발은 예정된 진통이었다. 형평성과 효율성을 조율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이지만 당장 생계에 지장을 줄 수도 있는 장애인의 혜택을 박탈하는 격이라 난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 소속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은 얼마 전 있었던 시각 장애인 안마사 문제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이번 LPG 지원 폐지법이 발효되어 끊이지 않는 장애인계의 현안만으로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본인이 장애인이다 보니 비장애 국민들의 지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장애 국민들의 성원과 질타가 그에게는 더욱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장 의원은“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많은 심리적 부담이 있지요. 하지만 실제 할 수 있는 일과 권한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 때문에 갈등도 많이 느낍니다. 기본적으로 장애인 정책의 토대 자체가 극도로 취약한 실정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은 많지만 충분한 재원과 사회적 기반이 형성되지 못한 것에서 기인하는 문제들이 다수를 차지합니다.”라고 말하며“지나온 2년은 물론이고 남은 2년 동안에도 장애인들의 염원과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할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모두의 기대를 떠안고 정계 진출
2년 전 국회의원 선거에 1급 중증장애인이 당선된 후 많은 사람들은 장애인 참정권 확대를 가져다주었다고 평가했고, 장애인의 삶에 서광이 비치는 듯 모두들 무엇인가를 기대했었다. 기대에 부응한 것인지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은 장애인 장애에 따른 추가적 비용과 소득활동의 감소를 국가가 보전해 장애인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장애인소득보장법안’과 청각장애인도 1종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도록 도로교통법중개정법률안 등을 대표발의함으로 개혁을 시도했다. 다년간 장애여성 인권운동가로 활약을 하면서 장애우들의 선봉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장 의원이었지만 정계 진출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 것이 사실이다. 장 의원은“열린우리당이 창당하면서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의견제시가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비례대표를 권유받았고, 고민 끝에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여성이며 장애인이라는 두 가지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커다란 두 가지 딜레마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었고, 이런 세상의 굴레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오던 중 ‘정치’라는 일종의 수단이랄까, 계기를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가 기대하고 다짐했던 것과 달리 정치에 입문해 정계를 들여다 본 결과 주위에서 맴돌던 때와는 또 다른 양상이었다. “17대 국회가 시작된 후 지난 2년간을 평가해 본다면, 마음고생이 참 많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학으로 장애인으로 살아오며 가슴에 쌓이고 해결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단단히 작심하고 국회 개원을 기다렸지만, 실제 일을 진행하기 어려운 여러 정치적 상황들이 전개되면서 고민도 많았습니다. 17대 국회는 대통령 탄핵과 여야의 극한 대립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통해 구성된 국회임에도 새로운 정치와 일하는 국회의 모습을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이 많았다고 생각됩니다.”라고 밝히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놓았다. 왜 아니겠는가. 본인의 포부와 계획만으로도 벅차오르는데, 그를 바라보고 그를 지지하는 수많은 장애우의 심정을 알기에 다른 정치인이 느끼는 회의감에 부담을 한 술 더 얹어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린 2년이었다. 장 의원은 “정치권 밖에 있을 때는 그저 잘못된 것은 잘못했다고 비판하고 목소리를 내면 끝나는 일이 많았지만, 이제는 이것저것 따져봐야 하고 정부 입장도 들어야 하고 야당의 반대도 고려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신경 쓸 일이 많아졌습니다. 한마디로 내가 옳다고 생각되는 것도 그저 주장만 가지고는 안 되고 여러 사람들의 견해를 들어 돌아가기도 해야 하고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 차차선의 길도 택해야 하는 과정에서 오는 심리적 갈등과 어려움이 커졌습니다.”라고 말했다.
