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를 통하여 세상을 응시하다

사진은 세상을 담는 하나의 방법이다. 사진에 담기는 세상은 때론 슬프고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비참하며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그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그런 장면이다. 그리고 그 장면은 찰나이다. 어쩌면 생각이 스치는 한 순간의 시간인 찰나보다도 더 짧은 순간이 사진에 담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진 안의 풍경과 사람들이 가끔은 생소하고 낯설어 보이는 것일지도.

임보연 기자

조선희는 패션 잡지나 광고에서 연예인들의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로 유명하다. 그녀가 이번에 마음에 위로가 되는 사진집이라는 컨셉으로 <힐링포토>라는 사진집을 출간했다. 이 사진집에 실린 사진들은 조선희 사진작가가 94년부터 10년에 걸쳐 찍은 수 만장의 사진들 중에 마음을 치유하는 사진들을 골라 모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쁜 모습이나 멋있는 포즈의 모델들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보기 좋은 풍경 사진들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 그녀의 사진들은 마음을 잔잔하게 해주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인도,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를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의 거칠음과 소박함이 마음을 동요시키는 그런 묘한 사진들이다. 과연 이런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어떤 감수성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녀의 스튜디오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어보기로 했다.

보여지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조선희는 직선적인 말투며 마음을 굳이 가리지 않는 모습이 투명한 렌즈를 닮아있다. <힐링 포토>라는 사진집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이전과 많이 변화한 느낌이 드는 이번 사진집에 대해서 묻는다.<왜관촌년 조선희 카메라와 질기게 사랑하기>라는 사진집 때와 사진의 분위기는 물론이고 어투까지 달라졌다. 제목부터 내용까지 모두 강했던 그 책과는 많이 다른 듯하다. 느슨해진 혹은 여유로워진 느낌이랄까.“책의 성격부터 다르다. 물론 그 때보다 여유로워진 것도 있겠지만 책의 컨셉이 마음을 치유한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는‘힐링포토’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개인적인 변화는 없다. 먼 옛날이 아니고 불과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그 사이 변할 수도 없다.”사실 조선희라는 이름을 대면 사람들은‘아, 그 사람.’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가 꽤 유명한 사진작가라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왜 스스로를 비주류의 틀 속에 넣어두고 분리시키고 있을까.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한 바 있었다. 여자는 단 하나, 그리고 비주류, 이방인의 느낌, 그러나 난 굴하지 않았다. 그들의 험담과 비난이 세면 셀수록 난 더욱 강해졌다고 말이다.“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물론 그런 말들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그래서 스스로 강해지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런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있겠는가. 강해지고 싶다는 약해진다는 의미의 상대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직접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다들 누가 그랬다더라고 전하기만 할 뿐이다.”그녀는 대중에게 노출이 많이 되고 있는 사진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녀도 처음에는 부담도 되고 집중하기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익숙하단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따르면“보여지는 것은 일부이다.”라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그녀에게서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눌려진 수많은 셔터의 움직임이 보이는 듯하다.

치유, 여행, 과거, 변화, 그리고 조선희
그런데 왜 갑자기 힐링포토라는 사진집을 냈던 것일까. 혹 스스로 치유해야 할 상처라도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 결정적인 계기라는 것이 그녀가 어디를 가게 되면 항상 그런 사진들을 찍어왔다는 사실이었다. 책을 내기 위해서 찍은 사진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사진을 보게 되고 좋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느낌에 대해서 말이다. 사진을 보고 난 후에 마음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그녀의 사진집을 보면서 생각했던 것 중의 하나가 그녀의 감수성에 대한 것이었다. 사진 옆에 써놓은 글들이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다.“평소에는 글을 잘 안 쓴다. 서울에서는 안 쓰고 여행을 가게 되거나 할 때, 나 자신의 일상과 떨어져 있을 때 글을 쓴다. 비행기 안에서라든가. 사실 마음이 여린 편이다. 잘 울기도 하고 말이다.”이렇게 속내를 털어놓는 그녀가 순간 힐링포토의 사진들과 겹쳐져 보였다. 이번 사진집의 경우는 꼭 조선희답기도 하고 정말 조선희 같지 않기도 했다. 그동안의 사진 작업들이 어떤 것인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묻기로 했다.“변화는 많았다. 초반에 순수하고 거칠었다면 지금은 많이 정제되고 덜 순수하다고나 할까. 아무 것도 모를 때가 가장 순수한 법이다. 모르기 때문에 더 순수하고 거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지금은 알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게 있으니까.”우리가 알아채지 못하게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그녀가 이제는 어떤 변화를 꿈꾸고 있을까. 그 안에서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을까.“사실 계획을 세우고 사는 사림이 아니다. 느끼는 대로 감정에 충실해서 사진을 찍어왔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계획이라. 10년 동안 인도에 일년에 한 번씩 여행을 가야겠다. 45세 이전에 세계일주를 해야겠다. 그런 정도의 계획을 가지고 살아간다.”계획 중에 여행이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들어간다. 여행을 좋아하는가.“좋아한다기보다 필요하다. 공기와 같은 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 돌아버릴 것 같다. 사실 아프리카 일주를 하고 싶었다. 사파리 여행부터 한 6개월 정도의 기간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하기에는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사진 이외에 그녀의 일상이 궁금하여 물었더니 사실은 사진 이외의 것이 별로 없다고 한다. 만화책을 읽는 것을 즐기는 정도가 다라는 것이다.“만화가 중에 김예린이나 황미나 스타일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과거지향적인 것을 좋아하는 내 성향 때문이다. 내 사진도 과거 지향적이다. 내 기억 혹은 내 추억 속에 있는 것들이 드러난다.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영화도 사이버적인 거 싫어한다. 디카 역시도 필요에 의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즐기거나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 책을 바칩니다
<힐링포토>의 헌사를 보면 이런 문장이 적혀있다.‘내게 딸이 될 기회를 주신 내 어머니와 내게 어머니가 될 기회를 준 우리 아가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이 문장을 읽는 순간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기도 했으며 공감이 가기도 하고 한동안 그 문장에 눈길을 멈추고 있어야 했다.“사실 첫 번째 책을 쓸 때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남기고 싶었다. 그런데 깜빡 잊고 못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행동하거나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하지만 감정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조선희 사진작가는 현재 임신 3개월째이다. 딸이었으면 좋겠는데 아들일 것 같다는 말을 한다.“이것도 이기적인 마음이다. 딸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니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남녀가 불평등하다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느낀다. 다행스럽게 입덧이 없어 최대한 8개월 때까지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기를 낳고 나면 6~7개월은 일을 못 할테고, 본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최소 1년은 소요해야 한다. 남자들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사진을 사랑하고 그녀의 일이 일상인 조선희에게서 그 일상을 잠시 접어야 한다는 것에 많이 약이 오른 듯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질문을 던져본다.“그렇게 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 원하는 것을 잘 알아가면서 살고 싶고 잘 늙어가고 싶다.”
사람들은 가끔 카메라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착각일 뿐이다. 카메라의 렌즈를 통하여 바라보는 세상은 오로지 작가와 세상과의 의사소통 과정이다.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대화가 들리는 듯하다. 조선희 사진작가의‘힐링포토’에서 이야기하는 자연의 조심스러운 속삭임과 철학을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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