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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란 고원’이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의 갈등의 핵심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사뉴스피플=진태유 논설위원] 이스라엘이 1967년 시리아로부터 점령한 ‘골란고원’은 총기난사사건이 일상화된 지역이지만 최근 들어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긴장감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란이 시리아에 제공한 여러 발의 로켓탄이 발사되자 즉시 이스라엘은 미공개 성능의 폭격으로 대응했다. 시리아와 이스라엘 영토 사이에 위치해 있는 폭 12~25km, 길이 67km에 달하는 ‘골란고원’은 거대한 전쟁터로 변해 버렸다.

고도 2000m의 정점의 ‘골란고원’은 북 리바논, 동 시리아, 서 이스라엘 그리고 남 요르단 4개의 나라로 둘러싸여있다. 또, 요르단 계곡과 서 이스라엘 갈릴리 지방 그리고 동 다마스 고원 위로 불쑥 나와 있다. 특히, 공식적으로 여전히 전쟁상태인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선, 이곳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1946년 시리아가 독립했을 때 ‘골란고원’은 시리아영토였다. 이스라엘이 ‘골란고원’의 통치권을 주장하는 이유는 1967년 이스라엘이 이곳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골란고원’에선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노골화되었다. 즉 이곳은 두 나라 사이뿐만 아니라 시리아와 동맹관계에 있는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서도 간접적인 분쟁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에 의한 ‘골란고원’ 점령은 1967년 당시에도 유엔에 의해 비난을 받았고 시리아는 1973년 키푸르 전쟁 때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이곳을 수복하려 했다. 이 전쟁에서 14,000명이 전사하고 28,000명이 부상했다. 그 당시 이집트 역시 시나이반도를 수복하려했지만 미국 지원 하의 이스라엘이 최종적 승자가 됐다.

마침내 1979년, 이스라엘은 이집트에 시나이반도를 반환했고 두 나라는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1994년 요르단과도 같은 절차를 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아는 이스라엘이 반환하길 거부하는 ‘골란고원’ 지배권 문제에 부딪쳐 협상들이 완전히 실패함으로써, 이스라엘과 여전히 전쟁상태에 놓였다.

1981년, 이스라엘 국회는 유엔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골란고원’ 병합을 가결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우파 민족주의자들이 점령된 모든 영토 반환을 요구하는 시리아와의 협상을 더욱 어렵게 만들면서 우파입지를 다짐에 따라, ‘골란고원’ 철수조건들도 더 강화시켜나갔다. 1999년 이후에는, 이스라엘 정부가 ‘골란고원’ 관련 타협안을 결정하기 위해선 국민투표의 최소 65% 혹은 의회 과반수의 지지를 얻도록 했다.

현재까지 골란고원에는 3만 명의 유태인 소작인과 1967년 이후 이스라엘의 통제를 받고 있는 2만2천 명의 드루즈족 시리안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키푸르 전쟁 1년 후에 유엔은 ‘골란고원’에 이스라엘군과 시리아군 사이의 완충지대를 설정한 바 있다. 유엔군들은 길이 70km에 달하는 비무장지대에서 휴전상황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고 이러한 상황은 시리아내전으로 주변지역이 또다시 불안정하기 전까지 별 탈 없이 유지되었다.

2014년 유엔군이 이스라엘 지역의 주둔을 위해 무장지역에서 철수함으로써 완충지대가 사라지자 지하디즘 단체들이 ‘골란고원’ 시리아 국경선을 따라 집결했고 시리아정부군과 반군들도 이곳에서 대립하고 있는 상항이다.

누가 쏘는 지도 모를 시리아측 박격포탄들이 간헐적으로 ‘골란고원’에 떨어질 때마다 이스라엘군은 거의 매번 반격을 가했다.

시리아내전과 더불어 이 지역은 미국과 이란 사이의 간접적 대결 무대로 굳어진 이유가 시아파교도인 이란은 시리아정부의 동맹국이고 이스라엘의 주적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2018년 2월 소형무인정찰기 한 대가 이스라엘 영공에 침투했을 때 상항이 급작스레 긴박해졌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포격을 감행하기 전 이미 이란을 먼저 경계하고 있었다.

마침내 5월 9일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골란 고원의 군부대 10군데가 로켓포 공격을 당했다. 이 공격은 시리아 남부 쿠나이테라주 일대의 시리아군을 이스라엘이 전날 선제공격한 뒤에 일어났다. 이스라엘은 시리아 내 이란군의 소행으로 보고 전례 없는 규모의 반격을 개시했다.

요르단 강 서안지구와 반대로 ‘골란고원’은 유대교에 특별한 의미가 없다. 이곳의 점령은 종교적 중요성은 없지만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에 점령되기 전 시리아의 명실상부한 방어요새였다. 1948~1949년 이스라엘-아랍전쟁 동안 시리아군이 이곳으로 후퇴하여 이스라엘진영을 향해 공격을 했던 곳이다. 또한 시리아군 최정예 저격부대가 주둔했고 이스라엘 공군과 여러 군사시설을 관측할 수 있는 레이더들이 설치된 곳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골란고원’점령은 이스라엘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필연성 때문이었다.

결국 ‘골란고원’은 공격의 전초지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 수도에서 불과 60여km 떨어진 골란고원 북쪽 헤르몬 산 정상에 무선감청기지를 설치하여 군사공격의 선점을 확보한 셈이 됐다.

그러나 ‘골란고원’은 군사적 목적으로만 중요한 곳이 아니다. ‘골란고원’의 지배에 따라 광활한 사막지역에 산재한 수원지들의 지배권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6일 전쟁’ 직전, 시리아, 리바논,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호수와 수원지의 지배를 놓고 서로 다투곤 했다. 영토의 60%가 사막지대인 이스라엘이 염도감소장치를 통해 많은 식용수를 생산하고 있지만 수원지의 지배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남아 있다. 그 자체로, 다양한 수원지와 지하수가 담수되어있는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에 매년에 2억5천만 ㎥의 물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NP

 

 

 

 

 

 

 

 

 

 

 

 

진태유 논설위원  sartre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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