듣고, 고민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는 정치해야
수해 골프 사건으로 여야가 타격을 받은 이후 골프라는 운동은 정치인에게 금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골프를 칠 수 없는 장 의원이기에 편안하게 정치인으로서 느끼는 금기에 대해 물었다. 장 의원은 어느 한 쪽의 이야기만 듣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라는 답을 했다. 주변 여러 사람들의 얘기를 좀 더 주의 깊게 듣고 폭넓은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폭넓은 고민을 하는 과정에 장애우들은 조바심을 내고 국민들은 서서히 외면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더 큰 충격과 불행을 주지 않을 최선임을 장 의원은 알고 있다. 국민연금개혁, 민간의료보험 문제, 한·미 FTA, 사회 양극화 등 우리사회가 극복해 나가야 할 문제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장 의원에게는 장애인 복지와 관련한 다른 현안들까지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 장 의원은“현재 사회의 추세 자체가 정책결정과정의 투명성과 의사결정과정의 합리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각각의 사안별로 관련 당사자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하고 투명한 정책결정을 보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지속적인 지지율 하락과 당 내외를 둘러싼 각종 고난을 길을 겪고 있는 열린우리당을 짚어보고자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차기 정권 재집권을 가로막는 열린우리당의 가장 큰 약점에 대해 물었다. 장 의원은“열린우리당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지극히 떨어져 있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열린우리당이 부여받은 시대적 사명과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정당의 모습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선결조건이 충족된 후에라야 재집권 자체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라고 답했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
장 의원의 말 대로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장 의원이 17대 국회의원으로 남아있으면서 해야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가지 현안들을 쏟아냈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초점을 두고 여러 제도적인 도입과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고, 장애인들의 소득 보장을 위해 힘 쓸 것이라고 했다. 또한 여성장애인과 관련한 모성권 보호와 가정폭력, 성폭력 문제 해결이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라고도 했다.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제도를 법률로써 규정하여 장애인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화하는 것 역시 게을리 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 이를 위해 장애인복지법 개정안과 그 외 법안들을 이미 제출해 놓은 상태라고 전했다. 묵직한 고뇌의 흔적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장 의원은“국회의원으로 일하는 동안 이뤄내고 싶은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나아갈 것을 항상 염두에 두는 편입니다. 그렇게 나가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라며 서두르지 않는 신중함을 보여주었다. 정치인의 삶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는 장 의원은 의정 활동이 주는 즐거움과 배움이 매우 크다고 한다. 장 의원은“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해결점을 쉽게 찾지 못해 심적으로 고통을 겪은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돼서 여러 가지 복지정책과 국가정책에 주어진 한계 속에서나마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재능 있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여러 유형의 동료의원들을 만나면서 인간관계도 새롭게 형성하고 내가 몰랐던 것에 대한 새로운 식견을 넓혀 가는 과정이 저에게는 큰 즐거움입니다.”라고 밝혔다. 그가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는 개인의 의지라기보다는 기독교적 은총과 주변사람들의 도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장 의원은 앞으로도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과 환경들의 도움이 계속되리라 믿는다. 한 번도 정치인이 되려고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결국 국회의원이 되었다. 한국의 장애인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것을 목표로 삼긴 했지만 정말 이 자리까지 올 줄을 몰랐다고 한다. 장 의원은“건강과 기회가 된다면 동남아시아의 빈곤국가와 장애인을 위해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국회의원의 신분을 떠나서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한다는 각오가 되어있습니다.”라며 소망을 드러냈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
열린우리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우려를 장 의원도 잘 알고 있었다. “국민들께서 꾸지람을 많이 하십니다.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반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야의 상당수 정치인들이 정말 열심히 일하는 모습도 많이 지켜봤습니다. 나부터 먼저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장 의원은 당의 위기를 의식했다. 특히 장애인과 빈곤계층을 위해 국회의원으로서 장 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 나간다는 것이 유일한 향후 계획임을 밝혔다. 장향숙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나는 언제나 엎드린 채 세상을 바라봐 온 사람이다.”라고 고백했다. 두 발로 서서 보는 세상과 엎드려 보는 세상은 분명 다르다고 한다. 진정 그의 말처럼 지금의 세상은 두 발로 선 사람들의 기준으로 모든 것이 짜여져 있는 건지도 모른다. 두 발로 서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직 그는 엎드린 채 세상을 바라보길 바란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그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엎드린 사람은 지구의 진동을 더 가깝게 느낀다는 말처럼 사람들의 진동을 더 가깝게 느끼는 정치인 장향숙 국회의원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